‘의료보험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에 관한 블로고스피어의 논쟁을 보면서 한 가지 어이없는 일은 위의 두 급진적 조치가 ‘인간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어떤 이는 – 아마 현 정부 지지자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 이명박 지지자들에게 ‘너희들이 어떤 사람을 뽑았는지 앞으로 똑바로 지켜보라’는 훈계까지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료보험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는 현 정부가 초석을 이미 다 다져놓은 상태다. 당연지정제의 경우 이미 2005년 민주화의 산 증인 김근태씨가 복지부 장관으로 있던 시절 폐지를 검토했다가 참여연대가 항의성명을 내는 등 저항이 일자 서둘러 봉합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현 정부가 슬그머니 저질러놓은 사건이 있다. 바로 자유경제구역과 한미FTA다. 이 두 가지 수단만 있으면 의료자본은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언제든지 깨부술 수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요양기관)에 규정하고 있다.
제40조 (요양기관) ①요양급여(간호 및 이송을 제외한다)는 다음 각호의 요양기관에서 행한다. <중략>
1. 「의료법」에 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
2. 「약사법」에 의하여 등록된 약국
<중략>
④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로써 국내에 각각 의료법과 약사법에 의해 개설된 병원, 약국은 요양급여, 즉 치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원칙에 균열을 낸 것이 바로 ‘경제자유구역’이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설치 및 활성화를 위해 2005년 제정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3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제23조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의 개설 <개정 2005.1.27, 2007.12.7>) ①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상법」상 법인으로서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법인은 「의료법」 제33조제2항에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중략>
⑤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개설된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동법에 의한 요양기관으로 보지 아니한다.
요약하자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국내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하지만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른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당연지정제에서 면제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당연지정제의 정신은 누가 깼을까.
경제자유구역은 일종의 특정구역이고 특별법 지정을 통해 예외를 둔 것이니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통한 전 요양기관으로의 확대와는 다른 문제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순진한 생각을 깨부수는 것이 바로 한미FTA다.
즉 경제자유구역에서의 예외조항은 의료기관 영리법인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폐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 의료체제의 신자유주의화를 가속화시킬 것이고 이를 지지하는 튼튼한 지지대가 바로 한미FTA 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한미FTA에는 ‘투자자-국가 분쟁 절차(Investor-State Dispute : ISD)’ 또는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라 불리는 투자자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외국기업 또는 외국인투자기업은 허다한 공공서비스를 역차별이라 규정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의료시스템에서의 그들의 공격대상은 보나마나 당연지정제와 강제가입제다. 이 소송은 국내에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헌법의 규정을 받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시사인의 장영희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AIG 같은 미국계 보험회사들이 한국의 강제가입제가 부유층의 민간 보험 가입을 막아 자신들의 잠재 이익을 침해했다며 투자자 국가 제소권(ISD)을 동원한다면 건강보험의 무력화는 시간문제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FTA?”, 시사인, 장영희 전문기자)
이외에도 한미FTA 조약에는 ‘역진 금지 기제(래칫)’ 등 다양한 투자자 보호 제도가 완비되어 있으니 그것만 있으면 대통령이 이명박 씨가 앉아 있든, 정동영 씨가 앉아 있든, 심지어 권영길 씨가 앉아 있든 상관없이 자본은 공공서비스를 맘대로 난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조약은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노무현 현 대통령이다.
이 당선자는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이=한미 FTA 체결은 정말 잘한 일이다. 사실 대통령이 한미 FTA를 할 줄은 몰랐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이 미국 시장을 먼저 겨냥한 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노 대통령 임기 중에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면 좋겠다. 나도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겠다.
▽노=FTA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盧대통령-李당선자 만찬 회동”,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