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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정당성을 넘어선 정치에 대한 상념

경제성장을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可用財源을 적절히 배분하고 어느 정도 경제를 정부 통제하에 두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물론 정부가 통제한다고 해서 예컨대 「인도식 5개년계획」을 따르자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런 정책은 인디커티브플랜(Indicative Plan)이어야 하며 민간기업을 최대한 참여시키고 그들의 역량을 활용해 가면서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 자금이 많이 드는 것, 민간이 투자하기를 주저하는 부문을 정부가 담당하는 식의 개발계획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소신이었다.[부흥과 성장, 송인상 저, 21세기북스, 1994년, p155]

이승만 정부 때 한국은행 부총재, 부흥부 장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재무부 장관 등을 지냈던 경제관료 송인상 씨의 회고록 중 일부다. 송 씨는 한국은행 부총재 시절 포드재단의 기금으로 운영되던 EDI(Economic Development Institute)에 6개월 연수의 기회를 얻었다. 이 기관은 각국의 고위 경제관료들을 모아 경제정책에 대한 교육을 시켰던 기관이다. 송 씨의 술회에 따르면 노벨상을 수상했던 경제학자 등 꽤 화려한 강사진으로 커리큘럼이 짜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이러한 교육과정을 마련한 데에는 당연히 개발도상국의 경제관료들에게 미국식 시장경제의 도입을 권장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겠으나 송 씨의 회고를 살펴보면 꼭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당시 각국 경제개발 과정에서 시행되고 있던 계획경제, 통제경제, 방임경제 시스템 등의 장단점에 대한 토론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송 씨는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인용문과 같은 경제정책에 대한 나름의 주관을 정립하게 된다.

어쨌든 민간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전후 개발도상국들에게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체제를 불문하고 통제경제는 일종의 불가피한 조치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권력집중과 자원집중의 수단을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대의민주제 등 정치선진화는 체제를 떠나서 상당히 요원한 일이었고 부패는 필수적으로 뒤따랐다. 이승만 정권 역시 그러했고 냉철한 이코노미스트 행세를 하던 송 씨도 재무부 장관 재임 시절인 1960년 3.15 부정선거에 연루된 뒤 옥살이를 했다.

요컨대 그 와중에 한국이 더 이상 퇴행하지 않고 다행히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제1세계가 도울 수밖에 없었던 지정학적 특수성과 독재정권을 절차적 정당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 대의민주제로 전환시킨 국민적 저항의 존재 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요즘의 세계를 보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많은 선진국조차 다양한 모순으로 인해 뿌리가 흔들리는 광경을 보면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선 새로운 정치 체제라야 경제와 사회를 구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