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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지난번 선거에서는 진보신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했다. 이번에는 좀 더 덜 비판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씨가 탈당함으로써 오히려 당이 사당화될 우려가 줄어들었다.(물론 그분들의 그간의 헌신적인 노력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둘째, 홍세화/박노자 씨가 꺼져가는 진보정당의 불씨를 살리겠다고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셋째, 가장 멋진 부분인데 울산과학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이신 김순자 씨를 비례대표 1번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공천을 보더라도 진보신당은 당의 이념과 공천이 가장 일치하는 당 중 하나라 생각된다. 정책능력이 없는 분을 너무 이미지를 내세우기 위해 공천한 것 아니냐 우려도 있을 수 있지만, 아래 비디오를 보면 그런 우려가 기우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진보신당의 정책은 아직도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 비현실적인 부분도 적잖다.(각 주요 야당의 공약에 관한 단상을 보려면 여기로) 하지만 나라의 이념적 지형이 심하게 우측으로 경도되어 있는 이 시기, 진보신당이 의회에 의원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 정치사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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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소회

이 블로그에서는 의회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생각했지만 이번 재보궐 선거를 지켜보며 느꼈던 소회에 대해선 몇 마디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글을 남긴다. 선거가 끝나고 이른바 범야권의 참패와 그 뚜렷이 보이는 패인이 안타까워서 트위터에 몇 마디 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원칙 없는 단일화에 대한 비판이었다.

여러 항의 트윗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하나는 내 트윗의 “싸가지”없음을 비판하면서 “너희나 잘 하세요”라는 내용의 트윗이었다. 그래서 나는 “왜 민주당이나 민노당을 까면 진보신당 당원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트윗을 남겼다. 그랬더니 다른 트위터러가 그 트윗을 RT하면서 “대안이 없으니 욕을 듣죠”라고 답하였다.

하지만 그 트윗은 엄밀히 말해 답이 아니었다. 난 진보신당 당원이 아니라 했는데 그 트윗은 필시 ‘진보신당이 대안이 없으니 욕을 듣는’ 것 아니겠냐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엄한 소리였다. 그런데 정작 놀란 것은 그 트위터러의 프로필이었다. 프로필에 보니 민주노동당원이었다. 내가 민주노동당원일때 지겹게 듣던 소리를 민주노동당원에게 들은 것이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대안이란 무엇일까? 내가 물었지만 그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내멋대로 추측해보자면 그것은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야권 단일화인 것 같다. 즉 민주노동당은 야권 단일화에 나서 성공했는데 진보신당은 그러지 않아 대안이 없는 것이라는 논리인 것 같다. 이 역시 80년대 이후 지겹게 들어오던 레퍼토리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 대안의 있고 없음을 다 떠나서 이번 은평을 선거만을 놓고 보자. 그것이 “대안”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남은 인생 내내 그것은 대안이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당의 승리를 막기 위한 범야권의 단일화라는 것이 고작 부패 의혹이 강한 전혀 개혁적이지 않은 정치인으로의 단일화라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장상 씨는 이미 지난 김대중 정권에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 인물이다. 청문회 내내 모르쇠로 일관하던 그의 스타일은 그 뒤 많은 부패의혹의 공직후보들에 의해 답습될 만큼 한 전형을 만들었다. 민주노동당은 당연히 그를 반대했다. 그런데 그뒤 어떻게 상황이 바뀌었기에 민주노동당은 그를 야권의 후보로 추대한단 말인가?

그러고도 결과는 패배였다. 명분 없고 대안 없는 “대안”이 낳은 당연한 결과다. 이재오가 너무 강했다고? 그러면 문국현은 그를 어떻게 이겼을까? 정치시장에서 허접한 상품이라도 “야권”표만 붙여서 내놓으면 ‘야권 오다꾸’들이 상품을 구매해줄 것이라는 ‘애플적’ 오만함이 어느새 민주당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에도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대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정치시장에서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과점체제가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틈이 없으니 단일화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광주의 득표를 생각해보라. 한때 10%를 훨씬 상회했던 민주노동당의 지지도를 생각해보라. 한때 “우리의 꿈은 너희와 다르다”고 선언하면서도 얻은 지지도다.

물론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범야권 지지자들 중에는 심정적으로 사상적으로 진보정당의 지지자들과 겹치는 부분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원칙을 세운 연대도 가능하다.(주1) 그렇지만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지난 선거와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모습은 연대라기보다는 굴종이었다. 이제 유일한 로드맵은 민주당과의 합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1) 유시민 씨로의 단일화마저 얼마나 민주노동당의 기본원칙을 깬 연대였는지는 여기를 참고하라

유시민표 진보정당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앞서 “좌우를 구분하는 백한 번째 방법”이란 글에서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혼동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유시민 의원을 뽑았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시지 않는다.

유시민 의원이 16일, 그러니까 오늘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했다고 한다. 탈당사유는 “지금 신당에는 제가 꿈꿨던 ‘진보적 가치’가 숨 쉴 공간이 너무나 좁아 보인다”라는 것이고 진보적 정책노선을 가진 ‘좋은 정당’을 5년을 내다보고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한다.

좋은 이야기다. 유력한(?) 정치인이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소신을 밝혔으니 말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와 같이 진보에 대한 가치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고 그에 대한 유권자들의 믿음이 희박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그 진보가 어떠한 진보인가 하는 문제다. 진보를 굳이 좌우로 나누자면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는 ‘좌’쪽에 가까운 가치일 것이다. 앞서 글에서의 좌익이냐 좌파이냐 하는 구분법으로 살펴볼 것 같으면 좌익, 즉 몇몇 핵심적인 정치적인 가치와 경제적인 가치를 포함하여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굳이 표현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다원주의’, ‘자유주의’적인 가치를 포괄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사회공공성’, ‘약자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보호’, ‘강자에 대한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통제’와 같은 가치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시민 의원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한미FTA를 통한 전면 개방으로 다양한 기회 속에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국가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한편, 전통적 진보 가치인 사회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21세기형 유연한 진보”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유연한 진보이자 진보정당’이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한미FTA를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은 ‘유연하지 않은 꽉 막힌 진보(?)정당’인 셈이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가 생각하는 ‘유연’의 판단기준은 ‘한미FTA의 찬반 여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유시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진보의 비극이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에서 쓰이는 ‘자유’라는 단어가 모두 같은 뜻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박정희 독재세력에 대한 반대테제로 상정한 자유는 박정희의 정치적 독재에 대한 자유, 박정희의 국가주도 경제에 대한 자유라 생각한다. 그러니 관치는 나쁜 것이고 시장은 좋은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시장의 자유는 자유무역을 통해 만개한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궁금한 것이 한미FTA를 통해 전면 개방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유시민 의원이 만들 진보정당 또는 다른 정치세력이 “전통적 진보 가치인 사회투자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불어 좌익의 핵심적인 가치인 약자에 대한 보호, 강자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미FTA는 분명 ‘자유’무역협정이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 체결된 한미FTA에서의 자유는 시민사회의 자유, 경제적 약자의 자유가 아니라 기업의 자유, 시장의 자유다. 모든 시장은 개방되고 공공과 민간이 똑같은 기준으로 경쟁하며 모든 사회적 가치는 화폐로 환산된다. 기업은 국가가 공공성을 이유로 기업 활동을 제한할 경우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였다는 명목으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유시민 의원이 예를 들어 사회투자를 확대하겠다며 특정 공공서비스의 독점적 시장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을 때 투자자들이 그러한 조치가 한미FTA 조약을 위반하였다고 소송을 걸 때 어떻게 그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진보 가치”를 수호할 것이고 그의 지지자들에게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하다.

한미FTA는 필요악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유시민 의원이 어찌 되었든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한 사회와 같이 정치적 스펙트럼이 지극히 편협적인 곳에서 ‘진보’라는 이름을 단 정치집단이 하나라도 많아져서 나쁠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그 진보정당이 한미FTA를 찬성하는 진보정당이라면 나는 그것은 모순이라고 본다. 그의 판단기준으로 보자면 한미FTA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힐러리와 오바마는 ‘유연하지 못한’ 정치인이고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진보정당은 미국의 민주당보다 훨씬 유연한(?!) 정당일 테니 적어도 나는 그 정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