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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거품인가 아닌가?

유가에 얼마나 거품이 끼었는가가 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다. 특히 폴 크루그먼이 정치적 관점을 떠나서 유가에는 거품이 없다고 단언하며 월스트리트를 옹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여 이 글은 폴 크루그먼의 그간의 주요한 유가에 관한 그의 주장을 탐험하는 글의 시작(어쩌면? 아니면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유가가 폭등하자 인도에서는 낙타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As the cost of running gas-guzzling tractors soars, even-toed ungulates are making a comeback, raising hopes that a fall in the population of the desert state’s signature animal can be reversed.[Camel demand soars in India, Financial Times, 2008.5.2]

그렇다면 이제 석유 먹는 하마인 미국이나 중국도 인도처럼 낙타를 자동차대용으로 쓰면 석유 수요가 크게 줄지 않을까? 중국은 상황을 모르겠지만(주1) 적어도 미국에서 낙타를 대체수단으로 쓰기는 곤란할 것 같다. 더욱이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대중교통으로의 통근율 증가치는 2005년에 비해 불과 4.7%밖에 늘지 않았다고 한다.

But … as of 2005, only 4.7 percent of American workers took mass transit to work. So even a 10% surge in mass transit ridership would take only around half a percent of drivers off the road.[Sick transit and all that, Paul Krugman, 2008.5.10]

이러한 사실은 개개인들의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길들여 져버린 나쁜 습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미 물적 계획이나 사회 시스템이 값싼 유가에 최적화된 체제적 모순에서도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쭉 뻗은 고속도로와 그 도로위에서 – 총기류와 함께 – 미국식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큰 배기량의 자가용이 질주하는 모습으로 국토계획이나 도시계획이 진행된 관계로 지금 유가폭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기름 넣어가며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주2) 경제학적 견지에서 볼 때 대체재가 없는 경우다.

Why oil isn’t gold
More on oil and speculation

이 두 글에서 크루그먼은 석유는 금과 달리 즉시 소비되거나(주3) 아니면 저장되는 특성이 있다고 정의하고 현재 “원유의 민간 재고는 50일치 생산(private stocks of crude oil are equal to about 50 days’ worth of production)”불과하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수요-공급 곡선의 교차점 가격, 즉 정상적인 시장가격보다 유가가 고평가되어 있다면 초과 공급이 있을 것이고 “그 공급은 재고로 가야하며 만약 석유가 재고에 쌓여 있지 않다면 현재 가격에 버블은 없는 것(that supply has to be going into inventories. End of story. If oil isn’t building up in inventories, there can’t be a bubble in the spot price)” 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즉 앞서의 원유 재고치를 근거로 매점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많은 댓글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이미 인위적으로 공급을 제한하고 있지 않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어떤 이는 만약 석유가 자본주의자들 손에 모두 놓여 있다면 수급에 문제가 없을 텐데 많은 부분이 OPEC, 휴고 차베즈, 푸틴과 같은 국유화론자들의 손에 놓여있기에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to be continued…

 

(주1) 단편적으로 들리는 바로는 중소도시에서는 아예 석유공급이 중단되거나 제한공급 체제로 돌입하였다고도 한다

(주2) 일례로 아틀란타의 경우 통근자들의 89%가 자가용을 이용하는 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비율은 불과 4%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최근 미국 몇몇 주에서는 잊혔던 고속철도 계획을 다시 꺼내드는 등 대중교통에 대한 당국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주3) 즉 금의 소비와 달리 석유의 소비는 소진되어버린다

선물투자자들은 유가폭등의 주범인가?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가장 큰 사회적 이슈다. 그렇다면 쇠고기 수출국 미국에서는 어떤 것이 가장 큰 사회적 이슈일까? 물론 우리나라처럼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만큼, 그리고 전 국민이 설왕설래할 만큼은 아니지만 아마도 유가폭등의 원인을 둘러싼 선물거래자들의 영향력 여부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米의회가 최근의 유가폭등의 주범을 선물시장에서의 투기세력으로 지목하고 이에 대한 청문회를 잇달아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특히 증언자로 나서 투기세력을 거칠게 비판한 마이클 마스터스 Michael Masters 라는 이는 그 스스로가 헤지펀드의 매니저여서 관심은 더욱 배가되었다. 그는 일종의 내부고발자로서의 그의 발언은 양심선언인 셈이니 말이다. 게다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존 맥케인까지 선물거래 계약을 “무모한 노름(reckless wagering)” 이라고 몰아붙이고 나선 상황이니 이제 선물거래자들은 분명히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범인은 잡혔고 의회가 그들을 단죄하고(주1) 유가는 정상적인 수준으로 환원되는 행복한 시절이 도래할 것인가? 그렇게 상황이 쉽게 풀리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일단 학계에서도 과연 선물거래가 유가폭등의 원인이냐는 것에 대해 찬반논쟁이 뜨겁다. 선물거래가 유가폭등의 원인이 아니라고 보는 대표적인 이로는 폴 크루그먼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최근 그의 블로그에서 이 입장을 몇십 개의 포스팅에 걸쳐 계속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수많은 독자들의 반론을 맞받아치고 있다.

대표적인 투자은행은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들도 폴 크루그먼의 주장을 거들고 있다.

3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제프리 커리, 데이비드 그릴리 애널리스트는 29일자 보고서에서 “만약 가격이 수급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다면 자연스럽게 재고가 쌓이고 결국 시장에 이 재고가 다시 흘러들어가게 된다”면서 “그러나 최근 재고에는 뚜렷한 상승 추세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원유 가격 강세가 투기에 의한 현상이 아닌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수급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애널리스트들은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투기꾼들이 아니라 향후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는 정보”라고 강조했다.(골드만삭스 “유가 급등은 투기 때문 아냐”, 2008.6.30, 머니투데이)

더군다나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양심세력으로 등장한 마이클 마스터스가 실은 유가하락으로 이익을 볼 항공사와 GM의 주식에 투자하고 있음이 한 블로그에 의해 제기되었고 이를 비즈니스위크가 보도하면서(주2) 反투기세력 주창자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추세다.

과연 선물거래자들은 시장의 교란자인가 아니면 억울하게 비난받고 있는 선량한 투자자인가? 폴 크루그먼도 인정하고 있다시피 적어도 “투기는 시장에서 실체의 상품들을 사라지게 하는 경우에 현 시점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Speculation can affect spot prices because it takes physical stuff off the market.)” 즉 매점을 유발할 때에 가격상승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에는 선물거래 역시 분명히 시장의 한 참여주체인 만큼 가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적어도 수급상황의 악화, 원유채굴가격 상승, 정부의 정책실패, 정유업체들의 폭리 등 다양한 요소를 선물거래에서의 ‘악의 세력’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 단순한 해법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주1) 구체적인 조치로는 지수 투기를 막기 위해 높은 증거금 등을 요구하는 법안 마련

(주2) 이러한 언론보도는 블로그가 하나의 대안언론으로써 기능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경제학자

“My name is Luka”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서정적인 곡을 기억하시는지? Suzanne Vega가 만들고 부른 이 포크 곡 Luka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학대당하는 어린 소녀를 소재로 한 그 가사의 깊이 덕분에 80년대 후반 큰 인기를 끌었었다. 그 뒤로도 꾸준히 활동하였으나 사실 국내에서는 이 곡이 유난히 알려져 반짝 가수로 알려져 있다.

여하튼 그런 그녀가 뉴욕타임스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서 알았는가 하면 또 하나의 뉴욕타임스 블로거 폴 크루그먼. 그는 Suzanne Vega 라는 제목의 글에서 여태 그녀가 블로그를 하는 줄 꿈에도 몰랐다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 재밌는 멘트도 했는데 그는 다음 생에서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으며 The Queen And The Soldier  라는 곡을 쓸 수만 있다면 Google Scholar Listing 의 첫 페이지를 독차지 하고 있는 명예를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 신선한 점은 세 가지. 일단 폴 크루그먼과 같은 고리타분한 외모의 소유자가 (선입견에 어울리지 않게)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 두 번째 유명인이 유명인에 관해 블로그에서 이야기한다는 사실. 세 번째 유명인마저 Google 에 자신의 성(姓)으로 검색되는 학술정보에 자신이 압도적임을 잘난 체 한다는 사실.

가장 비싼, 그럼에도 가장 후진?

폴 크루그먼이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Runaway health care costs ? we’re #1! 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미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헬스케어에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그로 인한 개선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가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현재 미국은 GDP 대비 15.3%를 헬스케어에 투입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세계 1위의 수치라 한다. 또한 그 증가율에 있어서도 역시 세계 1위라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보다 통합된 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그 추세를 꺾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소셜시큐리티가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글에는 미국인들로 추정되는 많은 독자들이 공감의 댓글을 달았다. 주목해볼만한 댓글들을 추려보았다.

개혁해야 할 “시스템 (자체:역주)”가 없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의사와 돈을 벌려는 다른 이들을 위한 시장이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 이 시장에는 정부의 통제가 없다. 아냐 이는 우리에게 시스템을 만들 기회를 줄 거야. 사람들이 깨어날 때!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There is no “system” to be reformed. All that is there is a market for doctors and others to make money. Thats it! There is no governmental control on this market. No, that would give us an opportunity to make it a system. When are people going to wake up! The people are not being served.
– Posted by edmcclelland

헬스케어의 비판자들은 늘어나는 비만률이 (의료:역자주)비용의 증가 때문이라고들 한다.(주1) 이러한 수치들과 당신이 언급한 나라들이 얼마나 상호 관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Critics of health care reform suggest that the rise in the obesity rate is the cause of increased costs. I’m curious to know how closely these numbers correlate across the nations you list.
– Posted by Tracey C Barrett

나는 사회복지정책을 강의한다. 우리는 어젯밤 미국에서의 헬스케어와 특히 그것의 높은 비용에 관해 2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지난 몇 년 간 가졌던 생각인데 책임 있는 자들이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데에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맥케인 의원은 월스트리트와 보험회사의 뚜쟁이 노릇을 할 요량이고 오바마 의원과 클린턴 의원이 내놓은 계획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개혁에 한참 못 미친다. 누가 우리를 구할까???
I teach a course in Social Welfare Policy…we spent 2.5 hours last night talking about the health care in the US and, especially, its high cost. The students pretty much agreed, as others have in past years, the folks in charge aren’t going to let the system be changed. Senator McCain’s plan panders to Wall Street and the insurance companies; the plans put forth by Senators Obama and Clinton are not anyway near the real reform we need. Who will rescue us????
– Posted by Jim Bourque

나는 서로 다른 보험체제를 가진 서로 다른 세 나라에서 살아보았다(스위스, 프랑스, 미국). 세 번의 경험 중에서 프랑스와 스위스의 시스템이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는 주로 메디칼케어의 수준에서 그러하다. 비용은 프랑스가 가장 쌌고 스위스는 미국보다 약간 쌌다.[하략](주2)
I’ve lived in three different countries with three different health insurance systems (Switzerland, France and the US). Of the three my experience with the French and the Swiss system has been far better than with the US system, mainly in terms of the quality of the medical care. Cost-wise the French system was the least expensive while the Swiss system cost slightly less than the US.[하략]
– Posted by RepublicanModerate

나는 국가적인 단일 주체의 헬스케어 시스템을 요구한다,
I demand a national single payer health care system.
– Posted by Dick

이 글은 이 시각 현재 칠십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을 만큼 뜨거운 화제인데 대략의 내용은 위에 몇 개 인용한 바와 같이 사보험 회사들의 막대한 이윤을 위해 헬스케어 시스템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들이었다. 이는 현재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마이클 무어의 Sicko 가  지적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이다.

물론 폴크루그먼의 글에 댓글을 달 정도면 상당히 리버럴한 성향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댓글들에서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점 하나는 많은 이들이 시장의 다수의 참여자들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단일 주체(national single payer)”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완전경쟁 체제가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영미권의 자유방임에 대한 지고지순의 가치를 부정하는 의견이어서 흥미롭다.

물론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런 것이지 사람들의 생각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는 미국인들 상당수 역시 여태껏 시장의 자유에 대해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어왔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이 적어도 미국적인 견지에 봐서는 공산주의자의 발언이나 다름없는 국가적 단일 주체를 요구하는 모습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일들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의료분야에서도 강한 민영화 드라이브를 계획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당연지정제 폐지와 영리 의료법인 설립 등의 제도들이 본격적인 의료민영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비록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썩 쓸 만했던 우리의 의료시스템이 지금 제도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미국식 개혁(?)의 경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예정된 실패로의 행진?

(주1) 실제로 선진국에서 비만은 더 이상 풍요로움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빈곤한 식사에서 비롯된 가난의 결과일 뿐이다.

(주2) 내용이 길어서 하략했는데 꽤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으니 원글을 참고하시도록

금융자본의 목에 누가 방울을 달수 있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부실화에서 비롯된 미국의 금융위기, 이에 따른 전 세계 경제의 출렁거림의 근본원인은 무엇보다도 모기지 대출을 남발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낮았던 대출 금리와 이에 따른 시장참여자들의 투기적인 묻지마 대출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들 수 있는 또 하나의 주요원인은 금융에 대한 탈규제, 혹은 미 금융당국의 부실한 규제일 것이다.

금융에 대한 탈규제는 1970년대 리처드 닉슨이 달러에 대한 금태환을 일방적으로 포기한 이후 미국을 시작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금환본위제 포기에 따른 환율위험 노출과 금융탈규제에 따라 금융시장에는 파생상품 시장의 질적/양적 성장, 투자은행의 대규모화 및 세계화, 헤지펀드 등 규제를 받지 않은 금융자본의 융성, 기초자산의 증권화 등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전후 얼마동안은 IMF, 세계은행,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국제적인 금융기구의 활용방안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미국은 자국의 금융업 팽창 및 이에 따른 시장 확보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이들 기구들의 새로운 용도를 발견 – 또는 발명 – 했다. 즉 이들 기구들이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에 따라 – 또는 의도된 무정부성에 따라 – 자금경색에 빠진 국가들에 구제 금융을 빌려준 뒤 자본투자제한 등에 대한 탈규제(특히 금융부문에서)를 강제하고 BIS 비율 준수 등 까다로운 새로운 금융기준을 마련한 뒤 미국 금융자본의 무혈입성을 돕는 역할이 그것이었다.

이렇게 전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하여 멈추지 않는 자본회전을 목표로 삼고 있는 서구의 금융자본에게도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시장은 미국일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구매력을 자랑하는 국민, 세계 최고 규모의 자본시장, 그와 동시에 유동성위험이나 신용위험이 가장 적은 멋진 곳이 바로 미국이 아닌가 말이다. 문제는 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높은 이윤창출의 기회가 적고, 탈규제 기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의 금융당국은 세계에서 가장 능력 있는 규제당국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여전히 기회는 항상 존재했는데 한때 ‘닷컴’이라는 사명만 가지면 황금주식으로 행세했었던 닷컴버블 붕괴 이후 찾아온 새로운 기회는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었다. 이 거대한 시장에 온갖 희한한 종류의 파생상품이 얽히고설키면서 탄생하였고 여기에 투자은행, 헤지펀드, 모노라인, 기타 수많은 이름도 듣보잡인 투자자들이 참여하였다. 그런데 뉴욕타임스는 바로 그 시점에서 그 능력 있는 미국의 금융당국에서는 “어떠한 연방 차원의 공동의 감독(federal coordinated oversight)”도 없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가장 감독과 규제가 필요한 시점에 규제당국은 급변하는 금융시장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은 “보이지 않는 손 뒤에 숨어서(Hiding behind the invisible hand)” 라는 멋진 제목의 글에서 그 당시에 없었다는 “공동보조(coordinated effort)”에 대해 실은 그러한 공동보조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옳은 방향의 반대의 방향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대출이 광분할 때쯤인 2003년에 금융시장을 감독하여야 할 정부기관 다섯 군데 중 네 군데의 대표자가 오히려 금융규제의 완화를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은 실은 ‘보이는 손’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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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 Street Sign (1-9)” by Vlad Lazarenko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앞서 언급하였던 뉴욕타임스의 해당기사를 보면 최근에 다시 좀더 강화되고 체계적인 새로운 금융규제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민주당 등지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제도들은 급변하는 시장의 행동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또한 Fed가 월스트리트에 상업은행에 준하는, 또는 그 이상의 혜택을 지금 베풀고 있는데 규제는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인식은 확산되고 있지만 그것의 실현여부는 불투명하다. 부시와 골드만삭스 CEO 출신의 헬리 폴슨 재무부장관은 여전히 그러한 규제가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 월스트리트는 공화, 민주 양당에게 있어 가장 매력적인 돈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 것인가? 부시나 헨리 폴슨, 맥케인은 애초에 생각도 없을 것이고… 오바마? 클린턴? 설마.

항상 그래왔지만 탈규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잘못된 규제와 규제 자체를 혼동하게끔 만든다. 잘못된 규제가 경제나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규제 때문에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질대로라면 잘못 위치해 있는 전봇대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전봇대를 다 뽑아야 직성이 풀릴 이들이다. 재밌는 것은 또 이런 친구들이 문제가 되면 그들이 맹신하는 시장의 기능에 경제를 맡겨야 하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비슷한 양상이 진행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스타일이 너무 새마을 운동 스타일로 구시대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속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

오바마에 대한 세가지 반응, 그리고 개인적 바람

BarackObamaportrait.jpg
BarackObamaportrait” by United States Senate – http://web.archive.org/web/20070613015950/http://obama.senate.gov/files/senatorbarackobama.jpg (Was published on the “About” page in 2007).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폴크루그먼과 같은 대가가 블로그를 한다는 사실도 재미있거니와 그의 이력과 별로 어울리지 않게 올리는 글이 담백한 구어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의 블로그를 보면 거창한 이론이나 장광설로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대개 촌철살인 스타일의 간단한 말 몇 마디로 상황을 정리하곤 한다.

그런 그가 최근 재밌는 포스트를 하나 올렸다. 제목은 이른바 “Yes We Can blogging”

그가 1990년 필리핀에서 겪었던 에피소드에 관한 내용으로 “시류와 상관없이” 올렸다는 글이다. 당시 그는 UN의 한 개발프로그램 때문에 필리핀을 방문 중이었는데 그곳 무역산업부의 슬로건이 “Yes, the Filipino can!” 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폴크루그먼을 비롯한 UN사절단은 무역산업부 장관과 면담을 가졌는데 장관은 그 자리에서 필리핀의 통조림(즉 Can) 산업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폴크루그먼은 무심코 “Yes, the Filipino can!”이라고 외쳤다는 내용이다.

그 당시에도 썰렁했을 것 같고 블로그에 올라온 그 글을 다시 읽어도 썰렁하다. 대학자도 저런 썰렁한 콩글리쉬 스타일의 농담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그가 “시류와 상관없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인 것이 오히려 그의 의중을 말해준다. 바로 미대선의 유력주자 배럭오바마의 슬로건인 “Yes We Can”을 빗댄 글이다. 은근히 힐러리클린턴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은 폴크루그먼이 악의 없이(?) 올린 글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한편 미국의 다른 개혁진영은 오바마의 이 슬로건에 적잖게 감동을 받은 듯 하다. 류동협씨의 블로그 포스트에 따르면 래퍼이자 제작자인 윌아엠(Will.I.Am)과 밥 딜런의 아들인 감독 제시 딜런(Jesse Dylan)이 오바마의 연설에 감명 받아 “Yes We Can”이라는 노래를 만들었고 가수, 운동선수, 배우 등 40여명이 이 뮤직 비디오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유투브 등 UCC사이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다.

패러디와 지지가 있다면 반대도 있다. 공화당 진영에서야 물론 전폭적으로 그를 반대할터이고 진보진영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다. 개인적으로 팟캐스트로 청취하고 있는 더그헨우드 진행의 시사프로그램 Behind The News 최근 방송에서는 한 흑인 운동가가 출연하여 오바마의 보수성을 고발하였다. 그리고 그가 집권에 성공하게 되면 오히려 향후 흑인정치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였다. 실제로 최근 오바마가 레이건을 개혁의 상징이라고 언급하였던 해프닝이나 정책에 관한 그의 보수성(일례로 헬스케어에 대한 보수성) 등을 볼 때 그가 현재의 정계에서 피부색만큼 급진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정치 초년병에 대한 상반된, 그러나 폭발적인 반응은 개인적으로 5년전 대선주자였던 노무현 현 대통령 – 비록 노무현 대통령은 오바마에 비해서는 정치선배지만 – 에 대한 반응을 연상시킨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태에서 변방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모양새하며 범 진보세력의 폭넓은 지지, 이에 대한 급진세력의 반발 등이 여러모로 비슷한 모양새다. 한편으로 후보의 급진적 이미지가 실제보다 과장되어 보이게 하는 시대적 상황도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뭐 바다 건너의 문제이니 국내대선보다야 당연히 관심이 덜 가거니와 그에 대한 정체도 잘 모르겠으니 호불호를 따질 계제는 아니다. 어쨌든 큰 이변이 없는 한 오바마든 클린턴이든 민주당이 정권을 탈취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들 후보에게 바람이 있다면 한미FTA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자본을 위해서라면 문제겠지만 미국의 민중을 위한 실질적인 FTA가 되도록 재검토하여 주었으면 한다. 이을 통해 다시 한 번 국내에서도 한미FTA의 계급 및 국가간 편향성에 대한 이슈가 제기되고 자유무역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 지랄맞은 국회의원 들이 날림으로 한미FTA를 국회통과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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