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한미FTA

“치명적인 실수”를 수습해야할 한국 정부

“우리는 한국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한 논의를 할 자세가 되어있다.” (美국무부 산하의) 경제성장, 에너지, 환경 차관 호세 W. 페르난데즈는 한 논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음 달에 국내 규칙제정 과정을 시작함에 따라 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윤은 언급한 문제에 익숙한 두 번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美하원의장 낸시 팰로시가 지난달 남한을 방문했을 때에 직접 만나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만남이 있었더라면 법의 통과 전에 조율을 시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는 말했다.[South Korea Sees ‘Betrayal’ in Biden’s Electric Vehicle Push]

한국 대통령이 워라벨 추구하느라 내한중인 미국 정부의 2인자를 만나지 않아서 한국 정부가 한국의 전기자동차 수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인플레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1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조율할 수 있었을 기회를 놓쳤다는 美국무부 관리의 주장이다. 짧은 만남을 통해 해당 법안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가능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전화통화에서는 다룰 수 없었던 주제였다는 점에서는 아예 기회를 원천차단 해버린, 그럼으로써 美관리가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음은 분명하다.

This 1973 photo of a charging station in Seattle shows an AMC Gremlin, modified to take electric power; it had a range of about 50 miles (80 km) on one charge.
By Seattle Municipal Archives from Seattle, WA – Seattle Municipal Archives, CC BY 2.0, Link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한국산 차량을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이 한미FTA와 WTO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높다고 밝혔다. 이 법이 한미FTA의 비차별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해당법과 관련해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전 정보나 통보를 받은 것도 없다한다.2 FTA도 맺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동맹”이라고 치켜세우던 초강대국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하지만 동맹이고 뭐고 간에 늘 그렇듯이 미국의 자국중심주의적 행동이었을 뿐이고 우리는 뒤통수를 맞았을 뿐이다.

美정부의 유력자가 내한했어도 우리 권력자가 만나지 않을 자유는 있다. 그게 자주적(自主的) 정부의 권리일 것이다. 그래서 자주권을 가지고 FTA도 맺었고 주권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약속을 어겼을 때는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찾아와야 오롯한 자주 국가라 할 것이다. FTA나 투자보호협정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 조항 탓에 주권을 뺏긴 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처분에 따라 거액을 론스타에게 뺏기는 험한 꼴만 당한다면3 FTA의 존재의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워라벨을 지켜낸 그 결기로 주권을 지켜야 한다.

선거 소회 – 민주통합당의 패착에 관하여

어제 트위터를 보면 진보개혁 성향의 많은 트위터러 들이 소위 말하는 집단 “멘붕” 상황에 시달린 것 같다. 그간 청와대와 여권의 뻘짓을 보았을 때 많은 야권성향의 유권자들이 여소야대 상황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 내리라고 여겼던 상황이었을 텐데, 결과는 예상 밖으로 여당의 – 사실상의 박근혜의 – 압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여야 간 균형추가 어떻게 될 것이라 예측하지 않았기에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편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통합당이 선거기간 동안 저지른 몇몇 패착이 떠오르며 화가 나기는 했었다.

사후약방문이지만 민주통합당의 패배의 배경을 몇 개 들어보자면, 결과적으로 1) 한미FTA 등을 둘러싼 이념적인 혼선, 2) 박영선 의원이 지적한 “보이지 않는 손”이나 김용민 씨의 처리에 대한 우유부단한 지도부의 대처, 3) 불법사찰 등 총선 이슈의 의제선점 실패 등의 원인이 거론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배경은 당의 정체성과 지지층 일부의 괴리감에서 온 혼선일 것이다. 민주통합당에게는 현재의 한미FTA 이외의 대안이 없었고 다만 반MB의 관성만 있었을 뿐인데 이 부분이 보수 성향 지지층의 이탈을 불렀을 것이다.

두 번째 배경은 김영삼, 김대중과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1인 지도체제가 아닌 상황이 불러온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명숙 체제는 분명 정도를 벗어난 지도력 부재를 만방에 보여주었다. 김용민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명숙 씨의 코멘트는 “걱정이 많이 된다.”였다. 이후 사태가 악화될대로 악화된 후 한 말은 “사퇴를 권고했으나 본인이 표로 심판받겠다 하더라.”였다. 이건 지도력도 아니다. 이 역시 당의 정체성과는 다른 일부 지지층의 인기영합주의에 따른 “전략공천”의 – 실은 전략은 없었던 – 패착이 되었다.

세 번째 배경이 어쩌면 앞으로 민주통합당이 대선까지 짊어지고 나가야할 가장 근본적인 숙제일 것이다. 이제 불법사찰은 대선까지 끌고나갈 성격의 이슈가 아니다. 물론 진상은 파헤쳐야 하겠지만 박근혜 씨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MB의 책임이다.”라 할 것이고 지지자들도 수긍할 것이다. 남은 것은 복지다. 가처분소득의 감소와 내수부진으로 인해 저성장 사회가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복지는 박근혜 씨도 전면적으로 내세울 이슈인데 이마저 빼앗기면 자칭 타칭 “진보개혁” 정당의 정체성마저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다시 세 가지 배경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을 형성한다. 내가 자주 가는 블로그의 선거분석 글을 보면 한미FTA에 대한 입장변화가 민통당의 악수였다고 하는데 나는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공감하고, 어떤 식으로든 지금과 같은 기회주의적 태도를 버리고서 색깔을 선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존의 FTA를 긍정한다면 각종 복지정책이나 경제민주화 조치와 배치되는 부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는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지도력과 결단력일 것이다. 한명숙 씨에게는 결여된.

p.s. 어떻게 보면 잘 된 일이다. 근소하게 승리했으면 여태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논공행상에 바빠 대선에서 동일한 뻘짓을 반복했을 가능성도 높았을 것이다.

p.s. 2 오늘 자정 이후로 진보신당은 정당등록이 취소되어 더 이상 당명을 그대로 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타율적으로 “신”자를 떼게 되었다.

노무현이 꿈꾸었던 산업고도화 전략은 유효했을까?

먼저 인용문에 링크되어 있는 그래프들을 살펴보기 바란다.

제조업관련 종사자는 1972년 23.7%를 차지하였으나 지금은 불과 9%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미국은 지금도 여러가지를 제조해내고 있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게 줄어든 것이다.[美고용상황의 변화]

미국의 40년 동안의 업종별 고용상황의 변화를 표현한 그래프다. 인용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때 제조업의 최강국이었던 미국은 이 분야의 고용인력이 전체고용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으나 오늘날엔 9%에 불과할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그럼 이들 고용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듯이 대부분 새로운 “제조업 강국”인 중국이나 NAFTA 등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는 곳의 전진기지로 옮겨갔을 것이다.

한편 이 기간의 다른 업종의 변화를 보면, 고급 서비스 업종이라 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비즈니스 서비스’의 비중이 두 배 이상 많아져서 산업구성이 고도화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금융서비스는 동 기간 5.3%에서 5.8%로 거의 변화가 없다. 2008년 월스트리트의 위기를 경험한 이들이 미국의 금융업에 대해 느끼는 의미가 1972년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클 것임에도 실은 고용비중으로 보면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20130620-1011181998~2012년간 미국의 업종별 고용비율 변화 추이

그렇다면 이렇게 고용의 구성이 달라지는 와중에 업종별 생산의 비중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미상공회의소의 경제분석국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본 바에 따르면, 1948년에서 2010년까지의 기간 동안 제조업과 금융업의 GDP 대비 비중은 거의 X자를 그릴 정도로 그 위치가 바뀌었다. 제조업은 동기간 꾸준히 고용이 감소한 반면, 금융업은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비중을 늘여갔다. 이는 금융업의 인당 부가가치가 제조업보다 높았음을 의미한다.

20130620-1020481947~2012년 미국의 업종별 생산의 GDP대비 비중 변화 추이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간혹 금융업 육성을 통한 경제의 고도화라는 유혹을 느끼곤 한다. 경제발전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임금이 높아져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부가가치 창출이 더 용이한 금융업으로 산업을 고도화하여 경제를 재편하자는 아이디어 말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혹자는 한미FTA도 이러한 산업고도화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추진한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자산운용업 위주의 특화 금융허브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금융허브를 어느 정도 지향하는 금융허브 구축을 계획하고 있음. 단기적으로는 싱가포르를 모델로 하나, 장기적으로는 런던을 모델로 하면서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의 발전을 구상.[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 현대경제연구원(2005년 5월)]

오이겐 뢰플러 하나알리안츠투신 사장도 “한국의 금융규제가 여전히 많다”며 “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의 원활한 유입과 유출이 확실하게 보장돼야 하며 규제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세금부담 경감 △외국어 실력 배양 △통관시스템 개선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인수위에 건의했다.[외인CEO”동북아중심,규제완화부터”]

이러한 산업고도화 전략이 유효할까? 신용위기의 거품이 꺼지고 난 후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러한 전략의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은 기축통화국이자 세계금융의 중심지라는 독특한 지위 속에서 금융의 유동화/증권화 전략을 통해 신용을 창출하여 부가가치를 높였다. 그 결과는 과잉신용으로 인한 붕괴였다.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셈이다. 아이슬란드같이 이 모델을 어설프게 흉내 낸 나라의 은행가들은 지금은 어부가 되었다.

금융의 고도화가 신기루에 불과한 엉터리 발전모델은 아니지만 제조업의 고도성장과 같은 접근방식으로 밀어붙여서 될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등의 문화충격을 통해 이를 단기간에 밀어붙이려 했던 정황이 있다. 이전 정부들의 압축성장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더불어 과연 그러한 양적성장 중심 모델이 지속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아래 표는 미국의 고용소득과 배당소득 추이를 보여준다.


(출처 : cfr.org)

제조업의 고용이 줄어들고 금융업의 부가가치 창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 절묘하게도 미국의 소득비중에서도 노동소득은 감소하고 배당소득은 증가했다. 배당소득의 상당부분이 주식을 소유할 능력이 되는 상류층에 돌아갈 것이라는 개연성을 감안할 때, 이런 소득원별 비중의 변화는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일 것이다. 그리고 금융업의 고도화 – 특히 LBO와 같은 M&A 시장의 발달 – 는 이런 경향을 부추겼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연구소에서조차 그 심각성을 지적할 만큼 소득저하 및 가처분소득의 감소로 인한 내수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의 저임금 국가로의 이전이나 파견직 확대 등을 용인하면서 금융업 발전을 대안으로 설정하게 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제조업 고용의 양과 질은 줄어들고 금융업의 고용은 그에 상응하게 창출되지 않고 내수는 감소하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이다.

베네수엘라의 엑손모빌 자산 국유화 조치에 대한 국제중재 결과의 함의

서구의 석유회사와 베네수엘라의 대중주의적 대통령 간의 최근의 한판 싸움에서, 대부분은 엑손모빌을 패자로 여기고 있는데, 파리의 국제상업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 ICC)가 그들의 유전지대가 국유화된 이후, 이 세계에서 제일 큰 석유회사는 그들이 요구하는 손실의 대부분을 보상받지 못하는 것으로 판결 내렸기 때문이다.

“ICC는 엑손이 원한 돈의 10%만 인정했지요.” 차베스가 최근 말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아서 결정을 내리세요.”

[중략]

“엑손은 그들의 [최초의] 투자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현재의 프로젝트의 가치(the value of the project)는 인정받지 못했어요.” 독립적인 에너지 분석가 크리스 넬더가 알자지라에게 한 말이다. 회사는 120억 달러를 요구했는데, 이는 2007년 오링코 벨트에서의 중유 자산이 국유화당한 이후의 잠재적인 미래수입의 손실분과 다른 비용 등을 감안한 것이다.

[Exxon ‘Loses’ Venezuela Nationalisation Case]

2007년 차베스 정부는 새로운 석유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에 따르면 외국의 석유회사들은 베네수엘라의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레우스데베네수엘라(Petroleos de Venezuela : PDVSA)의 소수 지분 파트너가 되어야 했다. 엑손과 또 하나의 미국기업 코노코필립스는 이를 거부했고 베네수엘라에서 추방당해야 했다. 하지만 쉐브론텍사코를 비롯한 대부분의 석유회사들은 그대로 남아 PDVSA의 파트너가 되었는데, 퇴출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엑손모빌은 세계 최대의 석유기업이라는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베네수엘라의 자산이 PDVSA와 나누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였는지, 어쨌든 ICC에 해당 건을 회부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외의 패배였다. 다만, 위 인용문의 에너지 분석가 크리스 넬더가 ICC의 판결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블름버그의 기사에 따르면 ICC가 엑손의 몰수된 자산에 대해 미래가치를 계산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엑손의 기대보다 적게 계산했을 뿐이다.

“ICC의 결정은 매우 제한적이었는데 1997년 PDVSA와 엑손이 맺은 계약에 근거한 결정일 뿐입니다. 인정된 9억7백만 달러는 가치측정(valuation)이 아니라 2035년까지 이 사업으로부터 배럴당 27달러의 – 1997년의 가격 – 미래현금흐름인, 엑손이 손실을 입고 기대하는 것에 비해서 과도하게 할인된(discounted) 금액입니다.” 변호사이자 카르카스 자본시장의 수석 채권 트레이더인 러스 달렌의 말이다.[Chavez Calls Exxon’s Venezuela Arbitration Demands ‘Crazy’]

하지만 엑손모빌은 또 하나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 한다. 바로 한미FTA 이슈로 인해 우리에게도 어느새 친숙한 존재가 되어버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 ICSID)다. 소송에 매우 익숙한 기업인지라 한 곳만이 아닌 다양한 중재기구를 활용하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양측 모두 ICC보다는 엑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하는 모양이다. 차베스는 이미 “ICSID의 여하한의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천명했다.

여기서 의미를 곱씹어볼 것은 첫 번째 인용문의 ‘프로젝트의 가치(the value of the project)’, 두 번째 인용문의 ‘가치측정(valuation)’이 가지는 의미다. 이 표현은 한미FTA에서의 ‘공정한 시장가격’과 유사해 보인다. 한미FTA에서는 여하한의 국가의 수용이 있을 경우 “수용이 발생하기(수용일) 직전의 수용된 투자의 공정한 시장가격과 동등”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시장가격이라 함은 기대 현금흐름이 반영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앞서의 두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참여정부 시절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현종 씨는 그의 저서 에서 이 개념에 관해 언급한다. 그가 소개한 일화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간접수용 시 기대이익이 포함되는지를 물었다. 김현종 씨는 기대이익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기대이익은 무엇일까? 바로 ‘공정한 시장가격’의 구성요소, 더 정확히는 투자자가 기대하는 미래 현금흐름을 의미한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현종 씨가 대통령에게 잘못된 사실을 알렸다고 판단한다.

엑손모빌과 베네수엘라의 분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상으로 몰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부에 의한 국유화나 수용과 같은 공익을 위한 처분은 개별협약에 의해서든 또는 한미FTA와 같은 포괄적인 국가간 협약에 의해서든 그 수용에 대한 가격을 정해놓게 마련이다. PDVSA는 엑손과 개별협약을 통해 배럴당 27달러로 미래현금흐름을 고정시켜 놓은 – 결과적으로 유리한 – 계약을 체결했고, 한미FTA에서는 ‘공정한 시장가격’이라는 개념을 담은 협약을 발효할 예정이다.

어느 쪽이 더 똑똑한가?

謹弔 대한민국 국회

지금 현재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을 단독 표결하기 위해(그것도 비공개로)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했다가 민노당의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터트리는 등(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몸싸움이 있었다는군요. 한명이나 비준안을 제대로 읽어봤을지 심히 의심스러운 당이 여당이고 게다가 단독으로 표결 처리가 가능한 의석수인 현실이 안타깝군요.

p.s. 한미FTA 비준안이 찬성 154명, 기권 6명, 반대 7명으로 한나라당 단독 표결로 국회에서 통과가 됐다는군요.

한미FTA, 환율감시개혁법에 대한 美양당의 묘한 입장차이

Bernard Gwertzman : 또 하나 질문을 제가 한다면. 상원에서 그것(한미FTA 이행법안을 포함한 FTA이행법안들 : 역자주)의 지지를 얻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Edward Alden: 알잖아요. 일반적으로 말해,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민주당 온건파 상원의원들은, 공화당도 그렇고, 충분히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 NAFTA와 같은 매우 논쟁적이었던 조약에서조차 — 상원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하원이었었죠.

그리고 또, 알잖아요. 이 조약들을 진행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선거에서 공화당원들이 완전히 하원을 장악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리고 새로운 뉴파티 멤버들이 무역 이슈에 대해 어떻게 할지 불확실성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이 견고한 자유무역 지지자임이 밝혀졌죠. 사실 상원이 오늘 표결할 예정인 법안이 하나 있었는데, 이는 미국이 저평가된 중국화폐의 결과인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이었죠. 그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겁니다. 하원에서는 전망이 매우 불확실합니다.

그로버 노퀴스트(Grover Norquist)라는 보수 행동주의자는 티파티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데, 관세 인상은 세금 인상에 상응해야 한다고 말해왔었죠. 그래서 공화당의 지배 하에 있는 하원은 매우 확실하게 자유무역을 지지합니다. 이것이 조약들이 최소한의 민주당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쉽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Media Conference Call: South Korean President Lee Myung-bak’s State Visit]

美외교협회의 선임연구원 에드워드 알덴(Edward Alden)이 언급한 법안은 이른바 환율감시개혁법안이다. 이 법안은 “저평가된 무역 상대국의 환율을 부당한 보조금으로 간주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법안”으로 찬성 63, 반대 35로 상원을 통과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산 제품에 개별적으로 무역제재를 해왔지만, 이번 법안이 시행될 경우 사상 처음으로 모든 중국산 수출품에 대해 보복 상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법안을 좀 더 들여다보면, 미국이 저평가된 환율을 부당한 보조금으로 간주해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美기업과 노동조합이 상무부를 상대로 외국 정부의 환율조작 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민주당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하원의 통과는 에드워드 알덴 연구원의 전망처럼 그리 녹록치 않다.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이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한미FTA 이행법안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상하원 양당의원들이 초당적으로 협조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약간 의아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FTA의 기본 틀에 대해서는 보수양당체제인 美정치권이 이의가 있을 수 없었고, 그동안은 자동차 등의 이슈에 있어 한국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주장한 민주당이, 스스로 이명박 정부와의 재협상을 통해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켰다는 점을 보면, 어차피 찬성했을 공화당의 반대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환율보복에 대해서는 묘한 입장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자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할 민주당으로서는 보호무역적 제스처를, 자기나라 세금도 없애자는 극단적 시장자유주의 세력인 티파티에 휘둘리고 있는 공화당으로서는 자유무역적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본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은 상하원 역할을 분담을 통한 중국 위협용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초당적 협력인 셈이다.(굿캅 배드캅)

미국은 지금 초유의 실업률, 회복되지 않는 부동산 등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침체기 한복판에 있다. 결국 美정치권이 한미FTA를 초당적으로 통과시키고 환율전쟁을 불사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경제회복을 꾀하려는 냉정한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계산식이 맞아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한미FTA의 수혜층이 계층차별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환율전쟁은 미국의 발등을 찍을 뿐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볼리비아 물분쟁 사례에 대한 통상교섭본부의 해명에 대하여

서울시장 선거 직후, 한미FTA 이슈로 또 한 번 정국이 요동칠 기미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로 이어진 이 이슈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다양한 주장들이 이합집산한데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쉽게 논점이 모아지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찬반세력은 몇 가지 화두를 가지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뜨거운 이슈가 바로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 또는 ISD)다.

볼리비아의 상수도 시설에 대한 사례는 이 이슈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처음에 온라인에 미국기업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에게 사업권을 뺏기자 볼리비아-미국 FTA를 활용하여 해당사안을 국제투자분쟁처리기구(ICSID)에 회부했다는 틀린 사실이 떠다녔는데, 그 정확한 사실관계에 대해선 이 블로그에도 지적한 바 있다. 한편 트위터의 통상교섭본부 공식계정은 이 문제에 관해 아래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ftapolicy (벡텔 대 볼리비아 사건 사실관계입니다.) FTA와 무관. 네덜란드-볼리바아 BIT를 근거로 소송. 분쟁당사자간 합의로 중재 종료(승소 아님). 참고로, 상기 BIT에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유보규정이 없음. 한미 FTA에는 환경, 전기, 가스, 보건의료 서비스 포괄유보로 공공정책 자율권 확보 RT @wegon0912: 외교통상교섭본부 공개질의 6 : @coreacdy [볼리비아FTA이후] (cont) http://tl.gd/dvlmo1 [원문보기]

이미 벡텔이 네덜란드-볼리비아 BIT를 활용했다는 사실은 확인한 바 있고, 또 하나 통상교섭본부의 주장에서 살펴볼 것이 바로 한미FTA에는 “환경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유보하여 공공정책 자율권을 확보”하였다는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사실이다. 벡텔이 볼리비아에서 영위한 사업형태와 해당하는 서비스를 한미FTA에서 찾아보자면 “음용수 처리·공급서비스”고 이는 부속서 II에 명시되어 있다.

분야 :

  • 환경서비스 – 음용수 처리·공급서비스, 생활폐수 수집·처리서비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처리서비스, 위생 및 유사 서비스, 자연 및 경관보호 서비스(환경영향평가서비스는 제외한다)

관련의무 :

  • 내국민대우(제11.3조및제12.2조)
  • 이행요건(제11.8조)
  • 현지주재(제12.5조)

유보내용
국경간서비스무역및투자

  • 대한민국은 다음의 환경서비스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도 채택하거나 유지할 권리를 유보한다 : 용수의 처리 및 공급, 생활폐수의 수집 및 처리, 생활폐기물의 수집․운반․처리, 위생 및 유사서비스, 그리고 자연 및 경관보호서비스(다만, 환경영향평가서비스는 제외한다)
  • 이 유보항목은 관련법 및 규정에서 상기서비스에 대하여 사적공급을 허용하고 있는 경우 민간당사자간 계약에 의하여 공급되는 해당서비스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부속서II 리스트 중 일부다. 부속서II는 이른바 “미래유보” 리스트인데, 미래유보라 함은 현재 개방수준으로 그대로 유지 또는 동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현행유보와 달리, 공공 서비스 등 향후 우리 정부의 정책 운용과정에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는 분야를 의미한다. 즉, 현재에는 개방되어 있거나 규제하지 않는 부문도 정부의 정책의지에 따라 향후에 개방을 철회하거나 규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어떨까? 현재 음용수 처리·공급서비스는 내외국인 민간사업자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러한 권리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서 허용하고 있다.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접근 가능한 사회기반시설은 동법 제2조에 명시하고 있는데, “수도법 제3조제5호에 따른 수도”가 해당된다. 참여 가능한 “민간부문”도 외국법인을 포함한 공공부문 외의 법인이라 규정하여 내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다.

상수도 민영화는 사실 민간투자법 제정이후 꾸준히 거론되는 사안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슈 – 특히 안보 이슈 –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장이 조성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법에는 엄연히 내외국인 투자자에게 개방되어 있는 상황이고, 미래에 이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한미FTA의 내용이다. 따라서 통상교섭본부의 주장은 사실의 일부만을 담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에 따라 상황은 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