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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변호사의 BBK해명을 읽고 드는 생각

국내 변호사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변호사가 아닐까 생각되는 고승덕 변호사께서 한나라당의 흑기사로 나서셨다. 평소의 깔끔한 이미지와 명석한 두뇌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살려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고 변호사는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고승덕 변호사가 말하는 BBK의 실체”라는 글을 통해 BBK 사건은 김경준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사에다 주식전문가로도 소문나 있으니 그의 발언에 상당한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설명 중에 의아한 부분도 있다.

“LKe는 자기 사업(인터넷 기반 자산관리)을 한 사실 없다. 원래 LKe는 BBK의 펀드투자자이었다. 김경준이 무위험 안정수익을 보장한다고 하여 대기성 자본금을 펀드에 투자한 것이다.”

김경준 씨가 LKe, 즉 이 후보에게 “무위험 안정수익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래서 이 후보의 LKe와 다스는 MAF펀드(Millenium Arbitrage Fund)에 투자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MAF펀드는 (해장국 집 이름이 아니고) 역외펀드(off-shore)펀드다. 역외펀드에 대한 네이버의 정의를 살펴보자.

“기업 또는 금융회사의 유가증권 매매차익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거나, 엄격한 규제가 없는 지역에 설립하는 펀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의 일부 기업들이 유가증권 매매에 따른 세금이나 각종 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조세회피지역 등 제3국에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더욱이 투자자금의 10배까지 무보증 차입이 가능해 증식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해외자금 유치에 편리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코스닥 등록기업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이 조세회피지역에 역외펀드를 세워 이를 주가조작과 허위 외자유치 등 불공정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 사회·경제 문제로까지 불거지기도 했다.(하략)”

MAF펀드는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버진아일랜드와 말레이시아 등에 설립된 헤지펀드다. 외환은행을 부정한 방법으로 매입하여 분탕질을 했던 론스타와 같은 성격이다. 그렇다면 펀드 이름에도 들어있는 ‘아비트리지’는 또 뭘까? 네이버의 설명이다.

“동일한 채권이 지역에 따라 수익률이나 가격이 다를 경우, 이들 채권을 매매하여 수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19세기 투기적인 주식매매에서 사용된 방법으로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으로 매각하므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용한 거래를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라고 하는데, 선물시장에서 선물가격과 현물가격과의 차이를 이용한 무위험 수익거래 기법을 의미한다.(하략)”

“19세기 투기적인 주식매매”에서 시작된 고위험 투자기법이다. “무위험 수익거래 기법”이라는 표현에 현혹될 필요 없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이론적일 뿐이다. 예를 들어 진정한 무위험이라면 특정통화의 환매도에 계약을 체결하였으면 반대로 그 통화의 환매수에도 계약을 체결했을 경우 위험이 없는 것이다.(의미없는 거래지만) 그러나 차익거래는 서로 다른 시장에서의 통화의 가치나 서로 다른 국가의 금리가 장기적으로 수렴한다는 전제 하에 양 쪽에 투자하는 등의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양 쪽이 예상과 달리 발산해버리면 고스란히 손실을 입는 구조다.

이렇게 차익거래를 통해 투자금을 말아먹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Long Term Capital Management 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천재 소리를 듣던 LTCM의 펀드매니저들은 환투기, 금리투기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펀드를 운용해 기적같은 수익률을 올렸다. 이 수익률의 비결은 높은 차입비율, 즉 리버리지 효과였다. 그리고는 세계경제가 흔들리자 엄청난 금액의 손실을 입고 파산하였다.(헤지펀드의 차익거래 행태에 관한 다른 글)

결국 MAF펀드는 사실상 정당하게 내야 할 세금도 내지 않으려고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여 수익창출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초절정 위험 수익거래”를 위한 헤지펀드의 성격이 강한 역외펀드인 정황이 짙다. 주식투자의 고수이신 고승덕 변호사가 이런 사실을 모르실리 없으실텐데 김경준 씨가 “무위험 안정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을 믿었다는 LKe의 주장을 왜 믿으시는지 잘 모르겠다. LKe는 정말 김경준 씨가 회사의 대기성 자금을 안전자산에만 투입하리라 생각하였던 것일까?

결국 현재 요점은 LKe가 고수익을 노리고 고위험 상품에 투자를 했건 아니면 정말 무위험 상품인줄 알고 투자를 했건 간에 그 MAF펀드로 주가조작과 공금횡령을 한 김경준 씨와 BBK의 배후에 이 후보가 있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내일 쯤 에리카김 여사께서 이면계약서를 공개한다하니 내용과 진위여부가 자못 궁금하다.

다만 여전히 찜찜한 것은 왜 LKe는 자기 사업은 할 생각도 안하고 막대한 대기성 자금을 역외펀드에 집어넣었고 다스는 왜 동생도 모르게 훨씬 더 막대한 돈을 집어넣었는가 하는 궁금증이다. 최근 이 후보가 관훈토론회에서

“그러나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선진금융기법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펀드화돼서 투기를 한다.”

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그때의 마음은 지금과 사뭇 달랐단 말인가? 아니면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것일까?

월스트리트의 위기, 그리고 시사점(2)

위기에 처한 월스트리트

파이낸셜타임스의 10월 27일 기사에 따르면 메릴린치의 CEO Stanely O’Neal 이 이사회의 사전승인 없이 합병 등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은행인 Wachovia를 접촉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CEO자리를 뺏길 위험에 처해있다고 한다. 이미 공격적인 사업추진으로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안겨준 만큼 그의 이러한 독단적인 행동이 이사회의 분노를 촉진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지난번 관련 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메릴린치의 사상 초유의 손실이 CEO의 공격적인 사업추진 스타일이나 사업상의 실수만이 아닌 보다 깊은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바로 현재 미국의, 그리고 미국화된 전 세계의 취약한 금융 시스템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산담보부증권이란

메릴린치 뿐만 아니라 여타 월스트리트 은행들도 3분기 실적이 형편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Bank of America, Bear Stearns 등도 손실이 현저히 불어났다. 메릴린치가 그 중 가장 손실이 컸을 뿐이다. 그것은 메릴린치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연계된 이른바 자산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 CDOs)의 최대 인수자(underwriter)였기 때문이다.

자산담보부증권은 금융기관·기업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여 제3자에게 매각하는 증권으로 자산유동화, 즉 투자 또는 대출금의 빠른 회수를 위하여 고안된 장치다.

단순하게 보면 주택을 사고 싶은 소비자가 돈을 은행으로부터 빌린다. 은행은 주택을 담보로 잡고  일정요율의 이자의 돈을 대출해준다. 그리고는 그 주택담보를 자산으로 한 증권을 발행하여 다른 금융기관 혹은 개인투자자에게 이를 당초 요율보다 조금 낮은 이자율에 판매한다. 그리고 중간에 이자의 갭을 챙긴다. 기업과 개인은 이를 보유하기도 하고 때로 재판매하기도 하여 위험을 분산시키고 투자를 회수한다. 이렇게 발행된 증권은 쪼개지고, 묶여지고, 다시 패키지화되고, 재판매되며 시장을 종횡무진 한다.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위험을 분산시키고 투자를 조기에 회수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고위험의 CDO가 시장을 돌아다니며 시장 전체의 위험은 증가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부실채권이 되어버린 CDO, 이어지는 가혹한 인원감축

미국 내에서 CDO의 발행규모는 2001년 520억 달러에서 2006년 3,88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 돈은 일종의 리버리지 효과를 노린 주택구입자의 주택구입비용에 충당되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집값은 큰 상승세를 기록한다. 거품은 작년 여름부터 꺼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CDO의 담보인 주택의 담보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 이른바 부실채권이 된 것이다.

극단적인 시장옹호론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부동산투기를 욕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들과 같은 위험감수자(risk taker)가 없으면 시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위험감수자들이 노리는 것은 “high risk, high return”이다. 일정 수긍이 가는 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탈법적이거나 심지어 규제가 약한 곳에서 시장의 궁극적 목적을 교란시키면서 진행되는 경우이다.

지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 처해있는 금융기관과 모기지를 이용하여 주택을 구입한 이들이 바로 비슷한 처지다. 금융기관은 정부의 탈규제 경향을 틈타 기존의 대출상품과 또 다른 교묘한 상품을 만들어 수익의 극대화를 시도하였고, 부동산 시장은 그로 인해 부풀어 올라 주택구입자들의 마음은 풍요로워졌다. 현재 그 거품이 꺼지는 순간 그들은 다시 정부가 나서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마치 예전에 금융시장을 붕괴시킬 뻔 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그 뻔뻔한 금융천재들처럼 말이다.

여하튼 시장의 침체는 금융노동자들에게 가혹한 시련으로 다가온다. 이미 모기지 회사에서는 수십만의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다. Bank of America 는 투자금융 부문의 인력 3천명을 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여타 금융기관의 대량해고를 예고하는 발표가 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Bear Stearns, Citigroup, JP Morgan 등도 인원감축에 동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PF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부동산PF(project financing) 혹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 ABCP)이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가 아닌 건설업체에게 빌려준 자금이라는 점이 차이가 날뿐이다. ABCP는 대출로 간주되지 않는 일종의 틈새상품으로 신보출연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등의 장점으로 말미암아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품이기에 그동안 인기리에 팔렸다. 여하튼 각 금융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ABCP 역시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이 냉각될 경우 건설업체의 상환능력 상실, 더 나아가 부도로 이어질 경우 부실채권으로 전락하여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뒤늦게 관계당국이 현황을 파악하느라 난리법석을 피우고, 총괄적인 관리에 나서고, 행정지시를 내리는 등 한동안 분주했다. 그리고 금융기관들도 이런 행정지시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한편 자체적인 위험관리에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금융기관이 당국의 지시를 수용하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금융의 순기능을 유도하는 시스템

금융은 국가경제의 동맥과 같은 존재다. 피가 안 통하는 곳에 피를 통하게 하여 건강한 국가경제를 만들어가는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올바른 뇌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지 않은 채 부동산 시장과 같은 생산적 부의 창출과는 거리가 있는 부문으로만 집중된다면 몸의 불균형은 심화된다. 적정규모의 금액이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흘러가고 이것이 국부를 창조하여 금융부문을 통해 재순환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가야 한다.

이런 당위는 현재 개별기업과 투자자의 경제적 자유주의 논리, 주주자본주의 논리, 부동산 소유자들의 투기 심리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투자는 당연히 이윤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한 상식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국가경제라는 공동체에 선순환적으로 기여하여야 한다는 것 또한 자명한 상식이다.

현대 금융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여러 파생금융상품을 일방적으로 죄악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분명히 생산기능의 효율화와 참여주체의 위험분산에 기여한다. 이러한 것들을 잘 활용하면 우리는 이전의 제도나 상품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것이 순기능 하게끔 하는 통제시스템이다. 그것이 과거에는 권위주의적인 관치의 형태로 존재하였고 현재 많은 이들은 그러한 관치에 대해 본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시스템을 개발하여야 한다. “잘못된” 통제가 싫다고 “통제” 자체를 없애버리면 그것은 “무질서”를 용인 내지는 조장하는 것일 뿐이다.

추천글 ‘금융 불안정성’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대되는가 

월스트리트의 위기, 그리고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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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NewYork1 032“.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불어올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3분기에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메릴린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손실이 84억 달러에 달하며 이를 반영한 결과 3분기 실적이 22억 달러 순손실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몇 주 전 회사가 내놓은 예상치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며, 메릴린치 93년 역사에서 가장 큰 분기 손실이다.

많은 분석가들은 회사의 4분기 전망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고 분석하였다. 이처럼 악화된 회사 경영 상태에 대해 회사의 최고경영자 Stanley O’Neal을 비롯한 경영진의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그들의 공격적인 사업행태가 악영향을 미쳤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분석가들은 두세 개의 또 다른 거대은행이 몇 주 이내에 유사한 정도의 손실을 발표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태의 원인이 보다 깊은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투자회사인 Sanford Bernstein의 Brad Hintz는 지난 몇 년간 금융시장 여건을 악화시킨 세 가지 주요한 경향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1) 월스트리트가 돈을 벌기 위해 고안해낸 상품들의 재무적인 복잡성, 2) 이에 대한 부실한 위험관리, 3) 감독기관의 탈규제 경향이 그것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지적하였으나 본인들은 나 몰라라 하던 월스트리트의 문제점을 그대로 직시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금융의 탈규제 경향과 더욱 복잡해진 금융상품은 그동안 선진금융기법이나 금융공학이나 하는 온갖 화려한 수사로 치장되어 월스트리트가 여러 후진국(?)에 수출하던 효자상품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여태까지 해외의 금융자본과 우리나라의 경제 관료는 이러한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여 국내 은행의 민영화와 해외매각을 정당화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Brad Hintz가 언급한 요인들이 어떻게 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는지 한 사례를 들여다보자. 최근 몇 년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이른바 “레벨3(Level3)”라 불리는 자산의 회계항목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바로 문제가 되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각종 파생금융상품이 포함되어 있는 이 레벌3 계정은 그것을 측정할 시장이 없는 관계로 실현되기 전에는 ‘적정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계정이다.

골드만삭스는 2분기에 540억 달러였던 레벨3 자산을 3분기에 720억 달러로 늘렸다. 리만브러더스는 역시 2분기 220억 달러에서 3분기 346억 달러로 늘렸다. 모건스탠리역시 예외없이 2분기 630억 달러에서 880억 달러로 투자를 확대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자산은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차대조표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트린다. 천문학적인 돈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소리다.

요컨대 시장의 모든 위험을 상품화하여 그 위험을 헷지하여 자본시장의 무정부성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신용 파생상품이 시장의 무정부성을 강화시켜주고 있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하여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월스트리트의 천재들은 막연한 위험관리로 사태의 부실을 심화시켰고, 시장의 탈규제는 감독의 범위에서 벗어난 수많은 신상품이 시장을 교란시키게 방치하였던 것이다.

굳이 유명인사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을지 모르지만 조지 소르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공동설립한 헤지펀드의 ‘큰 손’ 짐 로저스는 “미국이 이미 침체에 빠졌다”며 이 때문에 달러화에 대한 투자 자금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이 파리채를 대하는 파리만큼이나 절박할 수밖에 없는 헤지 펀드의 거물이니만큼 그의 발언이 주는 의미는 더욱 비중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달러에 대한 해외자본들의 신뢰상실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동안 실물경제를 지원하여야 할 금융시장이 스스로의 역학에 의하여 왜곡시켜온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인 측면도 강하다. 시장교란자 중 하나인 짐 로저스 스스로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할 장본인인 것이다.

한 신용시장 분석가는 “주택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국가종교”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면 자신의 부가 늘고 있다고 생각하고 소비를 늘린다. 그렇게 해서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다. 주택 인플레이션은 상당부분 금융시장이 부풀려준 과잉신용과 과잉유동성에 기인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그 거품이 꺼지면서 현재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침체와 부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 이러한 현상이 바로 가까이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규모만 작았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주택 인플레이션이 미국의 국가종교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국가 종교일 수도 있다. 오랜 동안 우리나라에도 ‘부동산 불패론’이라는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리고 해외자본에 넘어간 상업은행들이 가계대출에 매진하면서 이러한 사태를 심화시켜온 것이 지난 몇 년간의 상황이다. 이것이 관계당국이 지향하던 선진금융이라면 이제는 좀 ‘지양’하여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참고글

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것일까?

석유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일단 ‘대체재’의 뜻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체재 [代替財]
[명사]<경제> 서로 대신 쓸 수 있는 관계에 있는 두 가지의 재화. 쌀과 밀가루, 만년필과 연필, 버터와 마가린 따위이다.

무엇이 대체재인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석유 값 이야기하다가 왜 난데없이 ‘대체재’의 뜻을 알아보자고 했냐면 옥수수가 기름의 대체재라는 재밌는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옥수수로 에탄올 연료를 만들 수 있고 석유 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옥수수 값도 덩달아 뛰고 있다고 한다.

일단 왜 석유 값이 뛸까? 많은 이들은 정치지리학적 요인으로부터 원인을 찾고자 할 것이다.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악화랄지 터키의 이라크 북부 지역 공격 가능성이랄지 하는 부분 말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도 있겠지만 최근 달러 약세에서 원인을 찾는 이도 있다. 즉 석유 결제 통화인 달러가 계속 약세니 산유국 입장에서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값을 올린다는 해석이다. 그럴듯한 해석이다.

그런데 또 다른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석유와 옥수수뿐만 아니라 동, 납, 콩, 면화, 보리 등 여러 관련 없어 보이는 원자재 가격도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또 재밌는 해석이 있다. 옥수수 값이 뛰니까 너도나도 옥수수를 심기 시작했고 그 탓에 다른 작물의 공급이 부족해져서 동반상승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해석이다.

이제 말하려하는 부분은 또 다른 가격상승 요인이다. 그것은 소위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의 투기적 거래자의 존재다. 오늘날 원자재 시장에서의 선물시장이나 파생상품거래 등은 새로운 ‘대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자본투자나 정부 채권 등에 초점을 맞춰오던 투자자들은 이제 원자재를 기반으로 하는 환율거래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에서는 지난 해 원자재 중개거래인들의 고용률이 30%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이렇듯 원자재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이 공급되면 어떻게 될까? 물량은 그대로인데 화폐와 신용이 밀려드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다. 고위험 채권과 구조화 신용 등에 몰려다니던 투기자금이 이제 새로운 안식처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안식처는 달러 약세에 가장 매력적인 상품, 금 시장이다.

분석가들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세계경제가 활성화되거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더라도 여전히 원자재에 대한 투자는 이익이 남는 장사라고 말이다. 물론 인플레이션 없는 경기후퇴 시에는 그들은 손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BRICs (Brazil, Russia, India, China)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원자재 가격에 반영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어쨌든 그들은 투자를 해서 돈을 벌면 되는 것이지만 생산자와 소비자들 양측 모두 이러한 상황이 그리 탐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원자재 시장에서의 투기성 자금의 활동으로 인한 가격교란이 결국 생필품 가격의 상승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 몫을 노리는 투기자들은 최종소비자가 특정 상품의 소비를 포기하고 다른 상품으로 말을 옮겨 탈 때까지 가격을 밀어 올리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사실 그들의 창고에는 원자재 따위는 쌓여 있지도 않고 기껏 그것들에 대한 매입 포지션이나 매도 포지션만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일 텐데도 말이다.

이것이 오늘날 또 하나의 왜곡된 시장의 모습이다. 시장의 기능은 원래 생산자와 소비자를 효율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유통의 기능을 해왔거니와 중간거래자의 존재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거래자들은 환율의 차이, 가격의 등락 등에 대비하여 일정한 파생상품 거래를 통하여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본래의 목적으로 거래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이들이 투기의 목적으로 원자재 시장에서 고위험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시장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회의케 만드는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아래 기사에서 요약발췌하고 첨언하였음
http://economist.com/daily/news/displaystory.cfm?story_id=9979315

기타 참고자료
http://www.keei.re.kr/keei/download/ef0403_80.pdf

국민연금의 또 다른 문제,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몇 해 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식투자 문제가 불거지자 박근혜씨를 비롯한 한나라당 수뇌부들은 이러한 시도가 소위 ‘연기금 사회주의’적인 조치라며 반발하였던 적이 있다. 당시 연기금의 자금동원이 연기금 자체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증권시장의 부양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추측이 강하게 일었고 결과론적으로 연기금의 전면적인 주식투자는 유야무야 되었지만, 이는 연기금이 한 나라에서 차지하는 꽤나 독특한 지위를 잘 말해주는 에피소드였다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노동자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이른바 퇴직금 성격의 각종 연기금은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의 작품이다. 또한 기업연금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적었던 미국을 중심으로 1차 대전 이후 발전해왔다. 이러한 제도는 날로 성장해가는 노동계급의 강성기조를 누그러트리기 위한 기회주의적인 조치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지만 어쨌든 이후 자본주의가 발전해감에 따라 연기금은 각국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국가 또는 기업의 공적 부조의 기본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 연기금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증권시장에 연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펀드가 등장하였고 1940년대에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제네럴 모터스(General Motors : GM)의 찰스 윌슨(Charles E. Wilson) 회장이 기업 연금 도입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한다. 한편 경영 전문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이에 대해 “연기금 펀드가 주식에 투자하면 몇 년 안에 미국 내 주요기업의 소유주가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엄살을 떨었고, 한때 미국의 전설적인 노동 투사 유진 뎁스(Eugene V. Debs)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었던 윌슨 회장은 “바로 그렇게 돼야한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세계 최대기업의 우두머리가 실은 사회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낭만적인 추측도 해볼 수 있는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이미 미국의 경우 193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최근에야 일어났던 논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것의 사회적 함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연기금의 규모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한 나라의 전체 부(富)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 우리의 경우도 국민연금은 자산규모가 100조 원을 훨씬 넘어서 한 해 예산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다 – 그것이 그 나라의 증권시장 또는 기타 자금시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될 때는 무시 못 할 주요 투자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196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의 증권시장에서는 탄광노조가 1,600만 달러의 주식에 투자하였고 연방정부의 예산이 1천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1961년 미국 전체 무보장 연기금 펀드가 174억 달러 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등 연기금 펀드는 시장에서 막강한 플레이어로 활약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인 것은 아니다. 보다 교묘해진 기업의 지배구조는 실질적으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예언이 엄살이었음을 말해줄 따름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돈이 펀드에 투임 됨에 따른 예기치 못한(?) 부작용의 개연성만 늘어났다.

그와 관련해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주요한 시사점 하나는 각종 자금들이 갈수록 서로 얽히게 됨에 따른 연쇄금융공황의 가능성이다.

신자유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전 세계의 미국화이다. 그렇다면 증권시장 역시 미국의 예를 따라가는 것이 순서이다. 뮤추얼 펀드는 1924년 처음 월스트리트에 등장하였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크게 유행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은 1930년대에 연기금을 펀드에 투입하였다.

우리 역시 일부나마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변액보험 등 이른바 간접투자 상품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 알다시피 우리의 퇴직금도 확정급여형(DB)이다 확정기여형(DC)이다 하면서 증권에 투자되는 방안이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날이 갈수록 많은 나라의 연기금이 증권투자, 그것도 고위험 고수익 위주의 헤지펀드에 돈이 맡겨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전의 일반인 주식투자와 다른 점은 소위 간접투자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투기자본의 탄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NHK에서 제작하고 방영한 ‘투기금융자본의 실체’라는 다큐멘터리에는 한 씁쓸한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다. 일본의 문구점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연금은 연금의 운용수익률이 저조하자 이 돈을 헤지 펀드에게 위임하였다. 헤지 펀드는 이 돈을 일본 증권시장에 투자하여 모처럼 문구점 연금에게 좋은 수익률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헤지 펀드의 투자방법이 주가가 떨어질수록 돈을 버는 ‘공(空)매도’라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연금의 한 임원은 ‘우리가 일본의 주가가 떨어진다고 좋아해야할 상황이라 기분이 묘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원소유주로부터 멀어진 자산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에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해관계는 좀 더 복잡해진다. 어느 개인 스스로야 증권시장이 활황이어서 경제도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돈은 주식폭락에 베팅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점점 더 많은 노동자의 연기금 또는 보험금이 이렇듯 더 높은 수익률을 쫒아 헤지 펀드를 통해 유가증권 시장에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전통적이고 단순하게 우량주를 중심으로 지수를 선도하며 투입된다면 별무 상관없겠지만 문제는 만일 펀드의 자금운용책임자가 돈을 헤지펀드에 맡겼을 경우 고위험 고수익을 전략으로 삼는 헤지펀드는 그 돈을 공매도, 환율변동에 대한 베팅, 적대적 M&A 등 사회전체의 부의 증가나 건전한 기업의 자금조달과는 별반 상관없는, 오히려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소위 정상적인(?) 펀드들마저 이러한 머니게임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끔 채권시장 등의 수익률도 악화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흥미로운 외신 기사가 있었는데 앞서 언급했던 GM에 관한 뉴스이다. 최근 GM은 퇴직연금의 지급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확정급여형(DB) 방식을 취한 이 회사의 보수적인 투자운용으로 말미암은 수익성 악화 탓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동일하게 우리의 국민연금에게도 고민거리인 셈이다. 전 세계의 실질적인 경제성장이 저성장 또는 정체인 상태에서 연금을 지급할 수혜대상을 늘어가는 상황이고, 그것은 곧 각국의 주요 연기금마저 헤지 펀드에 돈을 맡기고 싶을 유혹이 커질 수 있는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미국의 증권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은 허다한 이유가 있겠으나 마진론을 기반으로 한 일반인들의 봇물 같은 주식투자도 한 몫 하였다. 이후 몇 번의 대공황과 같은 위기가 미국에 있었으며 그것이 비록 1929년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무정부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금융자유화로 인해 전 세계가 동일한 원리에서 움직여갈 때에, 그리고 어느 한 나라에서 금융공황이 발생하였을 때에 과연 그 폭발력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그 폭발력은 연기금 등 노동자들의 자산에 의해 더욱 증폭될 것이다. 물론 연기금은 그 폭발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미래를 위해 쌓아놓고 있는 연금, 보험과 같은 미래의 자산이 오히려 현재의 다른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는 M&A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한 나라의 환율을 혼란에 빠트리는 환율조작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행여 있을지 모를 금융공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실제로 그것이 전체 투기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비중이 늘어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투자자의 증권게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연기금이나 변액보험의 높은 수익률로 기뻐하고 있을 즈음 어느 누군가는 아파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세계화된 금융시장의 고통스러운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