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씽크탱크의 영향력

‘국제개발을 위한 미합중국 에이전시(USAID)’로부터의 1천만 달러의 기부를 가지고 조직된 ‘경제연구를 위한 이집트 센터(ECES)’는 조그만 서클 안에 대통령의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 그리고 업계의 수장들을 불러 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그룹의 멤버들은 이집트의 집권당과 정부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었다.[중략]

“그것은 정실 자본주의가 되어갔습니다.” 설립자들이 옹호했던 민영화 프로그램에 대한 이 씽크탱크의 새로운 임원 마그다 칸딜의 말이다. 센터가 현재 예측하기로 부패로 인해 이집트가 1991년부터 팔아치운 자산은 그들의 산정치보다 900억 달러가 적은 100억 달러에 불과하다.[중략]

1970년대 이래, USAID는 가말 압델 나사르가 1950년대 창출한 사회주의 경제의 자유화에 대한 약속을 대가로 수십억 달러를 경제적 지원의 명목으로 제공해왔다.[중략]

그러나 1990년대에 풍경은 변해가기 시작한다. 이집트에서의 금융위기 이후, 국제 채무자들은 더 이상 국유기업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에 융자를 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이집트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지구를 휩쓸던 구조적 개혁의 형태를 취하기로 동의한다. 의사결정자들은 시장이 중산층 창출을 고무시키고 궁극적인 민주적 개혁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대중들을 빈곤으로부터 구해줄 것이라고 청사진을 제시했다.[중략]

그(가말 무바라크)는 M. 타헤르 헬미라는 이름의 야심찬 변호사가 동지로 있었는데, 그는 1,040억 달러에 달하는 350개 회사를 민영화하기 위한 계획과 함께 이집트의 민영화 프로그램의 권한을 부여할 1991년 법안의 초안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중략]

2002년 무바라크는 당에 강력한 정책위원회를 구성한다. 그의 주도 하에 당의 총회는 재빨리 당시에는 씽크탱크의 원장이었던 헬미를 포함한 여타 ECES 멤버들을 위원으로 지명한다. “새로운 사고”를 주문하는 연설에서 무바라크는 경제성장은 “자유 시장 원칙의 완벽한 적용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레토릭은 ECES의 정책 보고서에서 그대로 나온 것이었다.[In Egypt, corruption cases had an American root]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장기독재, 그리고 이를 이용한 엄청난 부패의 근저에는 이집트 경제의 염가세일을 바랐던 미국정부(그 뒤의 기업들), 이들이 지원해준 경제연구소, 부패한 정치인들의 결탁이 존재한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르포다. 존 퍼킨스의 ‘경제 저격수의 고백’의 한 에피소드로 충분히 쓰일만한, 몇 십년간에 걸친 부패의 참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통해 경험한 바와 같이, 제3세계는 서구선진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 일천한 민간자본을 대체하는 국유기업들이 주도하는 경제성장 전략을 곧잘 선택했고 이집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슬람 민족주의 노선을 취했던 비동맹 이집트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세력 교체, 소비에트의 붕괴,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비동맹의 입지는 흔들렸다. 이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투자은행에 몸담았던 대통령의 아들과 그의 친구들은 씽크탱크라는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기구를 통해 합리성을 확보한다. 이들에게 “자유 시장 원칙”은 종교와 같았고, 천문학적인 보수는 부패가 아닌 열심히 일한 대가일 뿐이었다.

한편, 국유자산의 매각에 씽크탱크가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흔히 의사결정자들 뒤에 존재하고 있는 기술관료, 그리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연구기관들은 가치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기초 원리를 추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사회효용성분석 등에 동원되는 복잡한 수학계산식은 과학적 객관성의 미학적 표현이다. 하지만 연구진 대다수가 서구에서 수학했다는 점, 심지어 연구기관 자체가 서구의 원조에 의해 세워졌을 경우엔 정치편향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해방 이후 오랜 기간 연구기관들의 구성원들은 예외 없이 서구, 특히 미국식 교육의 수혜를 받아왔다. 이러한 연구경향이 반드시 친서구적이거나 친시장적인 경향으로 흐른다는 보장은 없지만 상당한 개연성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이 내놓는 정책적 제언들은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자유화/서구화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 한 사례는 국가 연구기관도 아닌 민간연구기관인 삼성경제연구소의 머리를 빌린 참여정부의 시장자유화 계획일 것이다. 김현종 씨는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진언하여 한미FTA를 추진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실은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삼성연의 보고서를 보고 있었고 한미FTA도 그때 아젠다에 올라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학계는 인수위 시절 전달된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보고서에 주목한다. 한·미 FTA,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론, 신성장동력 개발론, 혁신주도형 경제론 등이 모두 이 보고서와 무관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기식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노무현 당선자 책상에는 인수위 보고서와 삼성연 보고서가 같이 놓여 있었다. 386 측근 참모가 SERI와 같이 만든 보고서였다”면서 “핵심 내용이 ‘대미·대북관계는 진보적으로, 사회경제 정책은 보수적으로’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중략] 한·미 FTA의 논리적 기반도 삼성이 제공했다는 평가다. 노대통령이 FTA 대책과 양극화 해법으로 강조해온 ‘지식서비스업 강화론’이다. 삼성연은 한·미 FTA 개시선언 직후인 지난해 3월 ‘도대체 왜 한·미 FTA를 해야 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서비스시장 개방론’을 처음 이슈화했다.[“靑 386, 삼성경제硏 보고서 베껴 썼다”]

이러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의 민주제보다 의사결정에 더 많은 영향을 행사하는 지식제공의 메커니즘은 오랜 기간 조용히 쌓여져 오기에, 그리고 인민에 의해 선택될 수도 없기에 한층 무서운 권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의사결정자는 자신의 의지라 생각하며 그러한 머리들에서 나온 편견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

한미FTA가 美의회에서 통과하면서 정부는 이를 빨리 비준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난리다. 그 와중에 참여정부 지지자들은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며 이전 정부를 옹호한다. 이러한 양측의 정치적 계산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누구에 의한 무엇을 위한 FTA인지에 대한 고민이 배제된 정치적 계산들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김중수 씨가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엉뚱하게도 “실무가들은 이미 사라져버린 경제학자의 노예”라는 케인즈의 말을 인용했다. 실은 시장 자체가 흔들리면서도 자유 시장 원칙을 놓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세계경제에 어울리는 말이면서도 연구기관의 객관성을 맹신하는 이 사회에 적용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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