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국내정치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도와 부동산 이슈

APEC정상회의에서의 ‘핵잠수함‘이나 ‘GPU 26만 장‘ 등의 맹활약 덕분에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도가 대폭 상승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에게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수행 평가를 물은 결과 긍정 평가는 63%, 부정 평가는 29%였다. 긍정 평가는 직전 주(10월 다섯째 주) 대비 6%포인트 올랐고, 부정 평가는 같은 기간 4%포인트 하락했다. 이러한 지지율 변화 이외에도 흥미로운 항목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바로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다.

이번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의 부정 평가 이유 중 ‘부동산 정책/대출 규제’가 5%를 차지했다. 부정 평가의 사유 중에서 일곱 번째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직전 주인 10월 다섯째 주에서는 12%로 가장 높은 사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부동산 이슈가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는 모양새라는 점이 흥미롭다. 참고로 보다 길게 잡아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쯤의 지지율 조사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지지율 추이와 부동산 이슈에 대한 긍·부정 평가 비율을 정리해 보았다.

이 그래프를 보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50% 중반에서 60% 초반까지 횡보하고 있다. 그런데 부동산 이슈는 10월 셋째 주에 갑자기 부상했다. 이즈음 서울의 아파트값이 폭등한다며 미디어가 난리법석이던 때다. 그리고 소위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이라는 강공책을 내놓았다. 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 사유로는 거론되지 않지만, 부정 평가 사유로는 12%로까지 크게 치솟는다. 그러다가 11월이 되어서는 이 비율이 5%로 급락한 것이다. 그 배경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과 지지율 중 부동산 이슈에 대한 평가

우선 긍정 평가 사유 중 부동산 정책이 미미한 이유는 뭘까? 이는 긍정 평가 사유 중 예외 없이 1, 2위를 차지하는 ‘경제/민생’ 항목에 부동산 정책도 포함됐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짐작할 수 있다. 갤럽조사는 응답자가 객관식 항목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주관식으로 응답하는 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부동산은 넓은 의미의 경제/민생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는 아직 부동산 정책에 대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기간이 아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 평가 사유 중 ‘부동산 정책/대출 규제’는 유난히 긍정 평가 사유보다 높을까? 부정 평가 사유의 수위를 점하는 항목을 보면 거의 매번 ‘외교’가 차지했고, 이번 조사에서는 ‘도덕성 문제’가 차지했다. 즉, 이 대통령의 부정 평가는 지금 경제적 이슈보다는 소위 ‘반미/친중’ 프레임과 ‘각종 의혹 관련 재판’을 둘러싼 ‘부도덕’ 프레임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그 와중에 경제 이슈로 가장 눈에 두드러진 부동산 이슈가 ‘부동산’이란 이름으로 치고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부동산 이슈는 한 정권의 지지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내 높은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중 지지율이 급락했는데, 그중 가장 큰 사유가 25%로 꼽은 ‘부동산 정책’이었고 이에 따라 결국 정권이 교체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지방선거를 앞둔 현 정권도 부동산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 와중에 부정 평가 사유 중 부동산 이슈가 잦아들고 있는 것은 민주당에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부정 평가 사유 중에서도 ‘민생/경제’는 3, 4위권의 주요 사유다. 긍정 평가에서의 그것처럼 부동산을 아우르는 항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부동산 이슈가 별도로, 1위로 오를 만큼 유권자는 부동산에 민감하다. 한국인은 부동산에 몰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라고 했지만, 정치는 단언(斷言)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유기적 존재다. 전 세계 유동성 장세도 불안 요소다. 비바람(대출 규제)이 안 먹히면 햇볕(세금)으로라도 옷을 벗겨야 한다.

단어를 둘러싼 투쟁

2007 11 25 WarMemorial 120.JPG
By Rheo1905자작, CC BY-SA 4.0, 링크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강하여 국가 우월적 느낌을 준다. 반면에 인민은 국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표현한다. [중략] 하지만 초안의 ‘인민’은 국회 헌법기초분과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국민’으로 바뀌고 말았다. [중략] 그 주된 이유는 북한 때문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윤치영은 “인민이란 말은 공산당의 용어인데 그러한 말을 쓰려고 하느냐. 그런 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인민이란 용어는 구 대한제국의 절대군주 시절에도 사용하던 용어였다. [중략] 인민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좋은 말을 공산주의에 빼앗긴 셈치고 포기했다. [지금 다시 헌법, 지은이 차병직 / 윤재왕 / 윤지영, 펴낸곳 로고폴리스, 2017년, 35쪽]

어떠한 중립적인 단어가 특정한 시대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그 의미가 왜곡되고 변질되다가 급기야 다른 단어로 대체되는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국민(國民)이나 인민(人民)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똑같이 ‘people’, ‘public’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국민은 ‘nation’, ‘citizen’ 등 다른 단어가 더 등장한다. 뉘앙스로 보면 결국 우리말은 인민이 people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표현이다.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다. 반면 國자가 들어간 국민은 딱히 대응하는 영단어가 궁색한데 굳이 따지자면 nation이 어울린다. 더욱이 국민이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줄임말이라는 설도 있거니와, 궁극에 개별적인 사람을 국가라는 정체성에 묶어놓은 표현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단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특정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여 본래의 의미를 비트는 대표적인 사례가 ‘근로자(勤勞者)’다. 이 단어는 ‘노동자(勞動者)’라는 단어를 대체하여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 있던 표현이긴 하지만, 인민의 사용금지와 비슷한 사유로 이승만과 박정희는 적극적으로 노동자를 대체하는 표현으로 근로자를 사용하고, 더불어 ‘노동절’도 ‘근로자의 날’로 바꾸고 심지어 노동절의 날짜마저 변경했다. 이외에도 ‘재벌 일가’를 ‘오너 일가’로 부르는 행태, ‘사치품’을 ‘명품(名品)’으로 바꿔 부르는 행태도 만연한데, 재벌 및 사치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희석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포한 표현이다. 이렇게 같은 의미인 듯하면서도 다른 의도가 있는 표현이 우리 귀에 익숙해지면 어느 샌가 그 부조리한 세상에도 익숙해져 버리게 된다.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렇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단어들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사고하는 것 같아도 실은 권력층과 주류에 의해 사용이 금지되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되는 권력기제를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 허락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를 둘러싼 투쟁은 종종 그것이 상징하는 현실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혐오’라는 단어가 기존에 있었지만, 이 단어를 주체적으로 ‘여성’, ‘소수자’와 결합하면서 피억압 계층에 대한 차별과 혐오라는 시대적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여성혐오’, ‘소수자혐오’의 의미를 계속 사회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그런 행위가 잘못된 것임이 공인되는 것이기에 단어의 규정은 중요한 것이다. 이준석의 폭력적 발언에 대한 단죄 역시 그러한 단어 투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트위터에 쓴 선거 소회

# 지지율 격차에 실망한 이도 있을 텐데, 어찌 보면 민주당으로서는 유례없는 승리라 생각한다. 사실상의 주요한 단일화 없는 단일 세력으로 승리하였고, 더욱 조기 대선을 가능케 했던 것은 내란수괴의 발작 때문인데 민주당이 수괴가 계속 버튼이 눌리게 빌드업했고 그것도 일종의 주요 전술이었다

# 왜 ‘민주당은 보수’라고 동진했음에도 TK 득표에 실패했을까? 수많은 분석이 있겠지만, 사견으로 ‘민주당이 30번이나 탄핵을 해서 윤이 계엄을 했다’는 프레임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러지 말아야 했는가 하면 결과론적으로는 51대 49 싸움에서 2를 득점한 묘수였다고 생각한다.

# 민주당이 ‘전략적으로 움직이는구나’라고 생각했던 지점은 3차 토론에서 이재명 씨가 이준석의 단일화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던 장면이다. 일종의 김빼기 전략인데 이게 준석열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도움을 줬느냐는 의문이지만, 사람들에게 그 단일화의 신선감을 줄이는 데는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 요컨대 이번 대선은 사실상 민주당이 국짐 멱살잡고 ㅈㄴ게 달려 억지로 만든 선거라는 점에서 503이 뻘짓해서 건식 느낌이었던 19대 대선과는 다른, 더 치열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실기한 그 전쟁은 오늘부터 2차전에 돌입한다. 국회, 검찰, 사법부 등 다양한 전선이 존재하는 체제 전복 선거


“Alive and kicking. Stay until your love is alive and kicking.”

RE100 달성을 불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

Roscoe Wind Farm in West Texas.jpg
By Matthew T Rader, https://matthewtrader.com, CC BY-SA 4.0, Link

RE100은 사실 불가능한 겁니다.

대선 후보 여론조사 2위를 달리는 구여권(舊與圈) 후보가 후보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다. 김문수는 이 발언 이전에 RE100이 뭔지 알고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가 RE100의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위의 발언을 곱씹어보면 아마도 그가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3년 전의 같은 당의 후보가 RE100이 뭔지 몰라서 버벅거렸던 상황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때는 RE100이 뭔지 몰라도 된다고 뻗대던 상황이었고 이제는 RE100이 뭔지는 안다고 우기는 상황이 그나마 조그만 차이라면 차이다.

그의 발언에 반론하자면 RE100은 달성 가능하다. 아니 달성 가능해야 한다.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인 The Climate Group과 CDP가 연합하여 2014년 뉴욕 기후주간에서 처음 발족한 캠페인인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선언으로 기후변화의 주요한 대처방안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무역장벽의 수단으로 작용하며 상품 수출의 비관세 장벽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수출 비중이 GDP의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RE100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이다.

그런데 김문수는 왜 RE100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을까? 아마도 그는 RE100을 국내 모든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RE100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RE100은 일종의 기업의 자율적인 선언으로 2024년 10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433개 기업이 RE100에 가입했으며,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36개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기업은 RE100 달성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하지만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은 기업에게도 RE100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상기의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해외 주요업체의 – 예를 들면 테슬라 – 협력사인 경우 RE100을 실천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주요업체가 자체 RE100 달성을 위해 협력사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경우다. 그런 경우 협력사는 거래를 끊거나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김문수의 생각처럼 RE100은 달성 불가능하니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력을 쓰겠다고 우기면 될까? 물론 안 된다. 그런데 그렇게 우긴 경우가 윤석열의 CF100이다.

RE100 달성을 불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

어제 대선 후보 토론 단상

IsaacCruikshank-DebatingSoc.jpg
By Isaac Cruikshankhttp://www.library.yale.edu/walpole/html/exhibitions/hair/image003.jpg, Public Domain, Link

어제 이번 대선에 출마한 중 4명의 주요 후보들이 방송국에 모여 경제 이슈에 관해 토론했다. 보다 안 보다 하긴 했지만, 총평을 하자면 한국 정치 지형은 – 사실 물론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 희한하게도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많은 영역에서 보다 더 정치적 관념으로 소구되는 경향이 있어 사실관계에 근거한 경제 이슈 토론이라기보다는 또 다시 경제 이슈에 대해 정치적 편견에 근거한, – 정치(精緻)하지 않은 – 정치적 레토릭으로 경제 이슈를 주장하는 정치 토론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많은 이들이 경제적 ‘실용’을 이야기하지만, 그 실용은 늘 그렇듯이 본인 혹은 소속 정당의 정치적 선입견에 매몰되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물론 경제학은 본래 “정치경제학”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더 정치(精緻)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제적 실용주의의 입장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토론자는 사견으로 이재명이다. 이재명의 정치인으로서의 성장과정이 실용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스토리에서도 그의 그러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경제정책은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관점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대만 사이의 갈등에 대한 발언에서 이런 관점은 명확히 드러나고, 특히 외교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당연히 옳다. 애초에 누구의 편을 들 것이냐며 다그쳤던 이준석의 입장이 치기어린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실사구시 스탠스는 토론에서는 방어적이거나 나약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이런 그의 (실사구시적) 수동적 태도의 한계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걸로 …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는 궤변에서 잘 드러난다.

반면 민주노동당의 후보 권영국의 경제적 입장은 비교적 선명하다. 세제 정책으로 대기업 증세를 명확히 천명하여 나머지 후보들이 침묵하는 재원 확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또한 노동자들이 산재에 고통 받는 상황과 – 최근 희생당한 노동자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 최저임금 배제 등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에 대한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 공약했다. 이러한 권영국의 선명한 입장은 사실 아직은 기득권 세력과 타협할 이유가 없는 정치적 소수이기에 가능한 스탠스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 “강소국”인 한국경제의 앞날을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재벌과의 사회적 타협에 대한 실용적 정책 등은 보이지 않는다. 향후 진보세력이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토론에서 최하점의 후보는 이준석이다. 이준석은 개혁신당의 공약을 말해야 할 본인의 시간의 상당부분을 이재명을 비방하는데 낭비했다. 물론 집권 가능성이 없는 마이너 우파 후보여서 상대적 좌파인 이재명을 공격함으로써 우파 지지자들에게 어필하려는 의도야 이해가 가지만, 더더욱 집권 가능성이 없던 좌파 후보 권영국의 집권 시나리오는 이준석에 비해 훨씬 탄탄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엉뚱한 공격 포인트는 서남권에 풍력 발전소를 설치해 이를 활용한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이재명의 공약에 대한 비난이었다. 이재명의 공약은 전력계통망에 대한 과부하 이슈로 인한 대안인 분산전원을 위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당연한 대안이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에너지 믹스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준석의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이 주요 경제 공약으로 내세운 재생에너지 활성화에 대해 후보 스스로가 좀 더 공세적으로 우파의 비방에 대응하지 못한 점이 아쉽기도 했다. 이준석은 특히 재생에너지 활성화와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를 “환경 카르텔”이라고 악질적으로 호칭하기도 하였다. “OO 카르텔”이라는 호칭은 내란 수괴가 자신의 적을 악마화하기 위해 썼던 표현이라는 점에서 악질적이고, 또한 재생에너지가 환경 카르텔의 음모라는 그의 입장은 국제 통상환경에 비추어서도 역진적이다. RE100 이나 기후변화에 가장 무대책인 한국은 윤리적 이슈뿐 아니라 통상 이슈에 있어서도 뒤쳐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RE100 이 “철지난 타령”이라는 기사도 봤는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OECD 꼴등인 나라의 외람이가 할 소리는 아니다.

요컨대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재명의 경제정책은 AI 등 첨단산업 및 재생에너지 활성화인 것 같다. 이러한 정책은 AI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및 대만과 HBM 등 부품 산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적인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또한 재생에너지는 그러한 트렌드에 그동안 따라잡지 못한 절대적 열위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노동시간 유연화, 재벌 특혜 제공, 에너지 정책의 역진 등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는 수구적 시도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가 또 하나의 중요한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면 스스로 민주당을 우측으로 옮긴 이유는 좌측의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좌측이 있어야 미래를 지탱할 수 있다.

아… 김문수는 언급도 안 했네! “잘 관리되는 원전은 오히려 더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고 발언함.

이준석이 권영국에게 건방떨다가 깨지는 장면 “차별하지 말라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라는 명칭에 관하여

김영삼(1993년)
By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KOGL Type 1, 링크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92년 12월30일 김영삼 대통령당선자의 정권인수 때 처음 등장한 이름이다. 14대 대선에서 승리한 김영삼당선자 진영이 당시 노태우정부에 당초 요구한 명칭은 ‘정권인수위’였다. 물론 ‘정권을 쟁취했다.’ 는 의미였다. 또 노전대통령이 전두환전대통령의 ‘서슬’에 눌려 ‘정권인수’라는 말을 못 쓰고 ‘취임준비위원회’에 자족(自足)해야 했던 과거사와 차별한다는 뜻도 담겨 있었던 것. 그러나 노태우정부 측은 “정권인수는 혁명적인 상황에서 있는 일로 법적 문제가 있다.”고 버텼다는 후문이다. 결국 절충 끝에 ‘인수’라는 표현을 살리는 선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됐다.[잃어버린 5년 칼국수에서 IMF까지, 동아일보 특별 취재팀 지음, 동아일보사, 1999년, 49쪽]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언뜻 사소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표현들이 사실 처음에 만들어질 때는 나름 상당한 진통이 따랐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금은 ‘인수위원회’라는 표현이 당연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정권이 그래도 계속 소위 “보수”진영에서 소위 “진보”진영으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만 해도 심지어 사실은 김영삼 정부마저도 이전 정부로부터 “정권이 교체”된 상황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3당 합당 이후 내부에서의 계파 간의 권력이 이동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용어 하나하나에도 내부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 같은 갈등이 이제 와서 보면 간단치만은 않은 갈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야수에게 쇠사슬이 채워졌으니 조금쯤 사슬을 늦추어주어도……”

Web of Venom.png
By [1], Fair use, Link

종전 10주년을 맞는 1928년, 국가사회주의당의 당원은 10만 8천이었다. 비록 그 숫자는 적었으나 점점 증가하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1924년 말 형무소를 나온 지 2주일만에 히틀러는 당시 바이에른 수상이며 바이에른 카톨릭인민당의 당수인 하인리히 헬트 박사를 만나러 갔다. 헬트는 히틀러로부터 행동을 삼가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받은 후 (그는 아직 보석 중이었으므로) 나치스당과 그 기관지의 발행금지를 풀어주었다. ‘야수에게 쇠사슬이 채워졌으니 조금쯤 사슬을 늦추어주어도 지장은 없을 것이다’고 헬트는 법무상인 귀르트너에게 말했다. 이로써 바이에른의 수상은 그릇된 판단을 내린 독일 정치가 중의 최초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제3제국의 흥망 1, 윌리엄 L. 샤이러 지음, 유승근 옮김, 에디터, 1993년, 185쪽]

요즘 전 세계적으로 파시즘 혹은 유사 파시즘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는 상황이라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읽고 있는 책의 일부를 인용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국면에서 나치와 히틀러를 저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바이에른 공화국 권력자들의 순진한 오판 또는 지나친 의협심 탓에 이러한 기회를 놓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어차피 나는 이미 그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고, 어쩌면 그들이 순진했다기보다는 이미 파시즘 혹은 나치즘은 유럽 열강 권력층의 뇌리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뿌리 깊은 제국주의자 마인드와 선민(選民)의식의 현재화였을 뿐이라는 생각도 들기에 그런 오판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유럽은 문명의 대륙이자 반(反)문명의 대륙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비극은 비극이다. 피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내부가 썩어 곪아 터질 지경일지라도 그걸 봉합하여 더 나쁜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 양식 있는 자들의 책무다. 굳이 파시즘의 폭력성이 임계점을 넘게 만들어 인류사의 비극이 된 세계대전으로 몰고 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교훈은 21세기인 지금도 남한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유효하다. 근본적인 모순을 외면하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초록이 동색일지라도 대의민주제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폭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2025년 4월 한국이 지금 그런 실험실 안에 놓여 있다. 누군가 “조금쯤 사슬을 늦추어주어도” 되지 않겠냐고 말하는 순간 국가는 나락으로 가는 상황인 것이다. 부디 4월 4일 11시에 결정문을 읽을 이들이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상법 개정 이슈 단상

Philippine-stock-market-board.jpg
By Katrina.Tuliao – Flickr, CC BY 2.0, Link

현대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적인 특징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입니다. 즉 개별 주주는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주주와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이사들이 회사의 주요 경영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 기업 현실에서는 지배주주가 이사 선임은 물론, 회사 운영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빈번해 보입니다. [중략]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평가가 저하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1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배경하에 최근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전자주주총회 도입 등이 정치권에서 활발히 논의되었고 [상법 개정안의 주요쟁점 및 제언]

권 비대위원장은 “소위 ‘서학개미’라고 미국 주식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주주 보호가 잘 되기 때문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혁신 기업이고 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기업이 혁신할 수 있도록 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소위 ‘밸류업(기업가치제고)’도 가능하고, 우리 주식시장도 점점 좋아질 텐데, 상법 개정으로 우리나라 회사에 있는 임원들이 무모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게 없어지게 된다면 기업 발전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고, 우리나라 경제가 더 어렵게 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고 부연했다.[권영세, ‘상법 개정안’·’명태균 특검법’ 법사위 통과에 “거부권 반드시 행사”]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중략] “외국인 투자가의 경영권 공격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며 “상법 개정은 이들에게 국내 기업들을 먹잇감으로 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은 문제의식과 처방이 잘못됐다”며 “국내에서 미국 주식 시장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주주 충실 의무 때문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성과 수익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이어 “상법이 개정되면 적용을 받는 법인이 100만 개가 넘고, 실력 있는 알짜 중소기업부터 피해를 보게 된다”며 “중소기업은 상법 개정으로 인한 소송에 대응하다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경제8단체 “상법 개정되면 국내기업이 해외 먹잇감 될 것”]

상법을 개정하면(개정안 보기) 소송 남발, 기업의 경영권 위협,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 M&A 위축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여당과 경제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또한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서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취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다. 개정안은 상장법인 이사회가 합병 등을 의결할 때 주주 이익을 보호할 수 있게 하고, 기업이 물적 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할 때 공모 주식의 최대 20%를 모회사 주주에게 배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고질적인 악행인 교묘한 인적2/물적3 분할을 통한 “오너”의 이익 독점의 폐해를 일부 보완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반대자는 이런 “핀셋”식 처방이 또 다른 우회로를 찾게 해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상법 개정론자는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에도 ‘회사 또는 회사의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했을 때는 이사의 책임을 감면해주지 않는다(제102조(b)항(7)호)’라며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장한다. 영국의 경우 2019년 ‘이사의 지위 자체만으로 주주에게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라는 고등법원 판례가 있지만, 영국 회사법 제172조 1항에는 ‘이사가 전체로서 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성공을 촉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출처)돼 있다고 한다. 일본 회사법은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넣지 않았지만, 최근 해석론이나 일본 경제산업성이 공표한 ‘공정한 M&A 지침’ 등을 통해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참고)

또 하나의 문제는 소송에 갔을 경우 각국의 법정이 누구의 이익에 손을 들어주는가 하는 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24년 1월30일 델라웨어주 법원은 테슬라 소액주주가 회사 이사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줬다. 테슬라 이사회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에게 560억달러 규모의 스톡옵션 보상 지급안을 승인하자 회사 주식 9주를 보유한 소액주주가 과도한 보상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이다. 법원은 해당 주주의 주장을 받아들여 머스크의 보상안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국내에서는 2021년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 분할한 이후 상장시켜 LG화학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보호받지 못한 사례가 대표적이다.(참고) 법원의 노골적인 “오너” 보호를 목격하고4 국내 주식을 매입할 이유가 있을까?

상법 개정을 통해 고쳐야할 것은 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는 봉건적인 기업구조다. 소수의 지분을 순환출자 등의 편법을 통해 자신들의 실질적인 지분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며 “오너5/총수”라 불리는 패밀리들이 행정부, 사법부, 매스미디어, 경제단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 주주 이익의 보호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 관련법에 ‘주주 이익의 보호’라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만큼 강력한 재벌 카르텔이 아닌 기업환경이기 때문이라 봄이 타당하다. 독점자본은 존재하지만, 우리와 달리 그들은 몇 십 년을 주기로 생태계가 바뀌는 역동적인 환경이다. 지분만큼 권력을 행사한다는 자본주의적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코리아디스카운트”는 고질병이 될 것이다.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이 2024년 1월~11월사이 12.57%로 집계됐다. 국내주식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전체 수익률을 끌어내렸지만, 해외주식에서 30% 가까운 수익이 나서 양호한 수익률을 향유했다. 인상적인 것은 국민연금의 자산 비중이다. 2024년 11월 현재 전체 자산 중 해외주식은 35.5%, 국내주식은 11.9%였다. 국내 증시가 아닌 해외 증시에 3배 가까운 자산을 배분한 덕에 수익률을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 주식은 심지어 16%인 대체투자 자산보다도 비중이 낮다. 대체투자 자산 역시 9.32%의 수익률을 시현하며 –4.94%에 불과한 국내 주식의 수익률을 압도하였다. 이른바 불투명한 기업 경영으로 인한 “코리아디스카운트”에 대한 리스크 방어를 국민의 돈주머니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1. 회귀분석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가장 유력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됨.(출처)
  2.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대부분의 기업이 결국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로 이어졌던 만큼 빙그레 역시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고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출처)
  3. 물적분할은 기업이 특정 사업을 떼어내 법인을 새로 설립하고, 그 법인의 지분 100%를 모회사가 갖는 기업분할 방식이다. 특히 분할 신설회사를 주식시장에 재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이 빈번해지면서 소액주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출처)
  4. 잘못했는데 죄는 아니다? 이상한 이재용 재판
  5. “오너라고 하지 좀 마십시오. 상장회사에 오너가 어딨습니까. 주주들은 오너가 아닙니까?” 최근 참석한 한 학술 세미나에서 연사로 나선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출처)

반도체 산업, 허수아비가 아닌 자본가를 때려야 한다

WomanFactory1940s.jpg
By Howard R. Hollem – This image is available from the 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under the digital ID fsac.1a34951.This tag does not indicate the copyright status of the attached work. A normal copyright tag is still required. See Commons:Licensing., Public Domain, Link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반도체산업에 주 52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적용을 제외하는 반도체특별법 제정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1 2 법을 밀어붙일 경우 노동계와의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대표는 3일 오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제목으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찬반토론)에서 “반도체산업에 주 52시간과 각종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 외의 제도를 추가로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며 “이해관계가 충돌될 때는 합의가 안 될 때가 많고, 간극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욕먹을 건 먹고, 책임질 건 책임지고, 그전까지는 최대한 대화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반도체특별법 욕 먹어도 한다” 이재명 대표 ‘답정너’ 의지]3

이것은 허수아비 때리기다. 지금이 노동시간 연장을 운운할 정도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위기인가?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말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대한민국 대표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또 다른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는 HBM 실적의 호조를 기반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두 회사는 굳이 따지면 모두 “한국 국적”의 회사다. 그렇기에 모두 대한민국 법률에서 정한 주 52시간제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계는 – SK하이닉스까지 포함하여 – 주 52시간제 때문에 산업이 위기라며 이 규제에 대한 철폐를 주장했다.4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같은 규제를 적용했는데 삼성은 위기고 SK는 호황인데 둘 다 노동시간 규제 때문에 불만이다. 뭐 어쨌든 일단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이는 세계 반도체 산업계가 실낱같은 네트워크로 이어진 업계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반도체의 설계, 소재, 제조, 제조를 위한 장비 등이 독점 또는 과점 체제 하에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업계와 비교해서 굉장히 예외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독과점 이익을 누리는 엔비디아, AMD, ASML 등의 업체들은 엄청난 이익을 거두고 있다. 반대로 HBM 등 최신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 삼성전자처럼 문제의 원인을 알고, 젠슨 황도 립서비스+푸쉬 성으로 삼성전자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단기간에 이슈를 해소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불거진 이슈가 업계의 초과 근로 요구다. 일단 재계는 우리의 경쟁국은 근로 시간의 규제가 없다며 우리의 경직된 규제를 탓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세의 흐름을 놓친 것이 단순히 노동시간 탓일까?

“뺑이치기”로 성공한 기업이 파운드리 업체 TSMC라고 한다. 우리와 비슷한 노동문화를 공유하는 대만 업체라 그들도 초과 근로가 일종의 직업윤리인 것처럼 포장되고 왔던 정황이 있기도 하다.5 그리고 어쨌든 반도체 네트워크에 잘 안착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파운드리 2위 업체 – 라고는 하지만, TSMC가 넘사벽인 – 삼성전자는 그래서 단편적으로 초과 근로를 해야 TSMC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런데 파운드리란 반도체 산업에서 외부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 공급하는 공장을 가진 ‘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다. TSMC는 경영진의 능력으로6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엄청난 물량을 발주 받아서 초과 근로라도 해서 물량을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삼성은 야근을 할 수주 물량이 있는가? 찍새가 물량을 못 받아왔는데 딱새가 야근을 하면 뭐하나?

업계는 반도체 설계 등 “고급”노동을 하는 고소득 노동자는 초과 근로를 통해 업계 트렌드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7 다시 HBM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당시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시장의 강자로 등장하기 이전에 삼성전자에 와서 자기들의 GPU에 필요한 HBM의 생산을 요청했다는 풍문이 있다. 그런데 배가 부른 삼성전자는 이를 거부했고 배가 고픈 SK하이닉스는 부지런히 노력하여 엔비디아의 요구에 부합하는 HBM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다. 당시 SK하이닉스에서 HBM 개발부서의 임원이었던 분은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답변을 피하며 엔지니어의 사명감을 강조했다. 의대 안 가고 공대가서 취업한 고급 인력이 외국 빅테크만큼의 보상도 없이8 사명감으로 일해서 이만큼 따라잡았으면 이제 보상을 해줄 차례가 아닐까?

반도체 업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초과 근로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은 아동 노동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망할 것이라던 19세기 자본가의 주장을 연상케 한다. 굳이 노동이 중요하다면 노동자와 경영자 모두의 노동의 양(量)에 앞서 질(質)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지금 시점이라면 반도체 기업의 수장이 위기 극복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세계적 반도체 기업의 모리스 창, 젠슨 황, 샘 올트만, 리사 수 등 모두 성공한 기업인이자 기술을 꿰뚫고 있는 엔지니어다. 이재용과 최태원은 엔지니어인가? 그냥 금수저 일뿐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와 주식시장의 발전을 막고 있는 자본 세습의 수혜자일 뿐이다. 초과 근로를 주장하기에 앞서 경영 시스템의 투명화가 필요하다. 허수아비가 아닌 자본가를 때려야 한다.

권력도 안 잡았는데 이재명의 급속 우회전에 현기증이 난다

  1. 여당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 위원장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주도하여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아래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했다(출처)
  2. 그 와중에 이재명 대표가 영입한 홍성국 씨가 또 이런 발언을 했다. “주 52시간제 예외를 소프트웨어 산업 전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 한번 둑이 터지면 계속 둑이 터지는 법
  3. 해당 토론회에서 이재명 대표의 총 노동시간에 대한 발언
  4.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사태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던 지난해 12월5일, 삼성전자는 국회를 찾아가 민주당에 법안 통과 필요성을 역설했다.(출처)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기업이 2023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고용노동부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은 건수는 총 23건으로 이중 삼성전자가 22건이었다.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는 0건이었는데 오히려 HBM 메모리를 증산하여 미국의 기술기업 엔비디아에 안정적으로 납품하여 역대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는 등 경영 성과는 더 뛰어났다. (출처)
  5. “TSMC는 노동 유연성이 경쟁력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단편적인 접근이다. TSMC가 한때 장시간 노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TSMC도 일과 삶의 조화를 천명한 상태다.”(출처)
  6.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인 TSMC의 CEO 모리스창이 CEO 자리에 있으면서 어떻게 성장의 결정적 장면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영상을 참고
  7. “테스트를 계속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한 사람이 16시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같은 부서에서 3교대로 넘겨받는다. 한국 업체들도, TSMC도 이미 그렇게 24시간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TSMC가 장시간 노동으로 제품(물량)을 따냈다는 건 1년 동안 일부 인원에게 연봉의 2~3배를 주면서 ‘결사대’처럼 만들어 운영한 것이다. TSMC에서도 일·생활 균형 이야기가 나왔고, 지금은 과로가 줄고 처우가 나아졌다.”(출처)
  8. 이 영상을 보면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여 43건의 특허를 받은 한 엔지니어가 물질적으로 받은 보상은 다 합쳐도 200만원이 안 된다고 한다

탄핵선진국 대한민국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2015).jpg
By Wei-Te Wong – https://www.flickr.com/photos/wongwt/27202724082/, CC BY-SA 2.0, Link

탄핵에 관한 남한의 경험은 매우 드문 장면이다. 내가 공동으로 저술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1990년과 2017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탄핵이 성공한 것은 단지 열 번에 불과했다. 그러나 남한은 다른 이들이 따를만한 가치 있는 선례를 남겼다. 어떤 이는 민주적으로 선출한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탄핵은 민주주의를 보호함에 있어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중략] 그들의 결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인증은 – 요컨대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한 합법성의 체크 – 또한 입법자들이 당파적으로 온당치 못했다는 비난을 방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헌법재판소의 최종 점검과 새로운 선거를 조속히 치루는 절차가 미국의 시스템에는 없고, 이는 명백히 더 열등한 것이다. 남한 헌법의 제정자들의 현명한 선택 덕분에 탄핵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하드 리셋’으로 작동하고 있다.[South Korea’s Impeachment Battle Is Democracy in Action]

어느 위정자의 광기어린 행동덕분에(?) 한국의 탄핵 절차가 때 아닌 칭찬을 받고 있는 상황이 매우 당황스럽다. 개인적으로는 12월 3일 10시 30분쯤 뉴스를 접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켜니 “비상계엄” 운운하는 기사가 보여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간 소통과 협력이라는 단어를 업무에 적용하지 않았던 검사 출신의 신출내기 위정자가 과연 어디까지 극단적으로 갈 수 있을까가 걱정이 됐는데 현재까지는 한 극한치의 60% 이상은 보여준 것 같다. 그 덕분에(?) 국민은 지금 87년 헌법의 약점이 무엇인지 실전으로 익히고 있다.

저자가 한국의 시스템을 칭찬하고 있지만, 위정자 하나가 멋대로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끔 해놓은 이 시스템은 이제 온당치 못하다. 냉전의 공포를 극대화하여 정권을 연장했던 우익 정권의 짙은 그림자가 21세기 한국을 또다시 군홧발에 내던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스템이 견고하다 할지라도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주체는 결국 자아를 가진 인간이기에1 언제든지 남용, 오용, 전복될 수 있다. 그래서 상호검증을 위해 권력분점과 견제장치를 두고 있지만,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광기에 대응한 저항은 이성(理性)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현 대의정치 체제의 딜레마다.

부디 이번 비극이 새로운 희망을 낳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1. 오히려 요즘은 이제 그 운용을 AI의 손에 맡겨두면 더 혼란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