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스릴러

그래. 왓슨도 힘든기라.

1월 2일 ‘셜록 홈즈 (Sherlock Holmes, 2009)’를 봤다. 또 크리스마스 언저리에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 2009)’를 봤다. 연말연시에 즈음하여 이렇게 명절이라고(?) 영화를 꼭꼭 챙겨보게 된 것은 또 살면서 처음인 것 같다. 이제는 이런 풍습이 사라진 것인지 관객도 그리 많지 않았다.(특히 상상극장은 참혹할 정도~)

셜록 홈즈, 가이 리치가 감독을 맡고 루버트 ‘다훈이’ 주니어가 셜록 홈즈 역을 주드 로가 존 왓슨 역을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전의 홈즈 영화와는 달라도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과연 개봉한 작품은 홈즈 시리즈의 연장선상이라기에는 뭔가 스피디하고 신세대 풍이고 뽕스럽고…. 등등의 차별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실 정의감에 불타는 셜록 홈즈가 아닌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결정적으로 정의감이 아닌 순수한(?!) 자신의 지식욕 때문에 사건을 맡는 – ‘다훈이’가 연기하는 – 셜록 홈즈 캐릭터는 이미 1984년 이후 영국에서 제작된 TV시리즈에서 제레미 브렛(Jeremy Brett)이 닦아놓은 캐릭터다.(주1) 다훈이는 거기에 무술실력을 본격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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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Brett” by Unknown.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귀족풍의 미모지만 싸가지 없어 보이는..

그래서 결국 다훈이의 매력에 이끌려 영화를 본 이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그의 캐릭터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신선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관심을 끈 것은 왓슨의 캐릭터 설정이었다. 신세대 왓슨답게 꽃미남 왓슨답게 주드 로가 맡은 왓슨은 홈즈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홈즈의 활약상이나 베껴 적는 왓슨이 아니었다.

‘주드 로’표 왓슨은 홈즈 못지않은 무술 실력을 뽐내고, – 추리력은 여전히 떨어지지만 – 사건 현장에 가길 싫어하고, – 그럼에도 끌려 다니지만 – 선물한 조끼를 뺏어서 길바닥에 던져버리고, 나태한 홈즈에게 호통을 치는 ‘살아 움직이는’ 왓슨이었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확실히 애드가 알란 포 이래 지속된 ‘수동적인 관찰자’로서의 캐릭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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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e Law at TIFF2” by Indian Nomad – Originally uploaded to Flickr as Jude Law.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이 작품이 비록 셜록 홈즈 외전(外傳) 중의 최고 작품도 아니고(주2) 또한 추리물로 보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도 많지만 다훈이와 주드의 매력이 충분히 가이 리치의 속도감을 따라가고 있고, 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팀펑크 풍의 화면도 감칠 맛 나며, 결정적으로 이번 편에서 모리아티 교수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후속편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충분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왓슨이 주인공이면 어떨까?

(주1) 하우스의 그레고리 하우스 캐릭터가 바로 이 캐릭터를 차용했다는 강력한 설이…

(주2) 셜록 홈즈 외전 중 최고걸작으로 치는 작품은 The Private Life of Sherlock Holmes라는 작품이다

The Quiet American

스피어단장은 잠재적인 재난에 대한 얘기들을 계속했다. 끝으로 나는 그에게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아니면 미국이 개입하여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만일 우리가 탱크와 다른 군사장비를 남부 베트남 대신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준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로상으로 끌어올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방식으로 그들과 싸울 수 있을 겁니다.”그는 이 말을 농담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제임스 레스턴 회고록 데드라인, 제임스 레스턴 지음, 송문홍 옮김, 동아일보사, 1992년, p297]

미국이 아직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하기 전 사이공에서의 군사 임무를 맡고 있던 영국의 스피어(Spear) 여단장의 말이다. 이 말에서도 느낄 수 있다시피 서구인들에게 있어 베트남은 이해가 되지 않는 미궁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웅성웅성 몰려다니는 조그만 노란 땅꼬마들을 현대화된 무기로 큰 힘 안들이고 때려잡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큰 오산임이 밝혀졌다. 똑같은 착각을 프랑스가 했고 미국이 했다.

영화는 이렇듯 서구가 베트남이라는 구렁텅이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던 무렵의 혼란한 정국에서부터 시작한다. The London Times의 늙은 영국인 주재원 토마스 파울러 Thomas Fowler 는 유유자적하는 방관자적인 가치관을 가진 기자이면서, 영국에 아내가 있으면서도 현재는 직업댄서 출신인 아름다운 베트남 여인 푸앙과의 불륜에 맛이 들려있는 상태다.

그에게 의료관계 일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매력적인 미국인 알덴 파일 Alden Pyle 이 접근해온다. 셋은 곧 함께 어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와중에 파일이 푸앙을 사랑하게 되고, 파일은 기혼자로서 약점이 잡혀있는 토마스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푸앙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기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 와중에 The London Times는 토마스의 귀국을 명령하지만 푸앙과의 관계를 위해 토마스는 격전지에 뛰어드는 취재를 자처하거나 유력한 군사집단의 우두머리 테이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등 신문사에 미끼를 던져 귀국을 연기시킨다. 그에게는 전쟁의 두려움보다 푸앙과의 이별의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자인 토마스의 아내가 토마스와의 이혼을 거부하는 바람에, 흠결 없는 결혼을 꿈꾸던 푸앙은 결국 파일과의 미국행을 꿈꾸며 토마스의 곁을 떠나버리고 만다. 반미치광이가 된 토마스는 파일과 푸앙의 주위를 맴돌지만 자신은 결국 늙은 영국인 기혼자 일뿐이라는 사실을 통감할 뿐이다.

한편 토마스는 취재의 과정에서 파일이 단순한 의료지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장소에서 수시로 모습을 보이던 그가 결정적으로 사이공 한복판에서 공산주의자의 짓으로 의심되는 폭파사건 현장에서 매우 이상한 행동을 하였고, 이를 지켜본 토마스는 그런 그의 정체를 곧 알게 된다. 연인을 빼앗아간 이 젊은이는 상상외의 거물이었던 것이다.

이후 토마스는 한 공산주의자의 설득에 따라 어떤 음모에 가담하게 되는데, 그 동기가 연적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는지 또는 정치적 소신 때문이었는지의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자 이 영화가 노리는 재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토마스의 행적에 의심을 품은 프랑스 형사 비고가 그에게 증거를 제시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전쟁 중이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라는 토마스의 말에 비고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시청자 역시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이념과 동서양의 가치관이 심하게 요동치던 현대사의 한복판을 관통하여 수많은 고민거리를 낳았던 베트남전(戰)을 소재로 한 수작 스릴러로 유명한 스릴러 작가 Graham Greene 의 원작을 Phillip Noyce 가 2002년 영화화한 작품이다. 두 주연배우 Michael Caine, Brendan Fraser 의 호연이 돋보이지만 푸앙역의 베트남 여배우의 어설픈 연기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911사태로 인해 상영이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한다.

Morning, Hinh. Anything new?
좋은 아침 힌. 새로운 거라도 있어?

Corruption, mendacity.
부패, 속임수.

I said “new.”
난 “새로운” 거 있냐고 물었어.

[극중 대화에서 인용]

아웃사이더의 스파이 스릴러, Harry Palmer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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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 Deighton and Michael Caine Ipcress File” by http://www.twochapstalking.com/gazette/gazette32.htm.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파이물은 100%(또는 99.9%?) 냉전시대의 유산이다. 미국의 개척시대가 없었다면 서부영화라는 장르가 존재할 수 없듯이 냉전과 스파이물의 관계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불가피하게 우리가 어려서부터 즐겨왔던 007시리즈로 대표되는 스파이물은 서방을 선(善)의 세력으로, 소련을 비롯한 서방의 적대세력을 악(惡)의 세력으로 하는, 이분법적 구도를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구도는 소련제국이 붕괴되는 시점에서 비로소 다변화되기 시작하였고 극히 최근에야 Jason Bourne시리즈와 같은 수정주의적 스파이물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냉전의 적대감이 기승을 부리던 1960년대에 영국 영화계 한편에서는 단순명쾌한 구도와 다양한 볼거리(첨단무기, 액션, 나체의 여인 등)로 무장한 007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묘한 스파이물이 존재하였다. 바로 Len Deighton 원작의 Harry Palmer 시리즈다. 이 작품 역시 동서의 냉전구도를 기본모순으로 깔고 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 당시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으나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것이 과연 선악의 구도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을 정도로 묘한 냉소와 모호함이 느껴진다. 즉 이 시리즈는 시대를 앞선 수정주의적 스파이물이었다.

이 시리즈는 개봉 당시 ‘생각하는 사람들의 James Bond’라는 별명을 얻으며 60년대에 세 편, 90년대에 두 편 영화로 제작되었다. 주인공 Harry Palmer는 요즘 The Dark Knight에서 Bruce Wayne의 집의 집사역을 맡고 있는 Michael Caine이 맡았는데 그가 아니었으면 누가 맡을 사람이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시니컬 그 자체인 공작원의 캐릭터다.(물론 60년대 영국영화에서 Michael Caine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졌는지 잘 모르는 이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겠지만 말이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Mike Myers 가 Austin Powers에게 검은 뿔테 안경을 씌워준 이유는 바로 Harry Palmer의 캐릭터를 염두에 둔 것이다.) 냉소적인 유머를 특기로 하는 “노동계급” 스파이, 그가 바로 Harry Palmer다.

여기 1960년대에 제작된 세 편의 Harry Palmer시리즈를 소개한다.

The Ipcress File(1965)

아웃사이더의 스릴러 Harry Palmer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영화화된 작품이다.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면서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월급이 얼마 오를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노동계급” 스파이 Harry Palmer. 동시대에 같은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James Bond 와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여자를 밝힌다는 점. 그가 유혹하려는 여자와의 대화다.

Courtney: “Do you always wear your glasses?”(언제나 안경을 쓰나요?)
Palmer: “Yes – except in bed.”(네. 침대에서는 빼고)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부를 위해 일하는 과학자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일을 그만두는가 하면 Radcliffe 박사는 기차에서 실종된다. Harry Palmer의 상관 Dalby는 납치용의자로 Bluejay 라는 암호명의 사나이를 지목하고 Dalby의 부서는 그를 찾아 나선다. 은밀한 뒷거래로 Radcliffe 박사를 찾았지만 그는 악당에 의해 브레인워시를 당한 상태였다.

한편 Harry Palmer가 실수로 미국의 스파이를 죽인 후 미국정보국은 그를 감시한다. 그러던 중 Harry의 차를 빌려 탔던 동료가 죽고 Harry의 집에 그를 감시하던 미국 스파이의 시체가 발견되자 Harry는 서둘러 유럽으로 탈출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곧 누군가에 의해 감옥으로 납치되고 그 곳에서 Radcliffe 박사가 당했던 브레인워시 실험의 제물이 된다.

감시, 유명인사 보호, 비밀접선지역, 비열한 뒷거래, 이중간첩 등 스파이 세계의 실체를 현실감 있게(얼마나 현실적 인지야 모르지만) 보여주는 장면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영상은 아방가르드 필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감각적이지만 액션은 James Bond 와의 차별성을 위해 일부러 자제하고 있다. Harry 의 냉소와 반항기질이 막판 반전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재밌다.

Harry 의 두 상관 Dalby 와 Ross 가 Harry 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사.

Dalby: “Incidentally, the Americans have put a tail on Palmer.”(우연히도 미국인들이 팔머의 뒤를 미행하고 있어)
Ross: “How very tiresome of them.”(그치들 참 피곤하겠네요)

감독은 Sidney J. Furie

Funeral in Berlin (1966)

베를린이 2차 대전 이후부터 베를린 장벽의 붕괴까지 지니고 있는 그 독특한 공간적 특성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 도시는 언제나 음모, 배신, 스파이 등의 단어를 은유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러한 베를린의 후광을 담보로 다른 도시들은 감당해내지 못할 얽히고설킨 협잡과 음모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여러 면에서 오손 웰즈의 ‘제 3의 사나이’를 연상시킨다. 각각 베를린과 비엔나라는 공간적 특수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분위기가 그렇고 작품의 큰 축이 되는 상황설정인 거짓 죽음, 그리고 영화 곳곳에서 느껴지는 허무주의가 그렇다.

Harry Palmer 는 역시 한냉소하는 직속상관 Ross로부터 소련의 한 고위 장성을 서베를린으로 망명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한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에 빠지지만 그는 의혹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편 장군의 탈출 시나리오는 장례식을 가장한 탈출. Palmer 는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빠져나온 관에 장군이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그 속에는 탈출계획을 대행하던 전문가 크라우츠만의 시체가 있었다.

그 와중에 그 아름다운 여인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소속인 것이 밝혀지고 이야기는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들어간다. 모두가 속이고 모두가 속는다. Palmer처럼 냉소적이지 않다면 그 업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했을까 걱정될 정도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Palmer가 자신으로 착각하게끔 자신의 코트를 입은 독일전범이 한때마나 사랑했던 그 여인의 지시로 죽었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여인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느꼈을 배신감은 당시 앞에 놓여 있던 베를린 장벽만큼이나 우울하고 암담하였을 것이다.

숀 코넬리가 제임스 본드로 있을 시절의 007 시리즈를 담당한 스파이물의 거장 Guy Hamilton이 스파이에게 총 대신 냉소와 머리를 건네주고는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다. 흥미롭게도 감독은 또한 앞서 언급한 ‘제3의 사나이’의 조감독이기도 했었다.

Billion Dollar Brain(1967)

Harry Palmer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이전까지 Sidney J. Furie, Guy Hamilton 등이 맡았던 감독은 괴짜 감독 Ken Russel에게 넘어갔다. 그 덕에 그렇지 않아도 냉소적이었던 Harry Palmer 는 더 괴짜가 되었고 내러티브는 거의 블랙코미디 수준으로 치닫는다.

Ross 대령에게 시달리던 Harry 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설탐정으로 나선다. Ross 대령이 친히 방문하여 복귀를 설득하지만 요지부동이다. 그 와중에 익명의 남자 – 그런데 목소리는 마치 컴퓨터로 조작한 듯한 목소리다 – 로부터 어떤 물건 하나를 핀란드 헬싱키까지 배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곳에 도착하여 그가 만난 이들은 놀랍게도 오랜 친구였던 텍사스 출신의 미국인 Leo Newbigin 과 그의 아름다운 정부 Anya. Harry 가 배달한 물건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Leo 로부터 미지의 조직에서 같이 일할 것을 제의받는다.

한편 다음날 Harry는 그가 진짜 접선하려던 이는 이미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곳을 뜨려하지만 어느새 나타난 Ross 대령의 협박과 회유 – 참 희한한 직장상사 – 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조직에 몰래 잠입하여 바이러스를 되찾기로 한다. 소련 땅인 라트비아에서 죽을 위기를 맞기도 하나 Funeral in Berlin 편에서 친분관계를 쌓은 소련의 Stok 대령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마침내 조직의 우두머리는 텍사스의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석유재벌 Midwinter 임을 알게 되고 그를 만나 그가 사설 군대를 끌고 소련을 침공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한 광기어린 자본가의 전쟁 놀음에 냉전의 교묘한 균형관계가 깨질 것을 두려워 한 Harry 와 Stok 대령은 각자 Midwinter 를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아직 냉전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를 뒤덮고 흔들 무렵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James Bond가 아직도 명백한 선악 구도를 추호도 의심치 않으며 빨갱이 사냥에 한창일 때에 Harry는 소련을 침공하려는 자본가를 저지하려 하다니 말이다. James Bond 는 냉전이 끝난 한참 후 Tomorrow Never Dies 에서나 겨우 시도하던 일이 아닌가 말이다.

이렇듯 원작도 그렇겠지만 영화는 지독히도 냉소적인 블랙코미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가령 라트비아에서 Harry가 어설픈 강도짓을 하다 몰살당한 현지인들 시체를 헤치고 나오는데 군인이 다가와서 혁대를 풀자 Harry 가 반격자세를 취하는데 그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버리는 그런 식이다. 대체 다른 당시 – 요즘도 마찬가지 일듯 – 스파이물에서는 시도조차 못할 캐릭터가 여봐란 듯이 등장한다. 그래서 무척 맘이 흐뭇하다. 🙂

풍자의 압권은 바로 이러한 한바탕 해프닝을 주도한 것이 바로 대형 컴퓨터라는 사실이다. 제목의 ‘백만불 짜리 두뇌’는 바로 Midwinter 가 전적으로 신뢰하였지만 고철 덩어리로 판명된 슈퍼컴퓨터였다. 1,2 편보다 훨씬 스케일이 커진 로케이션(헬싱키, 텍사스, 소련(으로 믿어지는 어떤 지역)) 덕택에 시원시원한 눈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 Leo의 정부로 출연하는 아름다운 여인 Francoise Dorleac의 낯이 익다 했더니 Catherine Deneuve 의 언니였다. 안타깝게도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차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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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er of Funeral in Berlin

Michael clayton(2007)

마이클클라이튼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세대 스릴러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어찌 보면 고전적인 느와르의 현대적인 오마쥬쯤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변호사라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도박에 빠져 살았고, 부업삼아 한 레스토랑이 망해 사채를 얻어 쓴 이혼남 마이클 클라이튼(조지 클루니), 젊은 여성이면서도 제초제를 생산하는 대기업 유노쓰의 임원에 올라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는 카렌, 거래를 성사시켜 거액을 수수료를 버는 한편 자신의 회사를 합병시키려는 법무법인 대표 마티(시드니 폴락) 등 대충 느와르에서 볼 수 있는 얼굴들이 등장한다.

사건은 유해한 제초제로 말미암아 온 동네 사람이 입은 피해에 대한 소송에서 유노쓰의 변호를 맡은 스타 변호사 아써가 갑자기 재판도중 스트립쇼를 벌이면서 점화한다. 피해자들의 선량한 마음과 안타까운 사연을 듣는 와중에 더 이상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가 될 수 없다는 발작적인 저항이었다. 법무법인과 유노쓰는 쑥대밭이 되고 마이클 클라이튼이 아써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영화는 한바탕 반전(反轉)을 향해 질주한다.

The Firm, The Pelican Brief, The Insider 등 법정과 기업 또는 조직비리라는 소재가 스릴러라는 형식으로 엮여진 많은 영화에서 익히 봐온 구도다. 거대기업의 거대범죄에 대한 죄책감의 결여, 조직의 자기보호 본능, 성공에의 욕망, 순리로 풀기보다는 형식논리로 갈등을 푸는 매정한 시스템, 그 사이에 끼어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군상….. 이러한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이 적절한 액션과 긴장감과 버무려져 진행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며 현대사회의 분업이 낳은 비극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되었다. 아담 스미쓰 이하 모든 경제학자들이 분업으로 인한 거대한 생산력의 향상을 칭송하였고 그것은 실존하는 혜택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한편으로 분업은 현대사회에서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자신의 일에 대한 소외를 낳았다. 영화대사에서도 나오듯이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you’re doing your job)’ 그렇다고 해서 이 분업이 전체의 복지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제초제 회사는 제초제를 만들고, 법률회사는 사람들과 기업을 변호하고, 심지어 흥신소 직원은 사람까지 살해하지만 – 생활인으로서 정말 열심히들 일을 했지만 – 남은 것은 제초제로 병든 주민과 끔찍한 살인, 그리고 인간성 파괴뿐이었다.

물론 이것은 분업의 한 부작용일 뿐일지도 모른다. 영화란 원래 개연성이 적은 사례를 극화하여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극을 즐기게끔 만든 매체인 법이다. 그럼에도 오늘 날 우리네 생활에서 이렇게 자신들이 열정을 가지고 진행시킨 일들이 남들에게 득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거나, 또는 득보다 실이 큰 일이 아니라는 보장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 항상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살아야 하는 법인가보다. 음… 이거 영화보다 득도하게 생겼다.

볼만한 스릴러 몇 편

beagle2님이 미스터리-스릴러에 늘 굶주리고 있다하시니 또 나름 스릴러 좀 챙겨 보는 이로서 모른 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몇 작품을 추천하고자 한다. 그 댓글에서도 썼다시피 개인적으로 최고로 뽑는 스릴러는 케빈코스트너가 주연한 No Way Out 이다.(제일 맘에 안 드는 것은 주인공이다) 치정살인, 정치 스캔들, 냉전의 음습함이 완벽하게 결합된 데다가 특히나 폐쇄된 펜타곤에서의 극적긴장감은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엄청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그런데 사실 다른 좋은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여하튼 무더운 여름날 잠시 더위를 잊고 싶은 분들께 다음 작품들을 권한다.(순서는 무순)

Anatomy of Murder(1959)

영화는, 아름답지만 다소 자유분방한 한 군인의 아내가 술집주인에게 강간을 당하고, 분노한 그의 남편이 술집주인을 살해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지방검사였다가 퇴직 당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낚시와 재즈음악으로 소일하는 약간은 괴팍한 변호사 폴비글러(제임스스튜어트)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폴은 그날의 정황을 남편의 정신착란에 의한 일종의 정당방위로 몰고 가려 하고 검사측은 이에 대응하여 남편이 정신적으로 멀쩡했음을 입증하려 한다. 특히 검사측은 아내의 자유분방함을 들어 그녀가 강간당한 사실이 일종의 방종의 업보인 것으로 몰아가려 한다. 법정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이 주는 묘미가 대단한 작품.

Spoorloos(The Vanishing)(1988)

렉스호프만과 그의 여자친구 사스키아는 네델란드에서 프랑스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기름이 떨어져 서로 다투기도 했으나 이내 화해하고 즐거운 여행의 기대감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맥주를 사러간 사스키아가 자취를 감추면서 즐거움은 악몽으로 바뀐다. 사스키아가 납치되었다고 믿는 렉스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납치범이라고 주장하는 이와 만나게 된다.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결말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 작품.

The Wicker Man(1973)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스코틀랜드 경시청의 Howie 경사는 어느 날 스코틀랜드 북쪽에 위치한 Summerisle 이라는 섬에 Rowan Morrison이라는 여자아이가 실종되었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고 홀로 비행기를 타고 그 섬에 당도한다. 괴이하게도 섬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모른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라는 여인조차도 그녀를 모른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Howie 경사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Rowan 이 실존하였던 소녀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가 살해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기독교와 이교도의 충돌, 외딴 섬의 놀라운 풍속 등이 스릴러와 결합된 독특한 작품.

The Long Goodbye(1973)

유명한 래이몬드챈들러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로버트알트만이 만든 영화. 놀랄만한 반전을 기대할 것은 없으나 70년대 스릴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한껏 배어나오는 작품. 주인공 필립말로우는 루팡3세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하고서는 영화 내내 담배를 물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친구인 테리레녹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가 테리가 아내 살해범이라 믿는 경찰에게 끌려가 고초를 치룬 뒤 테리의 행적을 쫓아간다. 그 와중에 가출한 작가 로저웨이드를 찾아달라는 그의 아내의 부탁으로 그를 찾아주기도 했고 난데없이 갱들이 그의 집으로 쳐들어와 테리가 가져간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받기도 한다. 포스트느와르 분위기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은 The Big Sleep의 Humphrey Bogart 를 70년대에 재현하는데 멋지게 성공하였다.

The Thomas Crown Affair(1968)

Thomas Crown(Steve McQueen) 은 치밀한 시나리오를 통해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부리며 은행을 털지만 그것은 돈이 탐나서가 아니다. 금융전문가이자 이미 충분히 거부인 그는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그 쾌감을 위해서다. 이어 보험조사원 – 마스터키튼의 바로 그 직업 – Vicky Anderson (Faye Dunaway) 이 등장한다. 그녀는 돈을 털린 은행의 전직직원들의 사진 들 중에서 직감적으로 Thomas Crown 은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에게 접근한다(감으로 수사를 하다니!). 이때부터 연애감정과 직업정신의 줄타기가 시작되고 영화는 막판의 반전을 위해 열심히 뛰어간다. 이 작품은 통상의 스릴러적인 긴장감보다는 왠지 모를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

House Of Games(1987)

데이빗 마멧의 칼날 같은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저글링을 선보이는 서커스 단원들인 것처럼 척척 들어맞는 연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저명한 심리학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Driven의 작가인 마가렛은 어느 날 자신의 환자에게 노름빚 탕감을 도와주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리고는 ‘노름방(The House Of Game)’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사기꾼 집단의 속임수에 넘어갈 뻔했지만 예리한 판단력으로 위기를 넘겼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까지 했다. 마가렛은 이들을 통해 지루한 일상에서의 해방감을 맛보게 되지만 곧이어 끔찍한 사건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리학의 권위자인 주인공과 거리의 사기꾼이 벌이는 심리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Green For Danger (1946)

Alfred Hitchcock 의 걸작 The Lady Vanishes 의 원작자인 Sidney Gilliat 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는 스릴러가 갖추어야 할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형식미가 잘 갖추어진 수작 스릴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멋진 플롯과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에도깔리는 교묘한복선, 등장인물들 간의 날카로운 대립관계를 세련되게 표현해주는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 등이 돋보인다. 특히 Cockrill 형사는 추리 영화에서는 흔치 않게 안티히어로 풍의 캐릭터로 극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모던한 산업디자인 풍의 깔끔한 포스터가 무척 맘에 든다.

Syriana(2005)

전직 CIA 요원이었던 Robert Baer 의 논픽션 저서를 기초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석유재벌과 정부기관과의 유착관계 등을 그리는,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스릴러다. 개혁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초국적자본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한 산유국의 첫째 왕자 나시르의 행보, 그러한 나시르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후에 그를 살리려 노력하는 CIA 요원 Bob Barnes (George Clooney), 대형정유사인 코멕스와 킬런의 합병을 위해 직장상사를 파는 것도 서슴지 않는 변호사 Bennett Holiday, 두 회사의 합병으로 직장을 잃고는 과격 정치단체에 가담하게 되는 파키스탄 소년들, 조그만 에너지회사의 직원에서 일약 나시르의 경제고문으로 격상한 Bryan Woodman (Matt Damon) 등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국제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병렬적으로 진행되면서 어느 순간 수렴되는 구조를 띄고 있어 정신 차리고 보지 않으면 스토리를 놓치고 마는 작품이다.

Kiss Me Deadly(1955)

장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바 있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1955년작. 느와르 필름의 최전성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미스테리한 미녀의 죽음, 구사일생한 터프가이 탐정,그 터프가이를 배신하는 또다른 미스테리의 여인,그리고 그의 섹시한 여비서 등 거칠고 을씨년스러운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였다는 크리스티나라는 여인을 태워준 탐정 마이크 해머는 그녀를 뒤따르던 악당들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후 ‘나를 기억해 달라’는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말을 힌트삼아 사건을 역추적 한다. 이 와중에 정체모를 악당들은 그를 을러대고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The Conversation(1974)

Francis Ford Coppola 가 대부1편을 완성하고 대부2편을 만들기 전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Blow Up 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로 만든 스릴러다. 형식상으로 스릴러의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일종의 심리드라마이다. 도청을 밥벌이로 하는 한 중년사내 Harry Caul (진해크만)는 어느 거대기업으로부터 도청 의뢰를 받는다. 그러나 이 의뢰가 기업이 저지를 범죄와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 해리는 도청내용을 의뢰자에게 건네지 않는다. 이후 도청내용을 넘겨받으려는 기업 실무자 Martin Stett(해리슨포드)과 해리 간의 갈등이 폭력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결국 예상치 못한 반전의 지적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스릴러로써의 미덕을 갖추고 있지만 그 지적쾌감이 통상적인 스릴러의 구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다 한 차원 높은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훔쳐보기의 은밀한 매력에 대한 잔혹한 대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

12 Angry Men

누가 보아도 사건의 전말이 빤한 살인사건의 재판에 참여하게 된 12명의 배심원들. 재판소 밖은 끈적끈적한 습기로 가득 차있고 배심원들은 망설임 없이 아버지를 살인하였다는 혐의를 뒤집어 쓴 한 소년 용의자의 유죄판결을 내리려 한다. 그러나 한 신중한 배심원이 다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후 벌어지는 교묘한 논리싸움과 편견에 대한 저항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내 이 영화가 상영시간 내내 조그마한 배심원 대기실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한다. 법정극의 달인 시드니 루멧과 냉철한 연기의 달인 헨리 폰다가 만나 다시 볼 수 없는 명작을 엮어냈다.

Manchurian Candidate : 지적사고를 요하는 스릴러

인간의 의식은 조정당할 수 있을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영화라는 매체는 이러한 소재를 지속적으로 이용해왔다. 의식의 조종, 이중성격, 기억의 불충분함과 같은 인간의 의식과 성격에 관한 것들이야말로 영화의 극적긴장감을 구성해주는데 있어 최고의 요리재료이기 때문이다.

‘양들의 침묵’의 감독 조나단 드미가 감독하고 덴젤 워싱턴(베넷 마르코 소령 역)이 주연한 2004년작 ‘맨추리언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는 가공할 음모집단에 의해 의식을 조정당한 한 전도유망한 정치가를 둘러싼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이다. 복잡한 플롯으로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는 요즘의 스릴러 경향을 보면 그다지 정교하게 구성되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지만 실은 이 초현실적인 영화의 오리지널이 1962년산이라면 한번쯤 흥미를 느낄 것이다.

시대를 앞선 걸작 스릴러로 평가받는 오리지널은 존 프랭큰하이머가 감독하고 프랭크 시나트라(베넷 마르코 소령 역), 로렌스 하비(레이몬드 쇼 역) 등이 출연하였다. 한국전 당시 소대가 통째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이후 소대원들은 한결같이 레이몬드 쇼 하사가 영웅적으로 그들을 구했다고 증언하고 그 결과 레이몬든 쇼는 전쟁영웅이 되어 금의환향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영웅담은 국제적인 규모의 음모집단에 의해 조작된 것이고 레이몬드 쇼를 비롯한 소대원 전부는 철저한 마인드컨트롤에 의해 조정을 받고 있었다. 결국 최면상태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과 그 아버지까지 죽인 레이몬드 쇼는 로봇이 되어버린 스스로의 몸을 자신의 의지로 포기하고 만다.

오리지널 작품은 이러한 으스스한 설정 아래 매카시즘, 전쟁의 광기, 그리고 가공할 음모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영화의 원작자 리차드 콘돈은 이러한 음모론을 현실로 받아들인 이 중의 하나이다. 그는 실제로 현실에서도 이러한 의식의 조정이 음모집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반공주의적 메시지로 전락하지 않고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며 마침내는 상상 못할 반전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 오리지널 영화의 미덕이다.

스릴러를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관객이 반전의 묘미를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나단 드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험을 감수했고 일단은 원작보다 조금 더 꼬아서 반전을 시도했기에 어느 정도 그 모험은 성공했다라고 평가내릴 수 있다. 더불어 오리지널이 담고 있던 매카시즘 광풍의 시대상황은 요즘의 정치상황에 맞게 일극체제의 신안보주의 상황으로 적절히 대치되었다.

그리고 음모집단의 정체도 오리지널의 중국-소련 연합 공산주의자에서(이 부분이 영화의 묘미인데 언뜻 이러한 설정때문에 반공주의적인 영화로 보이나 실은 매카시즘의 비판이 감독의 진정한 의도로 추측된다) 사모투자펀드 ‘맨츄리언 글로발’로 설정되어 보다 현대적인 ‘공공의 적’(!)을 창조해냈고, 오리지널에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맨츄리언’이라는 단어의 타당성도 나름대로 부여하고 있다.

극중 캐릭터의 분석도 나름대로 진일보하였는데 다만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레이몬드 쇼의 어머니 역할은 그녀의 뛰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에서 같은 역을 연기한 엔젤라 랜스베리의 소름끼치는 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준다.

히스테릭한 반공주의 시대를 비판하였던 오리지널이 21세기인 2004년에 또다시 리메이크되었다는 사실은 관객으로서는 즐거움일지 몰라도 리메이크가 만들어질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광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불행한 시대상황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비판의 대상은 미국 일극체제의 안보에 대한 공포로 변하였는데 그것이 반공주의만큼이나 조작된 정치적 허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이 영화를 국제적인 무기 암거래를 소재로 한 2005년 작 ‘전쟁의 지배자(Lord Of War)’와 비교하여 감상하면 보다 흥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