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중시 경제이론이 중시하는 것, 남자의 기 살려주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또 보호하는 과정에서 남성으로서의 만족감을 느낀다. 복지사회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 결국 술집이나 거리에서 남자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려 하게 된다. [중략] 남성과 여성간의 이 같은 차이만으로도 남자들이 가정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관료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승진기회를 얻기 위해 적극적인 경쟁을 벌리며 또 돈벌이를 인생의 주요목표 중의 하나로 삼으려 하는 의욕이 여성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남녀 간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남녀 간의 소득차이는 모조리 납득이 될 것이다.[조지 길더 지음, 김태홍/유동길 옮김, 富와 貧困, 우아당, 1981년, p185]

레이건 정권의 경제기조였던 “공급중시 경제이론의 성서(聖書)(옮긴이의 끝말에서 인용)”로 불리기도 하는 조지 길더의 책의 일부다.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유행했던 경제학 사조로 이들의 핵심적인 정책 처방은 조세 감면과 규제철폐였다. 이른바 1980년대부터 세계 경제에 풍미했던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반이자 이러한 사조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자본이었다. 즉, 사후적 관찰에 따르면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소는 투자 확대와는 큰 연관이 없었으며, 오히려 소득불평등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조지 길더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어려움은 주로 물적자본의 악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양심, 즉 얻기 위해서 주어야 하고 수요하기 위해서 공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양심을 손상시키는 심리적 생산수단 – 경제인의 사기와 영감 – 의 지속적 파괴에 있다(같은 책 p44)”고 보았다. 결국 저자는 경제인의 사기와 영감을 북돋아서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감세와 규제 철폐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되어 공급이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이른바 “낙수효과(落水效果)”에 따라 부(富)가 자연스럽게 하층민에게까지 흘러내려 갈 것이었다. 여전히 많은 우익이 공감하고 실천하는 경제적 사고의 전형이다.

President Ronald Reagan addresses the nation from the Oval Office on tax reduction legislation.jpg
By Series: Reagan White House Photographs, 1/20/1981 – 1/20/1989
Collection: White House Photographic Collection, 1/20/1981 – 1/20/1989 – https://catalog.archives.gov/id/12008442, Public Domain, Link

결국 공급중시 경제이론은 우생학적인 계급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자본가의 사기와 영감을 위해 세금과 규제를 없애주면 사회가 부유해질 것이라는 사고의 전제는 이러한 우생학적 사고인데, 위 인용문은 이를 남녀 간의 생리적 차이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오늘날의 성인지 감수성의 기준에서 보면 기겁할 저 발언을 “경제학”으로 추상화시킨 것이 공급중시 경제이론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비록 영국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대처 총리가 영국식 신자유주의를 주도했지만, 누구보다도 마초적인 가혹함으로 사회약자를 탄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우생학적 사고가 배어있는 명예남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에서 소개하는 조지 길더의 작가로서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애초 “미디어계의 반페미니즘의 권위자”라는 틈새를 차지한 후 『성적(性的)인 자살』, 『벌거벗은 노마드』, 『공주의 문제』 등과 같은 “페미니즘의 참혹한 피해”를 다룬 내용의 책들을 출간하였지만, 상업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레이건의 선거 사무장이었던 윌리엄 케이스의 재정적인 지원과 레이건의 예산 담당자였던 데이비드 스톡먼이 홍보를 맡아준 『부와 빈곤』이 인기를 누리며 인기 작가와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마초적인 레이거니즘의 적자(嫡子)였던 셈이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