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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츈誌의 AI 버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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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이번 주초에 OpenAI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AI를 둘러싼 위험한 금융 거품이 존재하며, 이 부문의 상장 및 비상장 기업 가치 평가의 기초가 되는 매출과 수익 수치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략]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최근 거래가 과거 기술 호황기의 과도한 행보와 너무나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초 닷컴 버블 당시, 노텔, 루슨트, 시스코와 같은 통신 장비 제조업체들은 스타트업과 통신 회사에 장비 구매를 위해 자금을 대출했다.[Nvidia’s $100 billion OpenAI investment raises eyebrows and a key question: How much of the AI boom is just Nvidia’s cash being recycled?]

최근 포츈誌에서 엔비디아의 OpenAI 투자 소식을 전하였다. 다만, 매체는 이 소식이 과거 닷컴 버블의 상황과 유사하다면서 “AI를 둘러싼 또 하나의 위험한 금융 버블(a dangerous financial bubble around AI)”일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wsws는 이 소식을 포츈誌 인용을 통해 전하면서 이러한 투자가 가지는 위험성을 한층 강조했다. 작년 OpenAI는 37억 달러의 매출에 5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런 회사가 GPU의 최대 공급기업 엔비디아의 투자를 받아 일반 미국 가구 1천만 가구가 1년간 소비하는 에너지와 맞먹는 양이 소비되는 10GW급의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현재의 AI 시장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수의 AI기업들이 서로 간의 거래를 통해 매출을 창출하는 시장이다.1 이런 상황에서 엔비디아의 OpenAI 투자 계획에 대해 시장 분석가는 “명백하게 ‘순환적 (거래)’ 우려를 부추길 것(clearly fuel ‘circular’ concerns)“이라고 경고했다. 엔비디아는 2024년에도 AI 기업을 위한 50건 이상의 투자 계약에 참여했으며 올해는 OpenAI 건 등을 포함하여 작년의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이익을 다시 칩의 수요자에게 투자하여 시장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값비싼 자사의 칩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기업에게 임대 형태의 거래를 통해 칩의 공급량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엔비디아의 “순환적 거래”는 어떻게 버블을 형성하는 것인가? 일단 앞서 말했듯 칩 구매를 칩 임대로 바꾸면서 제품의 감가상각 위험을 칩 구매자가 아닌 엔비디아의 재무제표에 남겨 놓음으로써 AI 기업의 공격적 (또는 투기적) 투자를 쉽게 한다. 이러한 경향은 엔비디아가 투자자가 되면서 AI 기업 신용거래의 이자 조달 비용이 내려갈 기회를 제공하면서 더 강화될 수 있다. 엔비디아로서는 AI 기업의 자생력을 키워 향후 진정한 구매자가 될 여건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는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인용한 포츈誌 보도처럼 과거의 통신 장비 제조업체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쓰디쓴 실패를 맛보아야만 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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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버블”이라고 해도 기술 거대기업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있기에 기업과 정책당국은 과잉투자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지난 분기 미국의 실질 GDP의 성장에서 AI 관련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40%에 달한다고 한다. 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테슬라 등 “매그니피센트 7″이 S&P500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말 기준 약35%다.3 유럽 등 다른 경제권에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AI 시장이 투자와 이에 따른 주가 급등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이윤으로 이어져야 하는데,4 현재로서는 이들 기술 기업끼리 장밋빛 미래를 노래하며 순환적 거래로 지탱하고 있는 시장이라는 점이다.

칼 맑스의 노동가치 이론에 근거하여 관찰하자면, 현재 세계는 불변자본의 비중이 가변자본에 비해 매우 높은 AI 산업에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5 즉, 가변자본 대비 불변자본의 비중이 증가하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 단계로 이어지고 있고,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가 타 산업의 가변자본을 삭제해 버리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6 즉, 막대한 전기와 자원의 낭비는 가격 산정에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7 89(거품이 형성되는 기간에는) 가치 이하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는 AI 서비스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기존 노동력을 해고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도 수익성이 제한적인 AI 산업이 장기적으로 환경 파괴와 시장 전체 이윤율의 저하로 이어질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10

한편, 이러한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의 일환인지 샘 올트먼은 최근 한국을 찾아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최태원 등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남/포항 AI 데이터센터 구축 추진 등의 계획을 발표하였다.11 이 만남의 며칠 전에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도 뉴욕에서 이 대통령을 만나 한국에로의 AI 관련 투자를 약속했다. 비록 아직은 말치레 수준으로 보이지만, 한국 시장에 대한 입질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이런 글로벌 기업의 행보가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앞서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금융 버블” 조짐의 와중에서의 섣부른 파트너십은 일종의 리스크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 정부와 기업은 사려깊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AI 버블 논쟁에 대한 강정수 씨의 의견

  1. 번외의 이야기지만, 이 기업들의 판돈은 수십 년간의 양적완화로 인해 축적된 자산 버블에서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2. AI 버블의 규모가 닷컴 버블의 그것의 17배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3. 또한 시장에서 비상장 기업인 OpenAI의 기업 가치는 현재 5천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4.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솔로몬은 인공지능에 투자되는 많은 자본이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 JP모건은 5대 AI 하이퍼스케일러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총 1조2,0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추정했다.
  6. “전 세계적으로 4개 중 1개의 일자리가 생성형 AI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는 연구 결과도 있다.
  7.  GPT-5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약 16.4TWh로 추산된다. 이는 슬로베니아 국가 전체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수치다.
  8. AI 데이터 센터는 2035년까지 1,600테라와트시의 전력 수요를 소비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전 세계 전력의 4.4%에 해당한다.
  9. 한편 제프 베조스는 이런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 년 안에,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0. 이러한 경향에 대한 우려 등등해서 샘 올트먼은 기본소득을 실험하고 있기는 하다.
  11. 아래 강정수 씨의 추측도 있지만, 이러한 시도는 오픈에이아이 데이터센터의 지역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는 질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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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gawa IsshōOwn work, Public Domain, Link

무규율 성교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현재나 혹은 먼 과거의 어느 시기에 있었던 그런 금제(禁制, Verbotsschramken)가 당시에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질투의 울타리는 이미 무너졌다. 그런데 질투의 감정이 비교적 늦게 발전하였다는 것은 지극히 확실하다. 근친상간의 관념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대웅 옮김, 도서출판아침, 1989년, 40쪽]

이 문구가 당시의 경건한 마음으로 가부장적인 가족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던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인용한 책의 제4판 서문을 직접 쓴 엥겔스는 서문에서 18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역사과학은 완전히 ‘모세5경’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 책에 상세하게 묘사된 가부장제 가족 형태가 최고(最古)대의 가족 형태로 인정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일부다처제라는 점만 제외하고는 현대의 부르주아적 가족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 과거에는 무규율 성교가 금제(禁制)가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곧바로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다’라고 맞받아칠 것이다. 엥겔스는 책 전체에 걸쳐 그러한 맹신자들의 논리를 격파할 것인데, 그 서두에서 인류의 가족 역사가 무규율 성교가 횡행한 군혼(群婚)의 형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엥겔스는 책 제목처럼 역사에서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을 찾아나가는 흥미로운 지적인 여정을 떠난다.

한편,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엥겔스가 무미건조한 톤으로 “질투의 감정이 비교적 늦게 발전하였다”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본능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질투 역시 본능이라고 여기는데, 엥겔스는 그 생각이 틀렸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질투라는 감정이 인류사에서 일으켰던 수많은 갈등, 범죄, 그리고 이를 묘사한 예술 작품도 실은 역사적 의식의 산물일 테니 인간은 후천적으로 발달한 감정에 휘둘리는 장기판의 말일 뿐이라는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결국 인간의 역사는 질투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면서 획기적으로 이전과 달라지게 된다. 바로 질투는 군혼에서 일부일처제 혹은 일부다처제의 가부장제 가족 형태로 바뀌는 촉매가 되었고, 소유욕은1 – 질투의 또다른 형태 – 공동체가 공유하던 재산을 혼자서 혹은 가족 안에서 소유하겠다는 사유재산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뒤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는 질투, 소유욕, 이기심을 죄악시하기도 하고 정당화하기도 하면서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인류의 역사는 질투의 역사다.

  1. 엥겔스는 같은 책의 109쪽에서 이를 “야비한 탐욕, 한계를 모르는 향락욕, 더러운 인색, 공유재산의 이기적 약탈욕” 등의 용어를 써가며 비난하고 있다

처음에는 교환수단이 부차적 기능이었던 화폐

Poshumous Alexander the Great tetradrachm from
By Ancientcointradershttps://www.ancientcointraders.com, CC BY-SA 4.0, Link

화폐의 광범위한 발전과 그 이후의 「화폐의 지속적 발전」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화폐적 「교환거래」의 필요성들이다. 「원시화폐」는 개인적 상품, 재보 또는 귀중한 용도를 가진 물건 등이었다. 이러한 물건들은 「장신구」, 「무기」, 「도구」등과 같이 그 자체로 즉각적인 「수요충족」을 제공하는 것들이며, 「교환수단」으로서의 서비스는 말하자면 단지 부차적으로만 수행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화폐로 사용되는 재화는 점차 더욱 이러한 본연의 기능에서 멀어지고 있다. 「장신구」, 무기, 도구 등의, 「화폐재화」가 동시에 가지고 있던 다른 용도들은 보다 덜 중요하게 되어 뒤로 물러나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지고, 당연히 「화폐재화」들의 여타 「활용성」에 대한 고려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207쪽]

원시화폐는 귀중한 용도로 쓰인, 누군가 교환을 통해 획득하고 싶은 물건이었다. 즉, 이미 교환수단 이전에 장신구, 무기, 혹은 다른 도구로 충분히 사용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재화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교환기능은 이러한 본래의 기능에 부차적인 기능이었다. 그러나 본래의 기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환기능이 더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됨에 따라 화폐는 점점 화폐 고유의 기능에 맞게 디자인이 바뀌어 갔을 것이다. 소지가 편하도록 손안에 들어올 수 있게 작고 동그란 모양을 갖게 되었고, 권위를 부여할 수 있도록 당대의 권력자나 신(神)의 모습이 새겨졌고, 누군가 화폐의 옆을 깎는 짓을 하지 못하게 옆에 금을 그어놓기도 했다. 화폐는 그렇게 그만의 기능에 맞게 모양새가 만들어져 갔을 것이다. 이는 화폐가 ‘축장화폐’가 아닌 ‘교환화폐’의 기능을 갖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환화폐의 존재 없이는 노동의 분업도 불가능하다.

화폐는 늘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에서는 화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삶의 수단」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사회 형태, 특히 가장 발달한 사회 형태는 화폐 없이는 그 구조와 작동을 상상할 수 없거나 적어도 화폐 없이는 매우 불완전할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는 「사회교류화」(Vergesellung) 과정 내에서의 경제 영역에 포함되는 것들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인간들 사이의 권력 및 종속 관계를 그 내용으로 하는 다른 많은 구조에도 적용된다. [과거에는] 「부과물」의 모든 종류들, 제물, 「공물」, 기증(Beiträge), 정부적 강권(Gewalt)에 대한 다양한 의무적 급부, 같은 지위의 사람들이나 하위의 사람들에 대한 「선물분배」 등은 최초에는 대부분 현물, 즉 물리적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러한 모든 것들의 대부분이 점차 「화폐형식」을 채택하게 되고, 더욱이 그러한 재화들이 「화페형식」의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178쪽]

화폐의 발달사에 대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현재까지의 책의 내용이 이 인용문에 잘 요약되어 있는 것 같아서 옮겨 적었다. 인용문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저자는 화폐의 발전은 처음에는 – 거의 대부분 국내외의 왕족과 귀족들 간에 이루어진 행위겠지만 – 제물, 공물, 기증, 그리고 선물의 형태로 이루어진 상호교류 행위가 진행되어오다가 점차 이러한 행태가 시장에서의 교환이라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화폐라는 “사회적 삶의 수단”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그러하기에 화폐라는 수단은 계급적이고 특권적이고 불균등할 수밖에 없다.

인용한 책의 저자 게를로프도 그런 뉘앙스로 계속 이야기하지만 역사경제학자 페르낭 브로델도 그의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통해 끊임없이 물질문명의 발달사는 우리가 아는 것만큼 그렇게 균일하게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증기기관, 신용제도와 같은 문명의 이기들도 시장이 그것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미 발명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산관계의 역학에 따라 국소적으로만 채택이 되었고 광범위한 범위에서 그것을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즉, 화폐는 특권적인 상품이다.


자료 출처

역사적으로 금은과 같은 쇳덩이가 화폐의 표준수단이 된 이후 패권국이 파운드나 달러 등 금에 연동하는 자국통화를 기축통화로 설정하였고, 현재는 달러가 독보적인 기축통화의 권세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그 화폐패권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 러시아, 중국 등 – 금을 사들이면서 현재 금값이 폭등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트럼프가 암호화폐 확보를 지시하며 그쪽 거래소도 들썩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화폐형식이 지구화되면서 더 이상 전근대적이고 특권적인 수단이 아니라 평등한 수단이 되었다는 생각이 다소 이른 판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화폐 행태의 기술적 측면은 쇳덩이 확보라는 먼 과거와 전자적 화폐수단의 확보라는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저에는 결국 통화증발이 불가능한 그 어떤 것, 즉 금과 비트코인이라는 수단이야말로 화폐라는 것에 대한 인류 공통의 고전적인 선입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대안”에 접근할 수 있는 이나 국가는 예의 그렇듯 소수다. 어떤 이는 현재 상황을 “제2의 브레튼우즈” 상황이라 묘사하기도 하는데 화폐의 계급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중요한 변곡점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기술봉건제가 득세하고 있다” 번역

야니스 바루파키스(Γιάνης Βαρουφάκης, 1961년 3월 24일 ~ )는 그리스 태생의 경제학자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시리자 내각에서 의원과 재무장관을 역임할 정도로 현실 정치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주창하는 기술봉건제가 AI 시대에 즈음하여 더욱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그의 4년전 칼럼을 참고삼아 번역하고 각주를 달아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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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Queen Mary Master) – this file: scan dated 2009, uploaded (without identification of the source) 12 May 2010 by Ann Scott (medievalminds.comReeve-and-Serfs.original1.jpg), Public Domain, Link

Jun 28, 2021
Yanis Varoufakis

자본주의가 새로운 경제 모델에 의해 전복되고 있다는 주장은 특히 좌파에서 자본주의의 몰락에 대한 많은 성급한 예측에 이어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실일 수도 있고, 그 징조는 한동안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테네 – 자본주의는 이렇게 끝납니다. : 혁명적 폭발이 아니라 진화적 징조로 끝납니다. 자본주의가 봉건제를 점진적으로, 은밀하게 대체하다가 어느날 인간 관계의 대부분이 시장 기반이 되고 봉건제가 쓸려 나간 것처럼, 오늘날 자본주의는 새로운 경제 모드인 기술봉건제(techno-feudalism )에 의해 전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좌파에서 자본주의의 몰락에 대한 많은 성급한 예측에 이어 나온 큰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단서는 한동안 보였습니다.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채권과 주가가 일제히 급등했고, 가끔은 떨어지기도 했지만 항상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본 비용(증권을 소유하며 요구되는 대가)은 변동성과 함께 하락해야 하지만, 대신 미래 수익이 더 불확실해짐에 따라 상승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심각한 일이 진행 중이라는 가장 분명한 신호는 작년 8월 12일에 나타났습니다. 그날 우리는 2020년 상반기에 영국의 국민 소득이 20% 이상 폭락했으며, 가장 암울한 예측보다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1 몇 분 후 런던 증권 거래소는 2% 이상 급등했습니다. 비교할 만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금융은 실물 경제와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례 없는 발전이 우리가 더 이상 자본주의에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결국 자본주의는 이전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자본주의의 최신 화신(化身 , incarnation)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또 다른 변형이 아닙니다. 그것은 훨씬 더 심오하고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네, 자본주의는 19세기 후반 이후로 적어도 두 번 이상 극단적인 변신을 거쳤습니다. 경쟁적 모습에서 과점(oligopoly)으로의 첫 번째 주요 변화는 전자기력이 대규모로 연결된 기업과 이를 자금 지원하는 데 필요한 거대 은행을 도입한 2차 산업 혁명과 함께 발생했습니다. 포드(Ford), 에디슨(Edison), 크루프(Krupp)2가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빵 굽는 사람, 양조업자, 정육점을 대신하여 역사의 주요 추진자가 되었습니다. 그에 따른 거대한 부채와 거대한 수익의 격렬한 순환은 결국 1929년의 붕괴, 뉴딜,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체제로 이어졌습니다. 이 체제는 금융에 대한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희귀하게도 안정적인 기간을 제공했습니다.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은 자본주의의 두 번째 변화를 촉발했습니다. 미국의 무역 적자가 커지면서 세계 총수요 공급자가 되었고, 독일, 일본, 그리고 나중에는 중국의 순수출을 빨아들였습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가장 활기찬 세계화 단계를 주도했고, 독일, 일본, 그리고 나중에는 중국의 이익이 월가로 꾸준히 흘러들어 모든 것을 자금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월가의 관리들은 그들의 역할을 하기 위해 뉴딜과 브레튼우즈의 모든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했습니다. 규제 완화로 과점적 자본주의는 금융화된 자본주의로 변형되었습니다. 포드, 에디슨, 크루프가 스미스의 빵 굽는 사람, 양조업자, 정육점을 대체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역은 골드만삭스, JP모건, 리먼 브라더스였습니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중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대공황, 2차 세계 대전, 대공황, 2009년 이후 장기 침체),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즉, 특정 시장을 통해 추출된 사적 이윤(profit)과 임대료(rents)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입니다.

그렇습니다. 스미스 자본주의에서 과점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이윤을 엄청나게 증가시켰고 대기업(conglomerate)이 거대한 시장 권력(즉, 경쟁으로부터 새롭게 얻은 자유)을 사용하여 소비자에게서 높은 임대료를 추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월가는 시장 기반의 백주의 날강도짓을 통해 사회에서 임대료를 추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점 자본주의와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모두 특정 시장을 통해 추출된 임대료에 의해 증가된 사적 이윤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예를 들어, 제너럴 일렉트릭이나 코카콜라가 독점하거나 골드만삭스가 만들어낸 시장입니다.

그런 다음 2008년 이후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G7 중앙은행이 2009년 4월에 연합하여 화폐 인쇄 능력을 사용하여 세계 금융을 재부양시킨 이후로3 깊은 단절이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사적 이익이 아닌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화폐 생성에 의해 움직입니다. 한편, 가치 추출은 점점 더 시장에서 벗어나 Facebook과 Amazon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갔으며, 이는 더 이상 과점 기업처럼 운영되지 않고 사적영지(私的領地, private fiefdom)나 재산처럼 운영됩니다.4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가 이익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2020년 8월 12일에 일어난 일을 설명합니다. 암울한 소식을 듣고 금융가들은 “좋다! 영국은행이 당황하여 더 많은 파운드를 인쇄하여 우리에게 보낼 것이다. 매수할 때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방 전역에서 중앙은행이 돈을 인쇄하면 금융가들은 기업에 빌려주고, 기업은 그 돈을 사용해서 주식을 다시 사들입니다(주식 가격은 이윤과 분리되었습니다)5. 한편, 디지털 플랫폼이 시장을 대체하여 사적 가치의 추출 장소가 되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대기업의 자본금을 무료로 생산합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거나 구글 지도에 링크된 채로 돌아다니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6

물론 전통적인 자본주의 부문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19세기 초에는 많은 봉건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자본주의 관계가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기술 봉건 관계가 자본주의 관계를 추월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옳다면 모든 경기 부양 프로그램은 동시에 너무 크고 너무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자율도 연속적인 기업 파산을 초래하지 않고는 완전고용과 일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본을 선호하는 당이 노동에 더 가까운 당과 경쟁하는 계급 기반 정치는 끝났습니다.7

하지만 자본주의는 낑낑거리며 끝날지 몰라도 곧 폭발이 뒤따를 것입니다. 기술봉건적 착취(techno-feudal exploitation)와 정신을 마비시키는 불평등을 받는 사람들이 집단적 목소리를 찾으면 매우 큰 소리가 날 것입니다.

  1. 관련 뉴스 : 역자주
  2. 독일의 자본가 알프레드 크루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 역자주
  3. 이 시기 연준 등 중앙은행이 실시한 양적완화를 말하는 것으로 보임 : 역자주
  4. 야니스가 플랫폼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라 칭하기 보다는 ‘봉건제’라 칭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여겨지는데 그는 ‘시장’과 ‘플랫폼’을 대조적으로 위치시킨 후 ‘플랫폼은 사적 영지이며 우리는 거기에서 영지를 임차하여 생활하는 소작인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한번 사유화된 플랫폼은 네트워크효과로 인해 시장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대체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 역자주
  5. 기업의 실적과 상관없이 유동성으로 인해 주가가 올라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 역자주
  6. 우리가 이렇게 올린 데이터는 이제 AI 시대에 접어들어 빅테크가 공짜로 얻은 값진 데이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금민 씨는 “빅데이터가 공동소유임을 명문화하는 입법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역자주
  7. 이 부분 원문이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의역하자면 결국 정책금리 조정 등을 통해 완전고용에 이르는 정책 효과는 많이 사라졌고 – 실제로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중 국채금리는 반대로 움직이하는 현상이 있다 –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정치처럼 오히려 민주당이 노동자를 버리고 공화당이 포용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라는 의미인 것으로 짐작된다. : 역자주

“누구나 시간을 남아 돌 만큼 가지고 있었다”

Firenze, piazza san giovanni e piazza del duomo durante il lockdown (2020).jpg
By SailkoOwn work, CC BY 3.0, Link

현대의 감각으로 보면 시가 전차가 있는 피렌체는 여전히 참아 줄만한 도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를 가로막는 양철 뱀(시가 전차/옮긴이)이나, 버스, 총알처럼 거리를 내달리는 그런 것은 안 되었다. 이졸데 쿠르츠만 해도 새로운 교통수단을 통해 초래될 변화를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여겼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1880년대만 해도 거리의 교통수단은 낡은 궁전의 회랑을 달리는 것처럼 점잖은 것이었다. 그녀는 특히 이 모든 것이 위에서 설명한 새로운 시대 의식과 결합된 것임을 알아보았다. “누구나 시간을 남아 돌 만큼 가지고 있었다”라고 그녀는 새로운 교통 수단이 도입되기 바로 직전에 적고 있다.[피렌체 1900년 아르카디아를 찾아서, 베른트 뢰크 지음, 안인회 옮김, 2005년, 리북, 101쪽]

이졸데 쿠르츠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였다. 그는 시가 전차 도입 등 피렌체의 도시 현대화에 대해 당시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전차, 전신주, 가스등 등은 분명 당시 사람들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편리함을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낯선 것들이 낯익은 도시풍경에서 공존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졸데는 시가 전차가 도입하는 것에 대해 “누구나 시간을 남아 돌 만큼 가지고 있었다”라고 넌지시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의 피렌체 시민이 느끼고 있었던 시간감각은 현대의 대도시 시민이 느끼는 시간감각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인용한 책은 다른 부분을 인용하자면 당시 피렌체의 한 건설 담당관은 “12군데의 중요한 공공 장소에 시계를 설비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시민이 시계를 통해 시간을 알게 되면서 현대적 도시의 규범을 따를 수 있기 – 예를 들면 가로등의 소등 시간 – 때문이었다. 즉, 정밀한 시간 분할은 현대화 양식의 기본적인 양상에 해당한다. ‘더욱 정확하게’, ‘더욱 객관적으로’, ‘더욱 공공연하게’는 새로운 시대의 시간관을 결정하는 삼박자였다.

지금의 도시는 이졸데 쿠르츠의 시간의 개념으로 전차를 타지 않아도 시간이 남아돈다고 여기면 삶이 고달파질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와 대중교통으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의 장소에서 만날 약속을 하면 당신은 지도 앱을 켜서 시간을 가늠한다.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는 옵션을 택했다면 버스 정거장에 가서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안내판을 보거나 전철의 도착시간을 체크하는 등 당신의 시간을 설계한다. 이렇게 당신의 하루는 도시 공간과 어플이 결합하여, 분 단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 단위로 쪼개어진 하루일 것이다. 1900년의 피렌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러한 도시의 현대화를 우리는 ‘공간의 압축’이라 부를 수 있다. 교통수단의 발전은 도시 내부 혹은 도시와 도시/농촌 사이를 시간적으로 압축시켰다. 물론 현대화의 최대 수혜자 자본가는 공간적 압축이 이윤 극대화에 도움이 되었기에 이를 반겼다. 흥미롭게도 맑스 역시 공간의 압축이 서로 다른 공간의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해준다며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교통이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노동자의 단결을 도모한다는 사물의 이중적 성격에 주목한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살았던 한 예술가의 느긋함은 현대를 사는 좌우 모두에 와닿지 않은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발견되자마자 잊혀졌다. 유럽은 아직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일으키기 아주 오래전에 이미 발명된 상태였다(어쩌면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가져왔다기보다는/역주]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의 보급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발명의 사건사는 그 자체로만 보면 요술 거울의 방과 같은 것이다. 앙리 피렌이 말한 다음과 같은 멋진 말이 이 논의를 잘 요약해준다. : “[바이킹들이 발견했던] 아메리카 대륙은 발견되자마자 곧 잊혀졌다. 유럽은 아직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2 : 일상생활의 구조 下,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까치글방, 1997년, p476]

이미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헤론이 발명했다는 에올리오스라는 기계가 증기기관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렇게 오래전에 발명된 증기기관은 당시에는 신기한 생산품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상품(商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 상품의 가능성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즉, 증기기관을 이용한 높은 생산력으로 소비재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증기기관 열차를 통해 그 소비재를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장으로 실어 나를 그런 상태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생산관계다. 증기기관이라는 생산력과 자본주의라는 생산관계가 조응하는 상태가 바로 산업혁명이다.

Aeolipile illustration.png
By The entry under Aeolipile in volume one of this work states “The cut is copied from Hero’s “Spiritalia”, edited by Woodcroft, of London.” – Knight’s American Mechanical Dictionary, 1876. source, Public Domain, Link
헤론이 발명했다는 증기기관 상상도

진보의 조건이란 아마도 인력과 그것을 대체하는 다른 에너지원 사이에 합리적인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중략] 고대 그리스나 중국에서의 상황인데, 이곳에서는 결국 싼 인력 때문에 기계 사용이 봉쇄되었다. [중략] 사실 인간의 가치가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으면 진보는 불가능하다. 사람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많은 비용이 들 경우 결국 사람의 노동을 돕게 되거나 아니면 대체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을 가축이 대신하는 것은 일찍부터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일종의 사치로서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아주 불규칙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같은 책, pp482~483]

고대 그리스, 중국,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아직 인간의 가치가 높지 않았다. 그들은 노예 주인과 노예의 관계 등 보다 현대의 임노동 관계에 비해 보다 열악한 관계였기에 이들의 노동력을 굳이 증기기관이나 가축 등 다른 비싼 에너지원으로 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산력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내다팔 시장도 없었다. 시대가 바뀌어 계급투쟁 등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높아지고 노동자가 소비자로 격상되어 시장이 커지자 증기기관과 가축 등을 활용한 생산력의 증대방안은 비로소 생산자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로소 다시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것이다.

An automat in Manhattan, New York City in 1936.
By Berenice Abbott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items/510d47d9-4f4a-a3d9-e040-e00a18064a99, Public Domain, Link
무인판매기도 이미 진작에 사용되었었다

양키[미국의 北部人]들은 碎石機를 발명하였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작업을 하는 “불쌍한 사람들”은 그들의 노동의 매우 적은 부분에 대해서만 보수를 받으므로, 기계는 자본가들의 生産費를 증가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運河에서 배를 끄는 등의 일에 때때로 말 대신에 아직도 여성들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말과 기계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그것들의 가치]은 數學的으로 규정된 크기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剩餘人口 중의 女性들을 부양하는데 필요한 노동[임금]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자본론I[下], 비봉출판사, 1994년, p502]

이렇듯 새로운 에너지원이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은 시대적으로 그렇거니와 공간적으로도 불규칙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개척시대에 노동력이 귀했기에 쇄석기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 영국은 노동력이 흔했기 때문에 인간을 선호했다. 그리고 운하에서도 말 대신 여성이 배를 끌게 하였다. 현재 노동이 귀하거나 비싸지고 있는 여러 생산 현장에서도 키오스크, AI 등 각종 자동화 장치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던 자동화 장치지만, 인간에게 더 이상 좋은 대우를 해주고 싶지 않은 시대와 공간이 생겨나자 그것들은 재발견되고 있다.

‘붉은깃발법’은 어리석은 법인가?


이미지 출처

영국은 공학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과시했지만 자동차산업은 개발이 더딘 편이었다. 자동차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철도산업 관계자들이 의회를 압박하여 ‘붉은깃발법(Red Flag Act)’을 통과시킨 탓이었다. ‘붉은깃발법’에 의하면 ‘길 위의 기관차’ 자동차는 시내에서 시속 2마일(약 3.2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 수 없었다. 따라서 보행자가 시속 3마일(약 4.8킬로미터)으로 걸으면 자동차보다 빨리 갈 수 있었다. 시골에서는 시속 4마일(6.4킬로미터)까지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더욱 안전을 기하기 위해 운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동차가 가는 길 60야드(약 55미터) 앞에서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등불을 흔들어 차가 온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2030 에너지전쟁, 대니얼 예긴 지음, 이경남 옮김, 사피엔스21, 2016년, pp 815~816]

부적절한 규제가 어떻게 기술과 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러한 억지스러운 법률을 통해 경제에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규제가 저 유명한 곡물법인데 이 붉은깃발법 또한 곡물법의 고향인 영국에서 시행되었다는 점이 재밌다. 어쨌든 당시의 입법자들은 인용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다시피 자동차를 ‘길 위의 기관차’라 인식하고 있었기에1 Locomotive Act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법들을 1861년부터 1878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입법화하였다. 영국은 그 후 1896년에 이르러서야 제한속도를 시속 14마일(23킬로미터)로 완화하였다.

그런데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히 어처구니없는 규제로 여겨지지만,2 한편으로 이 법의 탄생 배경을 꼭 당시의 철도자본의 입김으로만 볼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3 전에 읽은 서양인의 조선견문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노면전차가 운행을 시작한 20세기 초 승객들은 종종 전차의 속도를 감안하지 않고 무턱대고 차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치곤 했다한다. 그리고 전차에 치이는 사고가 나면 전차 자체에 대해 큰 분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즉, 당시 사람들은 어쩌면 인간의 속도를 넘어서는 기계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전차나 자동차에 대한 일종의 러디즘(Luddism)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인은 자동차 사고가 나더라도 대개 차에 중요한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 한 운전자 탓을 하지 자동차 탓을 하지 않는다. 자동차 사고로 지금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지만 자동차가 가져다주는 편익이 그 비용을 초과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사상자의 발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또는 그렇게 교화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입법 러다이트들은 자동차라는 기계 자체가 문제라 생각하고 기계를 금지하지는 못하지만 작동 요령을 강력하게 규제한 것일지도 모른다.

Trolley Problem.svg
By Original: McGeddon Vector: Zapyon – This SVG diagram includes elements from this icon:, CC BY-SA 4.0, Link
이 유명한 그림에서 누가 ‘어느 차선으로 갈래’라고 묻고 당신이 ‘1명 쪽으로’라고 답하면 당신은 현대인이자 공리주의자다. 러다이트는 아마도 전차를 운행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시 영국 경제가 다른 나라를 앞지르고 있기에 곡물법이라는 보호무역주의와 붉은깃발법이라는 기존 자본의 이익 보호에 더 적극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법이 먹혀들기 위해서는 일반인도 그 보수(保守) 심리를 공유하여야 원활한 규제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신문물에 대한 공포감은 어느 정도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서가 현대인에게는 없을까? 우리 또한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이 상용화를 타진하는 지금 내외부자 모두 그것들이 가져올 피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계는 분명히 인간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뺏을 것이고 자율주행 자동차는 사람을 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우리는 인간에게 당한 것보다 더 큰 분노를 느낄 것이다. 어느 순간 제2의 붉은깃발법의 제정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또는 그보다 더 과격한 러다이트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러디즘이나 붉은깃발법이 어리석다고 여기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급작스럽게 밀려드는 신문물에 대한 피치 못할 저항일수도 있었다. 우리도 지금 충분히 고민할 시간도 없이 인공지능 시대가 오고 있지 않은가?

  1. 당시에는 아직 증기차가 대세였기에
  2.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현재의 은산 분리를 붉은깃발법에 빗대어 규제혁신을 주문하였다고 한다
  3. 유독 영국에서만 시속 5킬로미터 미만의 제한하는 과도한 법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일단 제쳐두고

『소유권』을 사회화하는 ‘화폐’라는 대상

영혼 깊숙이 뿌리내린 원초적 힘에서 비롯된 『가득 추구』(Erwerbssuch)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합리적 인간에게만 내재하는 독특하고 고유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토란이나 돗자리, 조개껍질 고리(디와라 Diwara)나 상아, 쇠괭이나 마닐라(Manillas), 동판이나 모직 담요 등을 축적하고자 하였던 원시인이 이미 탐닉하고 그에 지배되었던 것과 동일한 『열정』이다. 인간의 『인정에의 욕구』는 스스로 지속적으로 『탐구하여 구하는 마음』(貪求心)에 불을 지피며 자신을 충족시키는 중요한 수단을 바로 『소유권』과 그 『소유권』을 사회화하는 ‘화폐’라는 대상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인간의 『평판에의 집착』(doxomania)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치료약을 찾게 되었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p110]

화폐가 탄생한 기원과 그 발달 과정을 다룬 책에서, 인간 개인의 탐구심(貪求心)이 화폐를 통해서 사회화되는 과정을 짧게 설명해놓은 필력이 인상적이어서 옮겨 적어봤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s누군가 소유한 물건은 대개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 특정한 상품명으로 판매되기에 그 소유자의 인정욕구는 그 브랜드를 드러내며 어느 정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꼭 고급소재의 옷이라고 자랑을 하지 않아도 “나 샤넬 옷 한 벌 샀어”라고 하면 대부분의 같이 어울리는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은 그 진가(眞價)를 알아주고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러한 브랜드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의 『평판에의 집착』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 있었으니 그게 화폐일 것이다. 샤넬의 진가는 몰라도 화폐의 진가를 모르는 이는 훨씬 적을 것이다. 바보라 하더라고 1만 달러가 1천 달러보다 더 값지다는 것은 알 것이기 때문이다.

테크노크라시에 대한 단상

Marion King Hubbert00.jpg
By http://www.postcarbon.org/a-personal-appreciation-of-m-king-hubbert/, Fair use, Link

매리언 킹 허버트는 당대를 대표하는 지구과학자였지만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문제의 인물이었다. [중략] 1930년대에는 뉴욕 시의 컬럼비아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라는 운동을 주도했다. 대공황이라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정치가와 경제학자에게 묻는 테크노크라시는 민주주의를 속임수라고 공격하며, 과학자와 기술자가 정부로부터 권력을 인수받아 경제에 합리성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략] 테크노크라시는 가격 체계를 없애고 성장 없는 사회를 꿈꾸면서 현명한 테크노크라트들이 이끄는 행정부로 대체하려 했다. 허버트는 화폐 체계가 아닌 “물리적 관계, 열역학”에 기초한 사회구조를 조성하려 했다. 그는 경제학자들만 알아먹는 ‘상형문자’로 곡해된 ‘금전’ 구조로는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030 에너지전쟁, 대니얼 예긴 지음, 이경남 옮김, 사피엔스21, 2016년, pp 290~291]

우리에게는 허버트의 곡선으로 유명한 과학자 매리언 킹 허버트(Marion King Hubbert, 1903년 10월 5일 ~ 1989년 10월 11일)가 과학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다. 우선 테크노크라시라는 용어에 대해 알아보자면 영어사전에서는 이 용어를 “① 과학·기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사회를 이끄는 시스템, ② 전문가들로 꾸려진 정부, 특히 기술 전문가들에 의한 사회 운영”(메리엄 웹스터 영영사전)이라고 정의한다. 이 신조어는 1919년 미국의 윌리엄 헨리 스미스(William Henry Smyth)라는 엔지니어가 ‘기술: 산업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이란 글에 선보이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정치체제를 우중(愚衆)이 다스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철인(哲人)이 다스리는 체제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플라톤이 주장하였고 그 뒤에 비슷한 주장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상당부분 현실정치에서 꾸준히 관철되어왔기에 – 본인은 다른 우중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왕족이나 귀족이 다스리는 정치체제 – 그 엘리트가 단지 과학자로 대체되는 것이기에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주장이긴 하다. 다만, 내가 흥미로운 지점은 허버트는 화폐 체계를 “물리적 관계, 열역학”에 기초한 체계로 전환하려 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주장을 살펴보진 않았지만, 얼핏 금융자본에 의해 형성된 화폐를 부정하려 했던 비트코인 초기의 이념을 연상케 해서 흥미롭다.

요즘 읽는 책 중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이 있다. 이 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벤 버냉키가 의장으로 있던 시기 이후 시행한 양적완화와 이로 인한 부작용을 다루고 있다. 작가인 크리스토퍼 레너드의 주요 비판지점은 민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연준의 의사결정이 소수의 – 특히 경제학자로서의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결정됐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비판은 시간적으로 넓게 확장하면 허버트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경제학자에게 분노감을 표시했던 대공황이나 많은 경제위기의 순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허버트는 경제학자를 과학자로 대체한 테크노크라시로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든 사실 경제학자들 역시 스스로를 일종의 “과학자”라는 사실을 어필하려 했었다. 경제학의 태동 이후 그들은 과학의 엄밀성을 경제에 적용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왔고, 그들의 이론에 수학을 적용하려 시도했고, 그들의 학문을 ‘사회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경제학자의 지위를 과학자가 찬탈하든지 경제학자가 과학자의 왕관을 찬탈하든지간에 일정정도 현대사회는 테크노크라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급기야 인공지능과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여 경제정책에 반영된다면 그야말로 보다 진전된 테크노크라시가 될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의사결정은 보다 합리적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