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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엊저녁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하다가 말다가 했던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바로 바오 능옌(Bao Nguyen)이라는 감독의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원제 : The Greatest Night in Pop)』이라는 제목의 2024년 다큐멘터리다. 대체 어떤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일까? 팝 평론가나 팝 애호가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가리키고 있는 밤은 1985년 1월 28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날 밤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라는 것일까? 세상에 수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일단 팝 역사에서 바라보자면 그날은 팝 음악 산업계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제12회 아메리칸뮤직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이라는 곳에서 열린 날이란 것이 첫 번째 단서다. 매우 유력한 단서다.

그런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중요한 행사인 것은 알겠는데 특별히 1985년에 열린 그 행사가 그렇게나 중요해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말고 그다음에 있었던 이벤트’다. 그것은 바로 시상식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M 스튜디오에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녹음한 바로 그 밤을 말하는 것이다.

We Are The World라는 곡은 80년대 팝 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곡이다. 이 곡은 이미 1년 전에 붐타운래츠의 프론트맨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 인민의 굶주림 등 비참한 삶을 보도한 BBC 프로그램에서 감화받아 팝 뮤지션을 모아 녹음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1 영감받은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팝계의 거물 매니 켄 크라켄(Ken Kraken)에게 제안한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곡이었다.

위대한 흑인 음악 뮤지션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는 영국에서의 기획을 보고 아프리카에서의 비극을 아프리카 계열의 뮤지션이 많은 미국의 팝 음악계가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유사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결과 켄 크라켄의 인맥이 작용하면서 초기에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와 같은 팝계의 거물이 합류하여 프로젝트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레코드사의 기획자들이 달라붙어 뮤지션들을 어렵게 섭외하는 등,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마침내 “위대한 밤” 동안에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특별히 그 밤이 아메리칸뮤직어워즈가 열린 밤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날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곡의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찰, 당시 팝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그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이 당시 촬영한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그날에 관한 훗날의 인터뷰 중에도 쉴라 이(Sheila E.)2의 인터뷰가 마음 아팠는데3 아무튼 나머지 가수들의 고생도 나름 다 의미가 있었다.4

이 기획에 대한 사견을 말하자면 해리 벨라폰테가 위대한 인물이고 – 심지어 맑스주의자라는 설도 강하고 – 이 기획이 결코 만만한 기획이 아니었음은 분명함에도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에이드 자체도 그렇지만 이 기획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일세계의 셀럽들이 제삼세계 인민의 곤궁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5

그럼에도 1985년 1월 28일이 “가장 위대한 밤” 중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영국의 백인 뮤지션 위주로 –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 시작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흑인 뮤지션 위주의 프로젝트으로 – 조금 더 연대의 의미가 강화된 – 진화했다는 의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 한계를 비춰보면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상기해 볼 때 의미는 절대 만만치 않다.

그 다큐멘터리는 사샤 젠킨스(Sacha Jenkins)가 감독한 2023년 『선데이 베스트 : 에드 설리번 이야기(원제 : Sunday Best)』라는 다큐다. 나 역시도 에드 설리번을 그냥 팝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큐를 본 다음에 알게 된 실상은 엄청났다. 그는 단순한 사회자를 넘어서 팝 음악, 특히 흑인 음악을 주류에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일랜드+유태인 계 “백인” 진보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프리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밤에 활약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상당수 에드 설리번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에서 데뷔하고 그 뒤 연예계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 “위대한 밤”의 당사자 해리 벨라폰테, 스모키 로빈슨,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등이 애드 설리번의 “의식적인” 도움으로 애드의 쇼에 출연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에드는 처음에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 관련 칼럼을 쓰면서 그 당시 업계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 행사의 사회를 보던 그는 새로운 매체인 TV쇼에서의 호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 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단 애드 설리번 쇼였고, 이 쇼는 앞서 언급했듯 유색 인종에게 전국구 데뷔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미국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쇼가 된다.

요컨대, 서구권의 팝 음악계에서 – 또는 다른 예체능계도 그렇지만 – 어쩌면 어쩔 도리 없이 선각자적인 백인의 도움을 받아 유색 인종이 업계에 진출하는 시기가 있었다.6 그중 가장 적극적인 선각자 중 하나가 바로 에드 설리번이었고, 그의 도움을 통해 연예계에서 기반을 다진 이들이 1980년대 마침내 이제 유색인종인 본인들의 기획으로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등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We Are The World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1.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획에 참여한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백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인데, 특별히 기획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영국 팝 음악계가 그렇게 이미 편성되었던 측면은 분명하다.
  2. 쉴라 이는 아메리칸뮤직어워즈에서 생애 최고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3. 즉, 요지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사실 쉴라 이가 아닌 프린스를 무대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쉴라 이를 떡밥으로 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쉴라 이의 생각이고 이는 거의 정설일 것이다) 그런데 “Check Your Ego At The Door”라고 퀸시 존스가 스튜디오에 써 붙여 놓을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진 이들이 한 번에 모인 그날 밤에서도 특히 프린스는 너무 에고가 강한 이였고, 라이오넬 리치에 따르면 그는 “별도의 녹음실에서 별도의 기타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날 그 에고 강한 밥 딜런도 시큰둥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머지 뮤지션들과 끝까지 한 방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쉴라 이 홀로 미니애폴리스 사단의 일원으로서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프린스의 솔로 파트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파트는 잔뜩 긴장한 휴이 루이스(Huey Lewis)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4.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솔로 파트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파트다. 다큐에서 신디 로퍼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유가 허탈하면서도 재밌다.
  5.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된 중 가장 급진적인 프로젝트는 인종차별 정권에 저항하는 남아공의 진보 세력과 연대한다는 의미를 지닌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의 Suncity였다
  6. 예를 들면 방탄소년단이 지미 팰런 등과 같은 미국 주류 토크쇼의 백인 진행자의 도움 없이 미국 주류 음악에 편입할 수 있었을까?

Friedrich Engels가 언급된 노래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Came to the checkout at the 7-11
Marx was skint, but he had sense
Engels lent him the necessary pence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7-11 계산대에 갔어.
마르크스는 빈털터리였지만 분별력은 있었지.
엥겔스는 그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줬어.

The Clash가 1980년 발표한 그들의 네 번째 앨범 Sandinista!를 듣고 있다.(앨범 제목부터가 파워가 느껴진다)1 인용한 가사는 이 앨범의 첫 번째 트랙 The Magnificent Seven2 의 가사 중 일부다. 뉴욕의 힙합씬에서 영향받은 랩과 비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소매판매점 노동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돌아가는 자본주의 대도시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위 가사를 인용한 이유는 흥미롭게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언급돼서다. 칼 맑스가 대중음악 가사에 쓰인 것도 많이 보지 못했지만,3 엥겔스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어쨌든 그 둘이 현대로 와서 7-11에 갔다는 설정이 재밌다. 그리고 무일푼인 맑스는 엥겔스에게 돈을 빌린다. 실제 생전에 맑스가 엥겔스에게 재정적으로 많이 의지했다는 점에서 밴드의 뼈 있는 유머가 아닐 수 없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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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GS417~commonswiki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 No machine-readable source provided. Own work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CC BY-SA 2.5, Link

이 노래가 뛰어난 점은 이미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거장 밴드가 자신들만의 음악적 성(城)안에 머물지 않고 바다 건너 뉴욕의 힙합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음악적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밴드는 직접 뉴욕으로 날아가 음반 가게에서 슈가힐갱, 그랜드마스터플래시 등을 구매해서 듣고는 이들의 음악에 감화받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는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더불어 가사에서도 런던보다는 명암이 더 뚜렷한 자본주의 세계의 심장인 뉴욕에서의 일상 풍경이 진하게 느껴진다. 가사는 녹음 현장에서 즉석에서 싱어 조 스트러머가 만들었다는데 아마도 그러한 연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영국 뮤지션인 조 잭슨도 뉴욕에 와서 이 도시의 매력에 반해 명반 Night and Day를 만들었듯이 The Clash 또한 뉴욕 거리의 문화에 영감받아 이런 음악을 만든 것이다.

오피셜 뮤직비디오도 재밌다. 앨범 수록 버전과 조금 다르게 뉴스 앵커 톤의 해설가 이들의 공연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 필름에는 밴드의 JFK 공항 도착 장면, 뉴욕의 거리, 공연에 모여든 군중 등의 영상이 담겨 있다. 특별히 의도된 연출 없이 눈에 띄는 거리와 공연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편집한 것으로 보이는 이 비디오는 그런 만큼 45년 전의 뉴욕의 풍경이 여과 없이 담겨 있어 매력적이다.

  1. 산디니스타 국민해방전선은 니카라과의 좌익 반군이자 후에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으로 1920년대 미국이 니카라과를 침공할 때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의 이름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2. 1960년 공개된 미국의 서부 영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는 《황야의 7인》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다. 요즘은 미국의 주식 시장을 지배하는 일곱 개의 테크거인들의 별명으로 더 유명해진 듯하다.
  3.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Bros의 When Will I Be Famous? 정도?
  4. 노래에는 이 둘 이외에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마하트마 간디, 소크라테스, 플라톤, 닉슨 등 유명인들이 이런저런 재밌는 상황에 등장한다.

The Smiths의 재결합 가능성에 관한 칼럼

The cover of the 1000th edition of Rolling Stone, titled 'Our 1000th issue', depicting a large crowd of entertainers performing on a stag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s://www.amazon.com/dp/B00276AI66/., Fair use, Link

롤링스톤誌에서 The Smiths에 대한 팬심 가득한 칼럼이 올라왔다. 칼럼니스트 앤디 그린(Andy Greene)가 최근 뉴욕에서 열린 모리씨(Morrissey)와 자니마(Johnny Marr)의 공연에 다녀왔고 이 공연에서 느낀 소회를 올린 것. 모리씨의 공연은 9월 16일 라디오시티 뮤직홀(Radio City Music Hall)에서 열렸고, 자니 마의 공연은 9일 후인 27일 K 브리지 공원 아래(Under the K Bridge Park)에서 열렸다. 앤디는 두 공연에서 모두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이 불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모리씨는 공연의 시작 곡으로, 자니마는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특히 앤디는 모리씨가 이 노래를 공연에서 부른 것이 2017년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두 번 정도 The Smiths라는 이름으로 재결합할 뻔한 에피소드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재결합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0에 수렴한다. 그래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오아시스의 재결합 공연을 바라보는 The Smiths 팬의 착잡한 심정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두 뮤지션의 아우라가 클지라도 베이스와 드럼이라는 리듬 섹션까지 완전체로 결합하지 않으면 ‘과연 진정한 The Smiths의 재결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어쨌든 그 둘이라도 – 사실 오아시스의 재결합도 갤러거 형제의 재결합이지 – 재결합하는 일은 없을 테니 그게 재결합이니 아니니 논할 계제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참 큰 떡밥이기는 하다. The Smiths의 재결합. Talking Heads의 재결합만큼이나 확률이 낮아 보이지만, 가슴 설레는 떡밥.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서양의 클래식음악에 문외한이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그래도 이런저런 음악가의 곡을 찾아 듣곤 한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와 같은 고전적인 정석 작곡가들의 음악은 필히 챙겨 듣곤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면 탑5 안에 들 만한 곡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다시 나올 수 없는 천재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이라는 독주에 흔하게 쓰이지 않는 악기를 가지고 천상의 소리를 만들어낸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모차르트가 1791년경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하튼 특히 사랑하는 부분은 2악장이다. 클라리넷의 독자적인 연주를 다른 연주자들이 받쳐주면서 이어지는 아름답고도 구슬픈 멜로디가 심금을 울리는 악장이다. 그래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을 때 듣곤 한다. 23년 키우던 고양이가 곁을 떠난 다음 날 같은 경우 말이다. 잘 가라 거울아.

펜실베이니아역의 시계

사무실에 액자를 하나 걸어뒀는데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Alfred Eisenstaedt)라는 유명한 사진작가가 1943년에 찍은 뉴욕의 펜실베이니아역의 풍경이 담긴 사진이다. 작품의 제목은 Clock in Pennsylvania Station으로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에 역 천장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시계가 하나 보이고 – 약 (필시 오후) 2시 40분가량을 가리키고 있다 –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런 사진이다.

시계에 무어라 적혀있는데 분침 때문에 첫 번째 단어가 잘 안보여 다른 사진을 찾아보니 Eastern Standard Time이었다. 즉, ‘미동부 표준시’라는 의미다. 즉, 사진을 벽에 걸어놓은 내가 때때로 그 사진을 볼 때 나는 1943년 어느 날 미동부 표준시로 오호 2시 40분에 펜실베이니아역에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과 그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정지된 시공을 담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매력이다.

이런 사진이나 흑백영화를 볼 때면 고질병처럼 ‘저 사람들은 이미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사진에는 20대 이상의 성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대략 1920년대 이후 출생하신 분들일 테니 지금 생존해계신다면 100세를 넘으셨을 것이라 여겨지고 대략 9할 이상은 돌아가셨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서 또 작품의 맥락과 상관 없이 괜히 우울해지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작품의 주인공인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와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인간들이 한 프레임에 담긴 사진을 물끄러미 보면서 청승맞은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내 나약함의 증거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시간이라는 개념에 무력한 그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but time
keeps flowing like a river (on and on)
to the sea, to the sea
Till it’s gone forever

알란파슨스프로젝트라는 80년대 밴드의 Time이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다. 시간은 강과 같이 바다로 흐른다는, 시간을 시각화한 노래다. 차분한 템포의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자연스레 고요히 흐르는 시간의 강물이 연상된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1943년의 한 기차역에서 흘러왔던 시간의 강물이 주는 중압감이 내 뇌리에 약하게나마 느껴지는 아침이다.

잡담

Bühnenbildentwurf Rheingold.JPG
By Viktor Angerer – postcard, Public Domain, Link

리하르트 바그너의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니벨룽의 반지’를 영상으로 감상하고 있다. 10시간이 훌쩍 넘는 대작인지라 작년부터인가 ‘한번 완주해봐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있기는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 긴 연휴 기간이라 일단 영상을 틀어놓고 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엄청난 걸작이라고는 하는데 저 유명한 ‘발퀴레 동기’ 연주가 흐르기 전까지는 그 노래가 그 노래같고 그 연주가 그 연주같아서 도닦는 기분으로 계속 보고 있고 현재는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보탄이 그의 명령을 거스른 딸 브룬힐데를 힐난하는 부분까지 감상하였다.(이제 한 4분의 1 온듯)

다만 스토리의 밑바탕은 북구신화인지라 극의 전개는 흥미롭다. 특히 절대반지가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는 상징이라는 설정은 이미 많은 이들이 톨킨이 쓴 ‘반지의 전쟁’ 등으로 익숙한 설정이다. 지금 읽고 있는 빌헬름 게를로프의 ‘화폐 계급 사회’라는 책에서 상류층이 자신들만의 화폐로 사용하기 위해 금을 사용하고 이를 반지로 만들어두었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바로 인간 스스로가 절대반지를 꿈꾸며 그러한 ‘사회/경제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화를 통해 이야깃거리로 재탄생시킨 셈이다. 현대의 절대반지는 뭘까? 금? 달러? 비트코인?

전에 당근에서 북구신화를 사놓고 어딘가에 팽겨쳐 놓았는데 찾아서 한번 진지하게 읽어봐야겠다.

뉴욕에서의 영국인

StingEnglishmanInNewYork7InchSingleCover.jpg
By Discogs, Fair use, Link

Sting만큼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에서 모두 엄청난 음악적/상업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도 그리 많지 않다. 레게에 기초한 펑크락 밴드 The Police로 다섯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으면서 내놓은 음반 하나하나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호응을 얻었고 1983년 Synchronicity를 내놓으며 그룹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 그는 슬슬 솔로 활동을 예열하더니 1985년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를 내놓으며 밴드 리더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부드럽게 넘어가 버렸다.

그뒤 2025년 현재까지 열다섯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는 등 – 분량이 밴드 활동 시기의 세배! –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다작 활동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의 솔로곡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단연 그의 솔로 2집 Nothing Like the Sun의 세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뉴올리언스 출신의 째즈 뮤지션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의 쓸쓸한 소프라노색서폰 연주가 곡 전면에 깔리는 ‘뉴욕에서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 을 꼽을 것이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계속 반복되는 – BTS가 주체성을 강조하기 이전에 이미 스팅이 강조하고 있었다 – 이 노래가 만들어진 스토리는 곡의 매력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일전에 트위터에서 누군가 같은 영어권에서 살면서 “I’m an alien, I’m a legal alien”이라고 푸념하는 스팅이 오만하다는 투의 트윗을 해서 다른 이들의 어그로를 끈 적이 있는데 – 지금은 그 트윗을 지웠는지 안보임 – 트위터에서 몇몇이 지적했다시피 이 노래는 스팅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 부분적으로는 자기 이야기기도 하지만 – 그가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영국인 이야기다.

In New York City, 1992
By Ross B. Lewis – Private correspondence, CC BY-SA 4.0, Link

그의 이름은 쿠엔틴 크리스프(Quentin Crisp, 본명 Denis Charles Pratt)로 아티스트의 모델 등으로 활동한 저술가/예술가이자 커밍아웃한 게이다. 1908년 생인 그는 환갑의 나이가 다 된 1968년 자서전 The Naked Civil Servant1 를 내놓는다. 1964년 입담이 좋았던 쿠엔틴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누드모델, 책 디자이너, 성매매 노동자 등으로 일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영국의 Jonathan Cape라는 출판사의 임원이 이 인터뷰를 듣고 책으로 낼 것을 제안했고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꽤 인기를 얻게 된다.

1978년 당시 만담가로 활동하던 그는 뉴욕으로 공연을 위해 떠났다가 아예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뉴욕에서도 저예산으로 제작된 햄릿(1976년)의 배우로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85년 The Bride라는 이름의 고딕로맨스 영화에 잴허스(Zalhus) 박사 역으로 출연하는데2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찰스 프랑켄슈타인 남작 역을 맡은 스팅이었다. 쿠엔틴의 재치있는 입담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스팅은 1987년 쿠엔틴에 관한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을 발표한다.

노래 가사를 보면 곡의 주인공은 뉴욕에 와서도 영국식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영국식 액센트도 그대로이고, 신사는 절대 뛰지 않고 걷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그의 정체성에 대한 뉘앙스만 약간 풍길 뿐이다. 쿠엔틴은 생전에도 게이 해방운동을 냉소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동성애 자체가 범죄인 영국에서 그가 일종의 생존의 수단으로 냉소주의를 택한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하기에 노래는 이방인(지역 혹은 성적정체성)으로서의 주체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냥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한 독특한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Quentin’s a friend of mine and someone I admire greatly because I think he’s one of the most courageous people I’ve ever met. He has lived his life in an individual way in a society that is vicious and malevolent. But he is a hero in a feminine way. So that’s a song about the feminine qualities than can exist in man without being negative.”
“쿠엔틴은 제 친구이고 제가 매우 존경하는 사람인데,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악하고 악의적인 사회에서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적인 방식으로 영웅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부정적이지 않고도 남성에게 존재할 수 있는 여성적인 특성에 대한 노래입니다.” ~ Timeout, 1987년 10월

스팅의 타임아웃과의 인터뷰 중 쿠엔틴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인터뷰에서 스팅은 “게이인 것이 신체적으로 위험한 시기에 그는 화려한(flamboyantly) 게이였고 가장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혼란과 위험성에 대한 극복 수단은 유머(혹은 냉소)였다. 일종의 생존하기 위한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스팅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구분짓지 않기 또한 중요한 태도인데, 이러한 자세가 필요함은 전에 소개한, (역시) 뉴욕에서의 한 게이바의 군무를 묘사한 조잭슨의 Real Men이란 곡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See the nice boys dancing in pairs
Golden earring, golden tan, and blow wave in their hair
Sure, they’re all straight, straight as a line3
All the gays are macho, can’t you see the leather shine?

멋진 남자들이 짝을 지어 춤추는 걸 보세요
금빛 귀걸이, 황금빛 태닝, 그리고 머리카락에 불어오는 웨이브
물론, 그들은 모두 스트레이트합니다. 일직선 춤라인처럼요
게이들은 모두 마초예요, 가죽이 빛나는 걸 못 보나요?

뮤직비디오는 완연한 째즈 풍의 곡에 맞게 뉴욕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흑백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4 지금 봐도 멋진 스타일의 스팅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주인공 쿠엔틴 크리스프가 등장하고, 브랜포드 등 연주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교차하지는 않는다. 다들 뉴욕을 배회하는 이방인들일 뿐이다.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브랜포드는 쓸쓸히 홀로 길을 걸어간다.5 이러한 흑백화면의 비디오가 80년대말 여러 인기 뮤지션들의 영상의 트렌드로 쓰였는데 언뜻 생각나는 것은 펫숍보이스마돈나다. 이 비디오도 모두 화려하다(flamboyant).

누가 뭐라든 내 자신이 되라”…….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주제다.

  1. 그는 한 예술학교에서 누드모델로 일했고 급료는 교육부가 지불하여서 결국 자신도 일종의 공무원이라고 쿠엔틴이 비꼬는 투로 표현한 것에서 책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2. 이 영화에는 또한 Flashdance를 통해 1980년대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러나 이후의 인상적인 필르모그래피를 이어가지 못한 제니퍼 빌즈(Jennifer Beals)가 출연한다고 한다
  3. 조잭슨은 “그래 그들은 다 똑바르지(straight). 줄만큼이나.”에서는 straight의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고 있다
  4. 감독은 그 유명한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5. 흥미로운 것은 스팅이 뿌연 창밖으로 보며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에 지금은 없어진 쌍둥이 빌딩의 실루엣이 보인다

Stuart Price

아침 출근길에 요즘 가장 핫한 뮤지션 중 하나인 Dua Lipa가 2020년 내놓은 그의 2집 Future Nostalgia를 감상했다. 이 앨범은 그의 섹시한 외모와 허스키한 보컬이 신쓰웨이브 풍의 레트로한 디스코 리듬과 화학적 결합에 성공하여 팬데믹 시절 공연이 여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앨범이다. 한편 이 앨범을 감상하며 흥미로운 인물을 한 명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앨범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Stuart Price다.

스튜어트 프라이스의 이름이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때는 Madonna와 함께 그 유명한 Hung Up을 선보였을 때다. 마돈나라는 레트로한 뮤지션을 레트로한 에어로빅복을 입혀 레트로한 ABBA의 Gimme! Gimme! Gimme!를 샘플링한 곡을 부르게 하여 – 역의 역의 역발상 – 제2의 전성기를 맞게 한다는 시나리오는 좀 과잉설정일 정도로 황당한데 실제로 이 스토리를 성공시킨 이가 바로 스튜어트 프라이스다. 이런 시도는 뮤지션의 미래 – 나아가 음악의 미래 – 를 제시하는 수단이 레트로라는 점에서 이른바 레트로퓨처리즘(Retro Futurism)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1

Stollwerck 1898 Im Jahre 2000. Ein Reisehotel.jpg
By Unknown (Name unten links nicht lesbar) – [1], Public Domain, Link
레트로퓨처리즘적인 그림 하나 : 예전 사람들이 상상했던 2000년대

2000년대 즈음하여 1980년대의 신쓰팝을 추종하여 새로운 장르를 실험한 신쓰웨이브(Synthwave)가 바로 이러한 레트로퓨처리즘 노선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80년대 신쓰팝, 유명한 80년대 미드 Miami Vice 등의 오리지널을 가지고 재생속도를 늦춘달지, 의도적으로 비디오 재생이 찌그러지는 화면을 만든달지, 느닷없이 그리스의 조각상이 등장한달지 하는 방식을 통해 그 시절을 추억 – 패러디, 오마쥬, 희화화, 대상화 그 어떤 표현이든 – 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서브장르로서 어느 정도 유명해졌다.

신쓰웨이브가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선데에는 The Weeknd의 공헌이 적지 않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Stuart Price 역시 공헌자로서의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80년대 키드로서 실력을 쌓아 Madonna, Pet Shop Boys, New Order 등 80년대의 적자(嫡子)의 앨범의 프로덕션을 맡으면서 그들과 본인의 커리어하이를 찍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신예 두아리파 역시 그의 손을 빌어 영국 국내용 뮤지션이 아닌 글로벌 댄싱퀸의 자격을 획득했다. 음악인으로서 더 좋을 일이 있을까? 자신이 즐겨듣던 이들의 음악을 배워 다시 자신이 그 스타일로 프로덕션해주고 이를 다시 신예에게 활용하는 경험을 갖는다는 것.

Nbc miami vice 02.jpg
By http://www.nbc.com/Vintage_Shows/Miami_Vice/photos/index.shtml#cat=733&sec=1602&mea=38829, Fair use, Link
Synthwave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마이애미바이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작 스튜어트 프라이스의 활동 중 좋아하는 시기는 그가 직접 뮤지션으로 무대를 뛰던 시기다. 그는 프로듀서로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Les Rythmes Digitales라는 솔로프로젝트로 음악을 만들었고 Adam Blake, Johnny Blake 와 함께 Zoot Woman이라는 3인조를 결성하여 몇장의 음반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주트우먼 시절을 좋아한다. 이들의 컨셉트 역시 레트로퓨처리즘이었다. 2000년대였음에도 일부러 촌스러운 정장 차림으로 80년대 신쓰팝을 재생하면서도 그 이후의 댄쓰팝의 트렌드와의 가교 역할을 한 밴드가 바로 주트우먼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2024년 신보를 내놓는 등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인 현재진행형 밴드다.

Duran Duran의 Girls on Film을 오마쥬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Zoot Woman의 Living in a Magazine 비디오

  1. Future Nostalgia라는 앨범명도 바로 이 Retro Futurism이라는 표현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전곡을 감상중

요즘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전곡을 감상중이다. 베토벤은 살면서 교향곡만큼이나 꾸준히 정성을 들여 작곡할 작품이 바로 현악4중주였다고 한다. 그런만큼 후세들은 그의 방대한 현악4중주 작품들을 초기, 중기, 후기로 각각 나누어 분류하고 있으며, 이중 특히 후기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확실히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후기 작품들은 단순히 귀족들의 연회에서나 장식적으로 쓰이는 그런 현악4중주가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강한 인간적 의지가 담긴 – 그리고 무척 난해한 – 고도의 예술성을 구현해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비평가들조차 작품의 이런 난해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혹평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하게 베토벤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