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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패전론, 전후 일본의 핵심” 독후감

일본의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聡)의 전후의 기만적인 일본 정치 체제에 관한 비판적인 저서 “영속패전론, 전후 일본의 핵심(永續敗戰論 戰後日本の核心)”을 읽었다. 영속패전론이라는 낯선 용어는 얼핏 러시아의 혁명가였던 레온 트로츠키의 유명한 혁명이론인 “영구혁명론” 혹은 “연속혁명론”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혁명을 영구적으로 행하자는 것이라면 뭔가 직관적으로 이해되는데 패전을 영구적으로 반복하자는 것은(혹은 반복하게 된다는 것) 선뜻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조악하게 요약하자면 그 용어는 전후 일본의 지배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만들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패전’이라는 정치적 귀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p9) 체제라는 것이다. 이런 체제의 행태 중 한 예로 저자는 일본 정부가 8월 15일을 ‘종전 기념일’로 부른다는 사실(p52)을 들고 있다. 전쟁은 대일본제국의 패배로 끝났음에도 ‘패전(敗戰)’이 아닌 ‘종전(終戰)’이라고 부르는 기만이 전후 일본 체제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는(p52) 저자의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패전을 부인하고 있다면 그 상대는 승전국 미국인가? 일본의 자칭 내셔널리스트들은 이런 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p8). 그 대신 그들은 대미 관계로 좌절된 내셔널리즘의 스트레스를 아시아를 향해 분출한다(p9). 저자가 들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 중국, 러시아와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이다. 저자는 이 세 나라와 일본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토의 진정한 주인을 따지기보다는 영토분쟁 과정에서의 일본의 모순된 행태를 밝힘으로써 지배 체제의 기만성을 고발한다.

또한 저자는 북한 문제를 통해 일본이 어떻게 영속패전론, 즉 패전을 부인했는지를 분석한다. 어쩌면 일본이 미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선도적으로 외교관계를 모색했던, 말하자면 일본이 전후 최초로 시도한 ‘자주 외교’였다(p122). 이에 북한은 국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간 있었던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였는데 오히려 당시 고이즈미의 심복 아베 신조는 이를 반북(反北) 소재로 활용하여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납치 문제를 평화헌법 개정으로 연계시키는 ‘패전의 부인’ 완수(p126)를 시도한다.

그렇다면 이렇듯 패전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 정치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어떠한가? 알다시피 미국의 진보적 세력은 일본의 뻔뻔함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미국은 현재의 동북아 정치 구도의 설계자다.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냉전의 최전선을 한국과 대만에 떠넘기고 얻은, 지정학적 여유에서 비롯한 허깨비다(p153). 따라서 저자는 미국이 일본의 친미 보수 세력의 반성하지 않은 모습에 분노를 느끼고 있으나, 그 저열한 세력이 제멋대로 자라게 놔둔 당사자가 바로 미국임을 지적하고 있다(p157).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제3자 변제’ 방안을 변명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수십 차례 사과했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사과는 따지자면 겉마음, 즉 다테마에(建て前)다. 도쿄 한 복판에 A급 전범을 ‘호국의 영령’과 ‘신’으로 모시는 시설이 서 있고, 이곳의 참배가 정치 공약(p194)인 체제가 바로 그들의 속마음, 즉 혼네(本音)다. 일빠인 한국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이번 역시 지난번 “위안부 합의”처럼 미국의 동북아 패권구도 재편을 위해 급히 일을 추진하다 보니 아무 소리나 해보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는 2013년에 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1쇄가 발간되었지만, 읽고 있자면 엊그제 읽은 한일 정상의 오므라이스 만찬 소식만큼이나 생동감이 있다. 그만큼 일본의 정치 체제의 혼네는 변함없이 굳건하고, 우리 정치권과 우익 세력의 이에 대한 대처도 변함없이 굴욕적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의 역자는 후기에서 저자의 ‘영속패전론’ 용어를 빌어와서 한국 현대사의 구조를 관통하는 핵심을 ‘영속식민지론’ (p212)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부가 요즘 하는 짓을 보니 더더욱 꽤 그럴싸한 표현이다.

냉전은 끝났지만 신냉전은 보다 다양한 전선에서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반(反)러시아 구도 강화, 중국의 대만 위협, 시진핑과 푸틴의 정상회담, 미국의 ‘칩4 동맹’ 추진, 북한의 핵도발 등 곳곳에서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다시 한번 한일 갈등을 임시로 봉합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나아가는 구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일본의 혼네로서의 자기성찰은 한동안 없을 듯하다. 이는 당연히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전체에 불행한 일이며 그 수혜자는 각국의 극소수 권력층에 불과하다.

어떤 기념일에 대한 괴롭힘,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던 1938년 메이데이도 ‘근로일’로 창씨개명을 한다. [중략]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대한노총은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생일을 바꾼 것이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했다. 역사적으로 근로자란 지칭에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일제의 통치 음모가 배었다고 한다. [중략] 1989년 재야의 민주 노동 세력은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탄압의 상징인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함과 아울러 메이데이를 우리의 진정한 노동절로 엄숙히 선포한다”, 그리고 1990년 메이데이 기념 100년 만에 민주노총의 누룩 전노협이 결성된다.[정운영,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웅진지식하우스, 2006, pp22~23]

이 기념일이 뭐라고 이렇게 끊임없이 일제가, 이승만이, 박정희가 괴롭힐 일인가 싶다. 하지만 그만큼 어떠한 대상물에 – 여기서는 기념일 – 대한 호칭은 중요하다. 모욕적인 호칭은 대상물의 지위를 규정하고 많은 경우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한다. 일제의 창씨개명은 조선인의 주체성을 말살했다. 우리가 건설노동자를 “노가다”로 부르고 나이 어린 편의점 서비스 노동자를 “알바”라고 부르면 그들의 노동자로서의 존엄성을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아가 현재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법에 의해 자영업자로 규정 ‘당하고’ 있다. “사장님”이니까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바로 실질적인 사장님이 노동자를 고용하며 응당 치러야할 노동의 대가를 회피하기 위해 그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 문제다. 호칭은 그만큼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관광

재미있는 표가 있어 하나 가져왔다. 가장 경제규모가 큰 20개국에서 관광으로 인한 수입이 GDP에 기여하는 비율에 대한 랭킹이다. 우선 당연히 상위에 자리한 나라들은 이번 팬데믹에 따른 여행객의 급감으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랭킹을 좀 들여다보면 멕시코가 1위인 것은 조금 의외인데 여하튼 상위를 차지한 나라 면면히 그동안 관광국으로 많이 알려진 국가들이다. 또 조금 의외인 나라는 관광수입 비중이 GDP 대비 9.5%인 사우디아라비아다. 아마도 이슬람 최고의 성지 메카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이 GDP 대비 비중이 7%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최근 몇 년간 일본에 몰려가 “오버투어리즘”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일본 역시 관광국가로서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다. 제조업의 쇠퇴와 엔화의 하락, 그리고 이에 따른 아베 정권 나름의 꾸준한 관광유치 등이 그 배경이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그만큼 이번 팬데믹으로부터의 고통도 클 것이다. 벌써 올림픽의 연기가 현재진행형의 고통이고 앞으로 코로나19 통계에 대한 세계의 불신감 등으로 인해 그 고통은 더욱 배가될 것으로 짐작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놀란 사실은 한국의 GDP 대비 비중이 2.8%로 이 랭킹에서 꼴찌라는 것이다. 한때 중국 관광객이 물밀 듯이 몰려오고, 한류니 뭐니 해서 외국인들의 호감도가 급상승했다고 해서 관광으로 돈 좀 버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산업의 수입들이 좋아서 관광으로 인한 비중이 높지 않은, 결과적으로 이번 팬데믹으로 인한 악영향이 가장 적은 나라가 될 수도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소위 국뽕을 제거해도 상당한 성과를 체감케 하는 “K-방역”으로 인한 신뢰감으로 향후 안전한 여행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Rank

Country

Travel and Tourism, Contribution to GDP

1

Mexico     

15.50%

2

Spain    

14.30%

3

Italy   

13.00%

4

Turkey

11.30%

5

China

11.30%

6

Australia

10.80%

7

Saudi Arabia

9.50%

8

Germany

9.10%

9

United Kingdom

9.00%

10

U.S.

8.60%

11

France

8.50%

12

Brazil

7.70%

13

Switzerland

7.60%

14

Japan

7.00%

15

India

6.80%

16

Canada

6.30%

17

Netherlands

5.70%

18

Indonesia

5.70%

19

Russia

5.00%

20

South Korea

2.80%

(출처)

“잠시 동안 계급투쟁을 잊어버리자” 나라 경제가 이런데….

“왜 빵의 부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 다른 병사가 소리쳤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쮸드노프스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다음에는 멘셰비키적 방위주전론자로서 비테브스키 소비에트의 대표인 한 장교가 말했다. “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전쟁이다. 그리고 어떤 변혁보다도 우선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여기에서 야유와 빈정거리는 박수가 있었다. “볼셰비키 선동가들은 데마고그다!” 회의장은 웃음소리로 진동했다. “잠시 동안 계급투쟁을 잊어버리자”고 그는 말했으나 그의 말은 더 이상 계속 될 수 없었다.[세계를 뒤흔든 10일, 존 리드 저, 장영덕 역, 두레, 1993년, p63]

오랜만에 책꽂이에서 꺼내 읽은 책의 일부분을 인용해보았다. 미국 언론인 존 리드가 볼셰비키 혁명을 직접 체험하고 책으로 엮은 르포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니 만큼 현장에서의 생동감이 1세기가 지난 지금에 읽어도 어렴풋이 느껴질 정도다. 인용한 장면은 10월의 어느 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한 철야회의에서의 모습이다. 계급모순과 민족모순 중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라는 사회변혁의 오래된 이슈가 이 장면에서 또 한 번 연출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심사는 치열했습니다. 9시간을 넘겼습니다. “분식회계도 횡령도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한 줄 알았다”는 게 김태한 대표의 입장, “분식회계도 증거인멸도 횡령도 김 대표의 지시를 받았다”는 게 김동중 삼바 전무의 입장이었습니다. 서로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런 날선 내부 다툼과 법적 공방 끝에 삼성 측은 호소에 나섰다고 합니다. 어쩌면 ‘일격’에 가까운 호소,

“일본 문제도 있고, 나라 경제가 이런데….”

영장심사 결과는 김 대표도 김 전무도 모두 기각.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삼바’ 영장심사에서 나온 말, “나라 경제가…”]

존 리드의 책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낮에 읽은 이 기사가 떠올랐다. 정확히 삼성 측의 누가 저 말을 했는지는 보도에 나와 있지 않지만, 여하튼 참으로 어이없는 적반하장 발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성이 현재 일본의 무모한 정치적 도발의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는 아니고, 일면 그 도발로 인한 피해자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구속영장심사 자리에서 피의자가 할 소리는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할 말로 일본 문제와 이들 기업의 분식회계가 무슨 상관이나 있기는 한가?

어쨌든 존 리드의 책을 읽다가 삼바 기사가 떠오른 것은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적을 팔아 회피하려는 작태가 유사 이래 정치집단 내, 계급적 갈등관계에 있던 집단 사이, 심지어는 범죄 집단과 이를 단죄하려는 시민사회 사이에서도 단골 메뉴로 꺼내들었던 핑계거리가 되곤 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연상 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앞서의 장교는 어쨌든 선의에 의한 발언이라고 여겨지는 반면, 삼성 측의 주장은 본인들의 범죄를 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틈타 빠져나가려는 야비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나라 경제를 망쳐놓은 것은 본인들인데.

전쟁의 아이러니, 세제개편

일본은 1938년 전시총동원법이 제정된 이후 전면적인 전시체제에 들어섰는데 모든 산업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편되었고 국가 재정규모는 팽창하여 1936년에 약 22.8억 엔이던 것이 1940년에 109.8억 엔에 이르렀고 전쟁이 막바지이었던 1944년에는 861.6억 엔으로 급격히 팽창하였다. 한편 이들 각 연도에 군사비가 국가 총재정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36년에 47.2%이던 것이 1940년에는 72.4%, 1944년에는 85.3%까지 이르게 되었다.[역사 속 세금이야기, 문점식 지음, 세경사, 2012년, p231]

전쟁은 당연하게도 “큰 정부”를 만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일본은 큰 정부가 탄생하는 극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인용문에서도 보듯 일본 경제는 1936년에서 1944년이라는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재정규모가 무려 37배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군사비는 그 재정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군사비로만 놓고 볼 때에 그 규모의 증가추이는 68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쯤 되면 당시 일본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쟁기계 그 자체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참전국이 이렇게 재정규모를 극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배경에는 세금이 있다. 전쟁비용 조달은 자체비용, 침략국 수탈, 채권발행 등이 있겠으나 근현대에 들어서 일반화된 수단은 바로 조세다. 특히 양차대전은 각국이 세제 개혁을 통해 항구적인 재정조달수단을 확보하게 되는 주요한 계기가 된다. 세금이라는 것이 결국 국가가 국민에게 별도의 직접적인 반대급부 없이 돈을 걷는 방법인 만큼 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은 그런 인기 없는 정책을 – 특히 직접세의 경우 – 밀어붙이 좋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1940년까지 미국에서 소득세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소득세제도가 도입된 이후 30년 동안 전체 인구의 6% 정도만이 소득세를 납부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소득세제도가 국가 재정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었다. 재무부장관이었던 헨리 모겐타우는 전쟁기간 중에 라디오·신문을 통하여 만화가, 아나운서, 가수 등을 동원하여 전 국민을 상대로 세금 납부 촉구 홍보를 하였다. 이처럼 효과적인 홍보 전략과 국민들의 애국심에 힘입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2년간 연방정부는 전쟁비용의 약 반을 세금으로 충당하였다. [같은 책, pp225~226]

인용문처럼 당초 직접세인 소득세는 전체 세수에서 미미한 비중만을 차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비용이 많이 드는 통치행위를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기에 정부는 정치권을 설득하고, – 의회가 있는 경우 의회 동의를 얻어 – 납세자를 설득하여 – 공권력과 애국심 호소 등을 통하여 – 세수를 확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납부액이 1939년 기준 국민총생산의 1% 정도였는데 전쟁 중인 1943년도에는 8%까지 증가하였다고 한다.

현대의 세제개편은 이렇듯 소득세 납세자 수가 대폭 증가하며 간접세 중심 세제에서 직접세 중심 세제로 비중이 옮겨가게 된다. 한편 전쟁이 직접세의 당위성을 당연시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 징수를 가능케 하는 수단은 대공황과 전쟁 국면에 각국이 도입한 국민계정(national accounts)일 것이다. 국민국가 단위의 경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이런 시도는 1920년대 소비에트 블록에서 시작되었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거시경제학의 득세와 세수 증대라는 목적을 위해 본격화되었다..

전쟁의 아이러니다. 파괴를 위한 존재가 세제개혁과 관료기구의 성장을 추동했고, 전후 이는 자본주의 진영 역시 야경국가가 아닌 적극적인 경제주체로 활동해야 함을 일깨워준 계기가 된 것이다. 그보다 더한 아이러니는 누진세 도입이다. 전쟁 당시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94%였는데 누진세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이는 바로 칼 맑스였기 때문이다. 자본가에 의한 전쟁을 반대한 칼 맑스가 주창한 누진세가 전쟁을 통해 정착된 셈이니 가장 지독한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인 셈이다.

이성적인 문명은 [ ]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점은 특정한 기술적 발전 단계에 도달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핵에너지를 발견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중략] 그 문명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일 없이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나, 아니면 그 문명은 스스로 절멸됐나? 핵에너지를 발견한 후로 1000년을 존재해온 문명이라는 어느 문명이건 핵폭탄을 통제할 수단을 고안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이 사실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한 특정 가이드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명, 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101]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외계문명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든 사례다. 문명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닌지가 그 문명이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스스로 냉전 당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로 만들기도 했던 이인지라, 외계문명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갖는 것이 그답다는1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2016년 현재의 지구 문명은 큐브릭의 기준에서 볼 때 스스로 안도감을 가질만한 문명일까? “냉전(冷戰)”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미-쏘 열강의 전선이 사라질 즈음, 인류는 다행히도 큰 격변 없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구적 관점에서, 특히 동북아 관점에서 핵에 대한 신경쇠약증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이 그 예다. 전자는 국지적 냉전의 결과고, 후자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기술과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Nagasakibomb.jpg
By Charles Levy from one of the B-29 Superfortresses used in the attack. – http://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ww2/photos/images/ww2-163.jpg National Archives image (208-N-4388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719

경수로 지원 사업에 관한 북미 간의 갈등에서 본격화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형식적으로는 국지적인 규모에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양상을 띠고 있다.(또는 적어도 각 이해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동북아의 정치상황은 적어도 큐브릭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야무진 핵의 평화적 용례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이후 – 원인이 소유형태든 일본식 문화든 간에 – 부조리한 사태처리로 말미암아 핵의 평화적 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일게 만들고 있다.

결국 큐브릭이 상정한 이상적인 핵개발의 상황은 핵을 전쟁수단으로 삼는 상황을 통제내지는 절멸시키고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그런 희망사항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구열강은 비대칭적인 핵무기 보유상황을 상수로 인정하라 강요하고 이에 몇몇 “불량”국가는 사실상의 재래식 전력인 핵을 공포의 균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로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기술적 발전이 미흡함을 깨달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수단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큐브릭은 같은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영화가 결코 아니라면서 “미친 짓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치유할 가능성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2016년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도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완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대립구도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극히 이성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미친 짓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합리적 맥락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가 받아온 돈은 누구의 돈인가?

일본 수상으로서 아베 수상은 위안부로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치유할 수 없는 육체적 및 정신적 피해를 입어 고통 받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진지한 사죄와 유감을 다시 한 번 표했다. 한편으로 일본은 위안부 이슈 등을 포함하여 일본과 남한 간의 자산이나 청구권과 관련한 이슈들은 1965년 한일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에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했다.[Announcement by Foreign Ministers of Japan and South Korea on the Issue of “Comfort Women”]

아베가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말한 내용이라고 한다. 요컨대 아베는 일본 수상으로서 “일본군이 관여한(with an involvement of the Japanese military authorities)” 성노예 제도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is painfully aware of responsibilities)”지만 이번에 주는 10억 엔은 기부금이지 배상금이 아니고 그런 배상은 이미 1965년에 완료했다는 주장을 또다시 반복한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의 청구권이 이미 1965년에 완료됐다는 일본의 주장은 타당한 주장인가?

올해 88살의 이근목 할아버지. 22살이던 1943년 일본 미쯔비시 조선소에 끌려가 해방될 때까지 돌덩이를 날랐습니다. 임금을 절반 밖에 받지 못했지만 조선소도, 일본 정부도 보상해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1965년 한일협정을 맺어 강제점령에 대한 보상금을 우리 정부에 지급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100명은 보상금으로 설립됐던 포스코, 당시 포항제철을 상대로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습니다.[“강제징용 배상, 도의적 책임”]

하지만 할아버지는 패소했다. 법원은 “포스코 때문에 강제징용자들이 보상금을 못 받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입장은 일본정부의 입장과 명백하게 배치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 법원은 2013년 7월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이 35년간의 일제강점기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한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우리 행정부의 수장은 아베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인용한 글에선 그 반응은 적지 않았다.

드디어 1969년 12월 韓日간에 종합제철에 관한 기본협약이 체결되어 건설에 착수하게 되었다. 韓日 국교정상화 때 양국간에 합의된 청구권 및 對韓차관 공여액은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 3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이상으로서 무상 및 유상자금 각 3억 달러에 대해서는 항일독립유공자보상, 對日민간청구권보상, 평화선철폐에 따른 어민보상 등 국민적 요구가 방대했다. 朴대통령은 국민적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을 각오하면서 낭비보다는 건설이라는 견지에서 종합제철건설에 상당한 액수를 투자하는 대영단을 내렸다.[김정렴, 한국경제정책30년사, 중앙일보사, pp138~139]

한편, 박정희 정부의 경제관료였던 김정렴 씨는 이근목 씨가 포스코에 위자료 지급 소송을 낸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받은 돈에 대해 “국민적 요구가 방대”했음을 증언했다. 그런데 박정희 씨는 그 돈을 종합제철건설에 투자하는 “대영단”을 내렸다. 스텝이 꼬이는 구간이다. 당시 관료가 그런 뉘앙스로 증언했고 협정문에도 일본의 주장이 타당해보일 수도 있는 문구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법원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현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하다.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