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다큐멘터리

Joe Strummer: The Future Is Unwritten

Punk를 정확히 언제 누가 발명(!)하였는지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The Clash가 그 많고 많은 펑크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밴드들 중 하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펑크밴드의 중심에는 Joe Strummer가 있었다.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터키, 멕시코 등을 돌아다며 컸던 Joe는 영국으로 돌아와 부모와 떨어져 그의 형과 함께 기숙학교에 다니며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Joe가 불의의 심장마비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한 2002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The Future is Unwritten은 이 독재적이고, 한편으로 인간적이고, 한편으로 급진적이었던, 그리고 스스로는 뮤직씬에서 한 번도 섹시심볼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이 잘 생기고 매력적인 인간의 다양한 인간적 모습, 그의 음악,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그 주변인들과 팬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생시켰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가 The Clash로 옮겨가기 전에 만들었던 The 101’ers에서 함께 음악을 한 이들, 이 시절 버려진 주택을 점거하여 같이 살던 이들, Mick Jones를 포함한 The Clash의 멤버들, 그를 영화에 출연시킨 Jim Jarmusch, 함께 영화에 출연한 Steve Buscemi, 그의 팬이었던 John Cusack, Matt Dillon, Bono 등등. 이들은 The Clash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억하기도 한다.

The Clash는 “무정부주의적”이라 불리던 – 사실은 무정부주의적이라기보다는 “주의”에 얽매이지조차 않은 철저한 체제부정에 가까웠지만 – Sex Pistols에 비해 확실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행동을 요구했고 가사는 직선적이었다. 이러한 분명한 정치적 태도는 후에 밴드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됨에 따라 그들을 옥죄는 모순의 씨앗이 되었고, Joe는 그런 이유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방황하게 된다.

Joe의 이런 모습에서 전에 다른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던 또 하나의 위대한 아티스트 George Harrison의 방황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었고, 그 방황의 대안 역시 달랐지만 무절제한 쇼비즈니스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기 만들기보다는 보다 진실한 삶을 추구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둘의 태도는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단 사실도 닮았다.

둘의 유사점이 또 있다면 바로 음악적인 면에서 서구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들여와 밴드의 음악적 지향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Joe는 자메이카에서 레게를, George는 인도의 전통음악을 도입하여 각각의 음악세계와 접목하였고 이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Joe의 레게와 펑크의 결합은 反인종주의를 지향하는 밴드의 정치적 태도가 음악적 형식으로도 성공적으로 구현됐다는 특징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쉬운 점은 이 점이다. 어떻게 The Clash가 다른 펑크밴드와 달리 정치적 지향과 음악적 형식을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는 계기인 레게를 접했고, 그것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다.1960~70년대 영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지리적, 인종적 위치와 그런 격변이 The Clash의 음악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였는지를 좀 더 조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DVD는 다큐멘터리 본 작품이외에 별도로 다큐멘터리에 싣지 않은 인터뷰들을 담고 있다. 이 인터뷰의 내용이 또 상당해서 별도의 콘텐츠로 여겨질 만하다. 내용도 별도로 챙겨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Martin Scorsese가 우연히 The Clash의 음악을 듣고 푹 빠졌고, 이들의 음악에서 그의 걸작 Raging Bull을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에피소드였다. The Clash와 Raging Bull 이라니.

Viva Venezuela! : 베네수엘라 대선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

베네수엘라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고 지난 선거에서의 풍경을 스케치한 정도의 비디오지만, 노래와 풍경이 좋아서 공유한다. 🙂 리듬이 살아있는 남미, 언제나 가볼 수 있을까?

Debtocracy

두 그리스 저널리스트 Katerina Kitidi와 Aris Hatzistefanou가 만든 온라인 영화 Debtocracy를 소개한다. 온라인 기부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Creative Commons 라이센스를 통해 배포되고 있는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본주의의 발달과 1970년대 중반부터 심화된 저성장, 그리고 이로 인해 비대해진 금융 시스템이 불러온 위기의 오늘을 설명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또한 그리스의 산더미 같은 부채를 해결하고 인민의 삶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라파엘 코레아의 에콰도르가 택했던 방법을 권하고 있다. 남미 좌익전선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라파엘 코레아는 집권한 후 회계위원회를 설치하여 외채의 내용을 일일이 검토하여 소위 독재정부가 부패한 방법으로 부정축재 등을 이해 빌린 “불쾌한 채무(Odious Debt)”를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 돈을 복지를 위해 썼다(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불쾌한 채무를 현대사회에 도입한 나라는 이라크를 점령한 후, 후세인의 “불쾌한 채무”를 갚지 않겠다고 선언한 미국이다). 다큐는 그리스에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부채를 축소하고 인민의 복지를 회복시키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 비디오는 유투브에 올라온 비디오인데, 더 큰 화면은 여기를 가시면 볼 수 있고, 영화 리뷰는 여기를 가시면 볼 수 있다.

“우리가 1970년대의 위기에서 탈출한 방식이 오늘날의 위기의 기반을 제공했다.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The way we got out of the crises of the 1970s prepared the ground for the current crisis. There is no such thing as crisis-free capitalism.”[영화에서 등장하는 영국의 사회학자 David Harvey의 말]


Directed by Katerina Kitidi and Aris Hatzistefanou
2011, 75 min., Creative Commons/Online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感想文

예술, 그 중에서도 미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재능이 미술을 미술답게 하고 우리에게 예술적 쾌감을 안겨주는가? 이러한 질문은, 예를 들면 마르셀 뒤쌍의 작품 ‘샘(Fountain)’을 대할 때 더욱 대답하기 난감해진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볼 때에는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이던 것이 ‘샘’과 같은 현대의 추상예술에 접어들면 흐릿해지는 것이다.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이런 현대미술의 모호함을 고발한 책이기도 하다.

한편 언젠가부터 이러한 제도권의 위선을 비웃으며 미술계의 ‘힙합전사’가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친 거리의 청년들이 극장의 호화스러운 무대에서 우아한 춤을 추는 대신에 거리에서 골판지를 깔아놓고 힙합댄스(또는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것처럼, 일군의 예술가들은 거리의 벽이나 광고판에 불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놓기 시작한다. 그런 예술가들 중에서 내가 알게 된 최초의 거리예술가는 아마도 장 미쉘 바스키아였던 것 같다.

바스키아의 현란한 색채감과 절제되지 않은 형태의 자유분방한 작품을 접한 제도권은 그에게 ‘검은 피카소’란 별명을 지어줬고, 이윤극대화를 위해 그의 재능을 빠른 속도로 확대재생산한다. 결국 그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작품‘공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착취당하며 괴로워하다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만, 거리 예술가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간다. 그리고 한 프랑스인이 이러한 거리의 삶을 아무 생각 없이 필름에 담기 시작한다.

스스로가 거리 예술가인 뱅시(Banksy)가 감독했다는 다큐멘터리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영화는 어릴 적 경험한 엄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것을 비디오로 기록해야만 성이 풀리는 집착증을 가지게 된 티에리가 어떻게 거리 예술가의 모습을 찍게 되었고, 뱅시를 만나게 되었고, 뱅시의 권유에 따라 스스로 거리 예술가가 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지를 경쾌하지만 냉소적인 유머감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다큐에 따르면 원래 뱅시는 그가 기획한 미국에서의 전시회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고, 또 다시 거리예술이 제도권의 상업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을 보면서, 거리예술의 진정한 모습을 티에리의 기록물을 통해 알리기 위해 티에리에게 기록물을 편집해 작품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티에리의 재앙 수준의 작품에 넋을 잃은 뱅시가 작품의도를 완전히 바꾸고 티에리의 자료를 기초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면서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즉, 뱅시의 권유에 따라 티에리 스스로가 전시회를 기획하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 과정이 제도권 미술계의 허영심에 찌든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을 간파한 뱅시가 작품을 거리예술에 대한 소개 다큐가 아닌 거리예술을 기록하고 다니던 티에리의 인생역전 드라마로 바꿔 버린다. 이를 통해 그는 다다이즘, 바스키아, 그리고 뱅시 그 자신 등, 미술계의 연속되는 사기극이 티에리에 이르러서도 반복재생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특히 티에리가 존경하는 뱅시의 권유에 따라 기획한 전시회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어이없는 대규모의 전시회로 만들고, 구인모집을 통해 작품을 제작할 기술자들을 모집하고 – 마치 다큐에 언급된 데미안 허스트처럼 – , 전시장을 기존의 팝아트를 포토샵으로 변형시킨 작품으로 메워가는 과정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재생산 도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사기극의 극적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예술의 자판기 수준이랄까?

예술적 재능과 관련 없는 티에리의 성공에 대해 뱅시 등 거리예술가들은 씁쓸한 미소를 짓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티에리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이룬 성공에 흡족해 한다. 작품구입자들은 티에리의 작품이 어떤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건 간에 다음 거래에서 만족할만한 투자수익을 거두기만 하면 되니까, 어쨌든 이 예술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은 시장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보관되거나 유통될 것이다.

금융위기에 관한 다큐멘터리 Inside Job 短評

2008년의 금융위기는 내가 여태 살아오는 동안에 겪었던 중 가장 큰 경제위기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는 그 이전에 외환위기라는 심각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2008년의 경우는 전 세계가 함께 지독한 몸살을 앓은 때였다. 덕분에 이 블로그도 그와 관련한 글을 올리느라 안 돌아가는 머리를 많이 굴리기도 했던 때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며, 누구의 책임인가? 왜 다른 투자은행들은 보호를 받았는데, 리만브라더스는 침몰했을까? 위기는 해소되었고 시장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많은 물음에 많은 대답이 책이나 보도를 통해 공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 큰 코끼리의 정체는 윤곽이 분명하지 않다.

맷 데이몬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다큐멘터리 Inside Job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Peter Gabriel의 Big Time을 배경으로 거대한 마천루의 풍경을 비추면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금융위기 당시 당사자들이었던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코끼리의 윤곽을 더듬어 간다. 부족한 부분은 제작진의 분석으로 채워간다.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영화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는 금융위기가 월스트리트와 FRB, 그리고 이들과 친한 학계 등 금융 기득권의 내부자 소행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들은 정부의 규제를 없애 거대한 거품을 만들고 여기에서 수많은 이익을 독점했고 마침내 그 거품이 터지자 국민의 세금으로 스스로를 구제한다.

이 모든 야바위 짓은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하에 진행되었는데, 그런 파렴치한 짓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대안으로 뽑은 오바마 조차 재빨리 금융 기득권 집단의 편으로 돌아섬으로써 유권자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이 부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켰다) 이는 또한 금융위기가 해소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즉, 위기는 이른바  “적정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의 공급을 통해 자본소유의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하려 했던 미국정부의 드라이브가 – 이 부분은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진 않았다 – 금융부문 비대화와 탈규제로 이어지며 발생한 근본모순인데, 정부와 금융 모두 이러한 상황을 반성하는 기색은 없고 다만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다.

비대해진 금융부문이 여태의 이익을 계속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거품이 필요하고 2008년 이후 구제금융이라는 이름하에 뿌려진 천문학적인 자금은 바로 그러한 새로운 거품, 이른바 ‘닷거브 거품(dot gov bubble)’이다. 이 거품이 QE3, QE4로 이어질 수 없음은 자명하고 그 끝은 어떠할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차분히 2008년 금융위기의 앞뒷면을 살펴보고 싶은 분이라면 이 영화가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전에 관련서적을 읽었거나 읽을 분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많다. 영상은 차분한 편으로 마이클 무어식의 신세대(?) 다큐에 익숙한 분이라면 약간은 지루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MTV 스타일은 아니니까~

비디오는 영화의 엔딩타이틀에 사용된 곡이다. MGMT의 Congratulations.

전쟁의 안개

케네디 정부에서부터 린든 존슨 정부에 이르기까지 7년여를(1961년~1968년) 美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S. 맥나마라의 미들네임은 Strange다. 결혼을 앞둔 시절, 그의 미래의 아내가 될 약혼녀가 청첩장을 쓰기 위해 그에게 미들네임을 물어보자 그는 “Strange”라고 대답했다 한다. 그러자 약혼녀 왈 “이상해도(strange) 좋으니까 말해줘요.”

실제로 핵전쟁의 위협이 전 세계를 뒤덮고 있던 시절의 ‘美제국주의 전쟁장관’이라 할 수 있는 사악한(!) 이에게 별로 어울리지 않는 코믹스러운 상황인데, 이 이름이 또 역시 핵을 소재로 하여 당시(1964년) 큰 인기를 끌었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캐릭터 ‘스트레인지러브 박사(Dr. Strangelove)’와 묘하게 겹치면서 당시의 부조리한 상황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에롤 모리스의 다큐멘터리 <전쟁의 안개>(주1) 에 따르면 처음에 케네디는 그에게 재무장관 직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국방장관 직을 제안했다고 한다.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결국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던 거대기업 포드자동차의 CEO였던 맥나마라는 가족들이 탐탁해하지도 않는 연봉 2만5천 달러의 초라한(!) 국방장관이라는 직책을 수락한다.

어떻게 하버드MBA 출신의 포드자동차 CEO였던 이 경제인이 국방장관이라는 ‘이상한’ 직책을 맡게 되었을까? 그의 미들네임처럼 상황이 약간 이상하긴 하다. 물론 미국권력의 음모론에 관한 책 <제1권력>의 저자 히로세 다카시 에게는 쉬운 답이다. 포드는 미국의 실질적 권력자인 모건-록펠러 연합에 속한 기업이기 때문에 발탁된 것이다.

각설하고, 맥나마라는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방장관으로서 2차 세계대전, 소련과의 핵전쟁 위기, 그리고 베트남 전쟁 등 현대사의 중요한 위기국면을 모두 거쳐 온 흔치 않은 인물이다. 그러면서 수만 명의 살상을 지켜보았고, 수천만 명의 목숨이 달린 의사결정을 했고, 그 자신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명령을 하달했다.

시종 일관 그가 직접 증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전쟁의 안개>에서 그는 애써 자기 자신을 변명하려 하지 않지만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는 것도 아니다. ‘11개의 교훈’이라는 소제목으로 정리되는 그의 입장은 국가적 결정을 하는 이에게는 종종 합리성이나 도덕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논리로 정리될 수 있다. 마키아벨리식 군주론의 냄새도 난다.

다만 기업의 CEO답게 그는 – 적어도 그의 증언에 따르면 – 강경론도 유화론도 아닌 상황논리에 따른 그만의 합리성을 추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케네디 정부에선 핵전쟁 직전의 상황을 무마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국내 어떤 신문의 주필은 이 상황을 해상봉쇄의 강경론의 승리인 것처럼 암시하고 있으나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중도적 타협이랄 수 있다.

이후 베트남 사태에서도 주전론자가 아니었던 그는 미국이 발을 뺄 것을 케네디에게 건의하여 성공하는 듯 하였으나 케네디의 갑작스런 암살로 그의 시도는 실패하였다고 한다. 이후 주전론자 린든 존슨의 대통령직 승계와 미국의 자작극 ‘통킹만 사건’으로 미국은 베트남전이라는 늪에 빠져든다. ‘히로세 다카시’적 음모론의 냄새가 나는 구석이다.

어쨌든 <전쟁의 안개>는 핵심 당사자인 맥나마라로부터 이 두 중요한 현대사에 대해 직접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쿠바 위기 때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렸음에도 미쏘 양 당사자들이 모두 이성적이었고 서로 잘 알았기 때문에 참사를 피할 수 있었던 반면, 베트남 사태는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그만큼 핵전쟁의 종말에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이성적인 개인들이 말입니다. 케네디는 이성적이었습니다. 흐루시초프도 이성적이었습니다. 카스트로도 이성적이었습니다. 이성적인 개인들이 우리 사회의 총체적 절멸에 그렇게 가까이 간 것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막판에는 소련인 들의 의중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는 그들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그 결과 오판이 야기됐죠.”
로버트 S. 맥나마라(전쟁의 안개 中에서)

다시 한 번 앞서 언급한 어느 신문의 칼럼과 이 전쟁의 신(神)의 증언을 비교하여 생각해보자. 개개인이 이성적이고 서로의 의중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었기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강경론은 꼬리를 내렸다. 베트남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와 오판으로 전쟁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 신문의 칼럼은 이 둘 중 지금 어느 길을 가자고 부추기는 것일까?

어쨌든 자연인 맥나마라는 포드자동차의 CEO로서 세계 최강대국의 국방장관으로서 명예를 누리다 작년 유명을 달리했다. 어찌 보면 복 받은 인생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는 매우 불행한 인간이다. 자기 눈으로 자기 손으로 수천수만의 생명을 앗아가는 맥락결정의 정점에 서있었던 업(業)이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때로 보통사람이 가장 되기 힘든 법이다.

(주1) 이 말은 전쟁은 인간의 이해력과 판단력을 뛰어 넘을 정도로 복잡해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끔 한다는 의미에서 쓰인 말이다. 어쩌면 현재의 천암함 사태의 상황과도 맥락이 통하는 말이다.

The Road to Guantanamo

관타나모로 가는 다소 복잡한 경로에 관해 서술한 영화이다. 관타나모는 쿠바 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1903년 이래 미국이 자국의 해군기지로 사용하고 있으며, 소위 미국의 테러세력과의 전쟁 이후 불법적인 전쟁포로 수용소로 유명해진 지역이었다.

관타나모 수용소 포로들에 대한 미국 당국의 불법감금, 폭력행사 등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으나 미국 정부는 그 곳이 자국의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어 각종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는 파키스탄계 영국청년 네 명이 충동적으로 아프카니스탄에 들렀다가 부당하게 관타나모 기지에 2년여를 불법감금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극은 실제인물의 증언, 전문배우들의 재연, 그리고 각종 언론에 공개된 필름 등을 섞어서 일종의 다큐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된다. 역동적인 카메라는 마치 우리자신들이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이미 24 Hour Party People 등을 통해 음악에도 적지 않은 공력이 있음을 증명한 마이클윈터바텀은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음악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긴장감 조성만을 위한 음악을 화면에 깔아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이 영화는 영국의 ‘채널4’에서 방영되어 영국 내 반전여론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이 ‘순수한(innocent)’ 네 명의 영국청년의 기구한 운명은 제3세계의 인종적 ’운명‘을 지닌 이들이 아무리 제1세계에 편입되어도 결국은 얼마나 당연하게도 다양한 인종적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난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을 포함한 유색인종의 폭동 역시 그 나라 안에서조차 제3세계 인종은 내부식민지화 되어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기에 이들의 에피소드는 그 사연이 좀 더 기구할 뿐 예외적인 경우로 치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좀 더 나아가서 관타나모 기지에 감금된 ‘불순한’ 젊은이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작심하고 ‘성전(聖戰)’에 참여했기에 기꺼이 인권을 유린당하여도 정당한 것인가? 영화 속의 부시의 말처럼 “그들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를 저버린 살인자”들인가?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시가 선거에서 참패하고 럼스펠드를 희생시켰다 할지라도 여전히 세상은 주류에 의해 주입된 편향된 가치가 지배하고 있다. 약자가 하면 ‘불순한’ 테러이고 강자가 하면 자위적 수단으로써의 ‘순수한’ 응징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영화의 후속편으로 ‘불순한’ 젊은이들의 관타나모 여행기를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