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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중시 경제이론이 중시하는 것, 남자의 기 살려주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또 보호하는 과정에서 남성으로서의 만족감을 느낀다. 복지사회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 결국 술집이나 거리에서 남자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려 하게 된다. [중략] 남성과 여성간의 이 같은 차이만으로도 남자들이 가정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관료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승진기회를 얻기 위해 적극적인 경쟁을 벌리며 또 돈벌이를 인생의 주요목표 중의 하나로 삼으려 하는 의욕이 여성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남녀 간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남녀 간의 소득차이는 모조리 납득이 될 것이다.[조지 길더 지음, 김태홍/유동길 옮김, 富와 貧困, 우아당, 1981년, p185]

레이건 정권의 경제기조였던 “공급중시 경제이론의 성서(聖書)(옮긴이의 끝말에서 인용)”로 불리기도 하는 조지 길더의 책의 일부다.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유행했던 경제학 사조로 이들의 핵심적인 정책 처방은 조세 감면과 규제철폐였다. 이른바 1980년대부터 세계 경제에 풍미했던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반이자 이러한 사조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자본이었다. 즉, 사후적 관찰에 따르면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소는 투자 확대와는 큰 연관이 없었으며, 오히려 소득불평등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조지 길더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어려움은 주로 물적자본의 악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양심, 즉 얻기 위해서 주어야 하고 수요하기 위해서 공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양심을 손상시키는 심리적 생산수단 – 경제인의 사기와 영감 – 의 지속적 파괴에 있다(같은 책 p44)”고 보았다. 결국 저자는 경제인의 사기와 영감을 북돋아서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감세와 규제 철폐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되어 공급이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이른바 “낙수효과(落水效果)”에 따라 부(富)가 자연스럽게 하층민에게까지 흘러내려 갈 것이었다. 여전히 많은 우익이 공감하고 실천하는 경제적 사고의 전형이다.

President Ronald Reagan addresses the nation from the Oval Office on tax reduction legislation.jpg
By Series: Reagan White House Photographs, 1/20/1981 – 1/20/1989
Collection: White House Photographic Collection, 1/20/1981 – 1/20/1989 – https://catalog.archives.gov/id/12008442, Public Domain, Link

결국 공급중시 경제이론은 우생학적인 계급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자본가의 사기와 영감을 위해 세금과 규제를 없애주면 사회가 부유해질 것이라는 사고의 전제는 이러한 우생학적 사고인데, 위 인용문은 이를 남녀 간의 생리적 차이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오늘날의 성인지 감수성의 기준에서 보면 기겁할 저 발언을 “경제학”으로 추상화시킨 것이 공급중시 경제이론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비록 영국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대처 총리가 영국식 신자유주의를 주도했지만, 누구보다도 마초적인 가혹함으로 사회약자를 탄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우생학적 사고가 배어있는 명예남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에서 소개하는 조지 길더의 작가로서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애초 “미디어계의 반페미니즘의 권위자”라는 틈새를 차지한 후 『성적(性的)인 자살』, 『벌거벗은 노마드』, 『공주의 문제』 등과 같은 “페미니즘의 참혹한 피해”를 다룬 내용의 책들을 출간하였지만, 상업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레이건의 선거 사무장이었던 윌리엄 케이스의 재정적인 지원과 레이건의 예산 담당자였던 데이비드 스톡먼이 홍보를 맡아준 『부와 빈곤』이 인기를 누리며 인기 작가와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마초적인 레이거니즘의 적자(嫡子)였던 셈이다.

시민 사회 바깥에 있는 특수한 존재가 된 현대 국가

중세로부터 나온 민족들의 경우에 부족 소유는 다양한 단계들 – 봉건적 토지 소유, 단체적 동산 소유, 매뉴팩처 자본 – 을 거쳐서 대공업과 보편적 경쟁에 의해서 조건지어진 현대적 자본으로, 공동물의 모든 가상을 벗어 던지고 소유의 발전에 대한 어떤 간섭도 배제한 순수한 사적 소유로 발전한다. 이 현대적 사적 소유에 조응하는 것이 현대 국가인데, 이 현대 국가는 조세로 인해 점차적으로 사적 소유자들에 의해 매수되고 국채 제도로 인해 사적 소유자들의 수중에 떨어져서, 그 존립은 증권거래소에서의 국채 증권의 등락 속에서 사적 소유자들, 즉 부르주아들이 국가에 부여하는 상업적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부르주아지는 그들이 바로 더 이상 하나의 신분이지 않고 하나의 계급인 까닭에, 더 이상 지방적으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자신을 조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들의 평균적 이해에 보편적 형식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동체로부터의 사적 소유의 해방을 통해서 국가는 시민 사회와 나란히 있는, 그리고 시민 사회 바깥에 있는 특수한 존재가 되었다.[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 중 독일이데올로기, 번역 최인호 외, 감수 김세균, 박종철출판사, pp259-260]

‘소유’라는 개념이 온전하게 완성되는 시기는 현대 국가에 이르러서라는 점, 그리고 국가는 그 사적 소유자가 갖다 바치는 세금에 “매수”되고 그들이 구입한 국채 증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통찰이다. 조세권을 국가의 횡포가 아닌 실은 국가가 사적 소유를 인정하게끔 만드는 당의정(糖衣錠)이라는 인식이 ‘과연 뭐든지 삐딱하게 보는 좌익 듀오답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고, 국채 제도로 인해 국가가 부르주아지의 수중에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국가를 시민 사회로부터 분리해 별도의 특수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서술하는 이 대목이 현대 국가의 경제사를 관통하는 정확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새삼 그들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현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날 국채의 구입자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제 채권 시장은 각국의 정부출연기관, 연기금, 금융기관, 기타 갖가지 사적 소유자의 돈을 위탁받은 신탁(펀드, 리츠 등)들이 각국의 국채, 공사채, MBS, 회사채 등을 사들이고 되파는 국제적인 규모의 시장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산업자본 융성의 시기를 거쳐 금융자본의 제도적 틀이 국제적으로 기반을 잡게 되면서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각국 정부의 통화나 금리 정책은 온전히 시민 사회의 목표와 부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 시장을 보며 특히 공감하게 되는 구절이라 옮겨 적어보았다.

국제자본주의인터내셔널은 테크자이언트를 길들일 수 있을까?

G7 국가들이 이번 주 콘월의 정상회담에서 서명할 협정은 두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첫째, 여러 나라에서 영업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이 어디에서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든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국가에서 어떤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벌지라도 그들은 그곳에서 매우 적은 세금만을 내곤 했다. 이것은 그들이 더 낮은 세율로 더 많은 이윤을 취하는 곳에 본사를 두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G7 협정에 따라 매출 대비 10%의 이윤을 취하는 어떤 나라 정부라도 이들 기업에게 과세할 수 있게 된다. [중략] 협정의 두 번째 부문은 15%의 국제적 최저 법인세율이다. 이것의 목적은 각국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율을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중략] 아일랜드는 작은 나라들의 사정을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EU의 멤버이고 협정의 구속을 받는다.[G7 tax deal: What is it and are Amazon and Facebook included?]

영국의 한 해변 마을에서 G7 회담이 열리고 있다. 그 와중에 G7 회의석상에서는 미증유의 세금 “혁명”이 진행 중인데 팬데믹 와중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초대를 받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인지, 우리 매스미디어의 관련 소식은 코로나19 관련이나 문 대통령의 동향에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특별히 세금 협정의 의미에 무관심하거나 또는 그 의의를 싫어하는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1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이 뉴스가 특히 반가운 소식인 것이 몇 년 전에 이 블로그에 ‘전 세계에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라는 부질없는 희망사항을 끼적거린 적이 있는데, 이제 그것이 현실에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중략]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주요 국가들이 단일세율로 자본유치에 대해 일종의 공정경쟁을 선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쿄토 의정서에서 CO2 감축을 위해 의무감축량을 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또 이래놓고 미국이 빠져나가면 우스운 꼴이 되겠지만 말이다.[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이번 협정이 각국의 세법에 적용이 된다는 그동안 각국 세무당국을 조롱하며 탈세를 일삼던 테크자이언트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금액의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매출을 달성할 동안 “稅테크”를 통해 쥐꼬리만큼의 세금만을 내는 동안 지구상의 자산은 점점 더 소수에 집중되어 왔고, 각국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국채로 발행하거나 엄한 국민에게 소비세를 더 걷는 방식으로 예산을 충당해왔다. 팬데믹 사태 이후 각국의 부채비율이 치솟고 중앙은행의 재정부실이 가속화되는 이 상황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망한 시스템을 빚으로 메꾸고 있는 상황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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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jksvoorlichtingsdienstFlickr: G7 in het Catshuis, CC BY 2.0, Link

플랫폼 경제와 테크자이언트가 득세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이전 체제와 다른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이동성(mobility)”다. 대규모 부지에 세워진 제조업 공장은 이제 우버나 카카오톡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안에 집약적으로 담겨져 있어 그 안에서 생산, 유통, 노동자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영업범위와 기업 본사의 위치가 공간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던 과거의 기업과 달리 테크자이언트들은 언제든지 M&A, FTA, 각국의 세법과 유치정책 등을 활용하여 본사를 자유로이 옮길 수 있게 됐다.2 노동조합도 정부도 이렇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자본의 이동성에 굼뜨게 대응하느라 넋을 놓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이번 협정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큰 배경은 역시 미국 행정부의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으로의 정권 교체일 것이다. 테크자이언트 대부분의 CEO가 바로 미국인임에도 민주당으로서는 더이상 이들의 전횡과 오만함을 묵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재무부는 각국의 세율 인하를 통한 기업 유치 행태에 대해 “바닥을 향한 레이스를 종식(ending the global race to the bottom)” 시켜야 한다고 발언했을 정도로 이 협정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결국 전 세계 최저 법인세율이 관철되면 여러 다국적 기업의 본사,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세금이 미국으로 귀속되리라는 복안도 깔려 있을 것이다.

국제자본주의인터내셔널(!)이 테크자이언트를 길들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업이 스스로 악마가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하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2012년에 애플, 아마존, 구글 등에 의한 세금회피와 관련한 스캔들로 대중이 분노하고 이로 인해 G20이 행동에 나섰을 때, OECD는 국제적인 법인세 체계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3년 후에 “기반 부식과 이윤 이동(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프로젝트 또는 BEPS라 알려진 패키지가 탄생했다. [중략] 예를 들어 이로 인해 이들 기업들의 이윤과 세금 납부에 관한 국가간 과세 당국 보고서의 공유가 시작됐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표준은 오로지 거대 초국적 기업에만 적용되었고 보고서는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아 시민사회에 필수적인 투명성을 담보해내지 못했다.[Decision Time for the Future of Corporate Taxation]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다뤘던 바,1 초국적 기업들, 특히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두고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생산물의 특징상 더욱더 자유롭게 그들의 이윤과 비용을 지구적 범위에서 이윤극대화의 지역으로 이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별국가의 과세정의를 초토화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 예외적으로 초국적 기업이 징벌적 과세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보도되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의 제시는 요원한 가운데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프로젝트가 OECD 등에서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온갖 꼼수를 – 꼼수이기는 하지만 합법적인 – 동원하고 있는 기업의 세금회피 시도를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2017년에도 구글은 네덜란드의 쉘을 통해 227억 달러를 버뮤다로 송금했다. 같은 해에 페이스북은 13억 파운드의 매출을 올린 영국에서 7백4십만 파운드의 세금을 냈다. 보다폰은 2016~2017년 기간 동안 이윤의 거의 40%를 조세회피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생산물의 유동성, 국제적 로비, 과세당국간 협조체계의 미흡이 이런 과소과세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ICRICT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단일 과세를 위한 토론을 지지하는데, 이를 통해 그 기업들의 전 세계에서의 수입을 통합하여 그들의 이윤을 이동시키는 데 드는 이전비용의 지불을 좌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국제적 이윤과 상호연결된 세금은 기업의 매출, 고용, 자원, 그리고 심지어 각국의 디지털 사용자와 같은 객관적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지역에 배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초국적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윤에 대해 20~25% 정도의 지구적인 기초 실효 법인세율의 도입을 지지한다.[같은 글]

ICRICT는 인용문의 저자가 의장으로 있는 국제 법인세 과세 개혁을 위한 독립적 위원회(Independent Commission for the Reform of International Corporate Taxation)를 가리킨다. 저자는 BEPS와 같은 협의체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를 가진 단일 과세나 지구적 법인세율 적용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조치 없이 초국적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악마가 안 되려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역시 새 정부 들어 이런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대선 후보 공약 리뷰] 그래서 복지는 무슨 돈으로 할 건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주요 후보들은 다양한 복지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공약을 제출하면서 재원조달 방안으로 증세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증세를 염두에 둔 ‘중부담·중복지’를 제안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일찌감치 사회복지세 신설, 법인세 인상을 약속했을 뿐이다.[‘복지 확대’ 약속한 문·안·홍, 재원조달 방안에 ‘증세’는 없다]

각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을 내놓고 있는 반면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표명 없이 눙치고 있다는 비판기사다. 503이 당초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가계의 세금부담 증가속도가 소득의 그것에 비해 2배에 달했다는 보도도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정부가 세금을 더 걷었고, 현재의 후보들도 세금을 안 걷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지금 공약으로라도 그 세수확보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이는 명확한 기조 없이 세금 우려내기 만만한 상대만을 고를 것이란 정황이다.

즉, 주요 세원인 법인세와 소득세 세입이 2012년부터 역전되어 소득세 세입이 더 많은 것도 한 예다. 진짜 현금이냐 아니냐에 말도 많았지만, 기업의 내부유보금이 증가일로인 상황에서 503은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에 관한 소득세제 개편 등 “사실상 증세”라는 편한 길을 걸었다. 증세냐 아니냐의 논쟁은 사실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슈 같다. 법인세율 인하는 친시장적인 정부에서 가속화되어온 정황이 있고, 그 경제학적 논리로 내세웠던 “낙수효과” 이론은 비웃음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법인세 인상을 진지하게 고려할 시점이다.

심상정 후보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거기에 사회복지세라는 목적세도 신설하겠다고 한다. 안철수 후보는 “법인 고소득 대상 누진세율 체계 확립”이란 공약을 내놓았고, 국민의당은 이미 24%로 세율을 올리는 법안을 제출했다.1 문재인 후보는 “재정지출 개혁과 세입확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문 후보 스스로 “고소득자, 고액 상속ㆍ증여자 과세 강화, 자본소득 과세 강화,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그리고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이런 식으로 제시하며 동의를 받겠다”고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입장이 모호하다.2

유승민 후보는 “저부담-저복지”를 “중(中)부담-중복지”로 전환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어떻게 그렇게 복지의 기조를 바꿀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세제 구조 조정 및 세제 개편”이란 표현으로 눙치고 있다. 홍준표 후보는 “탈루소득 발굴 및 지하경제양성화 등 세정강화”, “대기업 세제감면 재정비”를 이야기하고 있어 가장 소극적인 입장이다.3 경남도 부채를 다 갚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하는 것 같다. 요컨대 법인세와 기타 목적세 공약에 있어 심 후보가 가장 적극적, 안 후보가 적극적, 문과 유 후보는 유보적, 홍 후보가 가장 소극적으로 보인다.

한편 가계의 세수부담은 가처분소득의 감소라는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꽤 신뢰를 얻는 주장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담뱃값 인상으로 저소득층이 더 부담이 됐다는 정황에서 볼 때, 결국 가처분소득과 소비와의 상관관계가 적은 부유층에 세금부담을 더 지우는 누진세 인상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심은 소득세 누진강화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자증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은 “선 금융· 부동산 등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후 고소득 세율 인상 최고세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어 세율 인상에 부정적인 인상을 풍긴다.

문 후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고소득자, 고액 상속ㆍ증여자 과세 강화, 자본소득 과세 강화”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유 후보는 공약집에서 조세에 관한 별도의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누진구조라는 큰 틀에서는 찬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금감면 제도 개선 등에 방점을 찍고 있다. 홍 후보는 달리 언급할 내용이 없다. 종합하면 세금 정책은 심 후보가 가장 강경하고 문과 안 후보가 비슷한 내용, 유 후보가 유보적, 홍 후보는 퇴행적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이제 차기 정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증세가 논의할 시점인 것 같다.

조세도피처에 숨겨진 돈의 간단한 現況

비밀계좌를 통해 외국인들은 어떤 투자를 하는 것일까? 2013년 가을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다. 스위스에 유치된 총 1조 8천억 유로 가운데 겨우 2천억 유로만이 은행의 장기 예금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나머지는 주식, 채권, 특히 투자펀드와 같은 유가증권으로 투자되어 있다. 이 투자펀드 가운데서 룩셈부르크가 대략 6천억 유로로 가장 알짜배기를 유치하고 있다.[국가의 잃어버린 부 조세도피처라는 재앙, 가브리엘 주크만 지음, 오트르망 옮김, 앨피, 2016년, p60]

미국 주식에 투자되는 룩셈부르크 투자펀드를 예로 들어 보자. 두 나라 간의 조세 조약에 근거해, 미국은 룩셈부르크의 투자펀드가 미국 주식에 투자하여 올린 배당금에 전혀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룩셈부르크에서는 투자펀드가 수령한 배당금에도, 투자펀드가 예금자들에게 배분하는 배당금에도 세금이 붙지 않는다. 아일랜드와 케이맨 제도도 마찬가지다.[같은 책, p50]

이 두 문구를 통해 선진국의 부자들이 그들의 부를 어떻게 조세도피처를 통해 세탁하는지 그 방식의 편린을 들여다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전 세계 가계 금융자산 중 약 8%에 해당하는 5조 8천억 유로가 조세도피처 소재 계정에 유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중 3분의 1에 육박하는 자산이 스위스에 예치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자산은 다시 투자펀드로 운용되고 있다.

한편 투자펀드의 막대한 비중이 룩셈부르크에 소재하고 있다. 이는 그 나라 스스로가 투자펀드의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고, 미국과의 조세협약을 통해 이익을 미국으로 송금해도 세금을 면제받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인이 스위스 비밀계좌를 통해 룩셈부르크 투자펀드에 돈을 운용하여 올린 수익을 미국으로 송금하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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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ovitOwn work,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222458

참 아름다운 나라이긴 합니다만….

결국 “비밀계좌”라는, 스파이 소설 등에서는 다소 낭만적으로 여겨질지도 모르는 세탁된 자금은 지금도 투자펀드를 통해 전 세계 자산에 투자되면서 거품 형성과 붕괴에 일조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세금을 걱정하지 않으니 이들의 투자성향은 좀 더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자산시장은 이로 인해 더욱 변동성이 심해질 개연성이 있다.

조세도피처에 숨겨진 자금은 투자시장에 미치는 악영향보다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해당국가에 끼친다. 이들이 돈을 숨겨놓음으로써 정부가 걷을 수 있는 세수는 줄어들고, 이로 인해 정부가 집행할 수 있는 사업이 이행되지 않거나 민간자본의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사회의 빈곤화 현상과 투자자의 부유화 현상이 겹쳐지는 것이고 “트리클다운 효과”는 한낱 환상이 된다.

저자는 이런 악순환의 해결을 위한 대안의 하나로 “세계금융등기부”를 제안하고 있다. 전 세계 자산의 재무상태표를 작성하여 이익의 원천과 소재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각국의 상호협조 하에 이렇게 세계금융등기부가 마련되면, 적어도 어느 정도 과세가 투명해질 것이다. 예전에 농반진반으로 주장한 전 세계 단일세율 과세와 결합하면 좀 더 파급력이 있을 것 같다.

전쟁의 아이러니, 세제개편

일본은 1938년 전시총동원법이 제정된 이후 전면적인 전시체제에 들어섰는데 모든 산업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편되었고 국가 재정규모는 팽창하여 1936년에 약 22.8억 엔이던 것이 1940년에 109.8억 엔에 이르렀고 전쟁이 막바지이었던 1944년에는 861.6억 엔으로 급격히 팽창하였다. 한편 이들 각 연도에 군사비가 국가 총재정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36년에 47.2%이던 것이 1940년에는 72.4%, 1944년에는 85.3%까지 이르게 되었다.[역사 속 세금이야기, 문점식 지음, 세경사, 2012년, p231]

전쟁은 당연하게도 “큰 정부”를 만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일본은 큰 정부가 탄생하는 극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인용문에서도 보듯 일본 경제는 1936년에서 1944년이라는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재정규모가 무려 37배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군사비는 그 재정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군사비로만 놓고 볼 때에 그 규모의 증가추이는 68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쯤 되면 당시 일본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쟁기계 그 자체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참전국이 이렇게 재정규모를 극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배경에는 세금이 있다. 전쟁비용 조달은 자체비용, 침략국 수탈, 채권발행 등이 있겠으나 근현대에 들어서 일반화된 수단은 바로 조세다. 특히 양차대전은 각국이 세제 개혁을 통해 항구적인 재정조달수단을 확보하게 되는 주요한 계기가 된다. 세금이라는 것이 결국 국가가 국민에게 별도의 직접적인 반대급부 없이 돈을 걷는 방법인 만큼 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은 그런 인기 없는 정책을 – 특히 직접세의 경우 – 밀어붙이 좋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1940년까지 미국에서 소득세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소득세제도가 도입된 이후 30년 동안 전체 인구의 6% 정도만이 소득세를 납부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소득세제도가 국가 재정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었다. 재무부장관이었던 헨리 모겐타우는 전쟁기간 중에 라디오·신문을 통하여 만화가, 아나운서, 가수 등을 동원하여 전 국민을 상대로 세금 납부 촉구 홍보를 하였다. 이처럼 효과적인 홍보 전략과 국민들의 애국심에 힘입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2년간 연방정부는 전쟁비용의 약 반을 세금으로 충당하였다. [같은 책, pp225~226]

인용문처럼 당초 직접세인 소득세는 전체 세수에서 미미한 비중만을 차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비용이 많이 드는 통치행위를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기에 정부는 정치권을 설득하고, – 의회가 있는 경우 의회 동의를 얻어 – 납세자를 설득하여 – 공권력과 애국심 호소 등을 통하여 – 세수를 확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납부액이 1939년 기준 국민총생산의 1% 정도였는데 전쟁 중인 1943년도에는 8%까지 증가하였다고 한다.

현대의 세제개편은 이렇듯 소득세 납세자 수가 대폭 증가하며 간접세 중심 세제에서 직접세 중심 세제로 비중이 옮겨가게 된다. 한편 전쟁이 직접세의 당위성을 당연시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 징수를 가능케 하는 수단은 대공황과 전쟁 국면에 각국이 도입한 국민계정(national accounts)일 것이다. 국민국가 단위의 경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이런 시도는 1920년대 소비에트 블록에서 시작되었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거시경제학의 득세와 세수 증대라는 목적을 위해 본격화되었다..

전쟁의 아이러니다. 파괴를 위한 존재가 세제개혁과 관료기구의 성장을 추동했고, 전후 이는 자본주의 진영 역시 야경국가가 아닌 적극적인 경제주체로 활동해야 함을 일깨워준 계기가 된 것이다. 그보다 더한 아이러니는 누진세 도입이다. 전쟁 당시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94%였는데 누진세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이는 바로 칼 맑스였기 때문이다. 자본가에 의한 전쟁을 반대한 칼 맑스가 주창한 누진세가 전쟁을 통해 정착된 셈이니 가장 지독한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