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진원지에 존재하는 여전한 위기

26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주택 재고는 이 나라의 주식시장의 총액보다 약간 더 많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 층이다. 11조 달러에 달하는 부채의 미국 모기지 금융 시스템은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금융 리스크가 가장 크게 집중된 곳일 것이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약 1조 달러의 모기지 부채를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어 국제 금융 시스템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가혹한 경기침체기에 폭발한 이래 10여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고 있는 곳이다.[Comradely capitalism]

전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이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 여부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면, 그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은 미국 주택시장의 부침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리고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미국 주택시장의 자산 규모는 단일 시장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따라서 이 시장에는 당연히 수많은 투자자들과 그들을 돕는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 풍경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의 풍경이었고, 그 이후의 상황은 잘 아는 바와 같다.

두 번째의 큰 변화는 2008년 12월의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긴급 구제조치가 정부의 더 커다란 역할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전에는 민간이 운영했던(비록 암묵적으로 보증은 하고 있었지만) 모기지 회사들인 프레디맥과 패니메의 대주주가 됐다. 이들은 이제 “후견체제(conservatorship)”, 종결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일종의 명목상의 한시적인 국유화 체제 하에 있다. 다른 증권화 업자들은 퇴출했거나 파산하였다. 이는 대부분 민간 부문에서 이루어졌던 부채의 증권화가 이제 거의 완전히 국영화됐음을 의미한다.[같은 글]

이코노미스트의 저 기사 제목을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인용문의 맥락에서 보자면 저 제목은 “동지적 자본주의”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있는 현 체제의 상류에 거슬러 올라가면, 즉 전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을 좌우하는 그 시장은 국유화됐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상황을 묘사한 기사의 제목을 저렇게 지은 것이다. 요컨대 2008년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가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체제는 사회주의라는 게 기사의 논지다.

한편 “동지적 자본주의” 성향은 채권자 현황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는데, 정부 모기지 채권의 27%에 해당하는 1조8천억 달러의 채권을 Fed가 매입했기 때문이다. 즉, 이는 국영 모기지 회사들이 금융위기 이후 전체 채권 중 60% 이상의 – 심지어는 80% 이상까지 – 보증부 채권을 발행했고, 이를 다시 Fed가 매입하여 가동시킨 시장이 바로 미국의 주택 모기지 시장이란 의미다. 시장은 존재하는데 그 시장의 주요 공급자와 주요 수요자가 정부부문인 시장, 그렇다면 이 체제는 “시장 사회주의”인가?


미국의 모기지 신규 발행분 조달 재원(출처 : 이코노미스트)

사실 그동안 미국정부는 국영 모기지 회사들을 다시 민영화시키려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1 Fed도 한시적으로 채권을 매입하겠다는 심산이었지만 상시적 조치가 되었다. “국유화”란 표현조차 “후견체제”라는 표현으로 세탁하였지만, 근시일 내에 이런 한시적 체제가 해소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미국 주택시장이 다시 호조를 보인다는 뉴스는 큰 의미가 없다. 리스크가 노출돼 폭락한 시장을 정부보증의 리스크 제로로 둔갑시킨 것은 닷컴버블의 변이인 닷거브버블(dot gov bubble) 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대안은 어쨌든 이들 국영 모기지 회사를 증자 및 수수료 인상 등의 방법으로 건전화시켜 민영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을 것이고 또다시 주택시장을 깊은 악순환의 수렁에 빠트릴 수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전부터 이미 프레디맥과 패니메는 “정부보증기업(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 : GSE)”이란 이름의 국유기업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리고 그들의 보증부 채권이 시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였었기에 민영화라는 대안도 사실 허상인 것이다.

미국의 주택시장은 민영화시키기에는 너무 크다.

“Too Big To Privatize.”

사회과학이 자연과학과 다른 점, 혹은 인간이 균류와 다른 점

생태학자 토비 커스와 그의 동료들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가 이를 증명했다. 이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균류를 각각의 용기에서 인의 양을 달리해 배양한 후 클로버 풀과 인연을 맺어주었다. 그랬더니 식물 파트너에게 인을 덜 나눠준 균류는 넉넉히 나눠준 균류에 비해 식물로부터 당분을 10분의 1밖에 받지 못했다. 그런데 무슨 조화 속인지, 식물은 이 기록을 기억하고 있다가 심지어 여러 가지 균류를 섞어서 뿌리에 넣어주어도 사기꾼 균류와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균류에게 당분 보상을 적게 준 식물도 인을 조금밖에 얻지 못했다.[원자 인간을 완성하다, 커트 스테이저 지음, 김학영 옮김, 반니, 2014년, pp241~242]

인(燐)은 질소족 원소의 하나로 동물의 뼈, DNA 등 생체에 중요한 화합물의 구성 성분이다. 따라서 식물이든 효모, 버섯, 곰팡이 등의 균류(菌類)든 생물이라면 이 원소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많은 식물들은 선입견과 달리 인을 스스로 채취하지 않고 인용한 글에서처럼 균류와 거래를 통해 인용한 글에서 언급된 인과 함께 칼슘과 물 등을 얻는다. 균류는 지표면 아래에 있는 인회석 등으로부터 칼슘과 인 등의 필수 무기물을 섭취한 후 남는 무기물을 식물과 거래하는데 그 반대급부로 당분 등을 공급받는다.

재밌는 것은 특정 당사자는 거래당사자가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적정한 거래상대가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인용한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불공정거래에 대해 적절하게 응징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면에서 식물과 균류의 거래는 시장경제를 매우 유사하다. 서로의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의 측면에서 거래가 성사될 만 하면 거래를 하고 이 거래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 거래상대방에게 벌칙을 준다는 아름다운 거래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거래가 서로의 능력 차이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도 시장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저자는 이렇듯 식물이 인간세상의 시장경제와 비슷한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하세계의 채굴과 무역 시스템이 없다면, 더딘 풍화작용으로 낙숫물 떨어지듯 감질나게 똑똑 떨어지는 무기물 원자에만 의지해서는 대부분의 식물이 생존할 수 없을 것”(p242)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식물과 균류의 거래는 어쩌면 데이빗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닮았다. 일례로 포르투갈이 포도주와 옷감을 모두 잉글랜드보다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잉글랜드가 포도주 생산을 포기하는 것이 합당하고 식물이 바로 그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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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f Lotys (Sicherlich) – 자작,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77219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식물과 균류의 거래관계에서 보듯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이 과연 – 인간의 과도한 개입만 제외한다면 – 조화로운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지질학자 필립 앨런이 2008년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대륙이 놀라운 속도로 마모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지각의 이동이 유발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식물의 뿌리와 균류의 섬유들이 대륙을 부수고 있고 이로 인해 맨틀이 더 격렬하게 교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자연의 균형은 인간의 편견일 수도 있다.

즉, 인용문의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자연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생태학적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때로 “불균형도 지구상의 생명의 정상적인 신호가 될 수도 있다”(p247)고 말하고 있다. 지구를 가이아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 – 로 보는 이들의 눈으로 보자면 만물은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것조차 인간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지구도 전 우주의 역사에서 보자면 스쳐가는 한시적 균형상태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자연에서의 인간의 개입이 어쩌면 그 자체로도 불균형한 자연에 편향이 조금 더 가감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예를 들면 저자는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인산염 광물을 채굴하는 것이 허버드브룩에서 균류가 인회석을 채굴하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p247)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자본주의의 가공할만한 생산성으로 말미암아 때가 되면 채굴량이 비료생산을 균류의 인회석의 채굴량을 훨씬 초과하겠지만, 어쨌든 요는 본래 자연조차도 불균형의 상태가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자연이 불균형상태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학문분야의 대전제가 사상누각일수도 있다는 판단과 상관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사회과학이란 용어는 19~20세기 자연과학의 놀라운 발달과 그 발달로 밝혀진 자연의 “합목적적 법칙”이 경제학 등 사회과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시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좌우의 입장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일례로 시장의 합목적적 합리성은 시장근본주의자들이 즐겨 차용하는 개념이 되었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시장의 법칙 하에 경제주체들의 행동과 가격을 시장에 맡겨두기만 하면 조화롭게도 적자생존의 법칙 등에 따라 우월한 경제주체가 돈을 버는 와중에 잉여인력을 퇴출당하고, 가격은 자연가격으로 수렴될 것이라 전제한다. 이런 아름다운 시장의 작동원리는 인간의 삶에서의 시장이 자연과학에서의 생태적 균형과 비슷하다는 사회과학적 시각을 차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저자가 말했듯 자연조차도 그러한 합목적적 조화 상태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점이 사회과학자를 당혹하게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자연과학의 관찰 결과 여태 우리가 선입견으로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이 조화로운 균형 상태가 아니라면 사회과학에서도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불균형 상태가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일까? 경제가 언젠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지혜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인간은 식물과 달리 “인간이 하는 일을 이해”(p247)하고 있기에 “우리의 행동에 윤리적 차원을 추가”(p247)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점이 인간세계를 자연과 구분 짓는 한 특징이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행동의 윤리적 차원을 추가해왔다.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던 시기에 종교와 法윤리를 추가해서 무자비한 살육을 중단했다. 노예제에 따른 윤리적 폐해가 파국으로 치닫는 시점에서는 노예해방을 통해 그 모순을 해결하였다. 자본주의의 노동착취가 혁명적인 위기를 초래할 시점에는 노동3권 보장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따라서 이런 윤리적인 보정은 경제발전의 자연적 법칙만을 믿는 이들의 편견보다 더 우월하게 인간세상을 치유해 왔다. 인간이 균류보다 우월한 게 있다면 그러한 반추의 능력일 것이다.

뉴욕 한복판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세 자매 이야기

뉴욕 맨해튼의 한 빌딩을 통째로 쓰고 있는 서점에 관한 짧은 뉴스인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아 공유한다. 이 서점은 창업자의 세 딸이 각각의 영역을 맡아 운영 중이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아직도 운영 중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딸 한 명이 “우리가 이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덕분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사업을 접었어야 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부동산을 팔라는 제의가 얼마나 자주 오느냐는 질문에는 “1년에 백 번”이라고 대답한다.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려움에 놓여 있는 책”이라고 대답한다. 책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교환가치가 높은 곳에서 어렵게(?) 서점을 운영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자영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건물주여야 한다는 시사점과 그런데도 교환가치가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장경제 하에서는 여유 있는 이들조차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역설을 말해주는 웃픈 에피소드다.

미국이 감옥의 민영화를 포기할 것인가?

8월 18일 샐리 예이츠 美법무차관은 법무부는 민간 감옥과의 계약을 줄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짧은 메모를 발행했다. 미국의 수감자수가 절정에 달한 3년 전, 그녀는 민간 감옥이 연방 시설의 초과분을 경감시키면서 유의미한 갭을 메우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연방 시설의 수감자 수는 13% 감소했고, 민간 감옥의 수감자 수는 거의 25% 감소했다. 이러한 감소에 따라 예이츠의 민간 감옥 회사와의 협상은 중요성이 덜해졌다. 영리추구의 감옥들 역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관이 운영하는 시설들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라고 예이츠는 적고 있다. 민간 감옥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직업 훈련”과 같은 유사한 “교정 서비스”가 결여되어 있고 “같은 수준의 안전 및 보안을 유지하지 않고” 있었다.[America is phasing out the federal use of private prisons]

마이클 무어 감독이 2009년 발표한 “자본주의 : 어떤 사랑이야기(Capitalism: A Love Story)”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민간감옥이다. 작품에서는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고기를 던졌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살아야 했던 한 소년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마이클 무어는 그런 가혹한 형벌의 이유가 더 많은 수감자가 더 많은 이윤으로 이어지는 민간 감옥의 이윤논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민간 감옥은 여러 민영화 아이템 중에서도 미국에서 최초로 사업화된 아이템이기 때문에 마이클 무어가 비판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소개하는데 그만큼 어울리는 아이템도 따로 없지 않을까 싶다.

사실 마이클 무어를 비롯한 민영화 비판론자가 지속적으로 그 해악을 제기해온 사업 분야가 바로 민간 감옥이다. 민간 감옥이 가지는 가장 모순적인 부분은 바로 비즈니스모델 그 자체랄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자도로는 더 많은 이윤은 더 많은 통행량으로부터 얻어진다. 이는 통행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지어진 도로로부터 얻고자 하는 사회적 효용과 경제적 이윤이 어느 정도 일치함을 의미한다. 한편,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민간 감옥의 더 많은 이윤은 더 많은 수감자 수로부터 얻어진다. 그렇다면 더 많은 수감자가 더 좋은 교정실적이나 더 안전한 사회로 이어졌던가? 이것이 민간 감옥이 가지는 근본적인 모순이다.

그러한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교정 서비스의 민영화 내지는 시장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이들이 시도한 대안이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사회영향채권(Social Impact Bonds : SIBs)”이다. 사업 수익률을 더 많은 수감자 수와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재범률과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이 처음 시도된 지 5년여가 흐른 지금 SIBs는 어느 정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과연 지속가능한 모델인지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주요하게는 정치적 요소, 성과의 측정 등에 있어 사업성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대안으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샐리 예이츠의 메모가 발표되던 날 감옥 회사들의 주가가 폭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업들이 단기간에 모든 계약을 해지당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수감자 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정시설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감해야 할 불법 이민자수의 증가도 시설수요를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범죄자의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그 범죄자의 교정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그렇기에 그 사회적 효용을 계량화하기에 한계가 많는 이 공공서비스를 어쨌든 시장화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아이템임은 분명하다.

어떤 낸니스테이트 “산업경쟁력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Q 주택용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에 과도한 지원을 하는 것은 아닌가.
A 산업용의 원가가 더 적게 드는데 요금을 더 물릴 수는 없지 않나. 산업용 요금의 경우 지금도 원가 이상을 받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산업용 요금은 76%를 올린 반면, 주택용은 11%를 인상하는 데 그쳤다. 다른 나라도 산업용 요금이 주택용보다 싸다. 산업용 요금을 100이라고 했을 경우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으로 주택용 요금이 108이며 OECD 국가의 주택용 평균은 140을 넘는다. 산업용 요금을 올리면 산업경쟁력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산업용 요금을 원가 이하로 보급하면서 과도하게 특혜를 주고 있다면 개편을 검토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에어컨 합리적으로 사용하면 ‘요금 폭탄’이란 말은 과장”]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의 일문일답중 일부다. 폭염을 맞아 사람들이 에어컨을 틀어대는 와중에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높은 누진세율 구조로 되어 있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전기요금 논쟁에 당사자가 직접 뛰어든 것이다. 산업용 전력요금이 가정용 전력요금보다 더 싸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채 실장은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을 걱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산업경쟁력을 위해 기업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 있을까?

단위 : pence per kWh


주) International Energy Agency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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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요금을 많이 올렸다고는 하나 그 요금수준은 그래프와 같이 다른 나라의 그것에 비해 무척 싸다. 우리보다 더 싼 나라는 노르웨이 정도인데, 알다시피 노르웨이는 산유국이다. 그렇다면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전자, 철강 등에서 우월한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는, 그래서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 그게 현금인지 회계항목에 불과한 지는 논외로 하고라도 –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체 언제까지 이런 혜택을 누려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1

단위 : pence per kWh


주) International Energy Agency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표 작성

첫 그래프를 보면 우리 요금은 오히려 1980년대 다른 나라보다 높았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중후반부터 요금이 하락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이후 20여 년간 우리 정부는 “산업경쟁력”의 우위를 지켜주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고 아마 최근 10년간 그 요금을 일부 현실화한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은 요금을 원가 이상으로 받고 있다는데 정부는 다만 원가공개는 거부했다고 한다. 가정은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를 요구하는 정부가 기업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 궁금한 지점이다.

기타 참고글
시장질서에 위배되는 한국의 전력시장, 침묵하는 자본
한국의 전력시장 현황에 대한 전경련의 주장 톺아보기

“자산소유자의 사회”에서 “투자자의 사회”로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송파와 가까운 위례신도시, 하남 미사지구 등에서 입주 물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더 떨어지거나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면 갭 투자자들은 전세 재계약 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중략] 송파구에서는 월평균 500~600건의 아파트 매매가 이뤄진다.. 부동산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저금리로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갭 투자에 나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송파구 전세 하락, 무슨 일이?…떨고 있는 갭 투자자]

전세(傳貰) 제도는 – 법률상의 전세권과는 구분되는 –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우리만의 독특한 부동산 거래관행이다.. 또 다른 말로는 우리만의 독특한 부동산 금융기법이다. 즉, 월세와 달리 임차인이 집값의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보증금을 내고 월세 없이 거주하는 이 독특한 관행 덕에 임대인은 집주인은 큰 돈 들이지 않고 집을 구입했다. 그런데 임대인은 왜 임대기간 동안의 월세수입을 포기했을까? 바로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집값 상승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시세차익이 월세수입보다 더 클 것이라는 기대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대출금을 “불확실성이 높은 거래에 투자되는 돈” funny money 으로, 다른 학생은 금융용어를 빌려 미래의 “위험회피 수단” hedge 또는 미래에 대한 내기에 건 돈 bet 으로 불렀다. 자신들을 채무자로 간주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문화[일상생활]기술지적 文化記述誌的 증거에 따르면 미청산 부채를 보유한 사람들은 지불기일을 넘기기 전까지 자신을 “채무자”로 여기지 않는다. 나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주택금융 채무자가 더 정확한 명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주택 소유자로 간주한다.[크레디토크라시, 앤드루 로스 지음, 김의연 옮김, 갈무리, 2016년, p169]

학자금 대출이 일반화되어 있는 미국에서 채무자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학생들의 일종의 자기최면 혹은 부정에 관해 서술한 내용이다. 어쩌면 부채경제 시대를 살아가면서 현대인들 대부분은 이러한 자기최면을 걸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앞서 송파구의 아파트 소유자는 저자가 스스로를 칭하는 것처럼 그들 자신을 “주택 소유자”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자산가치의 많은 부분을 임차인의 전세금과 대출로 채웠을 것임이 확실해도, 본인은 그것을 “갭투자”, 그리고 인용문의 학생들처럼 “hedge”와 “bet”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GMAC 회장 존 래스콥은 다음과 같이 공언했다. 신용을 제공하려는 GMAC과 같은 금융회사들의 노력은 “만인에게 풍요로운 안식처와 공정한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야말로 사회주의자들이 인류에게 줄곧 환기시켜 온 바가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의 경로는 파괴를 일삼는 사회주의적 수단이 아니라 개량을 모색하는 자본주의적 수단에 의해 추구될 것이다.” [중략] 애초 이러한 선전전은 미국 내에서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차단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1940년대 후부터는 줄곧 사회주의 블록과의 전 세계적인 경쟁 구도하에서 진행되었다.[같은 책, p96]

부채 활성화를 통해 체제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20세기 초 자본주의자들의 비전은 현대에 이르러 더 진화하였다. 당시의 금융기업 회장이 희망했던 “풍요로운 안식처와 공정한 기회”를, 보다 적극적인 현대의 투자자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풍요로운 유동성과 공정한 갭투자를 통해 달성하려 하고 있다. 즉, 당시 위정자들의 목표가 “자산소유자의 사회(ownership society)”였다면 현대사회의 비전은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자의 사회(investment society)”인 것이다. 어쨌든 전셋값 하락으로 송파구의 투자자는 신규 투자자금 몇 백억 원이 필요할 것 같다.

가계부채 단상

두 번째 척도는 2000~2005년 급격히 변화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신용(간단히 말해 가계부채) 비율이다. 이는 일부 국가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체코공화국의 경우 2000년 8.5퍼센트였던 수치가 2005년 27.1퍼센트로 상승했고 [중략] 한국은 33퍼센트에서 68.9퍼센트로 증가했다. [중략] 성숙한 시장경제 국가들의 경우 비율 자체는 높지만 증가율은 신흥 시장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를테면 일본은 2000년 73.6퍼센트에서 2005년에는 77.8퍼센트, 미국은 104퍼센트에서 132.7퍼센트로 증가했다.[축출 자본주의, 사스키아 사센 지음, 박슬라 옮김, 글항아리, 2016년, p163]

읽고 있는 책에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가의 가계부채 문제가 언급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세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어 인용해보았다. 이 인용문에는 특이한 두 범주의 네 국가가 언급되어 있다.. 2000~2005년 기간 동안의 추세를 볼 때 체코와 한국처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크진 않으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들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크지만 증가세가 둔한 나라들이 언급된 나라들이다.

그런데 그 증가세나 비중의 변화를 보면 확실히 한국은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나라랄 수 있다. 해당 기간 동안 한국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50% 미만에서 그 이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 증가율은 109%다. 그 기간 동안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여 마침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벌어진 미국의 28% 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증가율이란 점이 인상적이다. 비중의 변화나 증가율에 있어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두드러진 나라였다.

최근 추세는 더욱 극적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해당 비중은 160.7%다. 2005년 기준 132.7%였던 미국의 비중은 2013년 기준 115.1%, OECD의 비중은 135.7%다. 미국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부채청산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의 경우 금융위기 당시에도 인위적인 저금리 상황을 조성하면서 제대로 된 부채청산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부채청산의 이연은 저금리 기조 하에 더욱 더 지연되고 있다.

2016년 1분기 기준 가계대출은 예금취급기관 825.5조원, 기타금융기관 332.9조원으로 도합 1,158.5조원이다. 이에 실질적인 가계대출이라 할 수 있는 개인사업자대출 243.3조원을 합하면 전체 가계대출은 1,401.8조원에 달한다.1 이 대출규모는 가처분소득 대비하여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위험하거니와 정부, 가계, 기업 부채의 비중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전체 부채 중 가계부채 비중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렇게 질과 양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가계부채의 용도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의 가계대출 증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완화 이후 급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투입됐다.2 덕분에(!) 최근 수도권 집값은 오르고 있다. 아파트고 단독주택이고 할 것 없이 경매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소위 “갭투자” 열풍과 브렉시트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늦출 것이라는 예측 하에 불꽃은 더욱 더 화려하다.

관건은 그 불꽃이 언제까지 타오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한다. 올 8월부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의 일시상환이 시작된다. 연도별 주택매매 건수는 2015년 119만 건으로 사상 최대 건수의 주택거래가 이루어졌다. 2017~2018년 신규로 입주할 가구 수는 70만 가구로 예측된다. 과연 그때 현재 청약열풍에 편승한 이들이 모두 새 아파트에 입주할 것인가? 빚으로 산 집을 가지고 시도한 “갭투자”는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