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수학살상무기”의 위험성에 대하여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여러 혁명적 용어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빅데이터 Big Data”다. 그런데 이 빅데이터를 “대량살상수학무기”1라 부르는 이가 있다. 뛰어난 학벌과 학문적 업적 덕택에 수학과 종신교수로 근무하던 캐시 오닐은 “수학을 현실세계에 적용한다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교수직을 버리고 헤지펀드 디이 쇼(D.E. Shaw)의 퀀트가 된다. 이후 “수학과 금융의 결탁이 불러온 파괴적 힘에 환멸을 느끼고 월스트리트를 떠난” 그는 데이터 과학자로 활동하면서 또 다시 빅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파괴적 힘에 주목하면서 2016년 인용한 책을 썼다.

‘유에스 뉴스’의 대학 순위 사업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이를 조작하려는 시도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가령 2014년 ‘유에스 뉴스’가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에선 사우디아라비아의 킹 압둘아지즈 대학교의 King Abdulaziz University, KAU 의 선전이 돋보였다. 불과 2년 전에 신설된 KAU 수학과가 케임브리지와 MIT를 포함해 몇몇 전통적인 수학 강호들을 제치고 하버드의 뒤를 이어 세계 7위에 선정된 것이다. [중략] 조사에 따르면 KAU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 다수의 수학자들과 접촉했고 그들에게 겸임교수직과 7만2000달러라는 높은 연봉을 제공했다. [중략] KAU는 교수들에게 톰슨 로이터스 인용 색인 웹사이트에 등록된 근무처 정보를 KAU로 변경하도록 요구했는데, 그 웹사이트는 ‘유에스 뉴스’가 순위를 산정할 때 참조하는 핵심 출처였다. 이는 KAU가 겸임교수들이 발표한 출판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수들의 출판물이 인용된 빈도는 ‘유에스 뉴스’ 알고리즘의 주요한 요소 중 하나였기 때문에, KAU의 순위는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대량살상수학무기,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흐름출판, 2017년, pp113~114]

우리가 빅데이터 산업의 현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경험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예를 들어 당신이 ‘다음 달에 교토나 가볼까?’하고 익스피디아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호텔을 두어군데 검색하고 나왔다 치자.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당신이 페이스북이나 다른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익스피디어에서 추천하는 근사한 호텔 광고가 연달아 등장한다. 당신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집요하게 당신에게 “삐끼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비즈니스 역시 필자가 월스트리트를 떠난 후 잠시 머물렀던 스타트업 인턴트 미디어 Intent Media 에서 수행한 빅데이터 작업이었다.

저자는 언뜻 보면 대단히 거대하고 정교해서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영역까지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2 빅데이터 분석이 실은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판단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음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저자는 MBS의 사례를 들며 “수학은 쓰레기 같은 대출채권의 가치를 몇 배로 부풀릴 수는 있으나 해석은 순전히 인간의 몫”(p81)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빅데이터 비즈니스는 기계의 물신성(物神性)을 조장하며 이러한 결함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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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다른 사례로는 새로 부임한 교육감이 학생들의 학습 능력 강화를 위해 교사들을 빅데이터로 분석하여 열등한 교사를 쫓아내는 사례가 있다. 이 사례에서는 한 평판이 뛰어난 교사가 등장하는데 그는 이러한 평판에도 불구하고 빅데이터 분석에서 열등한 교사로 분류되어 해고당한다. 이를 납득하지 못한 교사는 담당자에게 판단기준의 공개를 요구하지만, 담당자는 외주화된 그 작업의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실토한다. 교사는 담당자도 이해하지 못하는 분석을 통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합당하냐고 따진다. 해석조차 포기한 물신성의 극단적 사례다.

사실 이런 빅데이터 분석에 대한 맹신의 어리석음과 그 위험성은 이미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1967년 스파이 스릴러 “백만 달러짜리 두뇌(Billion Dollar Brain)”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공산주의 소련을 절멸시켜야 한다고 믿는 한 미치광이 미국인 자본가는 판단의 엄정성을 위해 슈퍼컴퓨터로 소련 침공 시나리오를 짠다. 영화에서 그 자본가의 수하 중 하나인 레오 뉴비겐은 입력 데이터를 조작하여 소련 침공이라는 아웃풋이 나오게 하여 침공을 강행하고 주인공 해리 팔머는 이를 저지한다. 이제 우리는 현실에서의 해리 팔머를 만나야 하는데 그게 과연 누구일지 궁금하다.

캐시 오닐?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 斷想

소위 “미래학자”들의 저서는 별로 읽지 않는 편이다.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고 선입견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암튼 최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을 일부분 읽었다. 읽었던 서문과 일부 챕터를 요약하자면 기술의 상상을 초월한 발전으로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지고 이로 인해 “전반적인 최적의 복지”가 이루어지면 다가올 미래는 “협력적 공유사회(collaborative commons)”로 발전할 것이라는 긍정적 세계관에 대한 개론과 각론이랄 수 있다.

그의 이념적 지형은 거칠게 보자면 ‘위험하지 않은 反자본주의자’ 정도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자본주의가 추동하는 기술발전에 따라 “한계비용의 제로化”되는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반체제적이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위해 오스카르 랑게와 같은 맑시스트의 분석이나 케인스의 예언을 인용한다. 그런 한편 자본주의라는 패러다임은 협력적 공유사회가 되도 한동안 존속할 것이라고 유보적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토마스 쿤의 유명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쿤이 패러다임을 처음 쓴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그 단어는 가장 유명해졌다. 패러다임은 “함께 작용하며 통일되고 통합적인 세계관을 확립하는 신념 및 가정 체계로서 설득력이 높고 저항할 수 없는 까닭에 실제 상황 그 자체나 마찬가지로 여겨지는 것”이라 풀이되는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순응적이고 긍정적인 개념이다. 칼 맑스가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라 부르며 그것을 일종의 ‘허위의식’이라 부른 것과는 다른 자세다.

이런 점만 봐도 기득권이 제러미 리프킨을 불온시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리프킨은 한계비용이 줄어들면서 기존 자본가의 이윤이 줄어들 상황을 염려하면서 로렌스 서머스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일정한 비율로 수익이 증가하는 조건하에 상품이 생산되는 .. 일시적인 독점 권한과 이윤이 민간 사업체에 이러한 혁신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보상이 될 것”이라며 이윤 확보의 로드맵까지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공유경제”, “협력적 공유사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탈정치화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한 셈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이론의 가장 허술한 점은 “한계비용 제로化”를 협력적 공유사회로 가는 키워드로 여긴다는 점이다. 한계비용은 고정비가 일정한 단기적 생산 상황에서 재화나 서비스가 한 단위 늘어날 때마다 추가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생산이 늘어날수록 한계노동생산성이 떨어지며 이에 따라 한계비용은 증가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며 정보재 등은 한계비용이 0에 가까워지는 상황이 연출되며, 리프킨은 이런 상황에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상황에서는 한계비용 이외에 평균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즉, 현재 정보재와 같은 재화의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것은 이미 광범위하게 재정이나 투자로 깔아놓은 각종 물적인 인프라스트럭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기적으로 이 고정자본은 갱신되어야 한다. 이미 자본주의 황금기에 깔린 미국 등 서구사회의 인프라는 그 생애주기 막바지에 놓여 있어 대규모 갱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투입비용을 감안한다면 단순히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속도가 빠른 정황만 가지고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외칠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 정보재에 대한 불평등한 상황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또 하나 그의 이론은 “최적의 복지” 로드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얼론 머스크가 북한의 핵보다 더 위험한 것이 인공지능이라고 했다는데, 그들이 인간의 웬만한 모든 종류의 노동을 빼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재산이 자산과 소득에서 절대 다수 얻어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종말은 소득의 종말을 의미하기에 일부 벤처캐피탈리스트는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하지만 리프킨은 “소유주와 노동자의 낡은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다”(215p)고 말할 뿐이다. 노동자는 여전히 당장 돈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 짧은 독서로 거칠게 쓴 글이니 혹시 내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의견주시기 바랍니다.

이사비 7000만원

먼저 이사비 7000만원이 결정타였다는 것이다. 이때 사실상 승부가 났다고 지적했다. 한 도시정비업체 관계자는 “이사비 7000만원은 조합원들이 거부할 수 없을 만한 달콤한 조건이었다.”면서 “그런데 GS건설이 중간에서 이를 가로막는 형국이 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미운 털이 박혔다”고 했다. 실제 이날 총회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GS건설은 지네들이 줄 것도 아니면서 왜 현대건설이 주겠다는 것을 막느냐”고 언성을 높였다.[피 말리는 개표 중 “막걸리나 먹자”던 현대건설, 이유 있었다]

“이사비”가 웬만한 서민의 집값 혹은 전세보증금에 육박하는 금액이라면 그 돈으로 이사를 가는 분들의 살림살이는 대체 얼마나 호화로운 살림살이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게 만드는 기사다. 하지만 사실 강남의 노른자 땅의 거주민이라 할지라도 상상을 넘는 호화로운 살림살이는 아닐 것이 분명하다. “떡값”이 떡값이 아니듯 이 혈투에서 현대건설이 제공하겠다던 “이사비”도 이사비와는 거리가 먼 돈일 것이다. 그 돈은 강남의 노른자 땅에서 살고 있는 이가 그 땅이 개발됨으로써 더 커질 교환가치의 일부분을 개발업체와 나눠먹는 돈이다.

좁은 국토에서 살면서 토지이용을 고도화(高度化)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부가 선택한 아파트는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주거형태가 되면서, 거주의 수단이자 동시에 욕망의 수단이 된지 오래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입지에 대규모로 건설되는 아파트 단지는 거주를 균일화시키는 단점이 있을지 몰라도 브랜드화와 일괄개발을 통해 거액의 교환가치를 재창출하기에 적합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상품이다. 그러니 아무리 집값을 잡겠다고 정부에서 불방망이를 휘둘러도 그 희소성으로 인해 강남의 아파트값은 쉽사리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 송파구 잠실·미성·크로바 재건축조합은 26일 이사비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수주전이 한창인 이 사업지에서는 롯데건설이 사업제안 조건으로 ‘이사비 1000만원과 이주촉진비 3000만원’을 앞세워 과열 논란이 번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낮은 공사비와 선물 제공 등 건설사들이 벌이는 양적 경쟁에 휘둘리지 말고 시공품질과 특화 설계 등 질적 경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물량가뭄이 만든 출혈경쟁 정부·건설사·조합 모두 변해야, 건설경제신문, 2017년 9월 229일]

인용한 기사의 제목처럼 건설시장의 물량가뭄과 강남권 대규모 개발이라는 상황이 맞물려 이런 과열양상을 빚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지게 되자 또 다른 재건축조합은 아예 이사비를 받지 않기로 못을 박았다. 이번처럼 주목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재건축조합역시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종국에는 시공품질의 저하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향응을 제공한 비용은 당선 이후 비리로 다시 만회하듯이 장사꾼도 밑지는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건축이라 함은 낡아서 사용가치가 떨어진 주택을 다시 지어 사용가치를 높이겠다는 개념이고 재건축 비용은 원칙적으로 집주인이 부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주택형태는 건폐율과 용적률의 조합을 통해 일반분양분을 만들어내 원래 집의 재건축 비용을 부담해줄 수요자를 창출해내는 마술을 부릴 수 있다. 거기에 가구당 7000만의 이사비까지 안긴다는 것은 단순셈법으로 보자면 일반분양분에 해당비용을 보태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계산일 것이다. 아마도 7000만원이 아무도 부담하지 않고 공중에 사라지는 마술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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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puigOwn work, CC BY-SA 3.0, Link

아파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였던 르꼬르뷔제(Le Corbusier)의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를 만날 수 있다. ‘빛나는 도시’ 등의 개념 디자인을 통해 거대도시의 생활행태의 개념을 제시한 르꼬르뷔제는 이 집단거주지에서 거주민들이 일종의 공생의 공동체 의식을 쌓기를 바랐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의도가 성공한 것도 같다. 적어도 거주민의 주택에 대한 교환가치의 보존 내지는 극대화라는 공동의 목표의 관철에 있어서만큼은 욕망이 표준화된 아파트만큼 효과적인 주거형태가 또 있을까 싶다.

“대량의 중앙은행 언와인드(great central bank unwind)”

Fed가 다음달 4조5천억 달러에 달하는 그들의 재무상태표를 줄이기 시작하기로 하면서 도이치뱅크는 이번 주 그들이 “대량의 중앙은행 언와인드(great central bank unwind)”1라고 부르는 이 조치가 다음 금융위기를 초래할 몇몇의 후보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략] 언와인드에 관해 Fed는 예상한 것처럼 10월에 그들의 재무상태표를 서서히 줄여가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재무상태표는 장기 이자율을 내리고, 위험자산에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투자를 촉진하고, 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목적의 공격적인 자산 매입 프로그램의 결과로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였다. [중략] 도이치뱅크의 분석가들은 투자자들이 중앙은행의 재무상태표 규모와 소위 양적완화 프로그램에 수반되었던 효과적인 화폐 발행의 범위에 대해 시큰둥해하기만 할지 의문스러워했다.[How the ‘great central bank unwind’ could ignite the next financial crisis]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했던 조치 중 가장 황당한 조치를 꼽으라면 중앙은행의 채권 직매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을 시장의 조성자로 국한하여야 할 중앙은행이 끝내는 직접 시장 그 자체가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MBS의 매입은 더욱 놀라웠는데, 패니메와 같은 정부보증기관이 보증 또는 발행한 채권을 정부나 다름없는 Fed가 다시 사주는 자금흐름을 보면 ‘과연 이게 자본주의 경제가 맞나’하는 의문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시장의 상품 공급자가 모두 사실상의 정부라면 시장경제라 부르기에 민망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MBS는 장기국채와 함께 Fed의 재무상태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산이 됐다. 그 덕에 Fed는 가장 돈 많이 버는 은행이 되기도 했었다. 시장금리도 낮게 유지가 됐다. 그래서 Fed는 이제 경제가 정상화되어가고 있고, 이에 따라 자신의 비정상 자산을 정상화시킬 때가 도래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실제로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 열기도 고조되고 있는 듯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저신용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고금리로 빌려 쓰는 레버리지드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2 하이일드 채권 거래도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용문에서의 분석가의 우려대로 상황이 녹록치 않다. 레버리지론과 하이일드 채권 거래의 폭증은 Fed의 채권매입을 통한 금리 안정화라는 전제 하에 가능한 투자행위였다. Fed가 이제 시장이 정상화됐으니 자신의 자산도 정상화시키겠다고 결정한 것은 자신의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Fed의 현재 자산은 미국 GDP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런 규모의 자산이 시중에 풀린다면 채권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상화된 시장이 사상누각임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Fed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는 듯 채권을 한꺼번에 매각하는 방식 대신 만기도래 채권을 재매입하지 않고 상환 받는 방식을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미온적인 편인데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방침은 아직도 여전하기 때문인 것도 한 몫 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동안의 매입 프로그램이 유례가 없었듯이 이번 조치 역시 유례가 없기 때문에 그 여파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조치가 경제의 어떤 티핑포인트를 건드린다면 도이치뱅크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 비관적인 시나리오다.

한편 Fed 자산 축소가 하필 지금 시점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으로 보자면 Fed의 결정은 다소 정치적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 정부는 오바마의 QE정책과 이를 통해 낮은 금리를 향유하며 정부부채를 끌어다 썼던 오바마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 공화당 정부다.3 게다가 얼마 전에 美정부의 또 다른 권력자 이방카가 옐렌을 만났다.4 물론 탁 까놓고 말하자면 늘 경제는 정치적이었다. Fed의 사상 최대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은 면밀한 경제성 분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정치적 임시방편이었고 그 자산의 언와인드도 또 다른 정치적 고려로 여겨진다.

블록체인이 자본주의 이상향을 실현해줄 것인가?

삼식부기 회계는 기업 지배 구조를 혁신하는 다양한 블록체인의 사례 가운데 첫 사례에 속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기업들은 합법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주주운동가 로버트 몽크스 Robert Moks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는 CEO또는 이른바 제왕적 경영인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이익에 의해 돌아가는 과두체제와 같습니다.” 블록체인은 주주들에게 권력을 돌려준다. 자산에 대한 권리를 표창하는 ‘비트셰어’라는 토큰이 하나 또는 다수의 투표에 따라 생성될 수 있고, 각 투표는 기업의 특정한 의결 사항을 대변한다. [중략] 일단 투표가 이루어지면, 이사회 회의록과 의결 내역이 타임스탬프에 따라 불변 원장에 기록된다.[블록체인혁명, 돈 탭스콧/알렉스 탭스콧 지음, 박지훈 옮김, 을유문화사, 2017년, pp 153~154]

올해 비트코인 등 이른바 가상화폐 광풍이 불고 있다. 특히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상당부분이 한국 소재의 거래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하니 새삼 ‘한국인의 역동성은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비트코인이니 이더리움이니 하는 가상화폐 또는 스마트계약들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상식이 된 것 같다. 인용한 글이 담겨져 있는 블록체인혁명이라는 책은 바로 그 블록체인 기술로 우리가 미래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현황과 성찰을 담은 책이다.

인용문은 그중에서도 블록체인을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로드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식부기는 우리가 복식부기라 부르는 재무제표가 두 가지 장부 기록이 있는 반면, 블록체인을 이용하여 “월드와이드 원장”에 제3의 장부기록을 추가하는 방식을 일컫는 용어다. 기업이 각종 활동을 벌일 때마다 이 거래를 기록하고 블록체인에 타임스탬프가 찍힌 영수증을 발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삼식부기가 일반화되면, 시장은 최신 재무보고서는 분기에 한 번씩 기다릴 필요 없이 필요할 때마다 버튼 한번으로 출력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자본주의를 “분산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주식회사라는 도구가 발명된 이후 우리는 명목상으로는 이 도구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즉, 우리는 공인된 주식 거래시장의 설치, 주주자본주의 강화를 위한 입법 및 규제, 기업의 투명성을 위한 회계 및 공시 등 수많은 대안과 통제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인용문에서의 어느 주주운동가가 말하듯 여전히 기업은 – 주식회사조차 – “제왕적 과두체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는 많은 부분 고의 또는 제도적 결함으로 인한 기업의 불투명성 혹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결과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을 예로 들어보자. 이 두 회사가 삼식부기에 의해 재무제표가 업데이트되었다면 주주는 보다 투명하게 회사가치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그러하지 않았기에 주주는 회사가 정한 – 법에도 그렇게 정한 바 – 주식시장에서의 거래가격으로 합병하는 것에 대한 가부의 의사결정만 할 수 있었다. 일부 주장처럼 삼성물산의 장부가가 주가총액보다 높았을 수도 있는 사실은 복식부기로는 파악에 한계가 있다. 결국 이 기묘한 주주자본주의 역할극의 파국은 “총수” 구속이었다.

삼식부기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 ‘프로토콜을 지키지 않고 비슷한 독자적인 네트워크에 비밀스러운 가치를 숨기려 하는 부외 거래의 가능성’이 삼식부기 방식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문외한으로서도 드는 생각이 가상화폐는 프로토콜이 변경되면 새로운 가상화폐가 등장하는 것이지만, 삼식부기에서 프로토콜이 바뀌면 기존의 “불변”의 거래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럼에도 블록체인을 통한 기업 투명성 제고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야말로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효율적 시장가설의 이상향이 아닌가?

요즘 PE시장의 한 풍경

프라이빗에쿼티들은 최근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채권자 준수조항(covenants)을 제거하는 등 활황세(buoyant) 시장의 이점을 활용하고 있다. “계속해서 많은 준수조항을 지워버리려는 시도가 있고 이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Amundi Smith Breeden의 하이일드 부서장 Ken Monaghan의 발언이다. 펀드매니저들은 특히 소위 add back 혹은 조정(adjustments)라 불리는 것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기업들은 더 우량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조정에는 소득에 예상 비용 절감을 추가하는 것까지도 포함되는데, 그것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기업의 부채부담이 더 감내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Wall Street watchdogs sound alarm over risky bank lending]

트럼프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미국의 주가가 전례 없이 오르는 것을 거론하며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러한 장세가 여전한 과잉유동성 때문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1 그리고 그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런 과잉유동성 탓에 – 또는 덕분에 – 프라이빗에쿼티 참여자들은 기업을 사냥하기 위한 탄알을 두둑하게 챙겨둘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투자자들은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은지라2 과거에 당연히 요구하던 많은 채권계약상의 준수조항을 면제해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면 예측컨대 PE가 인수하는 기업들의 재무제표는 실제보다 더 좋게 보이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세컨더리마켓에서 윤색된 재무제표에 현혹된 더 많은 투자자들이 PE 시장에 뛰어드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사실 투자기관의 실무담당자에게 중요한 것은 수익성 그 자체보다 윤색된 예상수익성일 때가 많으니까. 그리고 항상 이런 버블 장세에 대한 우려가 있어왔지만, – 소수에 의해서든 다수에 의해서든 – 늘 그렇듯이 버블이 터지기 전까지는 많은 이들이 이를 애써 무시하고 지낼 것이다.

서비스 배당권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주식회사는 회사를 분할해 각 지방의 중핵에 본사를 둡니다. 주식회사의 금전 배당은 제로로 하고 서비스 배당권으로 전환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주주가 일부러 일본에 와 서비스를 받는 것은 교통비만 해도 엄청나므로 자연히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때 제로이윤으로 고용자 보수를 올려 지역 주민이 주주가 되거나 지역 금융기관에 예금이 모이면 지역 금융기관이 주자가 되면 됩니다. [자본주의의 종말 그 너머의 세계,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미즈노 가즈오 지음, 김정연 옮김, Take One, 2017년, p104]

얼핏 들으면 웬 세계화, 전산화, 증권화의 대세를 거스르는 환경주의적 마인드의 공산주의자의 몽상인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후 모건스탠리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경제관료를 거쳐 니혼대 교수로 있는 분이 하는 소리니 좀 신선하기는 하다. 주식과 주주라는 근대의 발명품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인 셈인데, 얼핏 드는 생각은 신규로 발행하는 주식이면 몰라도 기존의 주주들의 금전 배당을 서비스 배당으로 바꾸는 그 혁명적인 과정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거의 무상몰수 무상분배적인 개념?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통한 사회적 통제 확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만약 그러한 연기금의 금전 배당을 서비스 배당으로 바꾼다면 대부분의 연금 수혜자는 미래수익의 상당부분을 포기하여야 할지도 모를 사태가 벌어질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