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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수주의자가 비판하는 보수주의의 실패

데이빗 스톡맨(David Stockman)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예산관리부서에서 일했던 책임자였고 현재 금융관련 책을 쓰고 있는 작가다. 당연히 그는 보수주의자로서 재정균형과 세금감면을 옹호한다. 스톡맨은 이 글에서 그런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지난 기간 동안 조지 W 부시를 포함한 ‘얼치기’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원조 보수주의를 망치고 나라를 — 나아가 전 세계를 — 개판으로 만들었는지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보수주의적 입장이라 여전히 개인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이 정도의 입장만으로도 얼마나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자본주의의 보수주의가 썩고 병들어 왔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글이기에 번역하여 소개한다. 원문은 여기에서.

Four Deformations of the Apocalypse

만약 정치인에게도 챕터11(주1)이란 것이 있다면, 부시의 부적절한 세금감면을 연장하기 위한 공화당원들의 압력은 파산했어야 할 것이다. 이 나라의 공적부채는 — 만약 솔직하게 지방채와 2015년에 걸쳐 케이크 속에 버무려진 7조 달러의 새로운 재정적자까지 계산한다면 — 18조 달러에 달할 것이다. 이는 그리스에 맞먹는 GDP 대비 120%의 규모이며, 긴축재정과 희생을 요구하는 시끄러운 비명이다. 그러므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맥코넬이 이 나라의 최상위 부자들에 대한 3%포인트의 증세조차 면제케 하려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보다 근본적으로 맥코넬 씨의 입장은 새로운 통화주의자와 공급위주 독트린들이 전통적인 재정철학에 기초하고 있다는 공화당의 주장에 대해 거짓을 늘어놓는 것이다. 공화당은 번영은 장부의 일정한 균형에 달려 있다고 믿었었다. — 정부, 국제무역, 중앙은행의 원장들과 개별가구와 비즈니스의 상태들에서도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교리문답서에는, 이제 십여 년간 공화당 의사결정권자들이 실천해왔던 것처럼, 화폐 인쇄와 적자재정 이상 가는 것은 거의 없다. — 번영하는 계급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제의(祭衣)를 입은 얼치기 케인즈주의.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전통적인 정당의 이상에 대한 엉터리 흉내만은 아니었다. 이는 또한 우리 경제를 심각하게 손상시킨 연속적인 금융 거품과 월스트리트의 약탈행위를 낳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정책 독트린들은 국가경제에 네 번의 커다란 변형을 야기했고 현대의 공화당원들은 눈이 먼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변화의 처음은 닉슨 행정부가 우리들의 장부를 전 세계와 균형 맞추겠다는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 아래서의 미국의 의무를 파기했을 때이다. 이제 우리는 거의 40년을 한 국가로서 분수에 넘치게 살와 왔기에, 현재 경상수지 적자는 — 상품무역, 서비스, 수입 적자들을 포함하여 — 8조 달러에 달하고 있다. 그것은 방대한 규모의 차입한 번영이다.

이는 또한 밀턴 프리드먼이 말하길 결코 일어날 수 없을뻔 했던 결과물인데, 그가 1971년 닉슨 대통령을 설득하여 더 이상 그 세계 화폐가 금이나 다른 고정된 준비통화와 교환될 수 없게끔 촉발하라고 설득할 때의 결과물이다. 그저 자유시장이 환율을 정하게 하면 무역적자는 자연히 조정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부는 그들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완전히 그들의 통화가 자유롭게 떠다니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프리드만의 8조 달러짜리 실수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일단 어떤 고정된 통화가치의 방어규율이 완화되면 정치가 세상은 자유롭게 통화를 절하시키고 그들의 이웃을 무시하곤 한다.

사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는 국가가 버는 것보다 많이 쓰기 때문에 발생한다. 엄중한 허리띠 조이기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달러가 고정 환율에 묶여 있었을 때에는 정치가들은 기꺼이 필요한 피마자유를 나누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대안은 비축분에서 지불함으로써 무역적자를 메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즉각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된다. — 예를 들면 높은 이자율. 그러나 이제 그 규율이 없고 외국 중앙은행들이 연방준비제도로부터의 달러 물결을 막아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자신들의 인쇄기를 가동시킴에 따라 오직 글로벌 통화 혼돈만이 존재할 뿐이다.

미국경제에 있어 두 번째 불행한 변화는 공적부채의 비정상적인 증가다. 1970년 부채는 GDP의 40% 또는 4250억 달러였다. 18조 달러라는 것은 1970년의 40배라는 것이다. 이 부채폭발은 민주당의 과다지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30여 년 전에 만약 세금만 감면하면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 은밀한 독트린을 수용한 공화당의 과다지출 때문이다.

1981년 전통적인 공화당원들은 인플레이션이 많은 납세자들을 더 높은 계층으로 편입시키고 투자를 촉진시키는 과정을 상쇄할 수 있는 지출삭감과 결합된 세금감면을 지지했다. 그러나 급하게 마련된 레이건 정부의 재정 청사진은 연방 지출기계를 가동시키는 원초적인 힘들에 — 복지국가와 전쟁국가 — 부합하지 않았다.

곧, 네오콘이 국방예산을 하늘 높이 추켜올렸다. 그리고 지출을 삭감해야할 캐피톨힐의 공화당원들은 대부분의 국내 예산에서 칼날을 거두었다. — 재정지원, 농업보조금, 교육, 물 사업. 그러나 마지막에 공화당원의 재정 종교를 말살시킨 이들은 이론적인 세금감면주의자들이라는 새로운 간부집단이었다.

1984년 선거 동안 예전 이들은 원래의 레이건 세금감면인 40% 수준으로 후퇴하며 진지하게 적자를 통제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해에 연방준비제도 의장 폴 볼커가 마침내 인플레이션을 격퇴하고 견고한 경기 반등을 가능케 했을 때, 새로운 세금감면주의자(tax-cutters)들은 그들의 공급위주 전략이 승리했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공화당원들에게 만약 충분한 세금감면이 있을 경우 경제는 적자를 더 상회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2009년 회계연도에 세금감면주의자들은 연방수입을 GDP의 15%까지 줄여버렸는데, 194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그리고 예산안을 거의 거부하지도 않고 자금조달도 안 된 두 개의 모험적인 해외전쟁에 개입하고 난 후, 조지 W 부시는 국내 지출 삭감에도 굴복해버린다. — 그는 8년 전에 물려받은 2600억 달러로부터 65%의 금액을 포함한 4200억 달러짜리 비국방 전용법에 서명한다. 그렇게 공화당원들은 공짜점심 재정정책을 부끄러움도 없이 수용하면서 민주당원과 함께 뭉쳤다.

미국경제에 있어 세 번째 불길한 변화는 금융부문의 엄청나면서도 비생산적인 확장이다. 여기에서 공화당원들은 공짜로 찍은 돈들이 넘쳐흐르는 금융시장의 심각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동시에 레버리지와 투기에 대한 전통적인 제한들을 제거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은행들과 소위 그림자 뱅킹 시스템의 통합 자산은 (투자은행과 금융기업들을 포함하여) 1970년의 단지 5천억 달러에서 2008년 9월 30조 달러까지 자라났다.

그러나 새로운 금융세계에 거주하는 수십조 달러 거대기업들은 자유기업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주식, 채권, 원자재, 파생상품에 대해 수많은 초점 없는 투기를 통해 경제로부터 수십억을 뜯어낸 국가의 피보호자들이다. 그들은 만약 그들 자산이 정부 보증을 받지 못하고 부실한 내기를 보충하기 위해 Fed의 할인창구를 통해 실질적인 공짜 돈을 얻지 못했더라면 번창하기는커녕 살아나지도 못 했을 것이다.

네 번째 궤멸적인 변화는 더 큰 미국경제를 비워버린 것이다. 외국으로부터의 과도한 차입으로 몇 십 년을 분수에 넘치게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일자리와 생산을 바다 너머로 보내버렸다. 지난 십년간 무역, 수송, 정보통신과 같은 상품생산과 서비스에서의 고부가가치의 수많은 일자리와 전문직들이 77백만 개에서 68백만 개로 12%줄었다. 2000년 이후 우리가 비농업 일자리에서 심각한 축소를 경험하지 않은 이유는 바, 호텔, 요양소와 같은 곳에서의 저임금, 임시직의 증가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버블(2002년에서 2006년까지) 기간 동안 미국인의 상위 1%가 — 주로 월스트리트 카지노에서 돈을 번 — 국가소득의 2/3을 받아간 반면 하위 90%는 — 주로 메인스트리트의 사양산업에 의존하는 — 단지 12%만 받아간 사실이 놀랍지 않다. 이러한 점증하는 부의 격차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다. 이는 잘못된 경제정책의 썩은 과일이다.

이 나라에 심판의 날이 도래했다. 우리는 이제 정상적인 비즈니스로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보다 상당기간의 부채청산과 다운사이징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 2분기 나라 경제가 빈약하게도 연간 2.4% 성장한다는 지난 주 뉴스에서 상기할 수 있듯이.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의 공화당은 미국인들에게 이전의 접근이 — 균형잡힌 예산, 건전한 통화, 재정적 규율 —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서 재활용되고 있는 케인즈주의의 개념 없는 연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애처로운 일이다.

(주1) (연방) 파산법 제11장, 미국 회사 갱생법, 연방 파산법(Bankruptcy Code) 중의 한 절차를 규정한 부분 : 역자주

“날 믿으시오!”

리차드 펄(Richard Perle)은 로널드 레이건 시절 국방부 차관보였고 조지 W. 부시 시절에는 럼스펠드에게 선택받아 국방정책회의(Defense Policy Board) 책임자로 임명된 인물이다. 뒤쪽에서 은밀하게 일하는 취향 때문에 ‘암흑의 왕자’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별명은 비둘기파 콜린 파월이 지어줬는데 ‘폭격기’였다.

네오콘의 정신적 지주인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를 철저히 신봉했던 그는 또한 “이슬람은 테러의 종교”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그가 또 하나의 스트라우시언이었던 오랜 친구 폴 월포위츠(주1) 국방부 부장관과 함께 2001년 911사태 이후 불과 며칠 사이에 이라크를 침공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부시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사실 부시와 네오콘이 처음부터 죽이 맞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아버지에 이어 대권을 도전하는 아들 부시와 클린턴 시절 재야에 머물러 울분을 삼켜야 했던 네오콘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실용적 이유 때문에 서로 뭉쳤다고 보는 편이 옳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911 이후 부시를 휘어잡으며 네오콘은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은 매우 배타적이며 선민(選民)의식적이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다음의 한 에피소드에서 이러한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이념과 개념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이들 매파들의 행위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 데이비드 콘(David Corn) 기자가 “사담이 미국에 대한 위협 세력임을 입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리차드 펄에게 질문하자, 펄은 “날 믿으시오!”라고 대답했다.[부시 가문의 전쟁 : 밝힐 수 없는 이라크 전쟁의 비밀, 에릭 로랑 지음, 최기춘/정의길 옮김, 한울, 2003년, p138]

믿고 싶지 않은 인물이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인간유형이다. 그런데 요즘 왠지 이런 인물들이 이 나라에서도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1) 그는 비둘기파인 “콜린 파월을 한 눈으로 감시하고 그를 견제하기 위하여 펜타곤의 제2인자 자리를 수락”했노라고 측근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고

‘죽음의 상인’

米국방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미국 중부군 사령부(CENTCOM) 작전지역에 파견한 펜타곤 계약자에 대한 개정된 수치를 발표했다. 총 계약자수는 2009년 3분기면 243,000명에서 244,000명쯤으로 약간 증가할 것인데, 이는 이 두 개의 전쟁에 파견된 민간 군사력이 계속하여 미국의 군사력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The Department of Defense has released an updated census of Pentagon contractors deployed in Iraq and Afghanistan and CENTCOM’s area of operations. The overall number of contractors in the third quarter of 2009 increased slightly from 243,000 to 244,000, which means that private forces continue to constitute about half of the total US force deployed in these two wars.[U.S. Increasing Use of Private Contractors in War Zone]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는 똑같이 중동지역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들 부시는 전쟁수행의 와중에 군대기능의 소프트웨어적인 부문을 혁신적으로(!) 민영화시켜 전쟁터가 곧 시장(市場)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아버지 부시를 넘어섰다. 민영화의 명분은 당연히 ‘민간의 창의와 효율’을 도입한다는 것이었는데, 진정 그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어찌 되었든 민영화로 인해 위에서 보다시피 오늘날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터에서는 군인 숫자와 민간인 숫자가 비슷해진 기이한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들 민간업체는 대외적으로는 체신, 배식, 청소, 장비배급 등 비군사적 기능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딘콥(DynCorp), 블랙워터(Blackwater)(최근 Xe Services라고 사명을 바꿈) 등 전직군인교관들이 임원인 민간군사기업들은 사병들의 훈련 등에 공개적으로 관여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전투에의 직접참여, 전쟁포로들에 대한 고문, 심지어는 최근 사실로 드러나 CIA로부터의 살인청부업에까지 관여하는 ‘죽음의 상인’ 노릇을 해왔다. 결국 정부가 주장해온 ‘창의와 효율’은 민간업체 직원이 죽었을 경우 상이용사로 간주하지 않는 숫자의 장난, 불법행위가 드러났을 경우 정부기관의 책임이 아니라는 발뺌의 용이성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여러 민간군사기업이 있지만 특히 블랙워터는 지난번의 바그다드에서의 참상과 함께 최근 CIA와 알카에다 지도자들을 암살하라는 청부계약을 맺었다는, 헐리웃 영화와도 같은 혐의가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군대민영화의 대표적인 악질업자로 부상하였다.

현직 및 전직 정부관리에 따르면 지난 2004년 CIA는 사설경호업체인 블랙워터 USA와 알 카에다의 고위층을 찾아내어 암살하는 비밀 프로그램의 일부에 참여시키는 외주계약자로 고용하였다고 한다.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in 2004 hired outside contractors from the private security contractor Blackwater USA as part of a secret program to locate and assassinate top operatives of Al Qaeda, according to current and former government officials.[C.I.A. Sought Blackwater’s Help to Kill Jihadists]

기사에 따르면 CIA는 회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고위층과의 개인적인 계약을 맺는 형태로 그들 사이의 관계를 희석하려 했으며, 이들이 단순히 정찰이나 교육훈련에만 관여하였는지 아니면 직접 암살활동에 참여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라크나 남미의 작전수행에서의 전례로 보아 이들이 단순(?) 참여에 국한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그들이 의도했던 암살은 실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재정의 낭비라고 비난하여야 할지 어째야 할지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각국의 국가재정에 막대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국방비가 사실 이러한 상황이다. 국방기능은 국민의 공포심을 자원으로 지탱하고 있는데 결국 경제적 패권주의 혹은 이해관계와 맞물려 기능한다는 점에서 또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주1) 그런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국가들의 소프트웨어적인 군대기능의 민영화는 군사행동이 비즈니스의 보조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비즈니스가 되는 국면을 창출하고 있다.(주2) 그러므로 국방재정의 효율적 사용은 군사민간기업이 극대화된 – 그럼으로써 더욱 범죄화되는 – 업무수행의 여부에 달린 역설적 상황이 되고 말았다.

현재 오바마는 이러한 민영화의 폐해를 비롯한 부시의 전쟁범죄에 대한 수사를 보이콧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보험 개혁, 경제위기 극복 등 산적한 난제들을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생각인 것인지 보수적 유권자를 의식한 탓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느 핑계를 대더라도 이전 정권의 반인륜 범죄를 덮어둘 수는 없다. 특히 오바마는 반드시 부시 이후 급격히 확대된 민간군사기업들의 범죄행위를 단죄하고 그들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은 아프리카 각지에서 그러한 심증이 있어 왔던 것처럼, 시장의 창출(?)을 위한 자발적인 도발행위도 서슴지 않는 그러한 국면이 전개될 것이다.

(주1) 예를 들면 미국의 군사패권이 달러의 가치보존에 주요기능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주2) 물론 이전에도 군산복합체는 무기판매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를 영위하여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제는 그러한 하드웨어에서 전투기능을 제외한 – 사실은 그것까지 포함한 – 소프트웨어까지 비즈니스가 되었다는 면에서 현재의 국면은 새로운 질적 변화의 시기라 할 수 있다

US War Privatization

다음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중 계약에 관한 위원회(Commission on Wartime Contracting in Iraq and Afghanistan)’가 최근 발표한 내용 중 일부다.

24만 명 이상의 고용인들이, 이들 중 80%가 외국인인, 미군과 국무부, 그리고 미국 국외발전기관의 작전과 프로젝트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일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의 계약고용인들의 숫자는 미군의 숫자를 넘어섰다. 계약업체들이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위원회는 그들을 활용함에 따라 수십억 달러의 돈이 낭비되고, 갈취되고, 악용되고 있는데 이는 부적절한 계획, 빈약한 계약서 작성, 제한적인 경쟁, 부실한 감독기능, 그리고 다른 문제들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수치는 계약업체들에 대한 미국의 의존에 관한 국방부의 최근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그 보고서는 또한 2009년 2분기에 국방부를 위해 일하는 “사설보안업체”의 숫자가 23% 증가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9% 증가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그 나라에서의 “군사력의 증강과 상호관련”되어 있다.
More than 240,000 contractor employees, about 80 percent of them foreign nationals, are working in Iraq and Afghanistan to support operations and projects of the U.S. military, the Department of State, and the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Contractor employees outnumber U.S. troops in the region. While contractors provide vital services, the Commission believes their use has also entailed billions of dollars lost to waste, fraud, and abuse due to inadequate planning, poor contract drafting, limited competition, understaffed oversight functions, and other problems.
These statistics support a recent DoD report on the extent of the US reliance on contractors. That report also found that there has been a 23% increase in the number of “Private Security Contractors” working for the Department of Defense in Iraq in the second quarter of 2009 and a 29% increase in Afghanistan, which “correlates to the build up of forces” in the country. [출처]

아들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전쟁은 전쟁에서 민간군사업체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전쟁이었다. 부시와 딕체니 등 공화당 정권은 당시 민영화를 통해 군대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미명 하에, 별다른 경쟁도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을 통해 막대한 이권이 걸린 전쟁수행과 이에 따른 복구사업을 소수의 민간군사업체들에게 넘겨왔다. 이것은 인종학살이라는 전쟁범죄와 함께 미국의 납세자들의 돈으로 용병의 배를 살찌우는 가공할 범죄라 할 수 있다.

위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어이없는 사실 하나는 이런 범죄가 오바마 시절에도 변함없이 자행되고, 심지어는 그 계약자 수가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경쟁강화를 통해 더 많은 업체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군대 민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없이 민간계약을 늘인다는 사실은 결국 전쟁수행에 아무리 고상한 명분을 갖다 붙여도 결국 그것은 이윤창출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Is the Conservative Movement Losing Steam?

Is the Conservative Movement Losing Steam?
Richard Posner(저자소개)
May 10, 2009

이 글은 미국의 보수주의 석학 중 하나인 리차드 포스너씨가 쓴 글로 보수주의가 이미 미국정치의 승리자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있으나, 그것이 기초하고 있던 사상적 기반이 – 특히 아들 부시의 행정부를 거치면서 – 심각한 지적퇴보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글이다.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사실 그 지적 기반이라는 것도 – 좌우를 떠나서 –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절대원칙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격렬하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마모되고 세련되면서 지도적 위치를 획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시대정신은 그 주창자의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원하는 시대상황의 것일 수도 있다.[역자]

한때 생명력 있었던 미국에서의 보수주의 운동의 지적인 퇴보가 감지되고 있다. 내가 설명할 것인바, 이것은 그 성공의 유서가 될 수도 있다.

1960년대까지(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나는 거의 보수주의 운동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희미하고 빠듯했으며, (1964년 린든 존슨에 의해 학살당한) 배리 골드워터, 아인 랜드, 러셀 커크, 그리고 윌리엄 버클리 와 같은 형상으로 상징화되었다. 이들은 내게는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보다 강한 보수주의 사상가, 예를 들어 밀튼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그리고 다른 걸출한 보수주의 경제학자, 예를 들어 조지 스티글러와 같은 이들이 무대에 있었다. 그러나 경제학계 밖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1960년대 말의 국내의 혼란, 존슨식 “위대한 사회”의 무절제, 반독점과 규제의 경제학의 중요한 진전,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착각인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소비에트가 냉전에서 승리했다는 믿음–이 모든 상황전개로 인해 다채롭고 활기에 넘치는 보수주의 운동이 촉발되었다. 이는 마침내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의 선거에서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이 운동은 “시카고 스쿨” (그리고 그에 따른 탈규제, 민영화, 통화주의, 낮은 세금, 그리고 케인지언의 거시경제학에 대한 거부) 과 연계된 자유시장 경제학, 강한 군대와 리버럴한 국제주의에 대한 거부의 의미에서의 “신보수주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존중과 페미니즘과 [소수자에 대한 : 역자주] 차별철폐에 대한 저항과 범죄에 대한 강경노선이 관련된 문화적 보수주의를 아우르고 있었다.

냉전의 종식, 소비에트의 붕괴, 자본주의의 지구적 승리를 장식하는 범세계적인 번영, 특히 경제학에서의 클린턴 행정부의 본질적인 보수주의적 정책들, 그리고 마침내 부시 행정부의 선거와 초기 시절은 보수주의 운동의 절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정점에 달했을 뿐 아니라 쇠퇴하고 있다는 신호가 있었다. 주도적인 보수주의 지성들은 늙어갔고 운명을 달리했다(프리드먼, 하이에크, 진 커크패트릭, 버클리 등). 그리고 다른 이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용해지고 덜 활동적이 되었다(이를테면 로버트 보르크, 아이빙 크리스톨, 게르투르드 힘멜파르브). 그리고 그들의 계승자들은 보수주의가 귀에 거슬려지고 대중추수적이 되어가자 이전만큼 공공에 나서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 말년에 나는 내가 이해하는바, 보수주의의 승리에 대한 축하에 만족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경제나 사회구조의 다른 더 많은 변화를 바랄 욕심이 없었다. 재산세가 폐지되거나, 한계 개인소득세율의 더 많이 감세되거나, 정부가 축소되거나, 헌법의 실용주의가 “원리주의(originalism)”를 위해 폐기되거나, 총기소유의 권리가 확대되거나, 우리의 군사적 입장이 강경해지거나, 동성애자의 권리 증진이 저항에 부닥치거나, 공공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2004년 부시의 재선에 따라 물이 오른 신보수주의가 수용한 원인이 되었다.

내 주제는 보수주의의 지적인 퇴보다. 신보수주의의 정책이 대부분 감정과 종교에 의해 좌우되고 있고 대부분 약한 지적 근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책들이 개념상으로 취약하다는 것은, 실행에 있어서도 대부분 실패해 왔던, 그리고 정책이 정치적 실패라는 것은 그러므로 놀랍지 않다. 보수주의에 대한 통렬한 타격은, 오바마의 선거와 프로그램에서 최고조에 달했는데, 네 배나 배가되었다.: 미국의 외교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군사력의 실패; 지구온난화에 대한 부정, 관리 임명시의 종교적 기준의 활용, 정부기관에서의 관리와 전문지식의 무시와 같은 지성을 의지로 대체하려는 시도의 공허함; 지속적인 임신중절에 대한 편견; 그리고 거대한 재정적자, 메디케어 약품 계획, 초과 대외채무,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의 형태로 나타난 재정적 요실금

2008년 가을에 공화당의 얼굴은 사라 페일린과 수리공 조가 되어버렸다. 보수주의 지성인에게 당은 없었다.

그리고 작년 9월 금융 위기가 닥쳤고 디프레션이 확실해졌다. 이 예기치 않은, 그리고 쇼킹한 이벤트로 인해 경기 싸이클과 통상적인 거시경제에 관련된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의 핵심적인 믿음에 심대한 분석적 약점이 드러났다. 프리드먼 주의자들의 통화주의와 금융의 효율적 시장 이론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의 혐오의 대상인 존 메이나드 케인즈의 거시경제학적 사상이 다시 존경받게 되었다.

신정부의 정책과 계획의 리버럴한 면이 과한 것 같은 신호와 전조가 보인다. 그래서 학식있는 보수주의 비평가들의 타깃이 많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 따르면 보수주의 운동은 1964년 이래 가장 낮은 저점에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차이를 통해 이 운동은 현재까지는 이미 그 운동이 이미 얻은 명예에 안주하고 있는, 최소한 한동안은, 미국 정치와 사회사상의 중심을 이동시키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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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about

Walkabout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 감독 니콜라스 로에그가 1971년 감독한 작품이다. walkabout은 ‘도보여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거니와, 이 영화에서는 호주의 원주민인 어보리진(Aborigine)이 성인식의 일종으로 오지에서 몇 달간 살아남아야 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천진난만한 백인 오누이도 이러한 처절한 ‘도보여행’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정신 나간 그들의 아버지가 사막에 그들을 데려와서는 자신의 자살에 동참시키려는 것을 구사일생으로 피하게 된 것. 결국 아버지는 자살하고 오누이는 길을 헤매다 사막에 홀로 남아 바로 이 성인식을 치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소년을 만났다.

그 소년 덕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심지어 은밀한 연정까지 느끼지만 서로간의 의사소통의 부재는 때로 오해로, 때로 고통으로 다가온다. 마침내 도시의 근처로 오게 된 이들의 의사소통 불능은 상태가 심해져 가고 원주민 소년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시간이 흘러 문명세계로 돌아온 누이는 어느 새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가정을 꾸렸다. 남편이 돌아와 승진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 순간, 그녀는 원주민 소년, 동생, 그리고 자신이 나체로 연못에서 수영을 즐기던 그 행복했던 시간을 불현듯 떠올린다. 그 모든 야생의 경험은 문명세계에서의 순간의 일탈에 불과하다.

소통의 부재 정도가 무슨 죽음의 이유냐고 억지라고 생각된다면 영화가 아닌 지금 이 세상을 들여다보자. 한 원주민 소년의 죽음 정도는 태산의 흙 한 움큼 정도의 충격밖에 안된다. 권력을 위해 오만과 무자비를 ‘인내력의 한계’ 또는 ‘자위권 행사’라는 변명으로 감싸서 소통을 거부하는 어느 이웃이 다른 이웃을 향해 인종학살을 태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부시는 그들의 학살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 자기가 저지른 수준에 비해선 양호하기 때문일지도? – 오바마는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지독한 부조리는 나찌가 점령하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러면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전쟁 노름(한겨레)
Walkabout 스틸컷

이중기준의 모범사례

너덜너덜한 구제금융안이 상원을 통과한 날 또 하나의 중요한 협정이 의회를 통과했다. 미상원은 인도와 미국 간의 핵협정을 86대 13의 투표로 승인했다. 부시는 이 결과에 대해 매우 만족해 했다. 그는

“이 조약의 합법적인 승인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구적인 핵 비확산을 위한 노력이 강화될 것이며, 환경을 보호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인도가 책임있는 자세 속에서 그들의 점증하는 에너지 수요에 부응하는 것을 돕게 될 것이다.”
“The legislation approving the accord will strengthen our global nuclear nonproliferation efforts, protect the environment, create jobs and assist India in meeting its growing energy needs in a responsible manner.”

라고 말했다고 한다.(출처) 좀 낯간지럽다.

부시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미상원외교위원회 소속이자 코네티컷의 민주당 의원인 크리스토퍼 도드 Christopher Dodd 는

“이를 통해 미국과 인도는 우리 두 거대한 민주주의 간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이정표를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This bill enables the United States and India to chart a new course in relations between our two great democracies,”

라고 말했다 한다.(출처) 왠지 더 뻔뻔하다. 부시가 좀 더 솔직한 듯 하다.

여하튼 이로써 인도는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 (NPT)에 서명도 하지 않고 지난 34년 동안 금지되어 왔던 비군사용 핵기술을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관련한 조치로 인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비군사용 핵지대의 사찰을 받기로 했다.

앞서의 멍청이들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인도의 핵시장 허용을 통해 미국의 관련기업은 수천 명의 하이테크 고용, 핵기술의 판매수입 등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국제사회의 미덕이다.

그런데 이미 인도는 큰 형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던가?

1998년 현재(자료 출처)

핵무기 비확산 조약 (NPT)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복수응답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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