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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소유자의 사회”에서 “투자자의 사회”로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송파와 가까운 위례신도시, 하남 미사지구 등에서 입주 물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더 떨어지거나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면 갭 투자자들은 전세 재계약 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중략] 송파구에서는 월평균 500~600건의 아파트 매매가 이뤄진다.. 부동산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저금리로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갭 투자에 나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송파구 전세 하락, 무슨 일이?…떨고 있는 갭 투자자]

전세(傳貰) 제도는 – 법률상의 전세권과는 구분되는 –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우리만의 독특한 부동산 거래관행이다.. 또 다른 말로는 우리만의 독특한 부동산 금융기법이다. 즉, 월세와 달리 임차인이 집값의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보증금을 내고 월세 없이 거주하는 이 독특한 관행 덕에 임대인은 집주인은 큰 돈 들이지 않고 집을 구입했다. 그런데 임대인은 왜 임대기간 동안의 월세수입을 포기했을까? 바로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집값 상승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시세차익이 월세수입보다 더 클 것이라는 기대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대출금을 “불확실성이 높은 거래에 투자되는 돈” funny money 으로, 다른 학생은 금융용어를 빌려 미래의 “위험회피 수단” hedge 또는 미래에 대한 내기에 건 돈 bet 으로 불렀다. 자신들을 채무자로 간주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문화[일상생활]기술지적 文化記述誌的 증거에 따르면 미청산 부채를 보유한 사람들은 지불기일을 넘기기 전까지 자신을 “채무자”로 여기지 않는다. 나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주택금융 채무자가 더 정확한 명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주택 소유자로 간주한다.[크레디토크라시, 앤드루 로스 지음, 김의연 옮김, 갈무리, 2016년, p169]

학자금 대출이 일반화되어 있는 미국에서 채무자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학생들의 일종의 자기최면 혹은 부정에 관해 서술한 내용이다. 어쩌면 부채경제 시대를 살아가면서 현대인들 대부분은 이러한 자기최면을 걸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앞서 송파구의 아파트 소유자는 저자가 스스로를 칭하는 것처럼 그들 자신을 “주택 소유자”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자산가치의 많은 부분을 임차인의 전세금과 대출로 채웠을 것임이 확실해도, 본인은 그것을 “갭투자”, 그리고 인용문의 학생들처럼 “hedge”와 “bet”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GMAC 회장 존 래스콥은 다음과 같이 공언했다. 신용을 제공하려는 GMAC과 같은 금융회사들의 노력은 “만인에게 풍요로운 안식처와 공정한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야말로 사회주의자들이 인류에게 줄곧 환기시켜 온 바가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의 경로는 파괴를 일삼는 사회주의적 수단이 아니라 개량을 모색하는 자본주의적 수단에 의해 추구될 것이다.” [중략] 애초 이러한 선전전은 미국 내에서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차단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1940년대 후부터는 줄곧 사회주의 블록과의 전 세계적인 경쟁 구도하에서 진행되었다.[같은 책, p96]

부채 활성화를 통해 체제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20세기 초 자본주의자들의 비전은 현대에 이르러 더 진화하였다. 당시의 금융기업 회장이 희망했던 “풍요로운 안식처와 공정한 기회”를, 보다 적극적인 현대의 투자자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풍요로운 유동성과 공정한 갭투자를 통해 달성하려 하고 있다. 즉, 당시 위정자들의 목표가 “자산소유자의 사회(ownership society)”였다면 현대사회의 비전은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자의 사회(investment society)”인 것이다. 어쨌든 전셋값 하락으로 송파구의 투자자는 신규 투자자금 몇 백억 원이 필요할 것 같다.

유럽경제의 또 하나의 악재, 유럽은행들의 에너지 관련 대출

전 세계적으로 순수 에너지/발전 기업의 약 35%에 해당하는 175개의 기업이 고위험의 사분면에 놓여 있는데, 이는 높은 레버리지와 낮은 부채상환비율의 조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은 도합 1,500억 달러의 부채를 재무제표에 담고 있다. 이들 175개 기업 중 50개 기업이 자본잠식 혹은 100이 넘는 레버리지 상태이기 때문에 상황은 위태롭다. 이들 중 몇몇은 이미 주가가 5달러 미만으로 떨어져 휴지조각이 되었다. 이들 기업은 유가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2016년 파산할 위험이 높다.[The Crude Downturn for Exploration & Production Companies, Deloitte Center for Energy Solutions]

기록적인 저유가 시대의 지속으로 에너지 관련 기업의 재무적 위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유가가 상승하지 않는 한은 현 위기를 벗어날 뾰족한 방도가 없는 상황이지만, 유가는 당분간 현재의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의 배경에는 ▲ 이란의 시장 가세로 인한 공급 증가 ▲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불황, 및 석유 위주의 에너지 소비 탈피로 인한 수요 감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석유수요 증가율이 과거 1990년~2013년 평균 6.2%에서 2013년~2020년 2.9%로 감소할 것이라는 IEA의 전망은 석유수요가 근본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개연성을 말해주고 있다.

전문가의 가격전망은 에너지/발전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암울하다. J.P. Morgan의 경우 2016년 국제유가를 기존의 48.88달러/bbl에서 31.5달러/bbl로 크게 낮추었다. 좀 더 장기적인 전망도 어둡다. IEA는 2015년 연차보고서에서 2020년 실질 국제유가를 표준 시나리오에서 배럴당 80달러로, 저유가 시나리오에서 배럴당 50~60달러로 전망했다. 2년 전에 쉐브론의 CEO가 배럴당 100달러가 정상적인 가격이라고 호언했었지만, 이제 아무도 100달러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업이 기술개선이나 인력감축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지만 유가급등이 없이는 지속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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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52541

한편 이러한 에너지/발전 기업의 위기는 금융권으로 전이될 개연성이 크다. 인용기사의 한계기업의 부채가 1,500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한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의 관련기업들의 총부채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이런 많은 부채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은행들이 고유가 시절 에너지/발전 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기에 발생한 것이다. 보도된 바로는 대륙으로는 유럽(분석에 따르면 전체 자산의 약 3~5% 수준), 국가로는 프랑스의 금융기관이 특히 에너지 사업에 많은 투자 및 대출을 실행하였다. 다만 이들 기관 상당수는 정확한 거래내용이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유럽의 : 역자주) 은행이 보유한 담보, 헷지가 어떠한 형태인지나 그들의 차입자의 신용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 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유럽의 은행은 보다 통일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공개한 내용으로는 모두가 관리 가능한 이슈라는 은행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다른 예는 더 나쁘다. 도이치 은행은 자신들의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익스포져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 분야에 대해 상대적으로 “경미한” 수준이라고만 말하고 있다.[European Bank’s Crude Awakening]

관련기사들을 종합해보면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 공히 에너지 기업들에게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예를 들어 웰스파고는 전체 자산의 2%, 유럽은행들은 전체 자산의 3~5% 수준), 미국은행들이 비교적 익스포져를 정확히 공개하고, 이미 많은 자금이 펀딩에 성공했고, 충당금 등을 쌓아두고 있지만 유럽은행들은 통일된 기준도 없고, 많은 자금이 미인출 상태이고, 발표내용들도 은행의 주주들이 만족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경제의 침체, 이에 따른 마이너스 정책금리 등의 상황과 맞물려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악순환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갈 길이 갈수록 험난하다.

바다에 빠진 노동자라도 빚은 갚아야 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고용주에게 제공하는) 노동생산성이 계속 증가해온 이래 1970년대 이후의 역사상 가장 높은 이윤을 향유했다. (고용주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임금은 그렇지 못했다. 은행에 쌓인 증가일로의 이윤은 대부분 소비자 대출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소비자 신용의 분출은 고전적인 자본주의 모순을 이연시켰다. 그것은 급속히 확대되었을 때 나빠졌을 수도 있는 소비자 수요를 지탱해주었다. 자본가는 지구화된 노동력 덕분에 그들의 월급명세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정체되어온 실질임금에 기반을 둔 점증해온 소비자 부채의 25년은 예상할 수 있던 한계에 도달했다. 노동자의 소득이 부풀어 오른 채무를 감당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을 때, 그들의 파산은 – 소비자 부채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의 파산과 함께 – 2008년의 붕괴에 일조했다.[Capitalism – Not China – Is to Blame for the Current Global Economic Decline]

2008년의 금융위기가 단기적으로 미국의 부동산 시장의 거품뿐만 아니라 중기적으로 1970년대 이후 증가일로에 있었던 소비자 신용이 그 한계에 도달하여 유발되었다는 설명을 인용해보았다. 이글의 서론에도 언급하듯이 자본주의에는 다양한 형태가 현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자본주의 형태의 현재시점에서의 공통점은 인용한 부분의 설명처럼 소비의 상당부분이 노동자이기도 한 소비자의 부채를 통해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특성은 확실히 이전 세기 초반의 자본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이다.

이러한, 소득과 소비의 불일치를 소비자 신용으로 채워온 자본주의 형태의 선두주자에서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 예로 한국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국가 규모의 거대한 소비자 신용을 통해 집단적으로 소비해온 소비자 신용 선진국이다. 이름도 걸맞게 “주택담보 집단대출”이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되어온 아파트 개발 사업은 전형적으로 개발업자가 “부동산PF”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아파트를 짓고, 이를 사들일 소비자는 자기 돈 일부에 “주택담보 집단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아파트를 사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래서 작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민간소비 부진의 원인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나열한 여러 원인 중 첫 번째가 바로 “가계부채”다. 보고서는 최근의 민간소비 부진이 “경기적 요인으로 보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고 지적하며, “가계부채가 임계점에 도달”하였다고 단언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그 절대적 규모도 규모거니와 원리금 상환능력이 중요한데, 우리의 가계부문의 원리금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2년 말 163.8%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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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Austria shipwreck” by Unknownhcandersen-homepage.d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Commons.

한편 정부는 지난 12월 16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성과를 구체화”하고자 할 목적으로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았다. 이 발표에서 제시한 가계부채에 관한 정책방향은 “주담대 분할상환 관행 정착”과 “집단대출의 건전성 관리”다. 즉, 만기 일시상환 위주의 대출을 분할상환으로 유도하고 집단대출이 실수요자 위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인데, 이 정도면 근본적인 부채대책이라기보다는 미세조정에 가깝다. 이는 전경련조차 “임계점”이라고 규정한 심각한 가계부채의 근본대책이라 보기에 미흡하다.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실질적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인 가처분소득을 늘릴 수 있는 대책으로는 “정규직 전환 및 근로자 임금증가액에 추가 세액공제 부여” 등이 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이미 작년에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를 도입한 바 있고, 그 덕인지 2015년 국내총소득 증가율도 전년기 동기 대비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였다.2 하지만 여전히 중기적으로 세금·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 부문의 부담 증가3, 전월세 가격의 폭등4은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키고 있어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보다 근본적으로 부채에 허덕이는 가계에 직격탄을 날리는 상황은 부족한 소득마저 빼앗아가는 실업이다. 인용문에서도 지적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지구화된 노동력은 노동자가 언제라도 직업을 잃을 수 있는 전제를 제공하고 있는 한편으로, 국내 경기의 장기침체 조짐에 따른 상시적 인력감축은 노동자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신입사원마저 “희망퇴직”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기업의 인력감축정부의 일반해고 요건 완화 시도는 체제적 위기의 풍파에 시달리는 배에서 노동자들을 우선 바다에 던져 넣겠다는 것이다.

물론 바다에 빠진 노동자라도 빚은 갚아야 한다.

디플레이션이 꼭 나쁜 것일까?

맥킨지는 지난 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호주와 말레이시아와 함께 태국과 남한을 가계부채가 지속 불가능할 수 있는 곳으로 꼽았다. 남한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수준은 가용 가능한 최신 자료인 작년 2분기 말 현재 144%다. 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 직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중략] 한국은행은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용 강화를 원하지 않는다. 스탠더드차터드에 따르면 그 경우 가계자산의 4분의 3이 부동산인 – 미국의 25% 수준보다 훨씬 높은 – 이 나라에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Asian Central Banks’ Dilemma: Balancing Debt and Growth]

예상대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 사상 최초로 1%대 기준금리 시대에 접어들었다. 얼마 전 경제부총리가 “디플레이션”을 거론하던 상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었던 결과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보자면 디플레이션이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개별 경제주체별로 보면 그 손익분석이 다를 것이다. 무주택자에 무차입자라면 – 임금하락을 빼놓고는 – 디플레이션이 나쁠 것 없다. 현금을 모아놓으면 그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빚을 내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자라면 손해다. 실물가치가 내리는 와중에 실질금리는 상승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산 중 압도적인 비중이 부동산인데다 가계부채 수준도 높은 이 나라는 역시 금리인하라는 모르핀 이외에는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것일까? 언제까지 이 모르핀을 맞아야 할 것인가?

유가하락의 원인에 대한 BIS의 분석에 대하여

그러나 다른 요소들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새롭고도 중요한 요소는 최근 석유 섹터가 부담하는 부채의 현저한 증가다. 투자자들이 기꺼이 원유자산과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려고 하기 때문에 원유기업들은 부채 수준이 광범위하게 상승하는 와중에도 대규모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 [중략] 생산자들이 변제능력이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오일 섹터의 이러한 과중한 부채부담이 석유 시장의 최근의 역동성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중략] 높은 부채 수준으로 인해 유가 하락이 생산자의 재무상태표를 악화시키고 잠재적으로 원유자산 판매의 결과로써(예를 들어 더 많은 생산량이 선물로 팔린다) 가격하락을 부추기면서 신용수준을 조이게 된다. 둘째로, 낮은 유가는 현금흐름을 감소시키고 기업이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유동성 부족의 위기를 증가시킨다. 부채 상환 요구 조건은 현금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질 생산을 지속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이것이 시장에서의 공급 감축을 지연시킬 수 있다.[Box: Oil and debt (February 2015)]

BIS가 최근 세계경제의 주요 변수가 되고 있는 유가하락의 원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3월쯤에 완전한 보고서로 발간될 예정인 이 연구의 대강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기에 일부를 번역해보았다. 전체적인 내용은 현재의 유가의 폭락이 금융과 상당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금융화 현상과 함께 어쩌면 가격의 등락에 금융이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론이지만 정작 매체에서는 사우디와 미국의 기 싸움, OPEC내에서의 갈등 등 정치적인 이슈만을 화제로 삼아 오히려 신선한 감이 있다.

유가와 금융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 10년간의 유가 폭등에도 주요변수로 주장되어 왔던 것이 금융자본의 시장 가세로 인한 이상폭등이었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지금도 그 정확한 원인을 발라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금융화 현상이 실물가격의 변동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개연성은 이제 자연스러운 추론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때와는 반대 양상으로 유가가 폭락하고 있음에 또한 금융화 현상이 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BIS의 추론이다. 그리고 인용한 부분은 바로 석유기업의 높은 부채수준이다.

우리가 오늘날 투자은행이라고 부르는 부문은 사실 시작부터 석유시장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석유시장에서 사업을 하려면 큰돈이 필요하다. 이 돈을 모두 자기 돈으로 조달하기에는 벅찬 사업가가 손을 벌린 곳이 바로 초기의 월스트리트였다. 유전개발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으로 발달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PF라 부르는 프로젝트파이낸스(Project Finance)다. 1930년대를 기점으로 한차례 시장의 성장을 겪은 석유 파이낸스 시장은 1970년대의 북해유전의 개발과 1980년대 세계화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왔다.

그런데 그렇게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면 왜 최근에야 유가가 하락할까? BIS가 제시하고 있는 그래프가 판단의 단초가 될 것 같다. 2006년과 2014년의 석유/가스 회사의 미상환 부채 수준이다. 금융위기를 거쳐 왔음에도 미국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들의 부채수준은 다른 부문의 부채청산 경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늘었음을 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위기 시절에 유가가 더 올라 그들의 수익성이 좋아졌음에서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그들의 부채청산 시기는 이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향후에는 이런 높은 부채수준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단 최근 적지 않은 에너지 부문에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계상황에 부닥친 기업들은 회사를 청산할 것이다. 사우디가 기대하고 있었을 치킨게임에서의 승패가 어느 정도 가려질지도 모르겠다. 공급은 줄어들고 다시 유가가 정상화(?)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런데 그런 예측이 단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에너지기업의 부채가 정상화까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그 전에 채무불이행에 도달한다면 시장은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전 세계 프로젝트파이낸스 연도별/섹터별 추이(단위 : 10억 달러)

출처 : Global Project Finance Infrastructure Review Full Year 2013, Infrastructure Journal

다음으로 향후 에너지 시장에 신규 생산자가 얼마나 진입할 것인가 하는 데이터도 유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Infrastructure Journal이 조사한 최근 3년간 프로젝트파이낸스 시장을 보자. Oil & Gas 부문은 여러 부문 중에서 항상 1위를 차지했고 특히 2013년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투자의 대폭적인 증가세는 “투자자들이 기꺼이 원유자산과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려고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설들은 향후 몇 년에 걸쳐 차근차근 생산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유가를 출렁거리게 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유럽의 “약한 고리”가 된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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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is Tsipras Syriza” by FrangiscoDer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진작부터 예상되어온 시리자(ΣΥΡΙΖΑ)의 승리로 말미암아 유럽 경제와 정치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가십을 좋아하는 이는 그리스에서 마흔 살의 역대 최연소 총리가 탄생했다는 것을 입에 올렸고, 전 세계 좌파들은 유럽에서 “진성” 좌파 정당이 집권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투자자들은 강경주의자가 – 요즘에는 “대중영합주의자”가 더 자주 쓰이는 것 같다 – 그리스 정치를 장악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투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판알을 굴리고 있다. 제각각 반응이 틀린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예상되었던 이번 승리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유럽이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단일경제권을 형성함으로써 이전 세기의 정치적 위기를 경감시키고 미국에 대항하는 강력한 공동체를 구성할 것이라는 이상주의자들의 꿈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파탄이 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구성원들의 아슬아슬한 합의 하에 여태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단일 경제권이라는 시도가 정치적 위기를 오히려 증가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주되게 유로존이 단일통화를 쓰면서도 미국과 같은 재정동맹으로 엮인 단일 중앙권력의 연방이 아니라는, 즉 정치주권과 경제주권이 불일치하는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에서 애초에 설계부실이다.

그래서 가장 실현가능한 대답은 임시변통의 조치다. 그러나 그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치프라스가 세금 유예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리스 유권자의 신뢰를 몽땅 잃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의 위치에 대해서 약간의 개선만 얻어낸다 할지라도, 이는 다른 나라들의 반반을 불러올 것이다. [중략]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긴축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이들 국가의 유로 멤버십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좌우 진영의 대중영합주의자들이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하한의 임시조치도 기술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유럽중앙은행은 치프라스 정부가 채권자들과의 합의된 프로그램 안에 있지 않는다면 그리스 은행들에게 긴급 유동성을 부여한달지 채권을 사준달지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하한의 곤경은 그리 은행들의 뱅크런을 야기할 수 있다. 만기를 연장함으로써 이러한 몇몇 상황을 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치프라스에겐 너무 인색한 것이고 메르켈에게 있어서는 너무 후한 것이다.[Syriza’s win could lead to Grexit, but it should lead to a better future for the euro]

바로 이 사례가 미연방과 유로존이 가지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 주가 가혹한 긴축정책에 대항하여 주지사를 좌파로 뽑아 채권자들의 가혹한 상환 프로그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저항하고 이에 대해 부유한 주인 뉴욕 주에서 이행을 강요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개별 정치 주권을 가지고 있는 유로존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더불어 각 나라의 인종도 틀리고 남유럽 유권자들이 통화 통합으로 인한 무역불균형 등으로 부자 나라에게 뺏긴 것이 많다고 여기는 상황은 유로존의 공동체 정신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스페인에서 시리자와 비슷한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포데모스(Podemos)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상황은 유럽연방주의자들이 한층 더 공포심을 가질만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유럽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의 ‘약한 고리 이론’ 내지는 ‘공산주의 도미노 이론’이 전개되는 상황인 것이다. 스페인의 유력 정치세력들은 “스페인은 그리스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원인의 해법이 결국 대규모 채무와 긴축재정 프로그램으로 동일했다는 점에서는 스페인 역시 그리스고 그에 대한 정치적 저항 프로그램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주 개연성 없는 시나리오는 아닌 것이다.

그리스 국민은 그들이 지고 있는 빚이 “부도덕한 빚”이었다며 이에 대한 탕감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인용한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독일이 나머지 유럽 국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프로그램의 이행을 강요했다면서 메르켈의 후퇴를 점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의 시리자 집권은 그동안 금칙어로 설정되어 있던 채무 프로그램 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금융위기 이전의 유로존 경기부양 프로그램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면 지금의 부채상환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약한 고리를 강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 탈출 계획에 대하여

우량공기업 밀어서 잠금 해제”라는 글에서 설명했다시피 MB 정부는 출범 전부터 이른바 민자 유치를 통한 “대운하” 사업추진을 공언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슬그머니 이름을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정부예산으로 강파기를 강행한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수자원공사를 끌어들여 8조원을 조달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사업목적을 물류에서 치수(治水)로 바꾸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그 결과 수자원공사는 2013년 말 현재 부채비율 120.6%의 빚더미를 떠안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수자원공사(수공)의 부채 8조원을 상환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800억원을 반영할 것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고 30일 밝혔다. 국토부는 부채 원금 상환을 위한 800억원 외에 부채 이자를 갚기 위한 3170억원도 추가로 요청했다. 정부는 2009년 9월 수공이 4대강 사업에 8조원을 투자하도록 결정하면서 이자는 전액 국고에서 지원하고 원금은 개발수익으로 회수하기로 했다. [‘4대강 빚 세금으로 갚는다?’ 논란, 이자 수천억에 원금 8조원까지.., 이데일리, 2014년 7월 1일]

정부는 당시 수공의 투자에 대해 이자는 지원하되 원금은 수익사업으로 갚아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자를 지원해주는 것도 마땅치 않지만 어쨌든 원금은 수공이 자체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였으니 만큼 그렇게 됐어야 했다. 하지만 인용기사에서 보듯 국토부는 그런 계획을 무시한 채 이제는 원금까지 세금으로 갚아달라고 기재부에 요청한 상황이다. 정부가 수자원공사를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에 수공을 사업시행자로까지 넣어줘 빚을 갚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친수구역 사업이 시행될 경우 공사 매출의 확대 및 투자금 회수를 통한 4 대강 사업비의 회수가 일부 가능할 수 있지만, 개발사업의 특성상 실제 투자비 회수에는 장기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최근 건설경기 위축으로 공사의 개발사업에 따르는 리스크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나, 공사의 단지분양사업은 국가정책사업으로서 동사의 최대주주인 정부의 높은 사업 및 재무적 지원가능성이 사업 리스크를 완화시켜주 고 있다.[한국수자원공사 기업평가 보고서, 한국기업평가, 2014년 3월 19일]

공기업에 대한 기업평가 보고서의 특성상 그 뉘앙스가 온순한 편이지만, 이 서술은 수공이 친수구역 사업으로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우울하며, 다만 정부가 빚을 갚아줄 가능성만이 리스크를 완화시켜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수공이 부산시와 함께 시행할 에코델타시티 사업의 경우 예정사업비가 5조4,386억원 규모의 신도시 개발 사업이다. 수공이 강을 파느라 진 빚에 대한 반대급부로 정부에게 받은 특혜(?)라는 것이 또 하나의 리스크 높은 부동산 개발 사업인 것이다.

수공은 2009년 6월 4대강 정비 사업의 참여를 결정했다. 그해 말 수공의 부채는 불과 2조3,206억 원이었다. 그런 우량공기업이 리스크 높은 부동산 사업의 시행권을 대가로 받으며 4대강에 돈을 쏟아 부었고, 그 결과 수공의 2012년 말 부채는 11조2,410억 원으로 늘었다. 건설산업연구원은 당시 경제적 효과가 38조4천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이 중에서 수공이 가져갈 몫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한편 이런 상황에 대한 국토부의 해명은 아래와 같다.

정부는 수공의 4대강 투자(8조원)를 결정하면서, 이자는 전액 국고지원하고 원금은 개발수익으로 회수하되 부족분은 사업종료 시점에서 수공의 재무상태 등을 감안, 재정지원의 규모․시기․방법 등을 구체화하기로 함(국가정책조정회의, ‘09.9) 이에 따라,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금년에 정부 재정상황 및 수공 재무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인 수준에서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임[‘수공 4대강 투자비 정부지원 검토’ 보도 관련, 국토교통부, 2014년 6월 30일]

그러니까 국토부의 이야기는 “사업종료 시점에서… 재정지원의 규모․시기․방법 등을 구체화하기로” 하였고 이제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도 갚아줄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원칙은 “이자 국고지원, 원금 개발수익”이었지만 단서조항으로 달아놓은 문구를 들어 자신들의 계획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대운하”로 시작하여 “4대강 살리기”로 둔갑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한 우량공기업을 부실화시킨 상황에 대한 대안치고는 그리 명쾌한 대안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