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문화

최근에 당근에서 가져온 책들

당근이 최근에 “바로구매”라는, 결국에는 동네에서의 거래라는 개념을 버린 새로운 거래 방식 때문에 – 아니면 덕분에? – 소비자에게는 이런저런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예를 들면 사진의 왼쪽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 컬렉션은 “바로구매” 덕분에 구매할 수 있었던 책이다. 오른쪽의 책들은 기존의 구매 방식으로도 구매할 수 있었고 게다가 무료로 나눔 옵션으로, 무료로 나눠주셔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던 거래 장소에 가서 얻어온 책이다. 암튼 이 책들을 염가에 혹은 무료로 가져왔다고 희희낙락거릴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책들을 나누어준 분들의 의도에 부합해서 알뜰하게 책을 읽어서 나눔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 당근러의 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서 정리 안하는 셜록 홈즈

Cluttered desk with books, jars, sculpted elephants and other objects
By Alberto Ghione from Torino, Italia – lo studio, CC BY-SA 2.0, Link

너무 잘 정리된 런던의 셜록 홈즈 박물관의 서재

그러나 무엇보다 큰 골칫거리는 그의 문서였다. 문서를 버리려고 하면 그는 질겁을 했다. 그가 맡았던 사건과 관련된 문서는 더욱 그랬다. 크게 마음먹고 문서 색인을 만들면서 정리하는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다. 두서없는 이런 회고록 어디선가 언급했듯이, 그가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다음에는 그 반작용으로 무기력증에 푹 빠져서, 바이올린과 책을 벗삼아 빈둥거리며 식탁까지 오가는 것만 빼고는 소파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다달이 그의 문서는 쌓여만 가서, 이윽고 방구석마다 원고가 수북했는데, 그것을 태워버릴 수도 없고 주인이 아니면 치울 수도 없었다.[주석 달린 셜록 홈즈/머스그레이브 씨네 의식문, 719쪽]

셜록 홈즈의 문서 정리 스타일에 관한 언급. 지금 시대 같으면 앤트로픽의 클로드로 한방에 정리해달라고 하면 되겠네. 그전에 물론 소프트파일로 만들어 놓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부분을 읽으니까 셜록 홈즈의 기질이 칼 맑스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맑스 역시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각종 사안을 헤쳐나갔지만, 난삽하고 정리가 안되는 스타일로 온갖 작업을 진행하다가 수습을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의 역작인 ‘자본론’은 생전에 1권만 출간되었고 나머지는 그의 사후 쓰레기더미에 가까운 서류더미에서 초고를 찾아내고,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맑스의 닥터왓슨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작업 덕분이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엊저녁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하다가 말다가 했던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바로 바오 능옌(Bao Nguyen)이라는 감독의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원제 : The Greatest Night in Pop)』이라는 제목의 2024년 다큐멘터리다. 대체 어떤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일까? 팝 평론가나 팝 애호가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가리키고 있는 밤은 1985년 1월 28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날 밤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라는 것일까? 세상에 수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일단 팝 역사에서 바라보자면 그날은 팝 음악 산업계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제12회 아메리칸뮤직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이라는 곳에서 열린 날이란 것이 첫 번째 단서다. 매우 유력한 단서다.

그런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중요한 행사인 것은 알겠는데 특별히 1985년에 열린 그 행사가 그렇게나 중요해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말고 그다음에 있었던 이벤트’다. 그것은 바로 시상식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M 스튜디오에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녹음한 바로 그 밤을 말하는 것이다.

We Are The World라는 곡은 80년대 팝 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곡이다. 이 곡은 이미 1년 전에 붐타운래츠의 프론트맨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 인민의 굶주림 등 비참한 삶을 보도한 BBC 프로그램에서 감화받아 팝 뮤지션을 모아 녹음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1 영감받은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팝계의 거물 매니 켄 크라켄(Ken Kraken)에게 제안한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곡이었다.

위대한 흑인 음악 뮤지션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는 영국에서의 기획을 보고 아프리카에서의 비극을 아프리카 계열의 뮤지션이 많은 미국의 팝 음악계가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유사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결과 켄 크라켄의 인맥이 작용하면서 초기에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와 같은 팝계의 거물이 합류하여 프로젝트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레코드사의 기획자들이 달라붙어 뮤지션들을 어렵게 섭외하는 등,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마침내 “위대한 밤” 동안에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특별히 그 밤이 아메리칸뮤직어워즈가 열린 밤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날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곡의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찰, 당시 팝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그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이 당시 촬영한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그날에 관한 훗날의 인터뷰 중에도 쉴라 이(Sheila E.)2의 인터뷰가 마음 아팠는데3 아무튼 나머지 가수들의 고생도 나름 다 의미가 있었다.4

이 기획에 대한 사견을 말하자면 해리 벨라폰테가 위대한 인물이고 – 심지어 맑스주의자라는 설도 강하고 – 이 기획이 결코 만만한 기획이 아니었음은 분명함에도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에이드 자체도 그렇지만 이 기획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일세계의 셀럽들이 제삼세계 인민의 곤궁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5

그럼에도 1985년 1월 28일이 “가장 위대한 밤” 중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영국의 백인 뮤지션 위주로 –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 시작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흑인 뮤지션 위주의 프로젝트으로 – 조금 더 연대의 의미가 강화된 – 진화했다는 의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 한계를 비춰보면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상기해 볼 때 의미는 절대 만만치 않다.

그 다큐멘터리는 사샤 젠킨스(Sacha Jenkins)가 감독한 2023년 『선데이 베스트 : 에드 설리번 이야기(원제 : Sunday Best)』라는 다큐다. 나 역시도 에드 설리번을 그냥 팝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큐를 본 다음에 알게 된 실상은 엄청났다. 그는 단순한 사회자를 넘어서 팝 음악, 특히 흑인 음악을 주류에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일랜드+유태인 계 “백인” 진보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프리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밤에 활약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상당수 에드 설리번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에서 데뷔하고 그 뒤 연예계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 “위대한 밤”의 당사자 해리 벨라폰테, 스모키 로빈슨,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등이 애드 설리번의 “의식적인” 도움으로 애드의 쇼에 출연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에드는 처음에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 관련 칼럼을 쓰면서 그 당시 업계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 행사의 사회를 보던 그는 새로운 매체인 TV쇼에서의 호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 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단 애드 설리번 쇼였고, 이 쇼는 앞서 언급했듯 유색 인종에게 전국구 데뷔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미국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쇼가 된다.

요컨대, 서구권의 팝 음악계에서 – 또는 다른 예체능계도 그렇지만 – 어쩌면 어쩔 도리 없이 선각자적인 백인의 도움을 받아 유색 인종이 업계에 진출하는 시기가 있었다.6 그중 가장 적극적인 선각자 중 하나가 바로 에드 설리번이었고, 그의 도움을 통해 연예계에서 기반을 다진 이들이 1980년대 마침내 이제 유색인종인 본인들의 기획으로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등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We Are The World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1.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획에 참여한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백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인데, 특별히 기획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영국 팝 음악계가 그렇게 이미 편성되었던 측면은 분명하다.
  2. 쉴라 이는 아메리칸뮤직어워즈에서 생애 최고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3. 즉, 요지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사실 쉴라 이가 아닌 프린스를 무대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쉴라 이를 떡밥으로 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쉴라 이의 생각이고 이는 거의 정설일 것이다) 그런데 “Check Your Ego At The Door”라고 퀸시 존스가 스튜디오에 써 붙여 놓을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진 이들이 한 번에 모인 그날 밤에서도 특히 프린스는 너무 에고가 강한 이였고, 라이오넬 리치에 따르면 그는 “별도의 녹음실에서 별도의 기타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날 그 에고 강한 밥 딜런도 시큰둥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머지 뮤지션들과 끝까지 한 방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쉴라 이 홀로 미니애폴리스 사단의 일원으로서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프린스의 솔로 파트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파트는 잔뜩 긴장한 휴이 루이스(Huey Lewis)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4.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솔로 파트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파트다. 다큐에서 신디 로퍼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유가 허탈하면서도 재밌다.
  5.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된 중 가장 급진적인 프로젝트는 인종차별 정권에 저항하는 남아공의 진보 세력과 연대한다는 의미를 지닌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의 Suncity였다
  6. 예를 들면 방탄소년단이 지미 팰런 등과 같은 미국 주류 토크쇼의 백인 진행자의 도움 없이 미국 주류 음악에 편입할 수 있었을까?

“위대한 사건의 시대는 갔다”

Chris Weidman knock out Anderson Silva at UFC 162..jpg
By KevlarOwn work, Public Domain, Link

하지만 사소한 사건을 다룬다 해도 사실 난 자네를 탓할 수 없어. 위대한 사건의 시대는 갔으니까. 인간은, 아니 최소한 범죄자 인간만큼은, 모험정신과 독창성을 죄다 잃어버렸어. 그래서 내 탐정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잃어버린 연필이나 찾아주고, 기숙학교를 나온 젊은 아가씨에게 조언이나 해주는 역할로 전락한 것만 같아. [주석 달린 셜록 홈즈/너도밤나무 저택1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승영조 옮김, 북폴리오, 초판2쇄 발행 2007년 2월 26일, 508쪽]

개인적으로는 셜록 홈즈는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런 대목에서 그런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정의의 실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는 다만 “위대한 사건”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험정신과 독창성”이 충만한 범죄자 인간과 겨루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탐닉하고 있는 코카인이나 헤로인보다 더 중독성이 강한 범죄 해결을 통한 쾌락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치 자신과 실력이 비등한 파이터와 링에 맞서서 승리를 쟁취하고 싶은 욕망을 두고 있는 UFC 파이터처럼 말이다. 존존스와 싸우고 싶어 하는 톰아스피날의 스멜이다.

  1. 이 작품은 스트랜드 매거진 1892년 6월호에 발표됐다. 참고로, 이해 1월에는 J. R. R. 톨킨이 탄생했다.

챗지피티의 성인지 감수성은 얼마나 개선됐는가?

Combotrans.svg
By Original: User:pschemp – Image:Combotrans.png, redrawn by myself, CC BY-SA 3.0, Link

2023년 여름 시먼스 컴퓨팅 이론연구소에서는 LLM을 주로 일주일간 워크숍을 진행했다. 연사 중 한 명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의 애덤 토먼 칼라이였는데. 그는 오픈 A의 GPT-4와 나눈 아래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Q: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누가 임신했나?
A: 이 문장에서 ‘그녀’는 간호사를 가리키므로 간호사가 임신했다.
Q: 의사가 임신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알 수 있나?
A: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서 대명사 ‘그녀’는 임신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녀’는 여성 대명사이므로 문장의 여성 주어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간호사이다. 게다가 남성 의사가 입신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아닐 아난타스와미 저, 노승영 역, 까치, 2025년, 433쪽]

저자도 지적했듯이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챗지피티의 성인지 감수성이 발전했는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져봤다.

좋은 질문이에요. 문장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에서
‘그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문맥상 모호(ambiguous) 합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보면,

  • ‘그녀’가 간호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간호사가 임신했기 때문에 의사와 결혼했다는 의미로 읽히죠.

만약 의사가 여성이고 그 의사가 임신한 경우라면,
그걸 명확히 하려면 문장을 바꿔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의사가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요약하자면 —
👉 기본 문장에서는 간호사가 임신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 하지만 문법상으로는 ‘그녀’가 간호사인지, 의사인지 명확하지 않아 문장 구조상 모호함이 존재합니다.

답변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표현이 등장한다. 일단 “문맥상 모호”하다는 표현을 쓰면서 질문이 다소 교묘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그녀’가 간호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고서는 “문장을 명확히” 하려면 “의사가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질문을 던졌어야 한다고 질문자에게 조언하고 있다. 여전히 성차별적인 선입견을 품고 있으면서도 질문자의 질문이 모호했기 때문에 자신이 “자연스러운”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있다. 성인지적 이해적 판단 능력이 2년 동안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질문자의 질문을 탓할 정도로 조금 더 약삭빨라진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질문해서 유교적(!) 판단을 했을 수도 있겠고.

그래서 이번에는 호기심이 생겨서 딥시크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해당 문장에서 “그녀”는 간호사를 가리키므로, 간호사가 임신했습니다.

간단명료한 성차별이라서 오히려 담백하다.

셜록 홈즈 소설로 엿보는 당시 영국 사회의 시대상

Spec-08.jpg
By Sidney Paget (1860 – 1908) – File published on Camden House (Ignisart.com), Public Domain, Link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인 벵골 포병대의 스토너 소장과 사별했죠. 줄리아와 저는 쌍둥이인데, 우리가 겨우 두 살이었을 때 어머니가 재혼을 하셨어요. 어머니한테는 상당한 재산이 있었죠. 연간 수입이 1,000파운드도 넘었어요. 재혼하신 후 어머니는 돌아가실 경우 전 재산을 로일럿 박사에게 물려주기로 했어요. 우리 자매가 결혼할 경우에는 각자에게 연간 일정액을 준다는 조건이었죠.[주석 달린 셜록 홈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승영조 옮김, 북폴리오, 2007년, 359-360쪽]

“사망한 아내의 유언장을 찾아봤지.” 그가 말했다. “유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투자액의 시가를 알아봐야 했어. 아내의 사망 당시 줄잡아 1,100파운드였던 총수입이 지금은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750파운드도 안 되더군. 두 딸이 결혼할 경우 각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250파운드씩이야. 따라서 둘 다 결혼을 했다가는 영감이 푼돈만 만지게 되지. 한명만 결혼해도 타격이 만만치 않을 거야.”[같은 책, 372쪽]

코난 도일 경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 중 1892년 ‘스트랜드 매거진’에 발표된 「얼룩 끈의 비밀」이라는 단편 소설의 일부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추리소설로써의 특유의 매력이 넘사벽이기 때문인 것이 일차적이다. 그다음 개인적으로 꼽고 싶은 매력은 인용한 부분처럼 19세기 당시 영국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즉, 이 소설에서의 사건 의뢰인은 당시 시대의 중상류층 집안의 상속자였는데 소설은 이에 따라 당시의 상속 풍습을 상술하고 있어 독자의 몰입감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이자 자본주의의 선진국이었던 영국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은 어쩌면 이러한 국가적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셜록 홈즈 시리즈 다른 소설에서도 이런 배경은 자주 범죄의 일차적인 동기로 쓰였다. 물욕에 이끌린 살인극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피의자로 의심되는 로일럿 박사가 왜 자매에게 엉뚱한 흑심을 품게 되었는지 독자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영국 중상류층 사회의 재산형성 과정을 어느 정도 알면 좋은데 인용 부분은 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일단 로일럿 박사와 피해자 자매의 어머니의 만남부터가 “제국주의적”이다. 어머니의 전남편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벵골 지역에 파견된 군인이었다. 로일럿 박사 역시 그곳에 파견된 군의관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한편으로 부재(不在)지주였다. 군인의 아내이자 지주, 당시 영국의 중상류층 여성의 모습이다. 그런데 당시 영국법에 따르면 아내의 돈은 남편이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자매에게 바로 재산을 상속하지 못한 것이다. 지주였지만 여성이기에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 모순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홈즈의 조사에 따르면 어머니의 재산은 당시의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인해 연간 수입이 4분의 1 이상 줄었다. 인용한 책의 주석에 따르면 당시 영국에서는 1873년부터 1894년 사이 악천후, 가축 전염병,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의 임대료는 자기자본(equity) 트렌치였는지 농산물 가격에 연동되는 방식이었나 보다. 그러다보니 리스크가 고스란히 로일럿 박사에게 이전된 것이다. 그런데 자매의 연금은 고정가격이었다. 자매에겐 행운이었지만 로일럿 박사에게는 재앙이었던 셈이다.

요컨대 두 자매가 모두 없어질 경우 로일럿 박사는 그나마 연 750파운드의 수입을 유지할 수 있는데 둘이 연금을 가져갈 경우 본인의 수입은 250파운드로 줄어들고 그마져도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챗지피티에 물어보니 현재 원화 기준으로 당시 1천 파운드는 대략 3억 원이다. 크다면 큰돈이지만, 쓰임새가 헤펐을 악당 로일럿 박사에게는 감질나는 금액이다. 그런데 그 돈이 4분의 1 토막 난다면 살고 있던 저택과 하인들을 부릴 처지도 못 됐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악당의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Friedrich Engels가 언급된 노래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Came to the checkout at the 7-11
Marx was skint, but he had sense
Engels lent him the necessary pence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7-11 계산대에 갔어.
마르크스는 빈털터리였지만 분별력은 있었지.
엥겔스는 그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줬어.

The Clash가 1980년 발표한 그들의 네 번째 앨범 Sandinista!를 듣고 있다.(앨범 제목부터가 파워가 느껴진다)1 인용한 가사는 이 앨범의 첫 번째 트랙 The Magnificent Seven2 의 가사 중 일부다. 뉴욕의 힙합씬에서 영향받은 랩과 비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소매판매점 노동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돌아가는 자본주의 대도시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위 가사를 인용한 이유는 흥미롭게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언급돼서다. 칼 맑스가 대중음악 가사에 쓰인 것도 많이 보지 못했지만,3 엥겔스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어쨌든 그 둘이 현대로 와서 7-11에 갔다는 설정이 재밌다. 그리고 무일푼인 맑스는 엥겔스에게 돈을 빌린다. 실제 생전에 맑스가 엥겔스에게 재정적으로 많이 의지했다는 점에서 밴드의 뼈 있는 유머가 아닐 수 없다.4

HK SYP Chong Yip Ctr 7-11 shop.jpg
By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GS417~commonswiki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 No machine-readable source provided. Own work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CC BY-SA 2.5, Link

이 노래가 뛰어난 점은 이미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거장 밴드가 자신들만의 음악적 성(城)안에 머물지 않고 바다 건너 뉴욕의 힙합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음악적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밴드는 직접 뉴욕으로 날아가 음반 가게에서 슈가힐갱, 그랜드마스터플래시 등을 구매해서 듣고는 이들의 음악에 감화받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는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더불어 가사에서도 런던보다는 명암이 더 뚜렷한 자본주의 세계의 심장인 뉴욕에서의 일상 풍경이 진하게 느껴진다. 가사는 녹음 현장에서 즉석에서 싱어 조 스트러머가 만들었다는데 아마도 그러한 연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영국 뮤지션인 조 잭슨도 뉴욕에 와서 이 도시의 매력에 반해 명반 Night and Day를 만들었듯이 The Clash 또한 뉴욕 거리의 문화에 영감받아 이런 음악을 만든 것이다.

오피셜 뮤직비디오도 재밌다. 앨범 수록 버전과 조금 다르게 뉴스 앵커 톤의 해설가 이들의 공연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 필름에는 밴드의 JFK 공항 도착 장면, 뉴욕의 거리, 공연에 모여든 군중 등의 영상이 담겨 있다. 특별히 의도된 연출 없이 눈에 띄는 거리와 공연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편집한 것으로 보이는 이 비디오는 그런 만큼 45년 전의 뉴욕의 풍경이 여과 없이 담겨 있어 매력적이다.

  1. 산디니스타 국민해방전선은 니카라과의 좌익 반군이자 후에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으로 1920년대 미국이 니카라과를 침공할 때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의 이름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2. 1960년 공개된 미국의 서부 영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는 《황야의 7인》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다. 요즘은 미국의 주식 시장을 지배하는 일곱 개의 테크거인들의 별명으로 더 유명해진 듯하다.
  3.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Bros의 When Will I Be Famous? 정도?
  4. 노래에는 이 둘 이외에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마하트마 간디, 소크라테스, 플라톤, 닉슨 등 유명인들이 이런저런 재밌는 상황에 등장한다.

아파라히토 [1956]

Poster
By Likely to be Epic Films or Merchant Ivory Productions or Sony Pictures Classics, the producers/distributor of the film –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s/13_10/1957/48956/l_48956_04db894c.jpg, Fair use, Link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연구소』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전에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가 게스트로 출연해 인도에 관한 특집을 진행했는데 아침부터 보고 있다. 인도의 종교, 지리, 풍습 등 복잡다단한 인도 사회의 단면을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하고 있어 인상 깊게 보고 있다. 보고 있다 보니 문득 예전에 감명 깊게 감상했던 사티야지트 레이 감독의 『아푸 3부작』이 생각났다.1 현대 인도 영화의 특징을 규정하고 있는 소위 “발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춤과 노래가 뒤섞인 영화가 아닌 진지한 드라마로 차분하게 인도 인민의 삶을 전하는 작품으로 『파테르 판찰리』(1955), 『아파라히토』(1956), 『아푸의 세계』(1959) 총 3부작이다.

오늘 감상한 작품은 3부작의 2부에 해당하는 『아파라히토』다.2 애초 감독은 3부작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파테르 판찰리』의 국제적인 성공과 비평적 찬사에 힘입어 이 작품을 만들고 내친김에 3년 후 세 번째 작품을 만들어 3부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아푸 3부작』이라는 별칭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전체 작품은 벵골 지방에서 사는 아푸라는 외동아들이 있는 성직자 가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1950년대 대다수의 탈식민지화된 나라가 그렇듯이 인도 역시 엄청난 문화적/문명적 격변을 겪게 되었고, 아푸 가족도 그 시기에 이전 세대와는 무척 다른 삶을 걷게 되었다. 3부작은 그런 아푸 가족의 여정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지가 거의 십 년이 지나서 줄거리도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정도라 새로운 느낌으로 봤다. 그 와중에 앞서 말한 이광수 교수가 설명해 준 인도 사회의 풍습을 영화에서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어서3 더 보는 재미가 있었다. 줄거리는 사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약간 신파조라 생각되지만, 희한하게도 당시 서구에서는 이 영화를 보고 문화적 충격이 매우 컸다고 한다. 예로 서구식 교육을 받고자 대도시로 떠난 아들과 모친의 정서적 갈등 등에서 그런 신선함을 느꼈다고 하던데,4 그것은 역시 질풍노도의 격변을 겪었던 식민지 인민의 세대 간 갈등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제일세계와 제삼세계가 달라서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초중반의 영화를 감상할 때면 늘 하곤 하는 잡념이 있는데 ‘저 배우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잡념이다. 20세기 중반 작품이니만큼 아푸를 연기한 배우는 생존해 계시지 않을까 하고 검색해 보니 이름이 피나키 센굽타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을 뿐 생존 여부 등 보다 자세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이 배우를 비롯하여 당시 많은 배우들이 이 영화에서 처음 연기를 했을 정도로 아마추어였다는데 그러한 이유에서 정보가 없는 것 같다. 이 배우도 출연작이 이 3부작밖에 없는 듯하다. 어쨌든 어찌 보면 그의 삶 자체가 아푸였을지도 모른다. 근대화와 더불어 배우라는 삶을 살며 걸작에 출연한 인도 소년의 삶이었으니 말이다.

  1. 이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 검색해 보니 2016년에 봤다.
  2. 뱅골어로  অপরাজিত , “굴하지 않는 자” 정도의 의미라고 한다.
  3. 예를 들어 특정 카스트의 남성이 벌거벗은 상체에 긴 줄을 어깨에 걸고 다닌달지
  4. 아푸는 고향에서 기차로 3시간 거리인 캘커타로 유학을 떠나는데 어찌 보면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근대화로 인해 놓인 기차라는 존재를 통한 공간적 거리의 축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테고 이 영화에서도 기차는 그런 사회의 풍경을 묘사하는 주요한 소재다.

The Smiths의 재결합 가능성에 관한 칼럼

The cover of the 1000th edition of Rolling Stone, titled 'Our 1000th issue', depicting a large crowd of entertainers performing on a stag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s://www.amazon.com/dp/B00276AI66/., Fair use, Link

롤링스톤誌에서 The Smiths에 대한 팬심 가득한 칼럼이 올라왔다. 칼럼니스트 앤디 그린(Andy Greene)가 최근 뉴욕에서 열린 모리씨(Morrissey)와 자니마(Johnny Marr)의 공연에 다녀왔고 이 공연에서 느낀 소회를 올린 것. 모리씨의 공연은 9월 16일 라디오시티 뮤직홀(Radio City Music Hall)에서 열렸고, 자니 마의 공연은 9일 후인 27일 K 브리지 공원 아래(Under the K Bridge Park)에서 열렸다. 앤디는 두 공연에서 모두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이 불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모리씨는 공연의 시작 곡으로, 자니마는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특히 앤디는 모리씨가 이 노래를 공연에서 부른 것이 2017년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두 번 정도 The Smiths라는 이름으로 재결합할 뻔한 에피소드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재결합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0에 수렴한다. 그래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오아시스의 재결합 공연을 바라보는 The Smiths 팬의 착잡한 심정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두 뮤지션의 아우라가 클지라도 베이스와 드럼이라는 리듬 섹션까지 완전체로 결합하지 않으면 ‘과연 진정한 The Smiths의 재결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어쨌든 그 둘이라도 – 사실 오아시스의 재결합도 갤러거 형제의 재결합이지 – 재결합하는 일은 없을 테니 그게 재결합이니 아니니 논할 계제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참 큰 떡밥이기는 하다. The Smiths의 재결합. Talking Heads의 재결합만큼이나 확률이 낮아 보이지만, 가슴 설레는 떡밥.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서양의 클래식음악에 문외한이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그래도 이런저런 음악가의 곡을 찾아 듣곤 한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와 같은 고전적인 정석 작곡가들의 음악은 필히 챙겨 듣곤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면 탑5 안에 들 만한 곡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다시 나올 수 없는 천재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이라는 독주에 흔하게 쓰이지 않는 악기를 가지고 천상의 소리를 만들어낸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모차르트가 1791년경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하튼 특히 사랑하는 부분은 2악장이다. 클라리넷의 독자적인 연주를 다른 연주자들이 받쳐주면서 이어지는 아름답고도 구슬픈 멜로디가 심금을 울리는 악장이다. 그래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을 때 듣곤 한다. 23년 키우던 고양이가 곁을 떠난 다음 날 같은 경우 말이다. 잘 가라 거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