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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紀行文 – 이스탄불의 박물관

구시가지는 유명 관광지가 몰려 있는 덕분에 관광객을 유혹하는 많은 식당이 몰려 있다. 우리 일행은 큰길가의 식당을 피해 골목 안의 조그맣지만 깔끔한 Old Anatolia Cuisine이라는 식당을 가보기로 했다. 진열장 안에 칸칸이 요리가 담겨져 있었고 손님은 요리를 직접 보며 주문을 할 수 있어 편했다. 나는 양고기와 밥, 그리고 간을 넣고 볶아 달걀지단으로 감싼 밥을 시켰는데, 특히 볶음밥이 맛있었다. 매너 좋은 웨이터가 서비스로 제공한 케이크와 애플티를 먹으며 포만감을 만끽했다.


맛나게 즐긴 점심. 달걀지단으로 감싼 볶음밥이 맛있었다.

맛나게 점심을 먹은 후 향한 곳은 토카피 궁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각종 박물관들이었다. 아야소피아 뒤편에서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은 정겨운 돌담길이어서 운치가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양이들 때문에 우리 일행의 발길은 더뎌지기 일쑤였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Istanbul Archaeology Museums)이라고 통칭하고 있는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크게 고대오리엔트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등 세 개의 빌딩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고대인도 고양이를 좋아했다(고대오리엔트 박물관)

이 박물관들은 오스만 제국의 현대화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박물관 건립계획에 따라 조성된 것들이다. 오스만 제국도 파리의 루브르와 같은 그럴싸한 박물관이 갖고 싶었던 것이다.1 술탄의 지시로 1869년부터 시작된 박물관 건립 시도는 여러 해의 작업을 거쳐 출중한 큐레이더 오스만 함디 베이(Osman Hamdi Bey)2의 마무리 하에 토카피 궁전의 바깥 정원에 1891년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각각의 건물들은 15세기 건물을 사용하거나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새로 지어진 건물 등을 사용하였다.


도자기 박물관 입구의 아름다운 장식

박물관 건립을 위해 터키 각지에서 수집된 문화재들은 술탄이 부러워하던 서구의 다른 유명 박물관만큼이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고대오리엔트 박물관과 고고학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수많은 유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메인 빌딩의 많은 부분이 차양이 쳐진 채 관람이 허락되지 않아 카데쉬 조약 등 주요 문화재를 많이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도자기 박물관은 이슬람의 도자기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조금은 다른 성격의 박물관이어서 이채로웠다.


공원에서 만난 고양이들. 잠시 뒤 놀라운 광경이~

관람을 마친 후 아내가 피곤하다고 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또 다른 일행을 트램 역에서 배웅하고 우리는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이 와중에 우리는 터키 방문 중 가장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가는 도중에 있던 조그만 공원에서 고양이 네 마리를 발견한 우리는 늘 그렇듯 먹이를 주기 위해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순식간에 어디선가 수많은 고양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밀려드는 고양이 무리에 넋이 나가 우리는 먹이를 주고,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찍어댔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공원에 몰려든 고양이 무리

이스탄불 紀行文 –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보다

오늘 아침 IS로 추정되는 테러 집단이 거침없는 풍자만화로 유명한 파리의 언론사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를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재까지 언론이 추정하는 이유는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 교도에게 있어 불경한 그림들을 그려 온 것에 대한 복수라는 것이다. 이슬람이 거의 국교나 다름없는 나라의 기행문을 쓰고 있는 와중에 접한 소식이라 한층 마음이 착잡했다. 종교와 인간 사이에 어떠한 것이 작용하기에 아야소피아와 같은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며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이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뇌리 속에 맴돈다. 돌아가신 이들의 영면과 부상당한 이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12월 23일 오전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보다

실질적인 이스탄불에서의 첫날, 시차 때문인지 새벽에 잠이 깼다. 다시 잠들 것 같지 않아 산책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잘 알려진 관광지는 “작은 아야소피아”로 알려진 모스크였다. 아야소피아와 비슷하지만 한층 작은 모습의 정교회 성당이었지만 오늘날엔 모스크로 쓰이고 있다. 아야소피아에 도착하여 안에 들어갔지만 아직은 문이 열리지 않았고 창에 앉아 있던 고양이만이 눈에 띄었다. 숙소 쪽으로 발길을 돌려 숙소 맞은편에 있는 공원을 산책했다. 그런데 거기 한 노숙자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옆엔 고양이 한 마리가 같이 잠들어 있었다.


새벽에 찾은 리틀아야소피아

잠을 깬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안타까워했다. 어쨌든 이스탄불은 길고양이의 도시인 동시에 많은 가난한 이들이 거리에 있는 도시였다. 노숙자가 많다는 점에서는 서울 역시 그런 곳이지만 그 결이 또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어쨌든 서둘러 첫날 투어에 나선 우리는 공원에서 길냥이에게 사료를 나눠주고 또 다른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히포드롬 광장으로 향했다. 히포드롬 광장에는 두 개의 모스크와 정자 등 유적이 있는 광장으로 바로 옆에 그 유명한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라 불리는 술탄아흐멧자미, 바실리카 저수지, 토카피 궁전 등 주요 유적이 죄다 모여 있는 이스탄불 관광의 중심지였다.


아내 주위를 맴도는 길냥이들.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다.

합류하기로 한 다른 친구와 합류하여 처음 찾은 곳은 술탄아흐멧자미. 술탄아흐멧 1세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정치적 위기를 종교적으로 돌파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거대한 규모의 모스크다. 의도적이었던 것 같지만 당시까지 가장 큰 규모의 모스크로 쓰고 있던 아야소피아 앞에 지어져서 그 압도적인 규모의 쌍벽을 이룬다. 규모는 크지만 오히려 적막하고 푸르스름한 분위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압도한다기보다는 안도감을 주는 장소였다. 보는 시점에 따라서는 구조물의 모양이 마치 부엉이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는 아내에 말에 재밌게 그 모습을 바라본 기억이 난다.


관광객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기념촬영

12월이었음에도 날씨가 쾌청한 탓인지 아야소피아 앞에는 표를 사기 위한 관광객들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운 좋게도 광장 한 구석에 당초에 사려다 관둔 박물관 패스(Museum Pass)를 파는 트럭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엔 줄이 훨씬 짧았다(다른 관광객들은 그 용도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을 듯). 만약 당신이 단 하루라도 이스탄불의 주요 유적을 돌아볼 요량이라면 뮤지엄패스가 훨씬 이익이다. 3일 권과 5일 권으로 웬만한 유적은 다 볼 수 있고 두세군데만 돌면 이미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 긴 줄을 기다리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으니 성수기라면 더욱 필요한 입장권이다. 그야말로 머스트해브아이템.


블루모스크에서 볼 수 있는 부엉이눈

아야소피아의 역사나 이 유적이 품고 있는 아이템들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하지만 꼼꼼한 관광을 위해서는 봐야할 장소들을 미리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는 그저 그 웅장함과 켜켜이 쌓여있는 역사의 무게감 때문에 멍하니 천장을 응시할 뿐이었다. 비잔틴 제국 기독교의 총본산으로, 이후의 정복자인 무슬림의 모스크로, 그리고 지금은 터키 공화국의 박물관으로 쓰이면서 지나온 세월의 두터운 공기와 경건한 분위기의 햇빛이 실내에 머물러 있었다. 관광 비수기인지라 건물 내부의 거의 반쪽이 공사 중이어서 구조물로 가려져 있었지만 감동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비잔틴과 오스만의 복합체,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보고 난 후,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경외감 섞인 질문을 마음속으로 던져보게 되었다. 이 천년왕국의 수도에 살아왔던 이들은 기독교 혹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위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었고 그 안에서 신성(神聖)을 영접하는 것을 최고의 존재가치 중 하나로 여겼다. 그것이 또 문명발전의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오늘 다시 같은 질문을 보다 참담한 심정으로 떠올린다. 무엇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게끔 하는 것인가? 그런 살인자도 블루모스크와 같은 경건한 장소에서 기도를 올리며 피의 복수를 꿈꾸었을까? 그 모순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스탄불 紀行文 – 다시 이스탄불로!

2014년 12월 22일 다시 이스탄불로!

아침에 일어나니 일기예보 그대로 괴레메에는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차피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 하더라도 타지 못한 열기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 “김수현” 투어가이드, “빨리빨리” 운전사, 리얼터키 직원 등등 – 도착 당일 열기구를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들 모두 돈을 받고 하는 일이었지만 그런 이들의 도움 없이 어떻게 멀리 동양에서 온 까막눈 부부가 열기구에 탈 수 있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함께 사는 사회”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에피소드였다.

설경이 펼쳐지는 호텔 식당에서 조식을 마치고 – 식당에서 마주친 전날 도착한 중년 한국인 부부 중 미모의 부인은 무척 신이 나 있으셨으나 지상 투어나 가능할지 걱정이셨다고 – 급히 서둘러 공항까지 우리를 태워다 줄 셔틀에 올라탔다. 오히려 열기구 타기보다 위험한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셔틀이 눈이 질척해진 경사로를 올라가려다 계속 미끄러졌던 것이다.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운전사의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고 한다.(헐) 결국 다른 길로 돌아 카이세리 공항에 도착, 실질적인 이스탄불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후 찾아간 이스탄불에서의 첫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였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기존에 원주민이 살던 집을 같이 공유한다는 개념의, 이른바 “공유경제” 주거와는 다소 다른 주인은 다른 곳에 기거하며 3층짜리 빌딩 전체를 하숙집 개념으로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집주인 울루타스는 친절하게 우리를 대했지만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적인 친절함이었다. 이사탄불 시내의 소위 “구시가지”에 위치한 숙소의 주변은 다소 남루해보였다(나중에 보니 구시가지라서 아무래도 시가지가 낡았던 것이다).

짐을 풀고 현지 주재원으로 이스탄불에 머물고 있는 지인이 초대한 저녁식사를 위해 서둘러 시내로 향해야 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트램역까지 도보, 트램을 타고 종착역인 카바타쉬에서 하차, 거기서 버스를 타고 베벡에서 하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라고 국내에 알려진 스타벅스에서 지인과 조우하여 다시 택시를 타고 레스토랑 맞은 편 바다에 하차,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목적지에 도착…이라는 멀고 험한 여정을 통해 도착한 곳은 보스포러스해협2교1 아래의 라시버트 레스토랑이었다.

보트를 건너기 전에 보트 정거장을 찾지 못한 지인이 헤매는 동안 일행이 해변에 개와 함께 있던 어느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사실 그 노인은 홈리스였다. 술도 한잔 하셨는지 약간 불콰한 얼굴을 하고서는 우리를 이끌고 몸소 정거장을 찾아 알려주셨다. 낯선 동양인과의 어울림이 재밌으셨는지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보트에 올라탈 때까지 우리를 지켜보셨다. 그 모습이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화려하고 세련된 터키 사람들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던 것이 아직도 잔상에 남는다.

그렇게 숨가빴던 이스탄불에서의 첫날은 막을 내렸다.

이스탄불 紀行文 – 열기구를 탈 수 있을 것인가?

이스탄불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조금 더 넘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곳의 풍경이 아득하다. 기록을 더 이상 지체한다면 간단한 비망록(備忘錄)조차 쓰지 못할 것만 같은 저주 받을 기억력 탓에 지금이라도 손가락을 놀려 기행문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 글이 비망록 성격인지 또는 여행정보의 성격1인지는 구체적인 글 얼개조차 생각하지 않은 터라 애매하지만, 여하튼 머릿속 잔상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남겨두기 위해 늦었지만 기행문을 시작할까 한다. 더 좋은 형식이 생각나지 않아 우선은 편년체로 글을 시작한다.

2014년 12월 20일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도착

터키는 우리나라보다 일곱 시간이 느린 관계로 인천공항에서 20일에 출발하여 12시간 동안 난 비행기는 같은 날인 20일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하였다.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내린 공항은 터키의 대표 공항답게 깔끔한 인상이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광고판이 다른 나라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할뿐 국제공항은 어디나 비슷한 풍경이었다. 첫날 일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먼저 이스탄불에 와있던 아내와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갈 예정이었기에 공항에서 아내를 만나 다음 목적지인 카이세리 공항 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카파도키아는 터키 중부의 아나톨리아(Anatolia) 지역 중에서도 네브쉐르(Nevşehir), 카이세리 등의 지역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네브쉐르 지역의 괴레메 국립공원(Göreme National Park)이었다. 애초에 여행계획을 짤 때에는 행선지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자연경관이 유명한 그곳에 가서 열기구를 타면 좋을 것 같다는 아내의 설득에 1박2일의 짧은 여행계획을 새로 포함시켰다. 카이세리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한 시간여를 셔틀 버스로 달린 후인 저녁 늦게야 괴레메에 예약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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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eme Panorama From Southeast” by Bjørn Christian Tørrissen – Own work by uploader, http://bjornfree.com/galleries.html.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호텔은 미쓰라 케이브 호텔(Mithra Cave Hotel). 이름처럼 동굴 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면서 동굴모양으로 방을 꾸민 호텔이었다. 2인실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욕실까지 갖추어진 좋은 방이었다. 여장을 풀고 우리는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있을 열기구 탐험을 위해서. 참고로 열기구 탐험은 다양한 여행사를 통해 예약할 수 있지만 나는 네이버 카페 중 ‘리얼터키’란 이름의 카페를 차린 여행사 패키지를 택했다. 이 여행사에 공항 픽업, 열기구, 투어 등을 포함한 상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4년 12월 21일 열기구를 탈 수 있을 것인가?

새벽 다섯 시에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여행객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열기구 여행사 캠프에 도착했다. 가이드들은 여행객들에게 이런저런 색깔의 스티커를 – 이 색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 붙여주었다. 한 구석에 놓인 맛있는 터키 빵과 조금은 느끼한 터키식 커피를 마시며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이 곧 있을 열기구 투어에 기대에 부풀어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기구가 뜰 수 없다는 것을 가이드가 공지하였다. 내일 다시 기구를 띄울 테니 그때 탈 사람은 미리 말하라는, 나에게는 황당한 공지도 덧붙였다.


열기구 여행사 캠프에 설치된 열기구 모형

후에 안 사실이지만 열기구를 타겠다고 – 그것도 겨울에 – 1박2일의 일정을 짠 것은 굉장히 무리한 일정이었다. 트위터 멘션으로 확인한 바인데 어떤 이는 3일 동안 괴레메에 머물면서도 내내 비가 와서 기구를 못 탔으며, 어떤 이는 괴레메에 두 번 갔어도 기구를 못 탔다고 한다. 그만큼 기상 상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인데 겨울에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상황이니 비행은 아무래도 무리였을 것이다. 이보다 더 식겁한 일은 아내가 나중에 검색해보니 우리 일정의 불과 3일 전에 열기구 사고로 중국인 등 몇 명이 사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실망감을 안고 숙소에 돌아온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하루 더 머물더라도 기구를 타기로 하고 – 비록 일기예보에는 다음날 눈이 온다고 하였지만 – 국내선 항공사인 터키 항공에 전화로 예약을 변경했다. 그리고 안개가 잔뜩 낀 풍경만이 보이는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식단이랄 것이야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역시 터키의 빵과 올리브 등 이런저런 음식은 매우 맛있었다. 제빵을 배우고 제과를 직업으로 하는 아내에 말에 의하면 터키의 빵은 천연발효 빵인데다 GMO 수입에 매우 엄격한 나라여서 안심하고 음식을 먹어도 되는 나라라고 한다.


한국말을 못하는 자칭 “김수현” 투어가이드

식사 후 우리는 소위 “레드투어”에 나섰다. 괴레메를 여행하는 여행상품 중 비교적 짧은 코스인 레드투어는 스스로를 “김수현”이라고 소개한 가이드와 한 무슬림 가족 그리고 우리 부부가 다였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로케이션 중 하나였다는 괴레메는 과연 온갖 모양의 아름다운 기암괴석으로 관광객의 눈을 미혹시켰다. 그 기암괴석 들 사이는 종교박해를 피해 피난 온 기독교도들의 거처가 숨겨져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삶을 위한 장소만 만들어놓은 곳이 아니라 곳곳에 교회당을 만들어 놓았다. 종교란 인간에게 어떤 것인가를 생각게 하는 곳이었다.

1박2일의 무리한 일정을 짠 우리에게 행운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침을 덮고 있던 안개가 걷히고 날씨가 좋아져 오후에 열기구가 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지형이 스머프 마을을 닮은 곳에서 셔틀은 내내 무뚝뚝했던 무슬림 가족을 내려놓고 우리 부부를 열기구 착륙지로 데려갔다. 영어를 못하던 운전기사가 아는 한국말이 있었으니 “빨리빨리”. 우리는 서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서둘러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었다. 기구는 벌써 더운 공기를 가득 채운 채 사람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구에 올라탔다.


비행할 준비를 마친 열기구

열기구에서 바라 본 카파도키아는 명불허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영겁의 기간 동안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기형의 바위기둥은 굴뚝과 닮아 “fairy chimney”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카파도키아에는 이런 기암괴석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기에 열기구를 타고 감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지역일 것 같았다. 맑은 날씨에 오후인지라 날도 춥지 않아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딱 좋았다. 오랜 비행경력으로 다져진 유머감각을 뽐내는 비행사의 재치 덕으로 비행은 한층 즐거웠다(게다가 이때는 이전의 사고도 모르고 있었고). 멋진 비행이었다.

감칠 맛 나는 비행에서 돌아와 잠시 쉰 저녁 무렵, 우리는 호텔 밑 다운타운에 나와 터키에서의 실질적인 첫날밤을 즐겼다. 이날 처음, 그리고 이후부터 마음껏 즐기게 된 길냥이와의 만남이 있었고(특히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터키는 그야말로 신세계다), “터키 신라면”이라는 신박한 가게 앞 광고를 보며 웃었고, “아나톨리아 키친”이라는 식당에서 맛난 본고장의 케밥도 즐겼다. 카파도키아라는 유서 깊은 지역을 알기에는 턱없이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억세게 운 좋게 열기구를 탄 여행객의 기분 좋은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어서 와 터키 신라면은 처음이지?”

이스탄불 紀行文 – 가이드북, 소설, 영화 등에 관하여

두 달 조금 안 남은 이스탄불 여행을 위해 틈나는 대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 일단은 이스탄불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책과 영화 등을 통해 이 도시를 입체적으로 보려 노력중이다. 여행 가이드북으로는 ‘이스탄불 홀리데이’라는 책을 샀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책이기 때문에 내 여정에 맞고 책 부피도 아담하기 때문이었다. 현지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분이 쓴 책이기 때문에 직접 발품을 팔아 쓴 흔적이 많이 엿보인다. 정가는 15,000원이었지만 알라딘에서 1만 원 정도의 가격에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기는 회사의 도서관에서 이것저것 빌렸다. 그 중에서는 진순신이라는 분이 쓴 ‘인류문명의 박물관 이스탄불 기행’이 알차서 나머지는 반납하고 이 책만 읽고 있다. 터키 출신의 작가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는 계속 읽는 중이었고 문체가 무척 좋았기에 그의 소설을 한권 골라 읽고 있다. 그의 소설 중에 ‘순수박물관’이라는 소설이 꽤 알려졌고 이스탄불 신시가지에 그 소설의 캐릭터가 실제 인물인양 행적이나 기념품들을 모아둔 같은 이름의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혹했지만 꽤 많은 분량과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고른 책은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는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소설이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세밀화가를 둘러싼 비화를 역사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썼다는 소개글에 맘이 동한 것이다. 현재까지의 느낌은 ‘장미의 이름’과 비슷한 느낌이다. 술술 읽히고 있고 마음속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이스탄불 거리를 떠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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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key-1290” by archer10 (Dennis) – http://www.flickr.com/photos/archer10/2215822645/.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루멜리 히사르 전경

이스탄불을 소재로 한 서구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을 실사 판으로 각색해서 만든 ‘Tintin and the Golden Fleece’는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지만 이스탄불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보았다. 땡땡 일행이 하독 선장의 친구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낡은 배를 인수하러 이스탄불에 갔다가 음모에 말려든다는 내용이다. 이스탄불에 대해서는 갈라타 다리 근처로 여겨지는 해안가와 땡땡 일행이 위험에 빠지는 루멜리 히사르만 등장할 뿐 나머지는 그리스 쪽에서 촬영됐다.

유명한 대륙 횡단 열차 ‘오리엔트 특급’을 공간으로 그린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도 보았다. 이 영화 역시 이스탄불의 시르케지 역에서 기차가 출발하는 것일 뿐 주요 무대는 역시 기차 안이라 이스탄불에 대한 갈증이 그리 많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아가사 크리스티는 이 소설을 이스탄불에 있는 호텔 주메이라에서 썼다고 한다. 소설을 쓴 방은 기념관으로 남겨두었다니 그걸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더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 이 호텔에서 며칠 묵을 생각도 하고 있다. 007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가 이스탄불을 무대로 했다니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이스탄불 紀行文 – 아직 가지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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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antinople 1453” by Bertrandon de la Broquière in Voyages d’Outremer – www.bnf.fr.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이스탄불에 가기로 결정했다. 知人이 이스탄불에 발령이 났는데 아내에게 겨울에 놀러오라고 제안했다. 아내가 먼저 그곳에 가기로 결정했고 나도 망설이다 그때에 맞춰 가기로 결정했다. 오래된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이스탄불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언젠가 한번은 가보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겨우 일주일 동안.

사실 이스탄불, 그리고 터키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많지 않다. 동로마 제국, 모스크, 오스만 튀르크 제국, 성상파괴운동 등등. 파편적이고 단편적이다. 짧은 일주일 동안의 여행으로 이 성기게 엮여져 있는 그 광대한 역사의 조각의 한 구석이라도 더 채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둬야 겉핥기 여행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서관에서 이스탄불 관련 책을 빌리는 것이었다. 유재원이라는 분이 쓴 터키 관련 기행문과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이 쓴 이스탄불에서의 추억에 관한 그의 에세이를 빌렸다. 1970년대부터 터키를 오간 유재원 씨의 해박한 지식 덕택에 대충 가볼만한 곳의 사전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파묵의 글은 이 정보에 색칠을 해주는 조미료가 되고 있다.

티케팅은 완료했고 숙소는 현재 무난하게 호텔로 예약할지 아니면 이색적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할지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에어비앤비를 잘 고르면 특이한 경험을 할 것 같기도 한데 재수 없으면 돈값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한 여행자는 에어비앤비에서 고른 숙소가 사실은 지하였고 열쇠가 작동하지 않아 고생했다는 경험담을 올려놓기도 했다.

일정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서 정리해보기로 했다. 방문지나 먹거리 등 현지에서 빼먹지 않고 해볼 거리를 to-do 앱으로 체크해나갈 요량으로 여러 앱을 써보았다. 하지만 의도에 부합하지 않거나 에러가 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포기하고 결국 고른 앱은 toodledo. 웹에서도 쓸 수 있고 다양한 기능이 있어 현재까지는 만족. 하지만 디자인은 너무 구리다.

어리바리 멍때리고 있다가 갈 시기가 닥쳐서야 서둘러 가서 겉만 훑고 오는 여행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 이렇게 서둘러 기행문을 – 시작도 안한 여행의 기행문 – 미리 적으며 마음의 다짐을 하고 있다. 파묵의 글에서 안 사실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땡땡의 모험’ 실사영화가 이스탄불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한다. 우선 그 영화를 통해 사전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가을에 생각나는 ‘아지노산뻬이(味の三平)’의 미소라멘

벌써 홋카이도(北海道) 여행을 다녀온 지 얼추 1년이 다 되어 간다. 여행이란, 늘 가기 전엔 가벼운 흥분감, 현지에서는 객지(客地)에 머묾으로 인한 적당한 피로감, 그리고 다녀온 후엔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는 긴 여운을 남기게 마련이다. 촌놈이 가장 최근에 다녀온 해외여행이 홋카이도인지라 자연스레 아직도 내 뇌리 속엔 그때의 추억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다녀오자마자 설렁설렁 여행기를 썼지만 그때 미처 적지 못한 추억이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 삿포로에서 먹은 맛있는 라면에 관한 추억이다. 삿포로는 겨울이면 눈축제로 유명한 곳이지만, 또한 라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미소라멘(된장라멘)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삿포로에 도착한 우리들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당연히 라멘식당이었다.

당시 분(分)단위로 여행계획을 짰던 우리 멋진 의사총각이 안내한 곳은 바로 삿포로를 미소라멘의 본고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식당, 즉 1961년 처음 미소라멘을 개발한 ‘아지노산뻬이(味の三平)’라는 식당이었다. 소위 진짜배기 원조식당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아간 곳은 놀랍게도 조그만 상가 안에 자리 잡은 그야말로 3평(坪)짜리 – 3평은 더 되었지만 – 식당이었다.


길다란 바로 되어 있는 단촐한 테이블

도저히 원조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일단 그 유명한 원조집이라면 근사하게 독립건물을 차려놓고 장사를 할 줄 알았는데 상가 안에, 식당가도 아닌 문구를 파는 층에 홀로 식당이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말 그대로 원조집이었음에도 식당 어느 곳에도 – 간판에도 – “원조집이에요~”라고 자랑을 늘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조집이라는 자랑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한동안 ‘여기가 과연 그 아지노산뻬이가 맞을까’하는 대화를 나지막이 나눴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이곳은 원조집의 상호를 가로챈 짝퉁 식당일지도… 어쨌든 막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여행객의 피로감으로 인해 우리는 서둘러 자리에 앉아 미소라멘을 시키고 원조집이든 아니든 식당의 음식솜씨를 기대해보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둘러본 가게 안은 깔끔했고 사람들은 저마다 라멘을 먹는 일에 열중해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방에 요리사 대여섯이 빼꼭히 들어가 열심히 요리를 하는 장면이었다. 특히 노년, 중년, 그리고 청년 3대가 함께 요리를 하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소위 일본 특유의 대를 이은 장인정신을 눈앞에 보고 있는 심정이랄까?


정면에서 바라본 식당

잠시 후 나온 라멘을 입에 넣은 순간 우리는 모두 한 입 가득 면을 씹으면서도 “오이시~(”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된장의 구수함이 꼬들꼬들한 면이랑 나물과 잘 어울려 뱃속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맛이었다. 그 맛과 온기는 매서운 삿포로의 겨울도 잠시 잊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든든했고, 만에 하나 굳이 이 아지노산뻬이가 짝퉁식당이어도 상관없을 만큼의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맛있는 미소라멘

덕분에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을 나설 수 있다. 지금도 잘한 일이라 생각되는 것이 길찾느라 수고스럽긴 했지만 본고장에 제대로 된 음식은 이런 거구나 할 만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후일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일본 요리점에서 시킨 미소라멘의 달기만한 짝퉁 맛을 보고는 ‘원조집의 맛은 이렇지 않아’라고 가볍게 비판할 수 있는 “된장질”의 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