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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C에 관한 단상

이자를 지급하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있으면 뱅크런은 불가능하다. 최종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은 예금자가 돈을 인출하길 원하는 그즉시 돈을 발행할 수 있다. 그리고 사용자 간의 즉각적인 거래라는 유동성 덕분에 경쟁자는 이들 예금자에게 3%의 이자를 지불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은행을 제외하고 누가 이러한 해결책을 반대하겠는가?

확실히 전통적인 은행은 금융시스템으로서 매우 중요한데, 이는 그들이 대출을 일으킴으로써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기지를 신청한 가계가 지급능력이 있는지, 기업대출이 수익성있는 투자에 사용될 것인지 등을 점검한다. 대출은 언제나 위험하기에, 가장 경쟁력있는 은행일지라도 대출에 스프레드를 추가한다. 오늘날 은행이 얻을 수 있는 은행간 이자율 3%도 모기지에는 5%의 이자율을, 또는 기술 스타트업의 위험한 투자에는 9%의 이자율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은행과 같은 몇몇 기관은 이러한 리스크를 평가하고 가격을 매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예금자의 돈을 굴리고 그들을 구제해줄 정부에 의존하면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들은 너무 많은 리스크를 부담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문에 학계와 규제당국은 오랜동안 은행이 더 많은 자본비율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었다. 그들이 가계의 예금을 위험성있는 투자에 빌려주지 못하거나 정부의 구제금융에 의존하지 못할 때 그들의 위험감수 성향은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The Simplest Fix for Banking]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를 통해 이번 실리콘밸리은행이나 기타 다른 모든 금융위기 때 발생한 뱅크런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의 일부다.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살펴볼 문제겠지만, 어쨌든 이론상으로는 정통적인 은행이라는 소매상을 거치지 않고 중앙은행이 예금자에게 추가적인 거래비용없이 바로 예금을 지급하는 방식에 있어 큰 기술적 난제는 없어 보이는 해결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용문의 다른 곳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는 전통적인 은행의 먹거리를 빼앗는 이슈이기에 기득권들의 저항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은행”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근사한 석조건물을 올린 곳에서만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오고 그것을 운용할 수 있다는 신성한 권리가 중앙은행으로부터의 직불이라는 ‘야만적인’ 디지털 거래에 의해 침범당하는 참담한 꼴을 은행들이 참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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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 Pingstone – Taken by Adrian Pingstone in November 2004 and released to the public domain., Public Domain, Link

예전에 본 영화 중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나이(The Man in the White Suit)’가 생각난다. 1951년 에 제작됐고 전설적인 영국 배우 알렉 기네스가 주연한 클래식이다. 하급 노동자인 주인공은 각고의 노력 끝에 영구적이면서도 오염되지 않는 직물을 발명하였고 이 직물로 하얀 양복을 한벌 만들어 입고다니면서 이 직물을 판매하여 희소성에 시달리는 시장의 수요를 구원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시장에 있어 중대한 반역이었다.

상품은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그 희소성을 수소가 독점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상품을 끊임없이 소비할 수 있다. 영구적인 직물이 나와서 더 이상 희소성을 가지지 않을 때 상품은 더 이상 상품이 아니고 마치 공기와 마찬가지로 공공재가 되는 것이다. CBDC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시행을 통해 증명되겠지만, 그것은 은행들에게 있어서는 마치 알렉 기네스가 발명한 영구적인 직물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위기의 이연을 위한 양적완화가 초래한 결과

경제학자들은 통화당국이 상업은행에 단기 준비금을 제공하고 장기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중앙은행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이 사실상의 재정정책의 하나였다는 것에 동의한다. 최근까지 이건 괜찮은 비즈니스처럼 보였다. 채권은 기술적으로 수익이 거의 없는 반면 조달비용이 무척 저렴했기 때문에(예를 들어 유로존에서는 -0.5%) 중앙은행은 어쨌든 이익이 났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물가가 두자릿수에 이를만큼 치솟음에 따라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급하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단기 금리가 장기 채권수익률을 뛰어넘으면서 조달비용이 증가하였다.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은 자산의 손실에 직면하여 채권매입 프로그램의 재정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The Fiscal Cost of Quantitative Easing]


금융역사에서 전세계에 큰 파급효과를 초래한 양적완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양적완화, 그 다음이 이번 팬더믹 이후의 양적완화라고 할 수 있다. 두번의 양적완화에서 공급된 유동성이 팬더믹 이후 복합적인 요인과 맞물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어림짐작할 수 있는 바이지만, 이를 공식적인 발언으로 인정한 중앙은행 관계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 결과 상당기간 지속되었던 제로금리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사상 초유의 속도로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지난 3월 연방준비제도의 의장 제롬 파월은 한 TV인터뷰에 출연했다. 질문자는 파월 의장에게 “Fed가 경제에 투입할 수 있는 화폐량에 제한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고, 파월 의장은 “우리는 계속 빚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안점은 가계와 기업에게 경제에서의 신용의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하여 사실상 그런 제한은 없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긴급성명을 통해 사실상의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선언한 이후 최근까지 파월 의장은 자신의 인터뷰 발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Fed의 자산을 거침없이 늘려 마침내 최근 7조 달러(!)까지 자산이 늘어났다.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2년 전에 이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다. 각국 중앙은행의 이 무제한 양적완화의 결과 2년 동안 의 세계경제를 되돌아보면 각국의 국경의 봉쇄와 락다운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경제는 유지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주요국에서 주가도 뛰고 집값도 뛰고 ‘유행병의 영향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자산가에게는 행복한 2년이었다. 그리고 이연된 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즈음에 본격화된 것 같다.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저인플레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휴 필 BOE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영국 상원에 출석해 “최근 물가 오름세의 주원인은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라면서도 “또 다른 원인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BOE의 결정도 포함된다고 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후적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런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략]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경우 인플레이션 원인으로 통화정책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연준 올 3월 이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에서 △팬데믹 △에너지 가격 상승 △러시아의 전쟁 △중국 도시 폐쇄를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BOE 수석 이코노미스트 “펜데믹 양적완화는 실수였다”···중앙銀 ‘인플레 유발’ 첫 인정]

팬더믹에서의 양적완화는 이전의 양적완화에서도 그랬지만, 그 수혜자는 주식과 주택을 소유한 자산가였다. 그리고 이연된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침체에 빠트리려할 즈음에 파월은 노선을 180도 선회하여 정책금리를 올렸다. 다시 처음 인용문으로 돌아가 이 경우 중앙은행은 그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손실을 입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의 이익이나 손실은 해당국의 재무부처로 귀속되므로 결국 손실부담의 주체는 납세자다. 인플레와 납세로 두번 고통을 받는 셈이다.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도박은 성공한 것인가?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지난 3월 연방준비제도의 의장 제롬 파월은 한 TV인터뷰에 출연했다. 질문자는 파월 의장에게 “Fed가 경제에 투입할 수 있는 화폐량에 제한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고, 파월 의장은 “우리는 계속 빚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안점은 가계와 기업에게 경제에서의 신용의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하여 사실상 그런 제한은 없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긴급성명을 통해 사실상의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선언한 이후 최근까지 파월 의장은 자신의 인터뷰 발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Fed의 자산을 거침없이 늘려 마침내 최근 7조 달러(!)까지 자산이 늘어났다.

이는 전년도 자산 대비 약 70% 증가한 것으로 아직까지는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의 151.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 반기가 채 지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연 증가세는 2008년의 추세를 따라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자는 자산이 10조 달러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한편, 단순히 Fed 자체의 자산변동에서만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주요 중앙은행의 행보와 비교 해봐도 Fed의 행보는 압도적이다. 팬데믹은 전 세계적인 재앙으로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양적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다른 중앙은행의 자산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감히 Fed의 행보와 비할 바는 아니다.1

개인적으로는 제롬 파월의 그동안의 행보를 볼 때 이번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태 전까지만 해도 파월은 그를 뽑아준 트럼프의 금리인하 요구 등 월권행위와 온갖 인신공격에도 꿋꿋이 저항해왔다. 이런 희한한 정황 덕택에 나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며 초당적으로 칭찬을 들어온 터였다. 그런데, 물론 트럼프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파월은 팬데믹 사태가 닥치자 트럼프가 상찬을 늘어놓을 만큼 깜짝 놀랄 조치를 단행하였다. 나름 보수적 견지를 유지해온 그이기에 이번 양적완화가 유난히 획기적인 조치임은 틀림없다.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파월의 전향적인 조치의 배경으로 주택저당증권(MBS) 시장의 불확실성 증가에 대한 Fed의 우려를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냉각되며 MBS 펀드에서 환매 요청이 급증해 MBS 매도가 이어졌다”고 지적하였다. 예전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MBS의 직접매입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Fed의 주업무가 된 분야다. 당시의 부동산금융시장의 붕괴로 사실상 미국의 부동산증권 시장이 국유화된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다시 그 시장이 요동치고 있기에 Fed는 신속하게 개입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패니메와 프레디맥은 2008년 당시 미국 내의 12조 달러의 모기지 시장에서 반절에 육박하는 금액을 보유하거나 보증하고 있었다. 2008년 9월 7일 연방주택금융청은 이들 회사의 실질적인 국유화를 선언했다. Fed의 MBS구입 프로그램은 이러한 배경 하에 시작되었다. 망할 회사에 정부가 주식을 취득하여 국유화시키고 그 회사의 대표적인 상품을 Fed가 구입해주는, 사상 초유의 업태가 시작된 것이다.[우리가 “자본주의”라 부르고 있는 어떤 경제 체제]

미국 채권시장 내 MBS 잔액은 약 9조7000억달러로 지난 2018년 기준 미 채권시장의 22%를 차지하며 전 세계 채권 시장에서 미국채 다음으로 중요한 채권이다. 이 채권을 Fed가 매입함으로써 미국의 집값은 안정을 찾게 되었다. 현재 Fed가 들고 있는 MBS 잔액은 전체 잔액의 1/3 정도로 알려져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채권을 중앙은행이 그렇게나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그간 서서히 비중을 줄여오던 Fed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대규모의 채권매입에 나서게 된 것이다. 늪에서 서서히 발을 빼왔던 Fed가 다시 발을 푹 집어넣은 셈이다.

2020년 5월 27일 현재 Fed의 MBS 매입현황은 1조8천5백만 달러로 연초의 1조4천만 달러 대비 무려 32% 증가한 상황이다. 즉, 전임자들이 언젠가는 청산하겠다고 했던 MBS 포지션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팬데믹이 도래하자 그 자산은 일시에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이번 위기의 심각성은 어쩌면 이전 금융위기에서 입은 깊은 상처가 치유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깊은 상처를 입게 된 상황이라 할 것이다. 미국에서 모기지를 갚아나가야 할 노동자들이 또 다시 대규모 실업으로 내몰리면 Fed가 사들인 증권은 다시 부실채권이 되는 악순환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 트위터 계정에서 이번 양적완화와 지난 금융위기의 양적완화에 관한 차이점을 분석한 흥미로운 트윗을 올렸는데, 이 분석에 따르면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미재무부 채권 포지션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재무부가 이 채권을 여러 프로그램에 사용하게 되면 시중에 통화량이 증가하여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지난 3월에는 이런 부양책이 당파적인 입장차이로 미의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엄청난 돈이 “재난자본주의”를 이용하려는 자본가를 위한 잔칫상에만 쓰인다면, Fed의 유례없는 자산과 자본주의의 모순은 청산할 길이 없을 것이다.2

한편 파월은 Fed의 양적완화 조치가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며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이 대량실업을 방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그다지 설득력있는 사례도 아니고 결국 Fed가 직접 모기지 채무자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지 않는 한에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는 행정부와 의회의 몫일 것이다. 현재 미네소타 살인사건으로 말미암은 인종폭동까지 겹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린 상황인지라 기득권층이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에는 난국타개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불행히도 트럼프는 그 와중에 발포 운운 트윗, 골프 라운딩, 중국 때리기에나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량의 중앙은행 언와인드(great central bank unwind)”

Fed가 다음달 4조5천억 달러에 달하는 그들의 재무상태표를 줄이기 시작하기로 하면서 도이치뱅크는 이번 주 그들이 “대량의 중앙은행 언와인드(great central bank unwind)”1라고 부르는 이 조치가 다음 금융위기를 초래할 몇몇의 후보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략] 언와인드에 관해 Fed는 예상한 것처럼 10월에 그들의 재무상태표를 서서히 줄여가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재무상태표는 장기 이자율을 내리고, 위험자산에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투자를 촉진하고, 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목적의 공격적인 자산 매입 프로그램의 결과로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였다. [중략] 도이치뱅크의 분석가들은 투자자들이 중앙은행의 재무상태표 규모와 소위 양적완화 프로그램에 수반되었던 효과적인 화폐 발행의 범위에 대해 시큰둥해하기만 할지 의문스러워했다.[How the ‘great central bank unwind’ could ignite the next financial crisis]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했던 조치 중 가장 황당한 조치를 꼽으라면 중앙은행의 채권 직매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을 시장의 조성자로 국한하여야 할 중앙은행이 끝내는 직접 시장 그 자체가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MBS의 매입은 더욱 놀라웠는데, 패니메와 같은 정부보증기관이 보증 또는 발행한 채권을 정부나 다름없는 Fed가 다시 사주는 자금흐름을 보면 ‘과연 이게 자본주의 경제가 맞나’하는 의문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시장의 상품 공급자가 모두 사실상의 정부라면 시장경제라 부르기에 민망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MBS는 장기국채와 함께 Fed의 재무상태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산이 됐다. 그 덕에 Fed는 가장 돈 많이 버는 은행이 되기도 했었다. 시장금리도 낮게 유지가 됐다. 그래서 Fed는 이제 경제가 정상화되어가고 있고, 이에 따라 자신의 비정상 자산을 정상화시킬 때가 도래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실제로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 열기도 고조되고 있는 듯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저신용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고금리로 빌려 쓰는 레버리지드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2 하이일드 채권 거래도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용문에서의 분석가의 우려대로 상황이 녹록치 않다. 레버리지론과 하이일드 채권 거래의 폭증은 Fed의 채권매입을 통한 금리 안정화라는 전제 하에 가능한 투자행위였다. Fed가 이제 시장이 정상화됐으니 자신의 자산도 정상화시키겠다고 결정한 것은 자신의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Fed의 현재 자산은 미국 GDP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런 규모의 자산이 시중에 풀린다면 채권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상화된 시장이 사상누각임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Fed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는 듯 채권을 한꺼번에 매각하는 방식 대신 만기도래 채권을 재매입하지 않고 상환 받는 방식을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미온적인 편인데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방침은 아직도 여전하기 때문인 것도 한 몫 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동안의 매입 프로그램이 유례가 없었듯이 이번 조치 역시 유례가 없기 때문에 그 여파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조치가 경제의 어떤 티핑포인트를 건드린다면 도이치뱅크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 비관적인 시나리오다.

한편 Fed 자산 축소가 하필 지금 시점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으로 보자면 Fed의 결정은 다소 정치적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 정부는 오바마의 QE정책과 이를 통해 낮은 금리를 향유하며 정부부채를 끌어다 썼던 오바마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 공화당 정부다.3 게다가 얼마 전에 美정부의 또 다른 권력자 이방카가 옐렌을 만났다.4 물론 탁 까놓고 말하자면 늘 경제는 정치적이었다. Fed의 사상 최대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은 면밀한 경제성 분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정치적 임시방편이었고 그 자산의 언와인드도 또 다른 정치적 고려로 여겨진다.

리만 브라더스가 망한 진짜 이유?

나는 왜 리만이 무너졌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Fed는 그 일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며 모럴해저드에 관해서 그들이 어떤 조치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리만이 생존을 위한 차입에 충분한 담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았다고 나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중략] 그들이 나눴던 대화에 대해서는 엄청난 기록이 있는데 담보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벤 버냉키가 금융위기 조사위원회에서 증언하길, 뉴욕Fed의 사람들이 충분한 담보가 없었다고 결정했다고 말했고, 그들은 그에게 공청회와 이어지는 편지에서 계속 상세한 사항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누가 분석을 했으며, 그들이 얼마 정도의 담보를 가졌는지 또는 가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요.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논리적인 결론은 그들은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중략] 왜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는지 이해하려면 누가 그 결정을 내렸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견으로 그 결정을 내린 이는 재무부 장관이었던 행크 폴슨입니다. [중략] 현재의 규정인 도드-프랭크 법에서는 재무부가 Fed의 대출을 허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런 법은 없었습니다. [중략] 헨리 폴슨이 정치에 매우 민감했다는 것은 분명하죠. 베어 스턴스의 구제 당시 엄청난 정치적 반발이 있었고요. 그리고 폴슨이 “내가 미스터 금융구제가 될 순 없어.”라고 말했던 것은 널리 인용되기도 했습니다.[Could the Fed Have Rescued Lehman Brothers? Q&A with Laurence Ball]

왜 금융위기 당시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리만브라더스가 무너졌는가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당사자들의 회고록이나 언론보도 등에서 드러난 당시 정황에 대해서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을 정도로 많이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그리고 그 이슈에 관해 로렌스 볼(Lawrence Ball) 존스 홉킨스 대학 교수가 집요하게 파고들어 218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냈다고 한다. 위 인용문은 로렌스 교수와의 인터뷰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요컨대 ▲ 리만의 담보가 충분치 않았다는 Fed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다 ▲ 구제 포기라는 결정은 정치적 결정이다 ▲ 그 결정을 내린 이는 합법적 결정 주체가 아닌 행크 폴슨이다 등이다.

로렌스 교수는 폴슨이 골드만삭스에서 일했기 때문에 경쟁자인 리만을 돕기를 꺼렸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내가 읽었던 여러 책에서도 볼 수 있듯 폴슨은 민간 금융기업의 리만 인수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1 다만 교수는 정치적 반발에 민감했던 폴슨이 “미스터 구제금융”이란 별명으로 역사에 남는 것을 원치 않았고, 리만의 도산에 따른 결과를 과소평가했다는 정도로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 결과는 상상이상으로 심각했고 이 후유증으로 AIG나 다른 금융기관의 구제금융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는 트라우마가 되고 말았다. 결국 리만의 도산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던 이들에 의한 좌충우돌일 뿐이었다.

결국 이러한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 로렌스 교수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 아무리 당사자들이 그렇게 주장할 지라도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지도, 투명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Fed의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였던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이 결국 재무부 장관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은2 어쩌면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가 실은 이자를 내지 않는 정부채권일 뿐이라는 사실 만큼이나 명백하면서도 자주 간과되고 있는 진실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허울 좋은 자주성을 획득하고 있는 Fed는 여태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정부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그래서 두 기관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요컨대, Fed는 아무런 부작용 없이(없어질 일자리와 팔릴 Fed빌딩을 제외하고는) 내일이라도 재무부와 합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연방정부의 대차대조표의 통합관리가 가능하고 재무부는 Fed가 없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화폐를 직접 발행할 수 있다. 현재의 지불기술 때문에 실무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美화폐의 과잉발행의 우려는 없다. 과잉발행을 더 방지하기 위해서, 의회가 美화폐를 이자부 재무부채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법으로 명시된 보증을 부여할 수도 있다.[출처]

중앙은행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2006년의 공개시장조작위원회에서 “우리의 인식에 어떤 거대하고 부정적인 충격이 없는 한, 주택 가격에 예상되는 냉각의 효과는 완만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버냉키 의장은 농담 분위기를 빌어서 뉴욕의 조합(co-op) 아파트의 미친 듯한 가격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했고, 위원들은 웃었다. [중략] 그러나 2007년 3월은 서브프라임에 대한 경고를 하기에는 게임에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내 견해로는, 위험을 줄이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식은 감독자들이 주요 금융사들이 위기에서 생존하는 데 충분한 자본과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만드는 것뿐이었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p133~135]

공개시장조작위원회에서 집값하락에 대해 Fed의장이 농담을 할 정도로 그렇게 낙관적이었던 분위기가 가이트너가 뒤늦게 고백하는 “경고하기에 너무 늦은 시점”으로 바뀌는데 불과 1년이 걸렸을 뿐이다. 그 1년 사이에 미국 부동산 시장에 무슨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렇게 분위기가 돌변하였을까? 왜 경제위기는 이렇게 우리 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최근 우리나라의 조선/해운업의 위기 상황에서의 정부와 한국은행의 갈등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의문이다.

우선 롱포지션과 숏포지션의 시간상의 차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롱포지션은 각종 채권이 가격을 오름으로써 이익을 보는 위치다. 가격은 일반적으로 서서히 오른다는 전제 하에 이 위치를 롱포지션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whatever). 그리고 숏포지션, 즉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이익을 보는 위치다. 가격하락은 서서히 과열되었던 거품이 터지며 투매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짧은 시간 안에 급락하는 경향이 있다. 인용문에서의 기간이 바로 이렇게 급격한 투매의 시기였고, 많은 참여자들은 시장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버냉키처럼 농담으로 그 경고를 무시했다.

두 번째, 중앙은행의 정책수단의 한계다. 회의 시간에 농담을 한다고 해서 정책집행자들이 마냥 시장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Fed는 2004년 6월부터 금리를 0.25%씩 인상하면서 긴축정책에 돌입하였다. 문제는 이런 단기금리 인상이 장기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고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경제가 전통적인 Fed의 정책수단으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커지고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책수단의 한계를 깨달은 현 상황을 우리는 “새로운 정상” 심지어 “새로운 비정상”이라 이름붙여 정당화하게 되었다.

세 번째, 두 번째의 배경과 겹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정책집행자들의 믿음 혹은 그들의 계급적 성향이었다. 버냉키 전의 그린스펀은 아인랜드에 열광했던 시장근본주의자였고 시장 불개입주의자였다(다만 거품 붕괴로 인한 채권자의 채권회수에 문제가 있을 시에는 예외였다). 경제학자 제럴드 앱스테인(Gerald Epstein)은 금리조정 등을 – 주로 단기금리 – 통해서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경제가 자연스럽게 굴러갈 것이라 여기는 이러한 발상을 신자유주의 적이고 금융엘리트를 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였다.

금융위기 도래 이후, Fed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 등을 비롯한 여러 비정상적인 조치로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지연시켰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정책집행자들의 – 행정부나 의회로부터 독립되어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여겨지는 고매한 금융 엘리트 – 손에 흙을 – 또는 피 – 묻히는 행위는 이미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좀더 일상적으로 취해지던 조치와 유사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라고 하지만 Fed의 조치가 “미국판 관치주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판 양적완화”든 “미국판 관치주의”든 간에 경제의 순환은 금융시스템에서의 유동성을 통해 가속화되고 이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에는 사회 대다수 구성원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시장의 본질이든 오작동이든 간에 거품이 터지고 나면, 그 치유는 주로 – 여태 시장과 함께 사태를 마냥 낙관했던 – 중앙은행을 포함한 금융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태의 행위가 주로 자산가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1

늘 그렇듯 중앙은행은 “중립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시장의 완벽한 작동에 미세조정만을 가하는 금융엘리트 집단으로 남기를 꿈꾸지만, 시장은 늘 미세조정 이상을 요구하며 요동쳤고 결국 중립성과 독립성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만 남게 되었다. 오늘날의 중앙은행 재무제표는 국가재정의 부외금융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한 또 하나의 주머니일 뿐이란 사실은2 현재 한국정부의 한국은행 흔들기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경제 위기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1. 너무 순진하거나 2. 너무 무력하거나 3. 너무 고매한 것일지도?

헬리콥터 투하를 고려할 때라는 이코노미스트

정치인들이 중앙은행과 함께 싸움에 동참해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가장 급진적인 정책 아이디어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융합한 것이다. 그런 옵션 중 하나가 “헬리콥터 투하”라고 알려진, 돈을 찍어내어 공공 지출에 (또는 세금 감면) 쓰는 것이다. 양적완화와 달리 헬리콥터 투하는 은행과 금융시장을 거치지 않고 막 찍어 낸 현금을 사람들의 주머니에 바로 찔러 넣는 것이다. 이 단순함 무모함을 통해 이론적으로는 사람들은 횡재를 저축하는 대신에 사용하게 된다.[Out of ammo?]

중앙은행의 경기부양 수단들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코노미스트가 이제 정치인이 가세해야 한다며 쓴 기사의 일부다. 이 아이디어는 일부 진영에서 주장하고 있는 기본소득을 연상시킨다. 돈을 찍어내어 바로 사람들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는 행위, 그 행위가 소득수준 등에 따라 차별적이지 않다면 바로 그것이 기본소득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어쩌면 점점 더 많은 중앙은행들이 시도하고 있는 마이너스 금리와 유사한 효과를 기대하는 보다 급진적인 정치적 행위라 할 만하다. 마이너스 금리는 예금자들에게 금리 대신 오히려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예금을 찾아 어딘 가에 돈을 쓰기를 기대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시원찮다면 예금 대신 쓸 돈을 정부가 직접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론적인 예상을 벗어나서 사람들이 국가의 용돈마저 비용을 물고서라도 저축을 하게 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적어도 여태의 양적완화가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이 돈을 특정용도에 부어넣음으로써 자금배분 왜곡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반면, 기본소득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무차별적인 살포라는 점에서 진일보해 보이기는 하다.

(첨언)

한편 페이스북에서 어느 분도 지적하셨다시피 시장자유주의 성향의 이코노미스트가 이런 케인지언 적인 주문을 한다는 사실이 의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용기사의 결론부분을 보면 이코노미스트가 이런 제안을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국유화와 같은 궤멸적인 계획을 대안으로 가지고 있는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막기 위해서다. 누군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한편 바로 그런 점에서 급진좌파 일부는 오히려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기본소득은 “현찰자본주의의 일환으로서 복지의 시장화”일뿐 이라는 주장이다. 시장을 거치지 않은 소득이긴 하지만 다시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쓰일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수긍이 가는 의견이긴 하다. 그게 과연 “사회주의 강령”과 충돌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