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레디앙

무식한 좌파는 유식한 우파보다 더 위험하다

자칭 ‘좌파’가 경제에 대해 무지하면 이건 재앙이다. 우파가 경제에 무지한 것은 세라 페일린처럼 애국주의나 뚝심으로 밀고 나가면 된다. 하지만 좌파는 어떠한가? ‘자본론’이라는 경제학의 금자탑을 쌓은 칼 마르크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 아닌가? 아니면 최소한 베른슈타인이나 케인즈라도.

레디앙에 “월가는 박정희에게, 좌파는 루즈벨트에게”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읽다가 짜증이 나서 다 읽지도 못했다. 취지는 현재의 금융위기에 대한 냉소, 그리고 나아가야할 방향 뭐 이런 내용을 적은 글 같다. 어쨌든 글은 경제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정리도 안 된 짜깁기 수준이다. 읽는 내가 민망할 정도다.

이 같은 일종의 ‘공인된 사회적 사기’에 ‘보증’ 혹은 ‘맞교환'(스와프 거래) 같은 장치들을 계속 추가하면서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점점 더 무궁무진한 화폐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이른바 파생금융상품이다. 결국 민간금융은 모두 국가의 허락 없이 화폐를 창조하는 속성이 있다. 이런 민간금융(파생통화)이 많아질수록 한국은행이 직접 찍어내는 ‘본원통화’는 의미가 없어진다.

파생금융상품이 “화폐를 창조하는 속성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파생금융상품의 대표적인 상품 스왑을 보자. 한국인과 미국인이 1개월 후에 1달러 당 1500원으로 거래하자고 스왑계약을 체결한다. 1개월 후 1달러 당 1400원이 되었다. 한국인은 100원 이익이고 미국인은 100원 손해다. 여기서 단돈 1원이라도 화폐가 “창조”되었는가?

요즘 말이 많은 신용파생상품 CDS를 보자. A사(보장매입자:Protection Buyer)는 B사(Reference Asset)에게 1억 원을 빌려주었는데 B사가 망할 경우, C사(보장매도자:Protection Seller)에게 A사가 B사에게 빌려준 1억원을 대신 받기로 하고 C사에 커미션(CDS spread) 1천만 원을 주었다. B사가 망해서 A사가 C사에게 1억원을 받았다. 즉 A사는 빌려준 돈 받았고 C사는 B사가 받은 신용을 대신 갚아주었다. “창조”된 화폐가 있는가?

가장 간단한 CDS구조

파생금융상품이 화폐를 창조하였다는 어이없는 소리는 바로 그 위 문단의 전제덕분(?)이다.

이 때문에 돈을 은행에 넣어둔 사람도 돈이 있다고 생각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도 돈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같은 돈을 가지고 양쪽에서 계산을 하게 된다. 실제 화폐가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구매 잠재력은 양쪽에서 발생한다. 화폐가 창출되는 것이다.

이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A가 내 돈 1억원을 은행에 넣어두었고 B가 그 은행에서 1억원을 빌리면 구매 잠재력이 2억원이 된다는 논리다. 참 희한한 경제논리다. 내가 여태 알기로 돈 1억원을 예금한 사람은 현재의 구매력을 1억원 포기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케인즈도 그런 사람이 얻는 이자를 현재의 유동성 포기에 대한 대가라고 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내가 예금 1억원 있다고 1억원 쓸 수 있는 구매력이 있는 것인가?

글쓴이의 논리대로라면 은행만 많아지고 예금만 많아지면 구매 잠재력은 무한대가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논리라면 그 뒤로 이어지는 파생금융상품이 아니라 정기예금, 정기적금, 간접투자펀드 등 모든 것이 “한국은행이 직접 찍어내는 ‘본원통화’는 의미가 없어”지게 하는 것들이다. 이들을 당장 한국은행을 무력화시키는 세력으로 응징해야 한다.

음.. 짜증나서 고만 쓸란다. 제발 공부 좀 하고 쓰자.

(추가)

Berlin Log 운영자께서 아주 좋은 내용의 트랙백을 날려주셨다. 사실 조금 흥분한 것도 있고 쓰다 귀찮아서 뭉개고 지나간 부분도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겠다 싶었는데, 여하튼 의미 있는 지적을 해주셨다. 여기나 트랙백을 참조하시고 아래는 그 글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말씀하신 내용은 결국 어떤 면에서 보자면 파생상품의 본질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금융시장 자체의 개략적인 문제점, 즉 탈규제, 유동화, 증권화 경향의 문제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DS에 대해서도 사실 기존의 채권에서 스프레드를 분리한, 일종의 보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품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 상품에 대해서 엄격한 자기자본 비율 규제랄지 신용평가에 있어 객관성과 엄밀성이 부여되었다면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겠죠. 즉 더 크게 보아 이는 시스템의 문제였고 그 중에서 파생상품은 그들 스스로가 그랬던 것처럼 위기의 도관체 역할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파생상품역시 많은 종류가 있는데 제가 지적한 글을 쓴 이가 ‘보장’이나 ‘스왑’보다는 파생상품의 또 다른 분야라 할 수 있는 유동화/증권화 상품이 레버리지에 대한 무규제, 신용평가기관의 전문성 결여 등이 결합하면서 신용이 가공할 정도로 창출(말씀하신 M3죠. 여기까지 화폐개념을 확장한다면 저도 화폐창출이라는 표현을 동의합니다. 물론 예금하고 대출하니 잠재 구매력이 2배가 되었다는 소리는 여전히 반대하고)된 거라고 할 수 있겠죠.(이런 부분까지 쓰려다 사실 귀차니즘 때문에… -_-;) 특히 금융의 세계화는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가공의 신용창출의 주범을 굳이 들라면 레버리지 그 자체(이건 금융자본의 고유속성이니 일단 제외하고), 그 와중에도 BIS비율에서 예외를 인정받은 투자은행, 이들을 포함한 1차 기관의 자산유동화(특히 모기지 부동산 자산), 이 상품을 뭣도 모르면서 투자우량등급으로 평가한 신용평가기관, 그 상품을 날름 받아먹은 전 세계 투자자(소버린펀드, 헤지펀드, 투자/상업은행, 간접투자펀드… 근데 저 같아도 사겠습니다.)등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아무리 가공할 가상의 신용이 창출된다 할지라도 결국 진성화폐나 미재무부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발판이 튼튼한 전 세계 투자자들이 이 투전판에 가세하지 않으면 별무 소용이었겠죠.

결국 제가 레디앙의 글을 비판하는 이유는 파생상품이 ‘나 홀로’ 신용을 창출한 것처럼 설명하는 – 크게 보아 부분적으로 옳으나 짜깁기나 따 붙이기의 인상이 강한 – 그 무모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두서없이 이야기했는데요. 말씀해주신 내용이나 제가 말한 내용도 하나하나 뜯어서 이야기하자면 엄청 이야기 많이 해야 할 주제이니까 여기까지만 답변 드리죠.

추:CDS의 유형도 다양한 종류가 있을 것이고 예를 든 것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설명하다보니 대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실 대출과 채권매입은 같은 뜻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