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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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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ch22” by http://nickweatherhead.com/images/catch22.jpg. Licensed under Wikipedia.

<캐치22>를 재밌게 읽고 있는데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영화다. 이제 와서 원작을 읽어보니 원작보다 훨씬 단순한 내러티브였지만 – 그럼에도 여전히 복잡한 -특유의 모순어법 유머는 여전하다. 1970년 작품이니 동 시대 M.A.S.H.와 함께 이른바 반전 영화 장르로 분류되지만 개인적으로는 M.A.S.H.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영어, 즉 원어소설로 읽게 되었다. 새로 산 스마트폰에 텍스트 파일을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깐 뒤, 인터넷 공유사이트에서 얻은 텍스트파일을 출퇴근길에 읽는 재미가 솔솔 하였다. 하지만 지금 한글로 읽어도 어려운 글을 영어로 읽으려니 머리가 지끈거려 결국 번역본을 구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복무했던 조셉 헬러의 반자전적인 소설이다. 지독한 냉소로 참전군인들과 전쟁의 광기를 비웃고 있지만, 단순한 반전(反戰)이라는 주제를 뛰어넘은 인간들의 세상 자체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라는 이벤트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인 이 인간들은 – 미치광이, 편집증 환자, 인디언, 탐욕스러운 의사, 영문도 모르고 소령이 된 소심증 환자 등등 – 저마다의 희한한 삶을 살아왔고 전쟁이 끝나면 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그러한 삶을 계속 살아갈 인간군상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런 기기묘묘한 삶의 엑기스를 뽑아내 그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추출제일 뿐이다.

소설의 최대의 매력은 시종일관 그치지 않는 모순어법이다. 잘 알려진바 대로 <캐치22>라는 제목 자체가 이 소설이 지향하고 있는 그 모순어법의 대표적 사례다. 소설의 주인공 요사리안은 자신이 미쳤다며 의사인 다니카에게 전투기 출격임무에서 빼달라고 하소연하지만 다니카의 말인즉슨, 미친 군인은 임무에서 빼주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 군인이 자신에게 그걸 요청해야 하고 그 요청을 하는 순간 그 군인이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상황을 설명해주는데 그 규정이 바로 소설에서 말하는 <캐치22>다. 마치 헤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놓여있는 개미의 처지와 같다. 소설은 시종일관 등장인물을 이러한 상황에 배치시킨다.

인간은 누구나 <캐치22>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요즘, 그나마 가장 그러한 상황을 뚫고 전진했던 한 인물의 전기를 함께 읽고 있는데, 아이작 도이처가 쓴 <트로츠키>다. 그에 관한 가장 빼어난 전기로 알려진 이 책은 유려한 문체, 치밀한 상황 압축, 철저한 고증,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명료한 이해력이 잘 어우러져 지루함이 없이 술술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은 또한 통상적인 전기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주인공에 대한 미화(美化)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트로츠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곳곳에 배어 나옴은 어쩔 수가 없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

작가의 그런 객관적 시각을 통해 알 수 있는 트로츠키의 모습은 자본주의 극복을 꿈꾸면서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러시아 인텔리겐차 정치집단의 상황, 즉 꿈꾸는 세상을 위해 악몽이 더욱 커지길 바랄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만큼이나 모순적인 모습이다. 부유한 유태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소부르주아적 사고에 젖어 소년기를 보내지만 나로드니키로 전향한 이후 맑스주의자, 멘세비키, 마침내 레닌의 정치적 동지로 이어지는 그 삶은 정반합의 변증법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극적이기 때문이다. 글 자체도 좋지만 등장인물 자체가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인 셈이다.

모순된 세상에서 모순된 인간으로 살아간 트로츠키의 처세술은 뛰어난 지식 습득능력과 진화능력이었다. 머리에 별로 든게 없어도 엄청난 언변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던 트로츠키는 그 논쟁을 하면서 어느새 상대의 핵심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드래곤볼에 이런 괴물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는 퇴행적인 나로드니키에서 빠른 시간 내에 혁명의 주도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동지들로부터는 변절자로 낙인찍히겠지만 결국은 혁명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궤도를 신축적으로 수정하였다는 점에서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사리안은 전투기 출격임무에서 빠지고 싶어 아등바등하지만 뫼비우스 띠 위에 놓인 개미처럼 불평을 털어놓으면서도 그 길을 계속 걸어 다닐 뿐이다. 아직 내가 읽은 부분까지 에서는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외부로 시각을 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트로츠키는 약삭빠르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과감히 깨부수어 나가곤 했다. 심지어는 가장 신랄한 언어로 모욕하고 조소를 퍼부었던 – 그의 독설은 그 진영에서조차 심하다 할 정도였다 한다 – 적진에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향점이 불투명한 이와 명쾌한 이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당신은 어떤 인간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