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書評

최근에 <긍정의 배신>이란 책을 읽었다. 저자인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가 유방암에 걸린 후, 미국 사회 전반에 어느덧 이른바 “긍정 이데올로기”가 만연해 있음을 깨닫고 이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쓴 책이다. 유방암에 걸린 후 저자가 직면한 세상은 자신의 처지를 긍정해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의 세상이었다. 의사들은 과학적 근거가 거의 없음에도 긍정적으로 사고해야 병이 더 빨리 낫는다고 채근하고, 환자들은 밑질 것 없다는 심정으로 “긍정 이데올로기”를 공동체 내에서 공유한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항변은 패배적 사고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로 치부되었다.

저자는 책의 나머지에서 자기계발서, 동기유발 강의, 종교, 심리학, 경제 분석 등 사회 곳곳에 이른바 “긍정 이데올로기”가 바이러스처럼 퍼져 있음을 고발한다. 자기계발서나 동기유발 관련 강의 등은 이미 “긍정 이데올로기”가 그 사상적 기반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라는 고통스러운 속세에 대한 뉘우침을 주업으로 하는 분야에까지, 그리고 나의 콤플렉스의 기원이 손수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학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심리학1에까지 “긍정 이데올로기”가 퍼져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조금 의외였다. 어쨌든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경제 분야에서 정점을 이룸을 고발한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폭발하면서 전 세계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은,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 그 사태를 묘사할 때는 반드시 대문자를 써야 하는 – 엄청난 사건이었다. “음악이 흐르고 있는 동안에는 춤을 춰야 한다”는 시티그룹 CEO였던 찰스 프린스의 발언이나 “설사 소가 만든 상품이라도 등급을 매겨야” 한다던 S&P 직원의 발언은 미국 경제에 만연해 있던 “긍정 이데올로기”에 찬물을 끼얹는 냉정함이 얼마나 심각한 배신행위였을 지를 잘 설명해주는 명언들이다. 결국 “긍정”이 문제가 아니라 악화되는 현실에 대한 외면이 문제였던 것이다.

긍정은 좋은 것이다. 긍정을 긍정해야 한다. 하지만 매사를 긍정하면 음양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현실은 개선의 여지가 없는데, 내가 “끌어당김”의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턱없는 낙관으로, 가장 큰 무언가를 얻은 이는 <시크릿>의 저자 론다 번이다. “실직이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다”라는 동기유발 강사의 강의로 가장 이득을 누리는 이는 노동자를 해고한 회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청춘을 위로하는 책을 통해 가장 크게 위로2받은 이는 저자인 김난도 씨다.3 진정한 긍정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주의이지, 현실의 외면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긍정적 사고는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낙천성이 물질적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긍정의 이면이다.[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저, 전미영 역, 부키, 2011년, 27p]

  1. 최근 트위터에서 어떤 정신과 의사분과, 소위 “긍정심리학”이 약간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이 분야의 연구 성과를 송두리째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요지의 대화를 나눴고 나 역시 십분 동감한다.
  2. 예전에 유행했던 “財테크” 책들이 “돈 벌어서 행복해지자”가 주요한 메시지라면, 요즘의 “힐링” 책들은 “돈 없어도 넌 이미 행복해”가 주요한 메시지다. 결국 “財테크” 책들이 한발 물러서고 “힐링” 책들이 난무하는 이유는 이제 외적변수인 경제성장률이 “財테크” 책들이 유행하던 시대에 비해 더 나아질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3. 김난도 씨는 “(중견기업에 가더라도) 처음에는 초봉도 다소 낮고 안정성도 떨어질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는 없어진다. 적성에 맞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종국에는 오히려 고소득과 안정성을 더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외치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비참하다. 김난도 씨의 책은 “힐링”책이라기에는 너무 세속적이고, “처세술”책이라기에는 너무 논리적 근거가 박약하다.

4 thoughts on “긍정의 배신 書評

  1. 하드럭

    현실주의자는 흔히 비관주의자로 오인되는 것같습니다.
    그리고 늘 연초에는 모든 사람이 더 낙관주의자가 되는 것같습니다.
    올해 초 회사의 사업계획을 읽어보다가 이대로만 된다면 우리 회사 주가가 최소한 2배는 오르겠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펴낸다는 트렌드 코리아를 읽어보니 김난도 교수의 책은 정말 책값이 아니라 종이가 아까울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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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Post author

      마지막 문장에서 뿜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보니 그 작업을 상당히 뿌듯해 하던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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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별마

    최근 읽은 조이스 애플비의 [가차없는 자본주의]에서도 바바라의 주장을 인용하더군요. 대책없는 낙관주의가 자본주의의 본질이라는 식으로. 바바라의 책을 읽지 못해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 좀 흐릿했는데 님 덕분에 좀 더 연결이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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