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안고 있는 쥴리

이번에 도쿄에 가서 우연치 않게 감상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전시회가 르느와르(Pierre-Auguste Renoir) 전시회였다. 이미 너무 유명한 화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큰둥할 수도 있는 전시회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의 작품을 한데 모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전시회 때문에 일부러 일본을 들를 정도로 광적인 팬은 아니지만, 기왕에 일본에 온 김에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기에 전시회가 열리는 국립신미술관(國立新美術館)이 문을 열기 30분 전에 미술관에 도착하여 티켓 구매를 위한 줄에 합류했다.

르느와르 그림의 일관된 주제는 한마디로 말해서 당시 사회의 주류로 등장한 부르주아의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삶을 표현하기 위해 또한 당시 미술의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인상파의 명랑한 색채를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인상파적 화풍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는 것이 전시회를 본 내 느낌이었다. 그의 그림 컬렉션을 하나의 영단어로 표현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화려한”이란 의미의 영단어 중에서도 “flamboyant”를 선택하고 싶다. 그의 최고의 걸작 ‘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를 전시회에서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그 단어였다.

Pierre-Auguste Renoir, Le Moulin de la Galette.jpg
By Pierre-Auguste Renoirhttp://allart.biz/photos/image/Pierre_Auguste_Renoir_2_Bal_du_moulin_de_la_Galette_Smaller_version.html (derivative work of musee-orsay.fr image?)
Notwithstanding the source description, this is the version at the Musée d’Orsay (in the smaller version the central figure leaning forward lacks an earring).,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712177

이 전시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어쩌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flamboyant 하지 않은 ‘Julie Manet with cat’이란 작품이었다. 그의 낙관과도 같은 현란한 빛은 이 작품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차분한 붓터치와 갈색톤으로 통일한 색의 사용이 두드러진 작품 속 인물은 슬픈 눈동자를 차분하게 내리 뜬 채 고양이를 안고 있다. 그려질 당시 아홉 살이었던 쥴리는 르느와르의 친구이자 동료화가인 Berthe Morisot와 Eugène Manet 부부의 딸이다. 쥴리는 불행하게도 십대에 양친을 잃어 고아가 되었다. 르느와르는 그녀의 애정어린 후견인이 되었다고 한다.

Auguste Renoir - Julie Manet - Google Art Project.jpg
By Pierre-Auguste RenoirKQGO9bsplWZeCg at Google Cultural Institute maximum zoom level,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880381

이런 슬픈 사연을 지닌 이 작품은 그런 후일담을 제쳐두고라도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르느와르의 다른 작품에서의 정서와는 확연히 다른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 르느와르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 후에 고아가 될 운명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한 소녀의 슬픈 눈빛,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고양이의 교태 등, 이 작품의 각각의 참여주체들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내 가슴에 느껴졌기에 나는 한동안 이 작품 앞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쥴리 역시 이런 작품의 깊이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세상을 등질 때까지 이 작품을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고 보관하였다 한다.

후일담 하나를 더 공유하자면 이렇게 르느와르의 애정을 듬뿍 누린 쥴리가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르느와르의 모순된 삶을 폭로한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양친을 잃었지만 동료 화가들의 모델 등의 활동을 풍족한 삶을 산 쥴리는 회고록에서 어울렸던 유명 화가들의 사생활을 회고하였는데, 알려진 바와 다르게 르느와르가 당시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드레퓌스 사건에서 反유태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회고록에 적어놓았던 것이다. 르느와르 역시 자신의 앞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던 어린 소녀가 후에 자신의 위선을 폭로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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