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가이트너가 설명하는 ‘금융위기의 역설’에 대한 단상

그렇다고 해서, 나는 “정부가 금융업계에 대해 관대했다.”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근거 없다고 반박하지는 않는다. [중략] 부실금융회사의 경영진들이 저택이나 멋진 자가용 비행기를 사도록 구제금융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 금융의 재앙이 경제 전반을 망치지 못하게 막을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한 것이다. 금융시스템이 정지되면 신용은 얼어붙고, 저축은 사라지며, 상품과 용역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게 되어 대량실업과 가난 그리고 고통을 초래하게 된다. [중략] 이것이 ‘금융위기의 역설’로, 우리가 적절하고 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 때로는 적절하고 공정한 결과를 낳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과 정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책결정자들이 위기를 더욱 확대시키는 이유이며, 위기관리의 정치학이 항상 지지를 받지를 못하는 이유이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591]

경제시스템의 버블이 터짐으로써 위기가 발생한다면 상식적인 대안은 내핍을 통하여 다시 재무제표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일개 가계의 이야기이고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여태 형성되어온 버블을 통해 국가의 각 부문이 그에 맞게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가적인 내핍을 강요하게 되면 버블로 먹고 살던 부문은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결국 버블의 어느 선까지가 “건전한” 버블이고 어느 선까지가 “불건전한” 버블인지 알 때까지 정책결정자는 가이트너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기 없는 ‘금융위기의 역설’에 근거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억울하겠지만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다. 분명히 월스트리트는 경제위기의 방화범임이 확실한데, “월스트리트 출신”의 가이트너가1 방화범을 구제해줘서 저택과 자가용 비행기를 안겨주었다는 것이 분노의 주된 내용이다. 실제로 그의 회고록에 보면 이렇게 보일 수 있는 정황이 많다. AIG에 구제금융을 안겨주었는데, 그 와중에 직원은 이미 약속되어 있는 막대한 보너스를 받을 예정이었다. 재무부 장관으로서 그 계획을 막아보려 했지만, 법적으로 이는 불가능하였기에 수많은 비난을 들으면서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가이트너의 회고다. 정확히 정책결정자가 방화범에게 보너스를 주는 그림이 그려진다.

한편 이 시점에서 왜 금융시스템에서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는 ‘금융위기의 역설’이 생기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 또는 서구의 선진 금융시스템 – 시장의 완전경쟁과는 거리가 먼 독점체제이다. 골드만 삭스를 비롯한 많은 투자은행이 포진해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어떻게 보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월스트리트라는 기업명의 단일 투자회사다. 세계화와 탈규제의 와중에 이들은 엄청난 금융버블을 지구단위로 키웠다. 그런 와중에도 금융시스템의 감독체계는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후진적이었다. 가이트는 이런 상황을 “조지 워싱턴 장군의 군대로 세계 제3차 대전을 치르는 것”(602p)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결국 가이트너가 각종 경제지표를 보여주며 회고하듯이 분명 인상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경제위기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 장군의 군대는 도드-프랭크 법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선진화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시장참여자 모두가 어느 선까지가 “건전한” 버블이고 어느 선까지가 “불건전한” 버블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자신들은 처벌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고2 단지 잠시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금융의 귀재”들이 월스트리트에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신용이 얼어붙지 않게 하는 대신에 우리는 방화범인 금융독점자본주의를 보호해줄 수밖에 없었다.

가이트너는 회고록에서 월스트리트를 처단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구약성서적인 정의”를 요구하는 근본주의자로 몰아세운다. 이러한 그의 사고방식은 ‘금융위기의 역설’에 따른 정치학이라는 케인스주의적 사고도 자리 잡고 있는 한편으로 납세자나 – 심지어 의회에게 – 금융과 같이 어려운 분야를 난도질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엘리트주의적 사고도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부당하게 월스트리트 출신이라고 몰아세웠지만, 그의 지사(志士)적 업무처리에는 월스트리트 편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금융시스템 고유의 – 특히 미국 Fed의 – 엘리트주의도 한몫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현상온존 위주의 엘리트주의적 관점을 제쳐두고 본다면 가이트너의 처방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불길이 온 산을 뒤덮고 있는데 채권자에게 헤어컷을 요구하면 그 채권자는 불씨를 다른 산으로 가지고 갈 것이었다. 그래서 구약성서적 정의를 실천하기 보다는 헤어컷을 하지 않음으로써 불씨를 옮기지 말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런데 이런 처방은 여태 IMF외환위기 때 한국 등 제3세계에 취한 조치 등을 생각하면 극히 이례적인 처방이다. 명분은 그때의 위기는 국지적이고 2008년의 위기는 세계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옳은 말이고 그게 또한 월스트리트 단일기업의 금융시스템이 가지는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온 세계의 금융시스템, 또는 미국 정부조차 월스트리트의 인질이라는 사실.

우리는 또한 이 문제에 글로벌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위기가 전 세계적이었고, 미국은 국내의 실패만이 아니라 해외의 취약한 감독기준으로 인해서도 손상을 받았다.. 만일 우리가 강화된 기준을 글로벌하게 권유하지 않고 단독으로 부과했다면, 미국은 시스템 강화의 성과는 못 얻으면서 미국업계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만 감소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런던 G20회담에서부터 시작하여, 바젤III라고 알려지는 체계와 파생상품 감독, 글로벌 은행의 청산 처리방식을 포함하는 국제금융 대책을 추진하였다.[같은 책, p465]

  1. 실제로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한 적이 없음에도 지속적으로 이런 오해에 시달렸다고 한다
  2. 탐욕은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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