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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이 옳은 것이냐 : 絞死刑(Death By Hanging)

극은 한 사형수 R의 교수형이 처해지는 장면의 묘사로 시작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밧줄에 매달린 R은 의식은 잃었지만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었다. 당황한 참관인들(교도관, 검사, 신부, 의사 등)은 그를 죽이기 위해 다시 살리는 희극에 뛰어든다. 그러나 의식을 되찾은 R은 자신이 R임을 깨닫지 못하고 참관인들은 R의 성장배경과 그가 저지른 강간살인을 재연하며 R이 R임을 깨닫게 하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재일 한국인이었던 R의 어두웠던 가정환경, 그의 범행동기, 살인 당시의 상황이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R은 결국 자신 스스로는 사형을 받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국가의 또 다른 범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모든 사형 받을 이들을 대신해 사형을 받겠노라고 스스로의 죽음을 순교로 정의하고 교수형으로 사라져간다. 결국 어쩌면 이 모든 사형을 둘러싼 참관인들의 해프닝은 R이 교수형을 받으며 아래로 추락하는 찰나의 순간에 꾸었던 꿈일지도 모른다.

루이스 브뉘엘 스타일의 실험적인 코미디 형식을 빌려 실제 있었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사형을 다룬 이 영화는 사회적 징벌로써의 사형의 부적절함,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무지와 편견, 스스로 살인자였던 일본이 또 다른 살인자를 처벌하는 모순 등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한 편에 소화해내고 있다.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이슈를 나름의 시각으로 펼쳐내어 대가로 인정받은 오시마 나기사는 진정한 범죄자는 전쟁으로 국민들을 내몰아 수만 명을 살인한 국가임을 고발하고 있다. 재일 한국인 R의 역은 실제 한국인인 윤윤도가 열연하였다.

P.S.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미국에서는 1950년대 실제로 사형수가 형집행 후에도 살아남은 일이 있었다. 부실한 전기의자의 성능 탓이었다. 사형수는 같은 범죄로 두 번 처벌받을 수 없다며 사형을 재개하지 말 것을 청원하였으나 기각되고 두 번째 전기의자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는 미성년자인 흑인이었다.

오시마나기사

Broken Flowers(2005)

오늘 낮 채널을 돌리다 우체부를 따라가는 롱테이크샷이 인상적인 한 영화에서 채널을 멈추었다. 곧이어 등장하는 장면은 코미디언 치고는 지루한 얼굴이어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디풍의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빌머레이(돈 존스턴)가 덜렁 큰 집에서 허연 머리에 중늙은이 모습을 하고는 소파에 앉아서 혼자 돈주앙을 소재로 한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장면. 이윽고 동거녀 쉘리가 그런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는 휑하니 집을 떠나버린다. 이윽고 발견한 핑크색 봉투의 편지.

이웃집 친구 윈스턴(Syriana에서 심각한 얼굴의 그 흑인 변호사역을 했던 제프리라이트)의 앞에서 뜯어본 그 편지는 20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가 썼다는데 그에게는 그가 모르는 아들이 있었고 그를 곧 찾아갈지도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서명도 주소도 없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윈스턴은 돈에게 묘령의 여인을 찾아낼 것을 꼬드기고 마침내 돈은 한때 히피였던 자신이 60년대에 사귀었었던 네 명의 후보자들을 찾아 나선다. 단서는 오직 핑크색과 편지를 타이핑했을 구식 타이프라이터. 한편으로 환대를 받기도 하고, 어색한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면전에서 주먹으로 얻어맞기도 했지만 산발적인 핑크색과 버려진 타이프라이터를 통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여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힙스터(hipster; “최신유행에 민감한 사람” 또는 “히피족”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보다 복잡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반대되는 의미는 “체제순응자”의 의미를 지닌 square라 할 수 있다)였으나 컴퓨터로 떼돈을 번 뒤 무료한 삶을 살고 있는 스퀘어가 되어버린 중년의 과거 찾기가 로드무비와 미스터리물의 형식으로 펼쳐지는데 제법 결과가 궁금하다. 하지만 결말이 다소 미지근한데(스포일러일수도 있어 죄송하지만) 엔딩타이틀에서 감독이 짐자무쉬인 것을 알고 나서야 “그러면 그렇지”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무려나 과거는 과거일 뿐 재밌었으면 되잖아” 이런 식일지도.

60년 세대의 힙스터 분위기를 차용하고 있는 마이크마이어스 주연의 코믹 스파이물 Austin Powers 를 보면 Austin이 Dr. Evil을 체포하려는 장면에서 Dr. Evil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자신과 Austin Powers 는 90년대 상황에서 비슷한 처지라는 것인데 Austin이 60년대의 프리섹스와 난잡한 파티를 벌인 것이 90년대에는 악(evil)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Austin이 자유는 여전히 유효하며 ‘책임’이 함께 따르면 된다고 일갈하지만 Dr. Evil 은 ‘나이든 힙스터(aging hipster)’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고 맞받아친다.

이 영화에서 돈존스턴이 바로 그 ‘나이든 힙스터’이다. 그가 아들의 엄마를 찾는다는 핑계로 옛 애인들을 쫒아 다닌들 자신이 힙스터로 되돌아갈리는 만무한 것이었다. 그 부질없음이 영화의 큰 주제라 여겨진다. 짐자무쉬의 영화에서 자주 비쳐지는 주제이기도 하고 “American Beauty”에서 제대로 써먹은 주제라 식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고정 관객은 확보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