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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부동산 시장

국가간 투자제한의 장벽이 ‘금융의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하나둘 제거되어 세계증시의 동조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21일은 아시아와 유럽의 증시는 매우 안 좋은 방향으로 그 동조화 현상을 뼈저리게 느낀 날이었다. 홍콩, 상하이, 인디아 등은 21일 하루 동안만 5% 대의 주가가 내린 그야말로 대폭락 장세를 연출하였다. 우리나라는 일본, 호주와 더불어 3%의 상대적으로 양호한(?) 하락을 기록하였다. 유럽 증시 역시 4%대의 폭락 장세를 연출하였다.

이러한 폭락은 미국경제의 암울한 현실과 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는 미래가 눈에 보이듯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년만 해도 경제 분석가들은 미국이 불황(recession)에 빠질 것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는데 이제는 그 불황이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질 것이냐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 어떤 이는 이제 아닌 척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불황에 접어들었음을 고백하는 편이 오히려 시장이 바닥을 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또한 각국의 경제 분석가들은 그동안 미국 증시와 친디아 증시의 디커플링이니 산타랠리니 기술적 반등이니 하는 표현을 써가며 애써 전 세계 금융시장의 동조현상을 외면하려고, 또는 시장참여자들이 외면하게끔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그 노력은 부분적으로 성공하였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아시아 일부국가의 주가는 꿋꿋이 올라가는 모습을 일시적으로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전문가도 투자자도 모두 현실을 외면하는 공생관계의 음모에 참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제가 ‘약한’ 불황이 아니라 ‘강한’ 불황에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2001년 불황의 경우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FRB의 금리인하가 추가대출로 이어져 경기후퇴를 빠져나오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지금은 금리인하가 빠져 나갈 구멍이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리인하는 금융권의 예대마진만을 늘려주는 꼴만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탈출구가 없는 미국경제는 지금 모기지 금리동결, 세금환급, 추가금리 인하 등 여러 상상을 초월한, 그러나 약발이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증시 폭락은 바로 이러한 냉엄한 현실의 반영이다. 중국 역시 미국의 불황으로 인해 침체의 늪에 빠져들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중국은 말할 것도 없이 전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발 인플레이션마저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현재는 어떠할까. 부동산 시장을 바라볼 것 같으면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강남재건축 시장을 시발로 하여 아파트값이 살아나고(?) 있다는 기사가 경제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나빠 보이지 않을지도 – 물론 집 없는 사람 열 받는 소리지만 –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우리 언론이 무언가 깊은 곳의 모순을 숨기고자 하는 의도로 쓴 위장(!)기사일지도 모른다.

현재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축소판 서브프라임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폭발적인 가계대출 증가, 유동성 증가에 따른 부동산 가격의 폭등, 미분양 주택의 누적 등이 전적으로 닮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미국의 현재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미분양 아파트를 할인하여 사들이는 ‘주택 도매상’이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다시 등장하였다고도 한다. 최고 40%까지 할인하여 팔리고 있다고 한다.

금융권도 녹록치 않다. 2007년 JP모건의 조사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금융권의 평균예대율(loan-to-deposit ratio)이 이미 120% 수준을 넘어서 대출 증가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지적하였다. 아시아권 다른 은행들은 평균 50~60% 수준이다. 거기에다 주식형 펀드로 돈이 빠져 나가는 바람에 현재는 평균예대율이 더욱 증가하였을 것이 빤하다. 최근의 금리폭등은 바로 금융권 스스로가 자초한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의 소비성향 역시 그리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2007년 우리나라 국민들의 신용카드 사용액은 200조원을 훌쩍 넘어 1인당 사용액 기준으로 세계 5위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34위 수준임을 감안하면 결국은 빚이라 할 수 있는 카드사용이 마냥 좋은 것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불어 여전히 가구당 빚은 6천만 원 수준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 중 상당금액은 부동산 구입에 들어갔다. 요컨대 은행은 열심히 빌려줬고 가계는 부지런히 갖다 썼다.

아까도 말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패턴을 보인 나라가 있었다. 바로 미국이다. 또한 현재 부동산 폭락을 경험하고 있는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하여튼 우리나라는 부동산에 있어서만큼은 참 신비스러운 나라라서 아직까지 이들 나라에서 들려오는 곡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명박 차기정부의 ‘전국의 공사장化’ 선언으로 말미암아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이러한 세계 금융-부동산 시장과 우리의 그것과의 디커플링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집값이 폭락하기보다는 우선은 적정한 선에서 안정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시장의 경착륙은 오히려 서민들과 노동자들을 더 괴롭힐 뿐이다. 미국의 금리인하가 결국 금융권 배만 불린다는 사실을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그들은 경착륙이건 연착륙이건 잇속은 다 챙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라리 현 상황에서의 안정화가 더 나아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오로지 주택 인플레이션으로의 길로만 나아가려는 관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참여자들의 눈에는 세계 부동산의 폭락도 우리나라 금융권의 위험신호도 미분양 주택의 확산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떨어져야 할 부동산 가격은 견고한 호가 유지 속에 부동자세고 오를 곳만 오르는 그런 제스처를 보이고 있고 특히나 경제신문 들은 이에 철저히 호응하고 있다. 솔직히 이해불가다.

이상한 나라의 부동산 시장이고 이상한 나라의 금융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