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나나 공화국 이야기

1983년에 국무원은 「도시 비농업 개체 공상업(工商業)의 몇 가지 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도시의 개체 공상업은 7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할 수 없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저술에 근거한 규정이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론을 설명하기 위해 8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가상의 공장을 예로 들었는데, 중국 당국은 이를 ‘노동착취’의 기준으로 삼았다. 즉 중국 정부가 보기에 자영업이 7명 이상의 사람을 고용하면 사영기업이 되고, 사영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개혁과 개방 :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I, 조영남 지음, 민음사, 2016년, p228]

현실 사회주의 블록의 이념적 경직성 내지는 이념적 조악함을 설명하는데 좋은 사례인 것 같아 인용해보았다. 언뜻 보아도 이는 자본론을 마치 종교경전 마냥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경직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큐란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유로 여성의 몸을 위아래로 감싸고 순종을 강조하는 무슬림의 해석이나, 성경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유로 극악하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개신교도의 해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경전을 지킴으로써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는 기여한 바는 없으나 그 교리를 강요한 이의 권력이나 도덕적 순결성은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어쨌든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한 채 시장경제를 성공리에 – 많은 시행착오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 도입하여, 오늘날 미국을 위협할 다음 국가로 평가받는 등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단순히 인용문에서처럼 「규정」이 교조적으로 끝까지 관철됐더라면 달성하지 못했을 위치라 할만하다. 중국이 경제에 있어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추동했던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정치체제는 유지하면서도 경제체제는 바꿀 수 있다는 – 1992년 10월 공산당 14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이라 할 수 있다.1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 계획경제”라는 도식을 포기한 것은 여러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계획경제/자원동원경제는 사실 戰後 경제개발을 가속화하여야 하는 대다수 국가들에서 체제와 관계없이 시도했던 개발전략이랄 수 있다. 혁명 후의 소비에트가 그랬고, 대공황을 겪은 미국이 그랬고, 10억 인구의 중국이 그랬고, 도시국가로서 살아남아야 할 싱가포르가 그랬고, 북괴와 체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남한이 그랬다. 국가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기업으로 기능하는 것은 일종의 戰時경제체제랄 수 있고 체제경쟁에 직면한 많은 나라들은 어느 기간까지는 계획경제 요소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2


“제국주의 전쟁의 음모를 분쇄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용감하게 나아가자!”(출처)

하지만 경제가 전간기와 질적으로 다른 고도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상명하달식의 행정기능만으로 경제 시스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됐다. 빅데이터 혹은 인공지능이 진정 시스템 전체의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여 투입-산출을 조정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시장에서의 개별 경제단위가 경쟁하며 우열을 평가받고 진화-퇴보를 거듭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더 좋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국가는 경제발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역할에서 “정의로운 심판”의 역할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과 합당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공유된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역사의 퇴보를 초래할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느니, 그 재원을 멕시코로부터의 수입관세로 마련하겠다느니 하는 경제원론에도 안 맞는 소리를 해대는 것은 가장 천박한 수준의 “가부장적 아버지” 역할이다. 더욱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일당독재를 통해서가 아닌 대의적 민주제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라는 점이다. 즉, 그는 선거를 통해 일당독재 지도자보다 더 많은 정치적 자본을 얻게 됐지만, 적어도 중국 공산당이 그랬던 것처럼 집단적 논의를 통해 시행착오를 수정할 정치적 의지는 가지지도 가지려 하지도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면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현대사회에서 국가는 기간산업과 핵심 산업(예를 들면 금융업)은 공공적 기능이 관철되도록 “사령탑”적인3 통제를 강화하되 전 세계적 시장경제는 정의롭게 유지되도록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 잘못된 시장경제는 경제격차와 이념적 편견의 격차만 벌려놓아 보호주의, 인종주의, 독자주의 노선만을 강화시켰고, 그 가장 흉악한 결과가 트럼프의 당선이다. 그는 개별기업에 입지를 지정하고, 도드-프랭크법 규정을 무력화시키고, 이민을 통제한다. 7인 이하의 사영기업 허용이 희극이라면 이번 버전은 비극인가?

80년대 중국이 일당독재 바나나 공화국이었다면 현재의 미국은 민주적 바나나 공화국이다.

  1. 1978년 3월 31일부터 4월 10일까지 공산당 중앙 연락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사찰단이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 등 동유럽을 시찰했다. 이들은 귀국하여 ‘유고슬라비아 계획업무의 고찰 보고’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시장경제를 실행했다는 이유로 수정주의라고 규정했던 유고슬라비아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이고 집권당인 공산주의 연맹도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이 보고서는 이후에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형성하는데 영감을 주었다.<같은 책, p87>
  2. 그래서 결국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주요한 경제적 이슈 중 하나고 현재로써는 경제에 국한해서는 자본의 소유관계, 경제운용의 통제권, 노동에 대한 입장 등이 그 주요 판단기준일 것 같다
  3. 레닌이 1922년 소비에트 공산당 전당대회에 소비에트 농업에 대한 경제적 통제권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켰을 때 “the commanding heights”, 즉 “사령탑”의 개념을 언급한 바, 중요한 기간 기능의 통제만으로도 국가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다는 의미다.

4 thoughts on “두 바나나 공화국 이야기

  1. sticky Post author

    구체적으로 어떤 수술이 잘못되었던가 하는 등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 그간 몇 년간 해왔던 작업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총론적으로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증유의 양적완화 등 엄청난 규모의 외과 수술을 했지만, 결국 자산의 소유-책임관계에서 근본적 개혁 없어 – 정치적으로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레토릭이 설득력 있게 다가올 만큼 – 대중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것이 기득권의 “잘못된 수술”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한 인사이더에 대한 반감이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등장을 초래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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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K.Doom

    대공황을 겪은 미국이 시도한 정책이 (사회주의식 또는 개발독재식) 계획경제/자원동원경제’와 결국은 같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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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Post author

      소비에트식 계획경제, 나치독일식 자원동원경제, 미국의 뉴딜식 개입경제 각각이 “결국은 같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 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철저히 붕괴된 시장을 구제하려는 국가 차원의 시도가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 주도의 동원 체계라는 유사성이 있을 테고 각론에서의 역사적 기원이나 지배계급의 정치적 성향 등을 놓고 보자면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결국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바 불완전한 – 또는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나열한 3개의 경제 시스템이 공통분모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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