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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지난 3월 연방준비제도의 의장 제롬 파월은 한 TV인터뷰에 출연했다. 질문자는 파월 의장에게 “Fed가 경제에 투입할 수 있는 화폐량에 제한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고, 파월 의장은 “우리는 계속 빚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안점은 가계와 기업에게 경제에서의 신용의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하여 사실상 그런 제한은 없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긴급성명을 통해 사실상의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선언한 이후 최근까지 파월 의장은 자신의 인터뷰 발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Fed의 자산을 거침없이 늘려 마침내 최근 7조 달러(!)까지 자산이 늘어났다.

이는 전년도 자산 대비 약 70% 증가한 것으로 아직까지는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의 151.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 반기가 채 지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연 증가세는 2008년의 추세를 따라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자는 자산이 10조 달러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한편, 단순히 Fed 자체의 자산변동에서만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주요 중앙은행의 행보와 비교 해봐도 Fed의 행보는 압도적이다. 팬데믹은 전 세계적인 재앙으로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양적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다른 중앙은행의 자산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감히 Fed의 행보와 비할 바는 아니다.1

개인적으로는 제롬 파월의 그동안의 행보를 볼 때 이번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태 전까지만 해도 파월은 그를 뽑아준 트럼프의 금리인하 요구 등 월권행위와 온갖 인신공격에도 꿋꿋이 저항해왔다. 이런 희한한 정황 덕택에 나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며 초당적으로 칭찬을 들어온 터였다. 그런데, 물론 트럼프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파월은 팬데믹 사태가 닥치자 트럼프가 상찬을 늘어놓을 만큼 깜짝 놀랄 조치를 단행하였다. 나름 보수적 견지를 유지해온 그이기에 이번 양적완화가 유난히 획기적인 조치임은 틀림없다.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파월의 전향적인 조치의 배경으로 주택저당증권(MBS) 시장의 불확실성 증가에 대한 Fed의 우려를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냉각되며 MBS 펀드에서 환매 요청이 급증해 MBS 매도가 이어졌다”고 지적하였다. 예전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MBS의 직접매입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Fed의 주업무가 된 분야다. 당시의 부동산금융시장의 붕괴로 사실상 미국의 부동산증권 시장이 국유화된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다시 그 시장이 요동치고 있기에 Fed는 신속하게 개입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패니메와 프레디맥은 2008년 당시 미국 내의 12조 달러의 모기지 시장에서 반절에 육박하는 금액을 보유하거나 보증하고 있었다. 2008년 9월 7일 연방주택금융청은 이들 회사의 실질적인 국유화를 선언했다. Fed의 MBS구입 프로그램은 이러한 배경 하에 시작되었다. 망할 회사에 정부가 주식을 취득하여 국유화시키고 그 회사의 대표적인 상품을 Fed가 구입해주는, 사상 초유의 업태가 시작된 것이다.[우리가 “자본주의”라 부르고 있는 어떤 경제 체제]

미국 채권시장 내 MBS 잔액은 약 9조7000억달러로 지난 2018년 기준 미 채권시장의 22%를 차지하며 전 세계 채권 시장에서 미국채 다음으로 중요한 채권이다. 이 채권을 Fed가 매입함으로써 미국의 집값은 안정을 찾게 되었다. 현재 Fed가 들고 있는 MBS 잔액은 전체 잔액의 1/3 정도로 알려져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채권을 중앙은행이 그렇게나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그간 서서히 비중을 줄여오던 Fed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대규모의 채권매입에 나서게 된 것이다. 늪에서 서서히 발을 빼왔던 Fed가 다시 발을 푹 집어넣은 셈이다.

2020년 5월 27일 현재 Fed의 MBS 매입현황은 1조8천5백만 달러로 연초의 1조4천만 달러 대비 무려 32% 증가한 상황이다. 즉, 전임자들이 언젠가는 청산하겠다고 했던 MBS 포지션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팬데믹이 도래하자 그 자산은 일시에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이번 위기의 심각성은 어쩌면 이전 금융위기에서 입은 깊은 상처가 치유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깊은 상처를 입게 된 상황이라 할 것이다. 미국에서 모기지를 갚아나가야 할 노동자들이 또 다시 대규모 실업으로 내몰리면 Fed가 사들인 증권은 다시 부실채권이 되는 악순환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 트위터 계정에서 이번 양적완화와 지난 금융위기의 양적완화에 관한 차이점을 분석한 흥미로운 트윗을 올렸는데, 이 분석에 따르면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미재무부 채권 포지션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재무부가 이 채권을 여러 프로그램에 사용하게 되면 시중에 통화량이 증가하여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지난 3월에는 이런 부양책이 당파적인 입장차이로 미의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엄청난 돈이 “재난자본주의”를 이용하려는 자본가를 위한 잔칫상에만 쓰인다면, Fed의 유례없는 자산과 자본주의의 모순은 청산할 길이 없을 것이다.2

한편 파월은 Fed의 양적완화 조치가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며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이 대량실업을 방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그다지 설득력있는 사례도 아니고 결국 Fed가 직접 모기지 채무자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지 않는 한에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는 행정부와 의회의 몫일 것이다. 현재 미네소타 살인사건으로 말미암은 인종폭동까지 겹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린 상황인지라 기득권층이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에는 난국타개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불행히도 트럼프는 그 와중에 발포 운운 트윗, 골프 라운딩, 중국 때리기에나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 바나나 공화국 이야기

1983년에 국무원은 「도시 비농업 개체 공상업(工商業)의 몇 가지 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도시의 개체 공상업은 7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할 수 없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저술에 근거한 규정이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론을 설명하기 위해 8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가상의 공장을 예로 들었는데, 중국 당국은 이를 ‘노동착취’의 기준으로 삼았다. 즉 중국 정부가 보기에 자영업이 7명 이상의 사람을 고용하면 사영기업이 되고, 사영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개혁과 개방 :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I, 조영남 지음, 민음사, 2016년, p228]

현실 사회주의 블록의 이념적 경직성 내지는 이념적 조악함을 설명하는데 좋은 사례인 것 같아 인용해보았다. 언뜻 보아도 이는 자본론을 마치 종교경전 마냥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경직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큐란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유로 여성의 몸을 위아래로 감싸고 순종을 강조하는 무슬림의 해석이나, 성경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유로 극악하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개신교도의 해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경전을 지킴으로써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는 기여한 바는 없으나 그 교리를 강요한 이의 권력이나 도덕적 순결성은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어쨌든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한 채 시장경제를 성공리에 – 많은 시행착오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 도입하여, 오늘날 미국을 위협할 다음 국가로 평가받는 등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단순히 인용문에서처럼 「규정」이 교조적으로 끝까지 관철됐더라면 달성하지 못했을 위치라 할만하다. 중국이 경제에 있어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추동했던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정치체제는 유지하면서도 경제체제는 바꿀 수 있다는 – 1992년 10월 공산당 14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이라 할 수 있다.1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 계획경제”라는 도식을 포기한 것은 여러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계획경제/자원동원경제는 사실 戰後 경제개발을 가속화하여야 하는 대다수 국가들에서 체제와 관계없이 시도했던 개발전략이랄 수 있다. 혁명 후의 소비에트가 그랬고, 대공황을 겪은 미국이 그랬고, 10억 인구의 중국이 그랬고, 도시국가로서 살아남아야 할 싱가포르가 그랬고, 북괴와 체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남한이 그랬다. 국가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기업으로 기능하는 것은 일종의 戰時경제체제랄 수 있고 체제경쟁에 직면한 많은 나라들은 어느 기간까지는 계획경제 요소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2


“제국주의 전쟁의 음모를 분쇄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용감하게 나아가자!”(출처)

하지만 경제가 전간기와 질적으로 다른 고도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상명하달식의 행정기능만으로 경제 시스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됐다. 빅데이터 혹은 인공지능이 진정 시스템 전체의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여 투입-산출을 조정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시장에서의 개별 경제단위가 경쟁하며 우열을 평가받고 진화-퇴보를 거듭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더 좋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국가는 경제발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역할에서 “정의로운 심판”의 역할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과 합당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공유된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역사의 퇴보를 초래할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느니, 그 재원을 멕시코로부터의 수입관세로 마련하겠다느니 하는 경제원론에도 안 맞는 소리를 해대는 것은 가장 천박한 수준의 “가부장적 아버지” 역할이다. 더욱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일당독재를 통해서가 아닌 대의적 민주제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라는 점이다. 즉, 그는 선거를 통해 일당독재 지도자보다 더 많은 정치적 자본을 얻게 됐지만, 적어도 중국 공산당이 그랬던 것처럼 집단적 논의를 통해 시행착오를 수정할 정치적 의지는 가지지도 가지려 하지도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면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현대사회에서 국가는 기간산업과 핵심 산업(예를 들면 금융업)은 공공적 기능이 관철되도록 “사령탑”적인3 통제를 강화하되 전 세계적 시장경제는 정의롭게 유지되도록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 잘못된 시장경제는 경제격차와 이념적 편견의 격차만 벌려놓아 보호주의, 인종주의, 독자주의 노선만을 강화시켰고, 그 가장 흉악한 결과가 트럼프의 당선이다. 그는 개별기업에 입지를 지정하고, 도드-프랭크법 규정을 무력화시키고, 이민을 통제한다. 7인 이하의 사영기업 허용이 희극이라면 이번 버전은 비극인가?

80년대 중국이 일당독재 바나나 공화국이었다면 현재의 미국은 민주적 바나나 공화국이다.

美대선 관련, 이념적 순수성에 관한 雜念

美대선이 끝났다. 오바마의 승리는 예상됐지만 그 차이는 제법 컸다. 상원과 하원은 여전히 양당이 다수당으로 나눠가져 소위 “재정절벽” 위기가 원활하게 해소될지에 대해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어느 선거나 이념전의 양상을 띠지만 이번에는 유난히도 우익에서 이념적 순수성을 앞세워 오바마를 공격했다.

폴 크루그먼이 쓴 칼럼 Socialism!을 보면 우익들은 미국이 사회주의자의 손에 넘어갔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양이다. 이스라엘의 한 신문은 “미국이 사회주의를 택했다”라고 헤드라인을 뽑기까지 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혁명”을 부르짖었다. 부자에 의한 제5인터내셔널이 뜰지도 모르겠다.

예상컨대 향후 4년의 경제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되므로 그 간의 이념공세는 강도를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적완화를 시도하거나 부시의 작품인 감세조치를 끝내거나 증세라도 할라치면 이를 드러내며 짖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너그러운 태도를 보일 거면서 말이다.

최근 Siri 비슷하게 묻는 질문에 대해 인터랙티브한 대답을 하는 evi라는 아이폰앱을 다운받았는데, 심심풀이로 이 앱에 ‘오바마가 사회주의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대답이 “Yes. Barack Obama is a socialist.”라고 대답한다. 아마 앱을 공화당원이 만들었나 보다. 유료였는데 일시무료일 때 다운받길 잘한 것 같다.

그 와중에 워싱턴 주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한 하원의원 후보가 27%의 표를 얻었다고 한다. “사회주의자 대안”이란 정치단체의 후보인 Kshama Sawant는 18년간이나 의원직에 머물러 있는 Frank Chopp 민주당 의원의 강력한 도전자가 되었다. 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영향력이 선거에까지 미친 사례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