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파놓은 또 하나의 함정

이미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바 크리스마스이브에 미국 상원에서 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통과되었다. 미 하원이 지난달 건강보험개혁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상원도 24일 60대 39로 건보개혁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10년간 8천710억 달러를 투입, 현재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인들 중 3,100만~3,600만 명이 보험 혜택을 받아 실질적으로 전 국민의 94%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상원통과는 여러 재밌는 기록을 낳았다. 대표적으로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음 건보 개혁을 주창한 이후 7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건보개혁 추진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고, 상원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표결을 실시한 것은 114년 만으로 1895년 이후 처음이라는 기록도 작성했다. 물론 가장 큰 기록은 이 놀랄만한 일을 흑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해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갈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우선 상원의 법안은 지난달 하원에서 통과된 건보개혁안과는 달리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public option) 도입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주1) 양원제이다보니 같은 주제로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는 희한한 꼴이 연출되었는데 어쨌거나 상하원은 절충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상원과 하원이 동의하는 법안이 표결을 거쳐 가결되면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안이 입법화된다.

이번 상원 통과에서 공화당 의원은 39명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세기 건강보험개혁안을 무력화시켰던 대표논리인데 개혁안이 반(反)시장주의적, 좀더 직설적으로 사회주의적 조치라는 주장이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5천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는 증세 예상액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생리에 맞지 않다. 또한 이렇게 하더라도 현재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철저한 보수주의에 입각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反)시장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혐오는 별도로 하고라도 증세와 재정적자 심화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국책사업의 공통적인 근본모순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 재정지출에의 유혹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바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4대강 떡칠에 쓸 돈이 포함된 새해 예산안을 기습 처리했다.

미국의 민주당은 국민건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고, 한국의 한나라당은 녹색성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치적, 기술적 관점에 따라 어느 것에는 손을 들어주고 어느 것은 비판할 수 있지만 두 사업 모두 생산적인 분야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 전후방 연계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많지만 – 분명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치성향이 다른 두 정부는 어쩌면 공히 사회 인프라에 대한 공공재원 투입을 통한 경제위기 돌파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건강보험개혁안 통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Naked Capitalism에 따르면 건강보험개혁안을 반대하는 이들이 보수주의자들만은 아니라고 한다. 소위 리버럴이나 진보주의자들 중 일부도 반대자가 있는데, 그들은 주장에 따르면 통과된 새 법안이 월스트리트에 대한 또 하나의 구제금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이전에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수요자들을 국가가 강제로 시장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이다.

Here’s the opportunity, Wall Street’s newest and bestest gamble: there is a huge untapped market of some 50 million people who are not paying insurance premiums—and the number grows every year because employers drop coverage and people can’t afford premiums. Solution? Health insurance “reform” that requires everyone to turn over their pay to Wall Street. Can’t afford the premiums? That is OK—Uncle Sam will kick in a few hundred billion to help out the insurers.[전문보기]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행 법안이 보조금 지급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고, 절충안에서 더 좋은 안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우선 보조금만 보면 미국은 보조금 지급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보조금 지급이 수혜자의 부담은 덜지언정 민간보험회사의 이윤을 덜지는 않을 것이다. 더 급진적인 안에 대해 비관적인 것이 공공과 민간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지극히 시장주의적인 ‘공공보험’조차 상원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더 급진적인 조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장기적으로, 그리고 지구적으로 보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부조가 갖고 있는 모순에 대한 해법이 근본적인 접근법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야겠지만, 단기적으로 미국의 상황에서 그들의 건강보험개혁안은 시장주의자들이 반대하는 시장주의 개혁안으로 전락해버릴 개연성이 큰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새로이 수혜를 받는 3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영화 Sicko에서처럼 비용 때문에 잘린 손가락들 중 어떤 손가락만 붙여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주1) 이 옵션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지급방식과 다르다. 이를테면 정부가 별도로 공영 건강보험회사를 하나 만드는 걸 말한다. 공영건강보험회사는 민간 보험회사와 경쟁한다. 보험료 인하를 유도해 서민층의 무보험 사태를 구제하자는 계획이다.

3 thoughts on “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파놓은 또 하나의 함정

  1. devenir

    상원에서 퍼블릭 옵션을 뺀 것을 보면서 이번 의보개혁을 정말 앙코없는 찐빵으로 만드는 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앙코는 월스트릿으로 가게 된다고 보는 네이키드 캐피털리즘의 시각은 설득력이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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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힘찬

    퍼블릭 옵션 지못미! ㅠㅠ

    이대로 개혁안이 입법화 된다 해도 허울만 ‘개혁’일 뿐, 여전히 비용 때문에 잘린 손가락들 중 어떤 손가락만 붙여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심히 우려됨.
    그리고 미국에서는 그런 비극적 상황이 빈곤층뿐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울 뿐이랍니다.

    이 동네서 서로 식사 초대도 하고 영화도 보러 댕길 만큼 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최근에 오랫동안 연락이 없길래 힘들게 소식을 전해봤더니, 글쎄 마약 중독으로 수용소에 끌려가 계신 거라.
    이유인 즉슨, 지난 여름 건강보험을 갱신해야 하는 타이밍에 사고로 발목을 다쳤는데,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는 건강보험 갱신이 안 되는 거라. (이게 무슨 보험이얏!!) 가볍게 발목이 부러진 것도 보험 없이는 수 만불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 멀쩡하게 돈 벌고, 빛나는 석사 학위 2개를 자랑하는 나름 엘리트 중산층의 이 아줌마가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무허가 피지션에게 진통제를 받아 먹으면서 몇 달을 버티다가 그만 약물 중독에 걸려 버린 거라. 극심한 감정기복과 불면증, 신체 경련 등의 마약 중독 증세를 호소하다 결국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수용소에 끌려가 지금은 재활 치료를 받고 계신 거라.
    생업도 포기한 채 가족과 생이별하고 두 달째 감금돼 있는 이 평범한 가정주부와 연말을 핑계로 어렵사리 통화를 하게 됐는데 글쎄,”이런 저렴한 마약 중독 재활 시설이 있는 나라에 사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워! 다 하나님이 아메리카를 블레스하셔서 그런 거지.” 이러는 거라. 이제는 건강보험 개혁안에 찬성하냐고 조심스럽게 던진 나의 질문에 그분이 하신 동문서답임.
    가드 블레스 아메리카래. 어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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