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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가 아니고요

특검이 이재용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한 사실에 대한 브리핑의 캡처 이미지를 트위터에서 봤다. 자막에는 “특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라고 쓰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처음에는 무딘 칼날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특검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브리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움도 있는 발언이다. 오히려 “경제를 세우기 위해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브리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발언이 더 합당한가에 대한 물음은 정의가 경제를 희생하고서라도 이 사회가 지켜야 할 상보(相補)적 성격의 개념인지, 아니면 정의(正義)와 경제가 함께 가는 것이라는 – 또는 부정적 효과를 가지는 – 상관(相關)적 성격의 개념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는 인문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그 저자가 내한공연(!)을 열만큼 신드롬을 연출했던 책이 있다.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명불허전 우리가 정의에 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많이 깨부수면서도 동시에 대중의 통념을 위로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정의는 공동체의 정서를 지켜내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동체가 계급, 성별, 인종별 분화를 거듭하게 되면 정의의 정의(定義)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1 체제를 유지한 남한에서는 특히 그렇다.


정의를 제멋대로 정의한 유신 시대의 포스터 (c) 민족문제연구소

이재용 씨의 혐의는 무엇인가? 뇌물공여를 통해 소위 “삼성그룹” 내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안에 대한 주주의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 사태의 진행상황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글로 적은 바 있는데, 과연 합병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는 우선 논외로 하겠다.2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기능적 분화를 유지해야 할 현대사회에서 이재용 씨가 그 기능적 분화를 정치적 압력으로 무마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정부가 아닌 보통사람의 돈으로 운용되는 투자도구이니 만큼 그들에게 있어 “정의”는 보통사람의 경제적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독립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엉뚱한 “국익”을 내세운 사적이익 추구에 복무한 것으로 보이는 혐의다.

분화는 근대사회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한 세계이다. 전체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한다. [중략] 이렇게 분화한 각 사회적 단위들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기능이 주어진다. [중략] 그리고 다양한 영역이나 조직은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다. [중략] 아니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다양한 국가기관과 그 기관들에 속한 수많은 국가관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국가이성비판, 김덕영 지음, 다시봄, 2016년, pp121~122]

정의의 문제로 돌아가자. 근대사회의 한 기능인 기금운용본부에게 있어 정의는 무엇인가? 연금 납입자의 경제적 이익이다. 운용본부가 그 이익을 위해 결정을 했다면 본부가 합병을 찬성했든 반대했든 그 결정을 존중해줄 합리적 이유가 있다. 그런데 만약 외압에 의해 합병을 찬성했다면 정의가 무너졌다고 여길 합리적 이유가 있다. 이때 실현된 정의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상층부를 위한 정의다. 한편, 그렇다면 이 정의가 최소한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벌 체제에 내재화된 경제신문들은 하나같이 특검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곡소리가 났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주가로 관찰할 수 있는 시장은 별로 반응이 없다. 재밌는 일이다.

기금운용본부의 기능적 분화 무력화 시도가 경제에 장단기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3 하지만 원론적인 부분에서 살펴볼 때 이재용 씨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는 시장의 본원적 기능, 즉 균형가격의 탐색을 방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가 기금운용본부의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본부는 시장의 합병할 양사의 합병비율이 균형가격에 부합하는지 독립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주의자들이 경제발전의 대전제로 여기고 있는 이상향임은 분명하지 않은가? 즉, 기능적 분화를 거친 독립적 기관의 각각의 정의가 서야 원론적 경제가 바로 서는 것이다. 이재용 씨는 시장의 균형가격 탐색을 방해한 자본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본가는 적어도 시장주의자가 아니다.

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파놓은 또 하나의 함정

이미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바 크리스마스이브에 미국 상원에서 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통과되었다. 미 하원이 지난달 건강보험개혁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상원도 24일 60대 39로 건보개혁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10년간 8천710억 달러를 투입, 현재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인들 중 3,100만~3,600만 명이 보험 혜택을 받아 실질적으로 전 국민의 94%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상원통과는 여러 재밌는 기록을 낳았다. 대표적으로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음 건보 개혁을 주창한 이후 7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건보개혁 추진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고, 상원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표결을 실시한 것은 114년 만으로 1895년 이후 처음이라는 기록도 작성했다. 물론 가장 큰 기록은 이 놀랄만한 일을 흑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해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갈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우선 상원의 법안은 지난달 하원에서 통과된 건보개혁안과는 달리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public option) 도입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주1) 양원제이다보니 같은 주제로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는 희한한 꼴이 연출되었는데 어쨌거나 상하원은 절충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상원과 하원이 동의하는 법안이 표결을 거쳐 가결되면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안이 입법화된다.

이번 상원 통과에서 공화당 의원은 39명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세기 건강보험개혁안을 무력화시켰던 대표논리인데 개혁안이 반(反)시장주의적, 좀더 직설적으로 사회주의적 조치라는 주장이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5천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는 증세 예상액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생리에 맞지 않다. 또한 이렇게 하더라도 현재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철저한 보수주의에 입각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反)시장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혐오는 별도로 하고라도 증세와 재정적자 심화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국책사업의 공통적인 근본모순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 재정지출에의 유혹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바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4대강 떡칠에 쓸 돈이 포함된 새해 예산안을 기습 처리했다.

미국의 민주당은 국민건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고, 한국의 한나라당은 녹색성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치적, 기술적 관점에 따라 어느 것에는 손을 들어주고 어느 것은 비판할 수 있지만 두 사업 모두 생산적인 분야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 전후방 연계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많지만 – 분명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치성향이 다른 두 정부는 어쩌면 공히 사회 인프라에 대한 공공재원 투입을 통한 경제위기 돌파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건강보험개혁안 통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Naked Capitalism에 따르면 건강보험개혁안을 반대하는 이들이 보수주의자들만은 아니라고 한다. 소위 리버럴이나 진보주의자들 중 일부도 반대자가 있는데, 그들은 주장에 따르면 통과된 새 법안이 월스트리트에 대한 또 하나의 구제금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이전에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수요자들을 국가가 강제로 시장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이다.

Here’s the opportunity, Wall Street’s newest and bestest gamble: there is a huge untapped market of some 50 million people who are not paying insurance premiums—and the number grows every year because employers drop coverage and people can’t afford premiums. Solution? Health insurance “reform” that requires everyone to turn over their pay to Wall Street. Can’t afford the premiums? That is OK—Uncle Sam will kick in a few hundred billion to help out the insurers.[전문보기]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행 법안이 보조금 지급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고, 절충안에서 더 좋은 안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우선 보조금만 보면 미국은 보조금 지급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보조금 지급이 수혜자의 부담은 덜지언정 민간보험회사의 이윤을 덜지는 않을 것이다. 더 급진적인 안에 대해 비관적인 것이 공공과 민간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지극히 시장주의적인 ‘공공보험’조차 상원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더 급진적인 조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장기적으로, 그리고 지구적으로 보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부조가 갖고 있는 모순에 대한 해법이 근본적인 접근법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야겠지만, 단기적으로 미국의 상황에서 그들의 건강보험개혁안은 시장주의자들이 반대하는 시장주의 개혁안으로 전락해버릴 개연성이 큰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새로이 수혜를 받는 3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영화 Sicko에서처럼 비용 때문에 잘린 손가락들 중 어떤 손가락만 붙여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주1) 이 옵션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지급방식과 다르다. 이를테면 정부가 별도로 공영 건강보험회사를 하나 만드는 걸 말한다. 공영건강보험회사는 민간 보험회사와 경쟁한다. 보험료 인하를 유도해 서민층의 무보험 사태를 구제하자는 계획이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

foog 2009/01/07 12:31
잘 아시겠지만 이 다큐는 동명의 책을 기초로 만들어진거죠. 요즘 그 책을 읽고 있답니다. 다 읽고 다큐를 감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맛뵈기로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41
마침 그 책을 읽고 계셨다니 재밌는 우연이네요. 책과 다큐멘터리가 논조가 미묘하게 다르게 잡혀 있으니 독서와 시청을 연달아 하시면 훨씬 느낌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창 신자유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확 다를 것 같습니다. 번역판에서는 자그만치 “국가 주도 경제의 쇠퇴와 시장 경제의 승리”라고 부제를 달아놨는데 10년도 안 되어 상황이 이렇게 역전이 되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foog 2009/01/07 16:39
제 현재까지로의 감상은 이렇습니다. 물론 그 책이나 여타 경제현상을 다룬 책들이 신자유주의 혹은 그와 다른 입장들의 우위를 기조로 하는 내용들이 대다수이고 이 책도 그러한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한 부분들보다는 ‘결국은 어떠한 입장이든지 간에 혁신하지 않는 고인 물은 썩게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소비에트 모델도 어찌되었든 한때는 다른 국가들의 부러움을 산 적이 있습니다. 케인즈 모델도 서구자본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하게끔 만들어 주었던 모델이고요.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신자유주의 모델도 케인즈적인 국가개입주의 모델의 부담을 덜어냈다는 점에서는 혁신이었죠. 하지만 그 부담을 덜어냄의 과함, 즉 균형점을 찾지 못한 일방적인 자유화때문에 또 다시 이전의 모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거죠. 결국 인간은, 그리고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찾아헤매고 그것이 혁신적일 때까지는 유효한 그러한 좌충우돌의 시스템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Periskop 홈지기 2009/01/08 13:56
옳으신 말씀입니다. 가만히 다른 곳에 올라온 글들을 보노라니 이 다큐멘터리를 1편만 보고 단순히 “신자유주의 찬양”으로 아는 분들도 있더군요. 사실 전편을 다 보면 어느 한 쪽을 편들려는 것보다는 그렇게 돌고 도는 자본주의의 큰 흐름을 전달해주려는 것임을 알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저도 우리 현실을 영위해나가는 시스템에 있어 만인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그런 영속된 균형잡힌 체제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면 완벽하겠지 하는 믿음이 들다가도 한 구석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며 썩어가기 마련이죠. 그런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구해온 노력들이 있어왔고, 그것이 어느 순간 격렬한 파도와 맞물려 세상은 바뀌는게 아니겠습니까.

[원문보기]

위 대화는 어느 책에 대한 나와 ‘Periskop 홈지기’님과의 대화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시장 對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된 The commanding heights라는 책이다.

The commanding heights : the battle between government and the marketplace that is remaking the mord
다니엘 예르긴, 주명건 역, 세종연구원, 1999.09.01

<시장 대 국가>는 시장과 국가 역할의 역전과 재역전 드라마가 전개된 지난 50여 년간의 세계경제사를 하나의 서사극처럼 펼쳐내고 있다. 에너지 문제 전문가로서 석유산업의 역사를 소설처럼 그려낸 저서 <상>(The Prize – 황금의 샘으로 번역됐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예긴은 이번에도 방대한 사료와 현장답사를 통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출처]

책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지난 50년간의 국제경제에 있어서의 시장과 국가의 주도권 쟁탈전을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전체적인 톤은 결국은 시장이 국가보다 우월하다는 뉘앙스가 풍기기는 하나 보다 근본적인 교훈은 위의 대화에서도 말하였듯이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소비에트 모델의 ‘경직성’, 케인즈 모델의 ‘방만함’은 그 모델의 한때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의 소진을 재촉하는 촉진제가 되고 말았다. 이후의 시장근본주의 모델은 시장이 이른바 ‘창의와 효율’을 통해 늘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운용되어 왔지만 결국 그 시장역시 자기만족적이고 아전인수적인 편견으로 말미암아 좌초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잔재들의 교훈과 반성 속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아나서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Periskop 홈지기’님과 대화를 나눴던 곳은 ‘Periskop 홈지기’님이 위 책에 기초하고 살을 붙인 동명의 다큐멘터리의 소개 글에서였다. 나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책내용으로 볼 때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내용으로 판단된다. ‘Periskop 홈지기’님의 멋진 소개로 더욱 구미가 당긴다. 다큐멘터리 소개는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