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 확인의 중요성

이 점을 고려한다면 그가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차지했다는 공은 그가 부당한 방법으로 절대권력을 누렸던 과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그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그의 권력이 비정상적으로 컸음을 재확인시켜주게 된다. 이 점은 죽은 박의 지지자들에게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또한 큰 권력을 갖고서도 어리석게 굴면 경제정책에 실패할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이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단순논리의 약점, sonnet]

sonnet 님이 “박정희의 경제 정책이 잘되었고 성장에 어느정도 기여했다는 말은 수긍할수 있다”고 발언한 글에서 “어느 정도”라는 표현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논하면서 적은 글이다.

그의 취지에는 큰 틀에서 동의하면서도 나는 결국 그의 마지막 멘트가 내 목에 탁하고 걸리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의 남한경제에 대한 역할론을 논하면서 김일성 부자, 적어도 김일성 전주석의 경제적 공과를 또 하나의 단순논리로 폄하하는 것은 조금은 모순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경제에 대한 실증자료는 사실 매우 제한적이고 그 산정방식이 자본주의 경제의 그것과 사뭇 달랐기에 세계경제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랄지 남한경제와의 단순비교는 매우 어렵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서적에서 살펴보고 있는 북한경제 역시 북한 스스로가 발간한 연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글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고 부득이 아래와 같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나마 제3자적인 시각에서 서구인들이 바라본 북한경제의 실상을 옮겨왔다.

서구의 연구들은 1954년 시작된 연속적인 경제개발계획들에 근거한 대규모 경제변화를 통하여 1960년대 말까지 북한이 남한의 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성장률을 – 연평균 12% – 성취할 수 있었다고 확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생산물의 95%가 국유산업으로부터 생산되고 농업이 집단화된 일종의 사회화된 통제경제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와 경제는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제1차 7개년 경제계획(1961-1967) 동안에 북한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던 중소 분쟁에서 중국을 지지하기로 한 결정 때문에 소련이 원조를 중지하자 첫 번째 중대한 차질이 생긴다. 이 기간 동안의 활기 없는 경제 때문에, 비록 그들이 생산목표 달성에 실패한 공식적 이유는 좀 더 많은 자원과 인력을 군대로 전환하여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정권은 계획을 3년 연장한다. 1970년 계획이 완수되자마자 북한은 경제 사회 자료의 공개를 중단하였다.

Western studies confirm that through mass economic mobilisation based on a series of economic development plans beginning in 1954, the DPRK was able to achieve very rapid rates of growth – averaging 12% per annum – that far exceeded the ROK’s until the late 1960s. As a result, the DPRK was able to build a socialised command economy in which state-run industries produced 95% of the goods and agriculture was collectivised. However, in the 1970s the economy began to stagnate. The first significant failure came during the First Seven-Year Economic Plan (1961-67) when the USSR suspended its aid because of the DPRK’s decision to support China in the increasingly bitter Sino-USSR dispute. The lacklustre performance of the economy over this period forced the regime to extend the Plan by three years, although the publicly stated reason for the failure to attain production goals was the need to divert more resources and manpower to the military. Upon the Plan’s completion in 1970, the DPRK stopped releasing economic and social data.[DPRK Economy]

한국전쟁은 북한경제의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전후재건은 매우 빨랐다. 이 공산주의 국가는 산업, 특히 중공업을 증진시키기 위해 풍부한 광물자원을 활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1956년과 1963년 사이의 연간산업성장률은 25%다. 1965년에 산업(공업을 이야기하는 듯:역자주)은 전체 산출의 78%를 차지했고 농업은 22%를 차지했다. 이는 1946년의 상대적인 기여도의 정확히 반대의 모습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전까지 북한은 아시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정권의 자주(주체)로의 추구는 1960년대 말까지 그들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가장 규제된 경제체제로 바뀌게 했다. 1965년 이수 농업과 경공업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후자는 소비재에 대한 증대하는 수요때문이었다. 산업성장률은 1960년대 14%, 1970년대 16% 대로 낮아졌다.

The Korean War devastated much of the DPRK’s economy, but growth after postwar reconstruction was rapid. The Communist regime used its rich mineral resources to promote industry, especially heavy industry. A generally accepted figure put annual industrial growth from 1956 to 1963 at about 25%. By 1965, industry accounted for 78% of the total output, and agriculture 22%, an exact reversal of their respective contributions in 1946. Until the oil crisis of the 1970s, the DPRK ranked as one of the most prosperous states in Asia, but the government’s pursuit of self-reliance (juche) had, by the end of the 1960s, also transformed it into one the most isolated and strictly regulated economies in the world. After 1965, greater emphasis was placed on agriculture and light industry, the latter stress owing to increasing demands for consumer goods. The industrial growth rate slowed in the late 1960s to around 14% and averaged about 16% during the 1970s.[Korea,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DPRK) : Economy]

이들 글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바, 북한경제가 전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동시에 북한은 빠른 속도로 공업화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남한의 경제가 대외원조에 의존하였듯이 그들 경제 역시 소위 사회주의 형제국가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첨예해진 중소 분쟁의 중간에 낀 북한의 애매한 입장은 북한경제의 동맥경화를 일으키게 한 주요원인이 되었다. 더불어 이 사건은 그들이 ‘주체’를 내세우며 대외적으로 점차 고립되게된 전기가 되기도 했다. 반대로 남한은 대외원조와 노동자,농민 수탈적인 자원동원을 통하여 점차 세계경제에 편입하게 된다.

여하튼 앞서의 주제로 돌아가 sonnet 님이 남한경제에서 박정희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극단적인 민중주의적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면, 그 역시도 글을 씀에 있어 북한경제에서 김일성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실관계를 놓쳐서도 안 된다고 본다.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야 북한 경제는 남한 경제에게 KO패 당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적어도 60년대, 심지어 70년대까지도 북한경제는 남한경제보다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정희 시대에 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누가 봐도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낀 것이었다.

10 thoughts on “사실관계 확인의 중요성

  1. Crete

    foog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이미 sonnet님의 글도 읽었고 작년 7월에 sonnet님과 거의 같은 주제로 쓴 글도 있답니다. 오늘 foog님께서 북한 이야기를 꺼내 주시니 또 작년 9월에 서프에 올렸던 글이 생각나네요. 북한과 관련된 부분만 잠깐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늘 건필하세요.

    “북한이 6.25의 피해에서 빠른 속도로 회복을 하고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하던 1958년에 남한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즉 남한 어부들이 북한 어장에 들어와 어로작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남북한 어업관계자 회의를 요청하죠.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런 북한의 평화공세를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답니다. 결국, 그냥 거기서 끝났죠. 이후 북한은 더욱더 경제 성장에 탄력을 받고 이런 물리적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강화한 끝에 남북한 간의 평화 정착보다는 자신들의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같은 민족 간에 몹쓸 짓을 하는데 군사적 경제적 자원을 탕진하게 됩니다.

    이젠 예전에 북한이 우리에게 갖고 있던 군사적 경제적 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군사적 경제적 우위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위를 바탕으로 악을 악으로 갚고 싶으신가요? 집안 때려 부시고 (6.25를 포함한 각종 군사적 도발) 가출했던 망나니 동생이 대문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 집안 꼴도 자리를 잡았고 이 망나니 동생을 힘으로든 논리로든 제압할 수 있는 능력과 준비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몽둥이를 휘둘러 내쫓아(한나라당의 대북 강경책) 더 심한 악의 구렁텅이(친중국화, 핵개발 집착)로 빠져들게 하기보다는 따뜻한 밥상에 망나니 동생을 불러들여 밥 한술 먹이며 (대북 햇볕정책) 마음을 녹여줄 때가 아닌가 합니다.”

    http://crete.pe.kr/187#0

    Reply
    1. foog

      sonnet님의 경제학적 소양 정도면 그 정도는 모르지 않으시리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는 해당 글에서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비판했던 지점을 김일성 부자에 대한 멘트에서 동일반복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링크해주신 글은 잘 읽었습니다. 🙂

      Reply
  2. 고어핀드

    음, 그런 점에서 김일성의 경제 정책에 대한 sonnet님의 의견은 어떻게 보면 일전에 sonnet 님이 비판하신 사후적 지혜의 함정일 수도 있겠네요.

    Reply
    1. foog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래 sonnet님의 댓글을 보면 아직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는 것 같네요. 🙂

      Reply
    1. foog

      물론 원글에도 썼다시피 객관성을 지닌 자료가 부재한 관계로 전후 북한경제에 관한 논쟁은 참 미묘한 문제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링크해주신 글이 어떻게 “충분한 반론”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스러운 측면이 있군요. 링크하신 글에서 제기하는 외생적 변수에 의한 성장동력 또는 정체는 남한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으니까요. 그 당시 미개발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체제의 동지로부터의 대외원조, 이를 통한 산업화 기반 확충, 인민수탈적 산업구조의 완성으로 공통지워지고 그 과정에서 북한은 탈락했고 남한은 도약한 것이니까요. 적어도 그 글이 제가 인용한 다른 글에 대해서 상대우위를 가지려면 남한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 정도는 적용하여야 하지 않은가 생각되네요.

      “결과론적인 비판에 불과하지만 북한이 자랑한 경이적인 성장은 사실 그 자체가 무상원조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허깨비였던 셈입니다.”

      이 표현을 sonnet님이 쓰신 방법으로 남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

      요컨대 저의 비판지점은 전후 북한이 실제로 남한에 상대우위의 심증이 있거니와 sonnet님이 박정희에 대해 ‘어느 정도’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메스를 들이댈 것 같으면 같은 이치로 김일성 부자를 싸잡아 ‘큰 권력으로도 경제정책에 실패한’ 이라는 애매한 표현이 아닌 좀더 엄밀한 사실관계를 제시하셔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겠네요.

      Reply
  3. Pingback: Crete의나라사랑_2008년글

  4. Pingback: a quarantine station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