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사채동결 조치 略史

  1. 1965년 9월 정부는 인플레 방지 수단으로 대출금리(어음은행할인율)를 연 16%에서 연 24%로 인상(주1)
  2. 1971년 수출촉진을 위해 환율을 18% 절하하여 차관기업체들 원리금상환부담 가중
  3.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대통령, 달러방위를 주요 골자로 하는 긴급경제조치 발표
  4. 1970년대 초반 명동과 소공동을 중심으로 1백개의 대규모 사채중개소 존재
  5. 1971년 6월 전경련 김용완 회장,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채 탕감책, 감세 등의 조치 건의
  6. 1971년 7월 정부는 차관기업체 부실을 막기 위해 1백억원의 특별지원자금 배정 결정(주2)
  7. 1971년 7월 전경련 김용완 회장 미흡한 조치라며 보다 강력한 조치 요구
  8. 1971년 7월 박정희 대통령,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사채대책 마련 지시
  9. 1971년 9월 박정희 대통령, 경제과학심의회의에 금융정상화에 관한 연구지시
  10. 1971년 11월 사채동결을 골간으로 하는 긴급조치의 구상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 득
  11. ~ 1972년 6월 긴급조치를 발표하기 위한 제반작업 진행
  12. 1972년 8월 2일 밤 사채동결과 관련된 긴급조치 청와대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공포
  13. 1972년 8월 3일 자정을 기해 시행

이 조치의 결과

  • 이 조치로 기업의 사채이자부담 일시에 약 3분의 1로 경감
  • 사채 또는 은행으로부터의 단기고리 대출금을 장기저리대출금으로 전환
  • 1천억원~1천8백억원 규모로 예측되던 사채규모 3천4백56억원으로 신고됨(통화량의 80%)
  • 과점주주가 사채권자인, 이른바 위장사채가 총 신고사채의 3분의 1인 1천1백37억원

김정렴, 한국경제정책30년사(중앙일보사)에서 재구성

한마디로 엄청난 조치였다. 해방후 우익정부가 기업들에게 남한식 본원적 축적이라 할 수 있는 적산불하, 원조물자 지원 등 막대한 혜택을 주었음에도 우리나라 기업은 자기자본보다 타인자본, 특히 사채 의존도가 높아 재무구조가 취약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지표 현실화, 세계경제 둔화 등으로 인해 자본위기가 심화되자 사채시장 동결이라는 초유의 조치를 통해 돌파한 것이다. 정책결정자들 입장에서는 그 불가피성에 대해 강변하고 있으나 결국 기업에게는 엄청난 특혜였다. 이후 이들이 경제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취한 조치는 기업공개 촉진과 종업원지주제 도입이었다. 그 특혜의 정도를 고려해볼 때에 기업들을 사회화하였어도 불만이 있을 수 없는 조치였음에도 말이다.

(주1) 반면 예금금리는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을 연 15%에서 연30% 인상하여 逆금리

(주2) 1970년말 통화량 3천65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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