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hwon [완]

“대체! 대체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앤디가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 질렀다. 그리고 선장을 쳐다보고는 그에게 말했다.

“스즈끼 선장 당신이 범인이지? 당신이 존이 죽던 날 그 복도에 있었지?”

스즈끼는 말없이 장비실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었다.

“순이 이제 그만 하지.”

스즈끼가 호소하는 듯한 표정으로 순이를 바라보았다. 앤디는 의아한 눈초리로 순이와 스즈끼 선장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뭐야 존을 죽인 사람이 순이야?”

“존을 죽인 것은 나다.”

선장이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존을 승무원으로 뽑은 것도 사실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스즈끼가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앤디가 소리쳤다.

“그런데 그는 순이 너까지 함께 승무원에 넣어줄 것을 요구하더군. 나는 승낙했다. 나는 선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놈이다.”

순이는 슬픔과 호기심, 그리고 두려움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선장을 보았다.

“그 녀석은 양성애자였다. 나는…. 나는 그의 또 하나의 연인이었다. 그가 순이 너의 애정을 인질로 삼았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러했지.” 스즈끼는 힘에 부치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새 산소의 농도도 희박해져 가고 있음이 호흡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왜 죽인건데?” 앤디가 다그쳤다.

“앨리스의 일기에도 나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순이, 그리고 나를 이용하고도 또 앨리스에 대한 욕망 때문에 그 날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똑똑히 듣고 있었고 앨리스가 떠나자 그에게 가서 따지다가 이성을 잃었던 거야.”

이제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여태껏 지휘자로서 나름대로 지켜오려 노력한 권위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 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까지 죽인거야?” 앤디가 또 다시 다그쳤다.

스즈끼는 문득 깨달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앤디의 등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 뒤에는 순이가 있었다. 스웨덴제 군용 칼을 손에 들고 있는 순이가… 번개처럼 앤디를 지나쳐 온 순이는 스즈끼의 목에 칼을 쑤셔 넣었다. 미처 앤디가 말릴 틈도 없이…. 빨간 피가 솟구쳐 나왔고 고통에 찬 표정의 스즈끼의 단말마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앤디는 뒤늦게 순이를 거칠게 떼어 내어 밀어붙였다. 순이가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앤디는 그런 그녀를 일으켜 세우지도 않았다. 처참한 표정만 지으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네가 그럼 나머지 사람들을? 왜? 왜?”

“복수했을 뿐이야. 존의 죽음에 대한… 너희들 모두 존의 죽음을 비웃었고… 처음엔 미구엘이 그를 미워한 미구엘 인줄 알고… 그런데 죽이고 나니 아닌 것 같고… 이번엔 앨리스가 그렇다고 네가 선장과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평소에 날 벌레 취급하던 그 년이 범인이라 생각했지.”

앤디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의 섣부른 추측이 죽음을 불러온 계기가 되다니….

“그렇다면 챈은 대체 왜?”

“내 방에서 칼을 발견하고는 나에게 와서 설교조로…. 나를 달래려고…. 이미 엎지러진 물인데….”

“너를 위해주었던 챈을 죽이다니 대체 제 정신이야?” 앤디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순이는 바닥에서 자세를 바꿔 앉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제 정신으로 보이니 지금?”

앤디도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살인 동기는 진정 무엇일까 하는… 존에 대한 복수?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 아니면 산소결핍으로 인한 정신착란? 그것도 아니면 그 어떤 미지의 원인?

[에필로그]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몸살을 앓던 지구는 사실 erehwon 호가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선의 기능이 마비되고 얼마 안 있어 핵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erehwon 호는 그 뒤로도 – 둘이 남은 음식으로 간신히 연명하며 살았던 며칠 동안도 – 우주를 정처 없이 유영하였다. 그들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유영을 계속해나갔다. 실질적으로 앤디와 순이, 그 둘이 우주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던 두 명의 인간이었다.

8 thoughts on “erehwon [완]

  1. stargazerko

    오래전 들었던 공일오비의 ’21세기 모노리스’가 생각나는 결말이네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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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xarm

    미뤄뒀다가 오늘 한 번에 다 봤습니다.ㅎㅎㅎㅎ
    오~ 묘한 몰입감~ㅋㅋㅋ
    단독범인 줄 알았는데 둘이었군요. 예상치 못한 반전.ㅋㅋ
    존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절망 속에서 구원해주지 않자 복수심에 불탔고 산소 결핍으로 더욱 이성을 상실해 살인을 한…
    쓰고 보니 그냥 앤디 추리의 종합이네요..-_-;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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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요시토시

    존이 앨리스 작업거는걸 본 미구엘이 존 킬!
    그걸 목격한 앤디가 미구엘과 접촉, 손란 끝에 미구엘 킬!
    3일밤 앤디를 목격했던 앨리스가 앤디에의 손에 킬!
    자신에게 호의적인 챈이 존에 대한 질투로 범행을 저질렀다 믿고 순이 챈 킬!

    …이렇게 식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요. ^^);;;

    존이 양성애자였다니…추리소설이라면 살짝 언페어플레이가 아닌가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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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나중에 존을 양성애자로 설정하니 살짝 워쇼스키 형제의 초기작품 바운드가 생각나더군요. 사실 거기서도 조금 반칙이라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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