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대공황, 90년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이은 신용위기. 이 거대한 경기혼란의 시기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 공통점이 있겠으나 그 중 하나가 바로 레버리지(leverage)다. 아르키메데스가 “내게 설 발판과 적당한 지렛대를 준다면 나는 지구를 움직여 보고 싶다”라고 했다던가? 그만큼 레버리지, 즉 지렛대의 효과는 엄청나다.

회사에 1억 원이 있다. 이 돈으로 연 수익률 10% 사업을 하려 한다. 1년 후면 1천만 원의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은행에서 1억 원을 연 5%에 빌려 투자하면 2천만 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 중 5백만 원은 이자로 돌려주면 된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1천 5백만 원을 벌 수 있다. 결국 ROE(Return on Equity ; 자기자본수익률)은 전자의 경우 10%(1천만 원/1억 원), 후자의 경우 15%(1천5백만 원/1억 원)이다.(주1) 이것이 바로 레버리지의 간략한 이치다.(주2)

남의 돈을 싼 값에 빌려 수익성 있는 사업에 유용하면 한층 이익이 된다는 사실은 화폐가 처음 만들어진 시절부터 돈놀이를 하는 이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었겠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판이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른바 레버리지에 의한 수익률 극대화가 기업운영의 핵심이치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주3)

라스콥이 1929년 초여름 발표한 계획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회사를 하나 설립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200달러를 가지고 있는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는 이 몇 푼 안 되는 돈을 그 회사에 투자한다. 회사는 이 돈보다 더 많은 금액인 500 달러어치의 주식을 매입한다. 나머지 300달러는 회사가 대부를 위해 설립한 금융 자회사로부터 빌리고 자회사에게 모든 주식을 담보로 예탁한다. 이제 초기 자본가의 길로 들어선 프롤레타리아는 매월 25달러씩 채무를 상환 받게 될 것이다.[대폭락 1929, 케네스 갤브레이스 저, 이헌대 역, 일리, 2007년, p88]

민중의 벗이었던 민주당 의원 존 라스콥(John J. Raskob)이 프롤레타리아를 자본가로 만들기 위한 원대한 계획이었다 한다. 당시 한 신문은 ‘월스트리트의 위대한 정신이 낳은 최대의 꿈’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이 계획은 당시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던 투자신탁의 운용원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어떤 현명한 투자자는 구두닦이가 주식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끝물이라는 것을 짐작하여 주식을 처분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뒤 바로 주식은 폭락했다던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정설로 자리 잡은 것이 없는 듯 하나 분명한 사실은 그 당시 우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부채비율을 자랑하였다는 것이다.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독재정부에 부역하여 얻어낸 기업들은 이후의 자금조달 역시 철저하게 독재정부의 관치금융에 의존하였다. 그때까지도 직접조달 시장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기에 은행으로부터의 차입은 주된 자금조달 창구였다. 그리고 신용경색이 시작되자 엄청난 레버리지를 자랑하던 기업들이 무너졌다. 그 뒤 김대중 정부는 부채비율을 200%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번 신용위기 역시 레버리지가 사태를 악화일로로 치닫게 하는데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바로 몇 년 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바로 그 살인적인 레버리지로 돈놀이를 하다가 망했음에도, 도대체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이 사건은 케이스스터디로 써먹지도 않은 것인지 바로 그 스타일을 투자기업들이 답습하다가 말아먹은 것이다. 정부는 지속적인 탈규제를 통해 모든 투자기업들을 제2의 LTCM으로 만들어주었다. LTCM과의 차이가 있다면 모든 투자은행들이나 헤지펀드가 LTCM처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직원으로 둘 수는 없었다. 희소성이 강한지라.

이번 사태가 레버리지라는 측면에서 이전 두 사태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 하나가 있다면 금융을 이용하던 소비자들 역시 레버리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공황 당시에도 소비자들은 은행으로부터 돈을 갖다 빌려 쓰기는 했다. 하지만 이 차입이 현재와 만큼 상당한 정도의 투기적 요인을 부추기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러한 측면이 있었다면 기껏해야 주식시장에서의 증거금 제도 등을 활용한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경제선진국, 특히 미국의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소비행위를 동시에 투자행위로 둔갑시키는 적극성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얼마 안되는 자신들의 돈과 신용을 바탕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샀고 이를 통해 스스로의 ROE를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자신들이 낸 돈, 이른바 자기자본(Equity)조차 equity loan 을 활용하면 ROE는 무한대로 증가한다. 분모로 쓸 돈이 없으니까. 또 한편으로 간접투자펀드에 돈을 집어넣어 그 돈들이 또 다른 신용공여에 기여토록 한다. 80년 전 라스콥이 꿈꾸었던 ‘프롤레타리아 자본가 만들기 운동’이 실현된 순간이다.

헤지펀드에 관한 웹사이트 hedgefund.net 은 Leverage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레버리지 그 자체는 금융시장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의 남용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번 교훈이 언제라도 잊히지 않기를 기원한다.
Leverage itself is necessary for the success of financial markets, but its abuse can lead to disastrous consequences. Let’s hope that these lessons are not forgotten anytime soon.

동의하는 바다. 레버리지는 금융시장에서 사라질 수 없는 존재다. 문제는 그런 한편으로 교훈은 너무나도 쉽게 잊힌다. 거기에다 자기증식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보라. 부동산PF 등 기업대출, 처분조건부대출 등 가계대출 등은 모두 실은 레버리지 비율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레버리지의 적정선, 그 리스크헤지 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이가 있다면 노벨경제학상은 따 놓은 당상이고 – 어쩌면 노벨평화상까지도? – 금융자본주의의 구원자로 후대에 길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주1) 물론 법인세 절감효과 부분도 있지만 이는 계산이 복잡해지므로 생략

(주2) 이 이치의 반대편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회사가 당초 연 수익률 10%로 예상하고 자기 돈 1억 원과 은행에서 연 5% 금리의 1억 원을 차입하여 투자를 단행했다고 하자. 예상이 어긋나 오히려 10% 손해를 보았다. 100% 자기자본으로 사업을 하였을 경우 ROE는 -10%다(-1천만 원/1억 원), 은행돈을 빌려 사업을 했을 경우 ROE는 -15%(-1천5백만 원/1억 원)다. 여기에 해당은행으로부터의 담보처분 요구, 신용등급 강등의 부수적인 손해까지도 감수해야할 위험성이 있다.

(주3) 특히 그것이 마르크스 주의에서 주장하는 이윤율저하경향법칙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더욱 더 큰 유혹이 된다. 즉 낮은 이윤율을 높이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이 레버리지 효과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그린스펀 시대의 장기적인 저금리 상황이라는 것은 많은 이들의 지적사항이다.

12 thoughts on “레버리지

  1. 고어핀드

    “구두닦이가 주식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끝물이라는 것을 짐작” →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 케네디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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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바바

    레버리지에 또 레버리지에 또 레버리지에 … (무한 반복)
    이 모든 것이 탐욕과 공포가 제거된 현대 자본주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 하는 말씀에 남의 돈 빌리지 말고 혹여나 빌리더라도 남의 돈 무서운 줄 알라는 얘기, 그게 진리였나 봅니다. 요즘 신문 경제면을 보고 있자면 호러 영화나 진배 없어서 끝까지 다 읽기가 힘들어요. 언제 끝날 지도 모르고 누가 죽게될 지도 모르는, 러닝 타임 무한대의 진정으로 참혹한 호러.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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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레버리지로 무한수렴… –; 남의 돈 빌리는 것이 무섭지 않은 세상이 되어서 더 무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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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ingback: Berlin Log

  4. Ha-1

    이번의 경우엔 그 ‘미국의 소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이른바 ‘집없는 서민’들이었다는 문제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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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경제, 특히 금융시장이 발달할수록 소비자풀과 투자자풀이 겹쳐가는 현상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번 사태를 보면서 자꾸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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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카루스

    신용과 레버리지 하니까 IMF외환위기 직후 언론들이 우리나라 은행들의 담보 대출 관행을 후진적이라고 비판한게 생각나네요. 선진국은 정교한 신용 평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 레버리지가 어떻고 등등…. 얼마전에도 쓰셨지만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한 게 그나마 도움이 되는게 참 아이러니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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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우리나라는 후진적이어서 망한거고 거긴 너무 선진적이어서 망한 케이스라고 기록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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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Pingback: 너나 잘 하세요 | fo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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