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규제

공급중시 경제이론이 중시하는 것, 남자의 기 살려주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또 보호하는 과정에서 남성으로서의 만족감을 느낀다. 복지사회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 결국 술집이나 거리에서 남자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려 하게 된다. [중략] 남성과 여성간의 이 같은 차이만으로도 남자들이 가정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관료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승진기회를 얻기 위해 적극적인 경쟁을 벌리며 또 돈벌이를 인생의 주요목표 중의 하나로 삼으려 하는 의욕이 여성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남녀 간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남녀 간의 소득차이는 모조리 납득이 될 것이다.[조지 길더 지음, 김태홍/유동길 옮김, 富와 貧困, 우아당, 1981년, p185]

레이건 정권의 경제기조였던 “공급중시 경제이론의 성서(聖書)(옮긴이의 끝말에서 인용)”로 불리기도 하는 조지 길더의 책의 일부다.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유행했던 경제학 사조로 이들의 핵심적인 정책 처방은 조세 감면과 규제철폐였다. 이른바 1980년대부터 세계 경제에 풍미했던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반이자 이러한 사조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자본이었다. 즉, 사후적 관찰에 따르면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소는 투자 확대와는 큰 연관이 없었으며, 오히려 소득불평등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조지 길더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어려움은 주로 물적자본의 악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양심, 즉 얻기 위해서 주어야 하고 수요하기 위해서 공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양심을 손상시키는 심리적 생산수단 – 경제인의 사기와 영감 – 의 지속적 파괴에 있다(같은 책 p44)”고 보았다. 결국 저자는 경제인의 사기와 영감을 북돋아서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감세와 규제 철폐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되어 공급이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이른바 “낙수효과(落水效果)”에 따라 부(富)가 자연스럽게 하층민에게까지 흘러내려 갈 것이었다. 여전히 많은 우익이 공감하고 실천하는 경제적 사고의 전형이다.

President Ronald Reagan addresses the nation from the Oval Office on tax reduction legislation.jpg
By Series: Reagan White House Photographs, 1/20/1981 – 1/20/1989
Collection: White House Photographic Collection, 1/20/1981 – 1/20/1989 – https://catalog.archives.gov/id/12008442, Public Domain, Link

결국 공급중시 경제이론은 우생학적인 계급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자본가의 사기와 영감을 위해 세금과 규제를 없애주면 사회가 부유해질 것이라는 사고의 전제는 이러한 우생학적 사고인데, 위 인용문은 이를 남녀 간의 생리적 차이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오늘날의 성인지 감수성의 기준에서 보면 기겁할 저 발언을 “경제학”으로 추상화시킨 것이 공급중시 경제이론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비록 영국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대처 총리가 영국식 신자유주의를 주도했지만, 누구보다도 마초적인 가혹함으로 사회약자를 탄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우생학적 사고가 배어있는 명예남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에서 소개하는 조지 길더의 작가로서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애초 “미디어계의 반페미니즘의 권위자”라는 틈새를 차지한 후 『성적(性的)인 자살』, 『벌거벗은 노마드』, 『공주의 문제』 등과 같은 “페미니즘의 참혹한 피해”를 다룬 내용의 책들을 출간하였지만, 상업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레이건의 선거 사무장이었던 윌리엄 케이스의 재정적인 지원과 레이건의 예산 담당자였던 데이비드 스톡먼이 홍보를 맡아준 『부와 빈곤』이 인기를 누리며 인기 작가와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마초적인 레이거니즘의 적자(嫡子)였던 셈이다.

규제와 인센티브가 생겨나는 과정

18세기 중반까지 도로의 통행량은 매우 많았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수리하는 데에 사용된 수단이 가장 효율적이라면, 당시 널리 쓰이던 좁은 바퀴의 마차가 무거운 짐을 싣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1753년의 법은 유료도로를 이용하는 짐마차, 객차들의 바퀴는 9인치 폭이어야 할 것을 규정하고, 이를 어길 시 5파운드 혹은 말 한 필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조합은 광폭의 바퀴를 단 마차는 특별요금을 경감시켜줄 수 있었고 마차 바퀴의 폭을 지정하여 도로 입구에서 이를 측정할 수 있었다.[The Development of Transportation in Modern England, W. T. Jackman, Cambridge at the University Press, 1916, pp 75~76]

18세기 영국에서는 유료도로에 관한 법적 근거가 좀 더 명확히 제정되어 이전 세기에도 존재했던 유료도로가 더욱 성행했다. 도로의 유지관리는 통행료를 징수하는 ‘유료도로 조합(turnpike trustee)’의 의무였다. 유지관리에 있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인용문에서와 같은 폭이 좁은 바퀴를 단 과적차량이었다. 이런 마차는 당연히 도로의 바퀴가 지나는 부분을 더 깊게 파이게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용문을 보며 규제와 인센티브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기에 번역하여 여기 옮겨 적어 둔다.

전경련의 보도 자료까지도 멋대로 각색하는 한국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이 ‘대기업 40% “불황·규제 탓…채용 줄이겠다”’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상위 600대 비금융기업을 대상으로 2013년 신규 채용 계획에 대해 5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조사한 결과를 보도 자료로 내놓았는데, 해당 기사는 이를 토대로 작성한 기사다.

기사를 보면 응답 기업 157개 중 39.5%인 62개 기업이 작년보다 신규채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따라서 달리 보면 응답 기업 중 60.5%인 95개 기업은 작년보다 신규채용을 늘리거나 유지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기사는 톤을 바꿔 채용을 줄이겠다는 응답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채용을 늘리겠다는 응답보다 줄이겠다는 응답이 많아 그 정도는 수긍할 수 있는 톤이다. 문제는 채용규모 축소 이유에 대한 분석이다. 전경련의 자료는 해당업종 경기악화, 국내외 경기악화, 기타, 회사 내부사정 순으로 그 이유를 적시했다. 하지만 한경은 여기에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규제’였다. 전경련의 ‘신규채용을 줄이려는 이유’ 항목에 ‘규제 때문에’라는 답은 어디에도 – ‘기타’에 해당할지 몰라도 –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한경은 기사에 난데없이 “불황보다 더 큰 문제”라며 규제를 탓하고 있다. 애초 규제를 언급하지 않은 전경련까지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전경련도 기업이 채용을 줄이려는 이유를 ‘불황’과 ‘규제’에서 찾았다. [중략] 불황보다 더 큰 문제는 ‘규제’다. 유통 등 상당수 업종에 속한 기업들이 규제 직격탄을 맞으면서 일제히 고용을 줄이는 추세다. [중략] 각종 경제민주화 규제가 양산되는 흐름을 감안하면 앞으로 기업의 신규 채용은 더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높다. [대기업 40% “불황·규제 탓…채용 줄이겠다”]

그들이 예로 드는 대표적 규제는 ‘중소기업 보호업종 지정’, ‘정년 연장’, ‘기업 내부거래 규제’와 같은 이른바 “경제민주화 관련 규제”다. 요컨대 ‘대기업이 신규채용을 줄이려는 주된 이유가 불황’이라는 취지의 설문조사가 한경에 의해 “경제민주화가 불황보다 더 큰 문제”라고 각색된 셈이다.

애초 현 정부의 공약도 “경제민주화”라기보다는 경제구조 정상화 정도에 그치는 미세조정 성격의 공약이었고 그나마도 어느새 “창조경제”라는 정체불명의 구호에 가려 퇴색해가고 있다. 그런 슬로건을 한경은 친자본단체의 설문조사 내용과도 다른 식으로 각색해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러다가 레이의 로비활동이 레이가 평소에 강조한 자유시장의 해법에는 어긋나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엔론은 제3세계 개발 프로젝트에 대출과 대출보증을 해주는 해외민간투자공사와 수출입은행과 같은 정부기관에 의존했다. 이런 기관들은 자금을 조성하는데 알맞았다. 대부분의 은행은 잠재된 위험 때문에 제3세계 개발에 한 발 물러섰다. 레베카 마크의 사업도 이런 지지기반이 없었다면 대폭 축소되었을지 모른다. 워싱턴의 한 정부정책 연구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1989년에서 2001년 사이에 해외민간투자공사, 수출입은행 등 20개의 정부 혹은 준정부기관 들이 29개국을 개발하는 엔론의 38개 해외 프로젝트에 72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마크와 원수 사이인 스킬링은 자유시장을 숭배한다는 기업이 그런 위선적인 행위를 하느냐며 정부를 등에 업은 자금 조성에 조소를 퍼부었다.[엔론 스캔들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의 몰락, 베서니 맥린/피터 엘킨드 지음, 방영호 옮김, 서돌, 2010년, pp186~187]

먼저 이 글에 등장하는 엔론의 플레이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레이”는 엔론의 CEO였던 Kenneth Lay를 말한다. “레베카 마크”는 엔론의 해외 프로젝트 개발사업을 수행한  Enron International의 수장 Rebecca Mark-Jusbasche다. “스킬링”은 천연가스 등에 대한 금융거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 Enron Corporation의 수장 Jeffrey Skilling이다. 레베카 마크가 발전소와 같은 실물에 투자했다면, 제프 스킬링은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투자대상이 서로 달랐고, 인용문에도 언급하고 있듯이 둘은 서로 스타일이 판이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인용문의 내용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면, 해외수출금융기관(Export Credit Agency)에 의한 대출을 통해 해외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즉, 제3세계의 발전소 프로젝트와 같은 경우 여러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투자은행의 접근이 어렵고 금리도 높다. 그런데 ECA가 개입할 경우 그들의 직접대출이나 보증을 통해 자금조달도 용이해지고 금리도 낮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이런 금융은 이러한 점에서 사실 스킬링이 조소하는 바처럼 “자유시장” 원리와 거리가 먼 국가의 개입을 통한,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해외사업의 개발과정을 보면 규제완화와 같은 자유시장 원리와 수출금융과 같은 反자유시장 원리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레베카 마크의 전임자 존 윙은 영국의 티스사이드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소 프로젝트였기에 천연가스 사용을 금지하던 그때까지의 영국 당국의 규제를 완화하지 않고서는 전망이 없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때맞춰 1989년 규제완화 법안이 영국 국회를 통과하였고 그 최대 수혜자는 엔론이었다. 이제 금융조달은 값싼 수출금융을 이용하면 된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기업의 성장은 케네스 레이가 믿었던 것처럼 완전한 규제완화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해외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는 수출금융을 활용하여, 미국의 축산업자는 정부보조를 받아 값싸게 재배된 옥수수를 소에게 먹여, 석유화학 업체는 일반가정보다 더 싸게 제공되는 산업용 전력의 이용을 통해 성장을 모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규제완화 신봉자가 주장하듯 이 모든 보조를 없앤다면 그들은 당장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유리한 “선택적 규제 혹은 규제완화”일 뿐이다.

법의 결과가 아니라 법의 원인이 된 회사

마침내 시티그룹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관장할 것인 신법,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의 기초를 만든다. 금융분석가 케네쓰 H 토마스는 “시티그룹은 그 법의 결과가 아니라 그 법의 원인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은 웨일의 최고의 치적이 되었다.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은 그것이 단순히 글래스-스티걸 법을 대체하였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 조잡하고 대책 없이 대체되었다는 것에 있다. 금융개혁이 필요하다는 컨센서스가 있긴 했다. – 미국 은행들은 독일과 일본의 상대와 겨루기에 너무 작은 규모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시티그룹이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법안이 빨리 통과되어야 했기에 의회는 새 법안을 데드라인까지 그것의 결과를 주의깊게 고려할 시간도 없이 통과시킬 것을 강요당했다. 금융서비스현대화법에서 빠진 가장 중요한 요소는, Gramm-Leach-Bliley가 실수한 것은 시장을 감독할 규제기관의 현대화였다. 은행들이 괴물로 변할 권리를 수여받았으나 규제자들은 여전히 흩어진 채로 남아있고 존재가 사라져가는 세계에 집중되어 있었다.[Sandy Weill How Citigroup’s CEO rewrote the rules so he could live richly.]

시장주의자들은 국가의 정책 및 규제가 시장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마치 그것들이 시장참여자들의 의사와는 독립적으로 입안되고 집행되는 것인 양, 또는 그렇게 되어야 시장이 잘 굴러가는 것인 양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해프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질적으로는 상당수 정책과 규제가 – 더불어 탈규제마저 – 주요한 시장참여자의 입맛에 맞게끔 만들어지고 집행되어 왔고 그래야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때로는 주요맥락에서 불가피하게 시장의 자유를 상당한 정도로 통제하는 규제도 있지만, 바로 여기서 거론되고 있는 글래스-스티걸 법처럼 그러한 규제조차도 체제의 존속을 위한 총자본의 이해관계와는 일치한다.

글래스-스티걸 법

글을 써야할까?

sonnet님의 이 글에 대해 응대하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요즘 바쁘기도 했거니와 좀 찝찝한 점이 있어 글쓰기를 몇 차례 망설였었다. sonnet님이 지난번에 쓴 내 글에 트랙백을 걸어주셨고 또 글 서두에 “근원적 모순론은 다음과 같은 시각을 말한다”라며 나의 글을 인용하셨기에 나는 ‘당연히’ 내가 주장한 바에 대한 반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근원적 모순론”을 비판하기 위하여 든 예는 ‘증권중개인에 대한 수수료 자율화와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였다.

의아한 점은 사실 나는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탈규제를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위에 든 두 가지 사례를 적시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 두 가지 조치가 기본적으로 사리에 맞는 것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취지로 나의 “근원적 모순론”이 잘못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sonnet님의 논지는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더욱이 규제의 부당성에 대해 든 예인 소비에트의 어처구니없는 규제도 왜 그 맥락에서 등장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니 할 말로 내가 여태 글을 쓰면서 소비에트식 규제에 찬성한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글의 논지는 결국 규제완화가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선의의 것’이라는 것 같은데 그게 sonnet님이 규정하신 “근원적 모순론자”들에게 어떤 설득력을 가질지 궁금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근원적 모순론”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개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논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규제완화의 유용성을 논하는 것이 같은 수위에서의 논의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sonnet님의 주장은 ‘규제옹호론자’ 또는 ‘정부개입주의자’에 대한 반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우지간… 지금 (망설이면서) 응대의 글을 쓰고 있다. 주의하실 점은 sonnet님의 글이 워낙 다양한 방향에서의 논점을 제시하고 있기에 이 글도 불가피하게 다소 장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sonnet님의 논지 요약

sonnet님의 글은 보통 스크롤의 압박이 심하므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주1) 내 글을 읽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 나름대로 그의 글을 요약해보도록 하겠다.

1) 이번 위기는 경쟁 촉진이나 금융복합기업화 같은 멀쩡한 정책개혁의 결과가 의도치 않았던 귀결(unintended consequence)이며 그런 것을 두고 “언제나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은 근원적 모순론에게는 매우 불리한 것이다.

2) 규제란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시장 경쟁과는 꽤 다른 특성(중요함)을 갖긴 하지만, 그것도 기본적으로는 방대한 선택지 중 일부의 기대값을 바꿔놓는 인센티브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또한 정책은 상당한 확률로 예기치 못한 귀결을 맞게 된다.

3)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들이 일거에 몰락하게 된 원인은 과거 건전한 개혁정책이라고 생각되었던 모종의 진보의 도입에 있었다. 또한 현상에 대한 불만은 언제나 진보의 강력한 추동력이었다. 그런데 이 경우 불만족스러운 현상을 강력히 성토한다는 것은 (과거의) 진보적 시도의 잘못을 두들기는 것이 되어서 자승자박이 된다.

4) 급진주의자들은 기존 체제에 존재하는 선을 인정하지 않고, 악을 치유하고자 하는 열정에 골몰한 나머지, 기존의 선을 좀 더 좋은 것으로 대체함이 없이 그것마저 파괴해버리고 만다.

5)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특정 경쟁정책이 재앙을 촉발했다고 해서 경쟁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쟁을 빼고 다른 어떤 것을 집어넣었을 때, 시장이 지금과 같은 정도로 돌아가게 될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다른 기적의 대안이 확보되지 않는 한 경쟁정책은 앞으로도 실용적인 정책대안으로 우리의 도구 상자 안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며 물론 앞으로도 종종 사용되어야 한다.

글래스-스티걸 법에 대하여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게 되자, 투자은행이 움켜쥐고 있던 전통적인 밥그릇을 상업은행들이 파먹어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Barry Eichengreen, 경제 위기의 해부학, 2008년 9월 22일, sonnet님이 인용]

그런 위험한 모험에 뛰어드는 것을 미묘한 균형을 통해 억제하고 있었던 것은 투자은행들이 갖고 있던 짭짤한 수수료 수익이라든가 S&L의 (프리미엄 붙은) 영업권, 그리고 잠재적 경쟁업체 진입을 막아주던 글래스-스티걸 법 같은 소위 철밥통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었다는 것이다.[sonnet]

인용한 글에서 sonnet님은 인용한 아이켄그린의 논지를 빌어 증권중개인 수수료 획일화와 글래스-스티걸 법이 투자은행을 철밥통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법의 폐지는 경쟁을 촉진하는 선의의 의도였다고 정당화하고 있다.(주2) 그렇다면 글래스-스티걸 법이 그토록 바람직하지 않은 규제였는지를 살펴보자.

1920년대 증권 붐이 일어날 당시 은행의 대출수요는 감소한 반면 연준의 금융완화정책에 의해 예금은 대폭 증가하였기 때문에 은행들은 증권투자의 비중을 높이게 되었다. 그러나 1929년 주가 대폭락이 나타나면서 은행의 도산이 이어졌고 결국 대공황이 발발하였던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은행의 증권거래관련 불공정행위가 밝혀지면서 은행에 대한 예금자의 신뢰가 흔들렸고 이에 따라 은행과 증권업의 분리를 명확히 하는 은행법 개정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글래스-스티걸 법의 제정에 따라 1934년 6월까지 은행업무(상업은행업무)와 증권업무(투자은행업무)를 겸영하던 미국의 은행들은 업무를 분리해야만 했고 약 1/3정도가 상업은행업무에 전문화하게 된다.[미국자본주의 해부, 홍영기(금융감독원), 풀빛, 2001년, pp192~193]

이 글에서 보다시피 글래스-스티걸 법의 입법은 그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나아가 바람직한 규제였다. 은행과 증권업무를 분리한 것이다. 물론 유니버셜뱅킹도 가능한 업역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초기 시절 공황을 목도한 뒤 고유업무 영역을 분리했다고 그것을 철밥통을 만드는 경쟁저해책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 규제는 sonnet님이 예로 든 소비에트의 규제보다 훨씬 적절한 규제의 사례다.(이는 조금 뒤에 알아보자) 더불어 그러한 규제조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경제적 자유주의 시절의 종말과 정부개입주의적인 시절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Gram Leach Bliley Act)의 입법과 이로 인한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는 또 다시 경제 자유주의의 복권, 금융과점의 허용 등 신자유주의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가 되는 것이었다.

먼저 규제의 유용성에 대해 살펴보자. sonnet님은 ‘3. 규제라는 도구’에서 소비에트의 예를 들며 규제의 무용성 내지는 외부효과에 대해 상당히 자세히 서술하셨는데 사실 굳이 규제에 대해 살펴보아야 했을 것 같으면 앞서 ‘2. 금융위기 돌아보기’에서 예로 들었던 글래스-스티걸 법에 대해 논함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야 규제의 양면성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글래스-스티걸 법의 의의와 시대적 한계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글래스-스티걸 법이 금융복합기업화를 막아서 투자은행의 안정성을 해쳤거나 경쟁을 저해해서 미국금융시장의 발달을 지연시켰다고 보는가? 글래스-스티걸 법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규제를 하고 있는 동안 미국의 금융업은 급속히 성장하여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꼭 그것이 글래스-스티걸 법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것이 부당한 악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법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금융억압의 시기가 지니는 의미인데, 즉 일반적으로 금융억압의 시기라 불리는 브레튼우즈 체제인 1946년에서 1973년까지의 기간 동안 체계적인 금융위기는 상대적으로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그 법은 그 법이 가지는 한도 내에서 역할을 마땅히 수행한 것일 뿐이다.

아래 그래프는 2008년 현재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레버리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아이켄그린이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투자은행이 불안정한 단기자금시장 대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예금을 사용해 그들의 사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두둔했지만 투자은행 자신들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여전히 높은 레버리지를 통해 고위험의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sonnet님 표현을 흉내내자면 경쟁을 시켰는데도 레버리지가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주3)

특히 여기서 탈규제의 더 비참한 드라마가 연출된다. 즉 레버리지의 증대는 이 조치와도 연관 있는데 탈규제의 하이라이트를 들라면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보다 이른바 “자발적 통합감독 프로그램”이라는 어이없는 제도였다 할 수 있다.

NCR(주4)제도는 비록 정치하고 세련되지 못한 매우 단순한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적어도 2004년까지는 증권회사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규제로서 훌륭히 그 기능을 수행했다고 평가받는다.
SEC(주5)는 2004년 6월 8일, 투자은행지주회사에 대해서 법적인 감독권한은 없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감독하는 자발적 통합감독 프로그램(consolidated supervised entities:CSE)을 마련했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집요하게 앞에서 살펴본 표준 NCR 제도가 투자은행의 위험관리 능력을 무시하고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제도라고 주장하며 이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당시 골드만삭스의 CEO였으며 현재 미국 재무장관인 Paulson이었다.
이러한 규정이 마련되자마자 곧 Goldman Sachs, Morgan Stanley, Merril Lynch, Lehman Brothers, 그리고 Bear Stearns 의 5개 대형 투자은행은 SEC로부터 CSE 자격을 승인받았다. 이 5개 투자은행이 CSE 자격을 획득한 유일한 투자은행들인데, 공교롭게도 이번 월가의 금융위기에서 모두 부실화된 투자은행들이기도 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월가의 금융위기와 자기자본규제, 연구위원 한상범, 자본시장 Weekly 2008-40호 II, 한국증권연구원, pp2~3]

이러한 5대 투자은행들의 “자발적 감독”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 이전까지 그나마 12배를 유지했던 이들의 레버리지는 2004년의 예외인정 이후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40배까지 상승한다. 12배의 레버리지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40배면 문제가 심각하다. 요컨대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이미 70년대 후반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던 금융규제 완화의 사후적 승인(주6)이라면 이 조치는 그야말로 금융위기의 결정타라 할만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떤 “근본적으로 사리에 맞는 선택”을 집어낼 수 있는가? “경쟁촉진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이제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아이켄그린의 말대로 “근본적으로는 사리에 맞는 선택”이었는지 한번 살펴보자.

M&A는 권모술수와 배신을 동반한다. 탈법, 아니 M&A 성사를 위해 아예 법을 바꾸는 로비도 동원된다. 합병 후 시티그룹의 CEO가 된 샌포드 웨일은 자신의 회사 트레블러스와 시티콥을 합병하는 데 반독점법인 글레스-스티걸 법이 방해가 되자, 워싱턴에 전방위로비를 벌인다. 1999년 미국 의회는 ‘시티그룹 정당화법’이라고 불린 ‘금융 서비스 현대화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거대공룡’ 시티그룹의 탄생을 방조한다. 합병을 위해 정치인을 움직여 법도 바꾸는 마당이니 M&A 금융기술은 물론, ‘마카로니 방어전략’, ‘독약 전략’ 같은 반(反) M&A 금융기술도 만만찮게 발전한 곳이 월가다.[‘월가의 법칙’ 책 소개]

[기타 참고글]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 로비의 짧은 역사 (번역문 보기)
How Citigroup’s CEO rewrote the rules so he could live richly. (부분번역문 보기)

요컨대 아이켄그린은 그 법의 폐지가 “근본적으로는 사리에 맞는 선택”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미국의 금융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입법되어 한 시대를 풍미하며 미국경제가 발전하는 시기에 존속하였다가, 폐지 이전부터의 은행 간 합종연횡 등이 점차 노골화되는 등 금융억압이 해체되어가자(주7)시효를 다하고 사라진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진 사태는 다 알다시피 현재의 금융위기다.

글을 마치며

sonnet님의 이어지는 ‘4. 파괴적 경쟁’, ‘5. 진보의 딜레마’, ‘6. 편견(?)의 옹호’ 절은 논의의 집중을 위해서 – 솔직히 쓰다 지친 면도 있음 🙂 – 여기에서 별도로 다루진 않겠다.(주8) 다만 맨 마지막에 ‘7. 마무리 : 던져진 질문에 대하여’의 sonnet님의 다음 말씀에 대해 한마디 하기로 한다.

경쟁과 분권화는 분명히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요소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특정 경쟁정책이 재앙을 촉발했다고 해서 경쟁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쟁을 빼고 다른 어떤 것을 집어넣었을 때, 시장이 지금과 같은 정도로 (혹은 그 이상) 돌아가게 될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다른 기적의 대안이 확보되지 않는 한 경쟁정책은 앞으로도 실용적인 정책대안으로 우리의 도구 상자 안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며 물론 앞으로도 종종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양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위기를 넘긴다면 예전과 본질적인 변화는 없는 ‘시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은 별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결론이라는 것이 내 대답이다. 이제 근원적 모순론이 답할 차례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많이 뜯어고쳐야 충분하다고 말할 것인가? ‘시장으로 복귀’란 표현이 무색해질 정도로 큰 변화가 과연 어떤 것인지 한번 지켜보기로 하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살짝 잽을 피하시는 모습은 조금 실망”(foog)스러운 것이 어느 쪽인지를 보여줄 테니까 말이다.[sonnet]

앞에서 쭉 살펴보았듯이 글래스-스티걸 법은 경쟁을 저해하는 법이 아니었다. 시장의 플레이어의 특성에 따라 그 고유 업무를 구분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법은 존속기간 동안 끊임없는 폐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잘 작동하였다. 그때의 시장은 국가가 특정한 명분을 가지고 개입한 시장이었다. 그 기간 동안 금융은 탈 없이 굴러갔고 전 세계 자본주의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다가 포디즘 체제 하의 경기변동, 미국이라는 나라의 비효율성 증대로 말미암아 금융탈규제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것이 경쟁촉진이었는지 독과점 창출이었는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적어도 글래스-스티걸 법을 보면 마냥 “사리에 맞는 선택”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상업은행의 거대화를 촉진하였으니 말이다.

나는 시장과 국가를 대립항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동반자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발달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했고 국가는 사실상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 경제가 막을 내린 이후 언제나 시장을 지도해오고 투자해왔다. 규제와 탈규제를 반복하고 정부투자를 증대시켜 왔다.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에는 10%미만이었던 서구의 GDP 대비 정부총지출은 1990년대 중반에 40~50%를 유지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국가개입주의는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니 규제 없는 시장이라는 것은 어쩌면 신화에 불과하다. 시장의 가장 큰 플레이어가 룰을 정하겠다는데 그게 불합리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sonnet님이 경쟁과 분권화가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요소라고 하셨는데 여태 말했듯이 자본주의에서의 탈규제 심지어는 규제 그 자체조차도 독점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 것들도 많거니와 그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는 사리에 맞지도 않았고 의도치 않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도 아니다. 그런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시장에 위험하다는 신호는 이미 S&L 사태 때 감지하지 않았는가? 나는 최소한 그런 과거에 대한 기억력을 가진 시장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은 어느 기간만 지나면 편리하게 과거를 망각한다. 이번은 다르다고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다. 나는 이게 시장의 고유모순인지 아니면 의도치 않은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다.

  1. 이 스크롤의 압박은 논쟁 시 일장일단이 있는데 단점은 글이 긴 관계로 상대가 글을 허투루 읽을 수 있다는 점이고 장점은 글이 긴 관계로 상대가 글을 허투루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
  2. 잠깐 곁다리로 새자면 벌써 이 부분이 정책이 “상당한 확률로 예기치 못한 귀결을 맞게 된다”며 거부감을 가지면서 동시에 탈규제가 바로 지금 눈앞에서 예기치 못한 귀결을 맞은 데에 대해서 옹호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3. 물론 아이켄그린은 이에 대해 “복합기업화가 완성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로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4. 표준 순자본규칙(Uniform Net Capital Rule)의 약자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증권회사에 대한 자기자본규제 제도
  5.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6. 사실 이미 70년대 후반 이래 은행들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형 은행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글래스-스티걸법상 명확한 금지규정이 없거나 법률 해석상 진출이 가능한 증권업무분야에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다.(중략) 금융자유화, 규제완화로 표현되는 이러한 변화는 1930년대 이래 미국의 분업주의적인 관리된 금융시스템의 일정한 균열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대체할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정합적 구조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80년대 위기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미국 자본주의 해부, 홍영기[금융감독원], 풀빛, 2001년, p198)
  7. 앞서 말했듯이 시티은행의 경우 금융서비스현대화법(Gram Leach Bliley Act)이 허용되기 이전인 지난 98년 은행지주회사법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트라벌러즈 그룹(Travelers Group)이라는 보험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승인을 얻었다. 제이피모건체이스(JP Morgan Chase)는 제이피모건(JP Morgan)이라는 투자은행과 체이스맨하턴뱅크(Chase Manhattan Bank)가 합쳐진 금융그룹이다.
  8. 그리고 하나 하나가 모두 심각한 주제여서 나의 역량을 뛰어넘는 측면도 있다 🙂

이코노미스트에서의 재미있는 논쟁, 그리고 마이런 숄즈

경제 블로그 Big Picture 가 한 흥미로운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마이런 숄즈와 조셉 스티글리츠가 “현재의 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실수다”라는 의견에 대해 각각 찬성과 반대의 의견으로 논쟁을 벌이고 이를 이코노미스트가 중재하는 형식이다. 둘 다 당대의 경제학적 주장을 대표하는 이들이라 각각의 주장이 매우 선명하다.

스티글리츠
보다 일반적으로 문제는 너무 적은, 또는 너무 많은 규제가 아니다. 그 대신 올바른 규제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규제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규제 시스템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리스크는 이 위기 이후의 너무 많은 규제를 하게되는 것이 아니고 너무 적은 규제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위기가 끝난 후, 최근 몇 년간 그들 스스로 아주 일을 잘 해온 자본가들은 그들 돈의 일부를 정치적 프로세스를 왜곡하는 데 쓸 것이다. – 과거의 선거기부금이 높은 수익 투자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The question, more generally, is not so much too little or too much regulation, but the right regulation and a regulatory system that enforces the regulations we have. The risk we face is not that we will have too much regulation in the aftermath of the crisis but too little. After the crisis is over, the financiers who have done very well by themselves in recent years will use some of that money to distort the political process – campaign contributions have proven in the past to be high return investments.

숄즈
경제이론에 따르면 금융혁신은 실패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특별히 성공적인 혁신은 예측하기 힘들다.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스트럭처는 혁신 그 자체를 낙후시킨다. 이는 통제가 그 당시의 관리 메커니즘에서의 몰락을 방지하는 데에는 부족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실패가 미래의 실패를 제거하는데 재규제가 성공할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회가 더 적은 자유를 통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Economic theory suggests that financial innovation must lead to failures. And, in particular, since successful innovations are hard to predict, the infrastructure necessary to support innovation needs to lag the innovations themselves, which increases the probability that controls will be insufficient at times to prevent breakdowns in governance mechanisms. Failures, however, do not lead to the conclusion that re-regulation will succeed in stemming future failures. Or that society will be better off with fewer freedoms.

숄즈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70년대 초반 피셔 블랙(Fischer Black)과 함께 주식옵션의 가격을 결정하는 문제에 돌파구를 여는 논문을 발표하여 투자이론의 새 장을 연 이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의 논문은 옵션의 가격결정 방법과 옵션의 헤지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옵션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숄즈는 역시 같은 분야에서 학문적인 업적을 달성한 로버트 머턴 Robert Merton 가 함께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이들의 다소 ‘실용적’인 이론이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더 나아가 이 현실참여적인 두 학자는 그들의 이론을 현실에 접목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90년대 가장 큰 금융사고의 진원지였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얼굴마담이 된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러한 점에서 숄즈의 ‘자유’ 주창은 다소 뻔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이는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전직 헤지펀드 엠피리카의 소유자였고 현재 리스크엔지니어링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나심 니콜라스 테이럽은 국립 공공 라디오의 아침 방송에서 현재의 시장 혼란은 1997년 로버트 머턴과 마이런 숄즈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던 주식-옵션 가격결정 모형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수상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머턴과 숄즈는 1998년 몰락하여 그 당시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헤지펀드 실패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두뇌들이었다. 테이럽에 따르면 그들의 예전 회사를 침몰시킨 리스크 관리 실패가 금번 월스트리트를 침몰시키는데 공을 세웠는데, 바로 그것이 투자회사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리스크로부터 절연되어 있다고 (그릇되게)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Nassim Nicholas Taleb, the former owner of hedge fund Empirica and current risk engineering professor and best-selling author, told National Public Radio’s Morning Edition that the current market turmoil proves that the stock-option valuation process that Robert Merton and Myron Scholes won a Nobel for in 1997 doesn’t work. And he wants that prize revoked.
Merton and Scholes, of course, were the brains behind Long-Term Capital Management, whose collapse in 1998 was the largest-ever hedge fund failure at the time. According to Taleb, the risk management failures that torpedoed their old firm have now helped to torpedo Wall Street by leading investment companies to believe (wrongly) that they were insulated from risk.[출처]

나는 이 의견에 상당히 공감하는 편이다. 그에 대한 과도한  그런 면에서 보자면 숄즈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 반대 주장이 아니라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아닐까 싶은데…

단순히 숄즈가 헤지펀드를 하나 말아먹었다는 이유만으로 규제반대를 부르짖는 그의 주장을 반대하는 것은 가혹한 면이 있을 것이기에 탈규제의 폐해 사례를 하나 알아보도록 하겠다.

NCR(주1)제도는 비록 정치하고 세련되지 못한 매우 단순한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적어도 2004년까지는 증권회사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규제로서 훌륭히 그 기능을 수행했다고 평가받는다.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2004년 6월 8일, 투자은행지주회사에 대해서 법적인 감독권한은 없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감독하는 자발적 통합감독 프로그램(consolidated supervised entities:CSE)을 마련했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집요하게 앞에서 살펴본 표준 NCR 제도가 투자은행의 위험관리 능력을 무시하고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제도라고 주장하며 이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당시 골드만삭스의 CEO였으며 현재 미국 재무장관인 Paulson이었다.
이러한 규정이 마련되자마자 곧 Goldman Sachs, Morgan Stanley, Merril Lynch, Lehman Brothers, 그리고 Bear Stearns 의 5개 대형 투자은행은 SEC로부터 CSE 자격을 승인받았다. 이 5개 투자은행이 CSE 자격을 획득한 유일한 투자은행들인데, 공교롭게도 이번 월가의 금융위기에서 모두 부실화된 투자은행들이기도 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월가의 금융위기와 자기자본규제, 연구위원 한상범, 자본시장 Weekly 2008-40호 II, 한국증권연구원, pp2~3]

이러한 5대 투자은행들의 “자발적 감독”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 이전까지 그나마 12배를 유지했던 이들의 레버리지는 2004년의 예외인정 이후 40배까지 상승한다. 수익률은 놀랄 만큼 향상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제 다들 아시다시피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어쨌든 이코미스트에서 진행하고 있는 독자 찬반투표에서 현재까지의 결과에 따르면 규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61%로 규제를 하지말자는 의견 39%가 훨씬 우세하다.

현재의 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실수다
( surveys)

(주1) 표준 순자본규칙(Uniform Net Capital Rule)의 약자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증권회사에 대한 자기자본규제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