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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중시 경제이론이 중시하는 것, 남자의 기 살려주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또 보호하는 과정에서 남성으로서의 만족감을 느낀다. 복지사회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 결국 술집이나 거리에서 남자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려 하게 된다. [중략] 남성과 여성간의 이 같은 차이만으로도 남자들이 가정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관료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승진기회를 얻기 위해 적극적인 경쟁을 벌리며 또 돈벌이를 인생의 주요목표 중의 하나로 삼으려 하는 의욕이 여성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남녀 간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남녀 간의 소득차이는 모조리 납득이 될 것이다.[조지 길더 지음, 김태홍/유동길 옮김, 富와 貧困, 우아당, 1981년, p185]

레이건 정권의 경제기조였던 “공급중시 경제이론의 성서(聖書)(옮긴이의 끝말에서 인용)”로 불리기도 하는 조지 길더의 책의 일부다.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유행했던 경제학 사조로 이들의 핵심적인 정책 처방은 조세 감면과 규제철폐였다. 이른바 1980년대부터 세계 경제에 풍미했던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반이자 이러한 사조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자본이었다. 즉, 사후적 관찰에 따르면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소는 투자 확대와는 큰 연관이 없었으며, 오히려 소득불평등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조지 길더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어려움은 주로 물적자본의 악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양심, 즉 얻기 위해서 주어야 하고 수요하기 위해서 공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양심을 손상시키는 심리적 생산수단 – 경제인의 사기와 영감 – 의 지속적 파괴에 있다(같은 책 p44)”고 보았다. 결국 저자는 경제인의 사기와 영감을 북돋아서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감세와 규제 철폐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되어 공급이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이른바 “낙수효과(落水效果)”에 따라 부(富)가 자연스럽게 하층민에게까지 흘러내려 갈 것이었다. 여전히 많은 우익이 공감하고 실천하는 경제적 사고의 전형이다.

President Ronald Reagan addresses the nation from the Oval Office on tax reduction legislation.jpg
By Series: Reagan White House Photographs, 1/20/1981 – 1/20/1989
Collection: White House Photographic Collection, 1/20/1981 – 1/20/1989 – https://catalog.archives.gov/id/12008442, Public Domain, Link

결국 공급중시 경제이론은 우생학적인 계급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자본가의 사기와 영감을 위해 세금과 규제를 없애주면 사회가 부유해질 것이라는 사고의 전제는 이러한 우생학적 사고인데, 위 인용문은 이를 남녀 간의 생리적 차이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오늘날의 성인지 감수성의 기준에서 보면 기겁할 저 발언을 “경제학”으로 추상화시킨 것이 공급중시 경제이론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비록 영국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대처 총리가 영국식 신자유주의를 주도했지만, 누구보다도 마초적인 가혹함으로 사회약자를 탄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우생학적 사고가 배어있는 명예남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에서 소개하는 조지 길더의 작가로서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애초 “미디어계의 반페미니즘의 권위자”라는 틈새를 차지한 후 『성적(性的)인 자살』, 『벌거벗은 노마드』, 『공주의 문제』 등과 같은 “페미니즘의 참혹한 피해”를 다룬 내용의 책들을 출간하였지만, 상업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레이건의 선거 사무장이었던 윌리엄 케이스의 재정적인 지원과 레이건의 예산 담당자였던 데이비드 스톡먼이 홍보를 맡아준 『부와 빈곤』이 인기를 누리며 인기 작가와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마초적인 레이거니즘의 적자(嫡子)였던 셈이다.

신자유주의 서사가 압도하는 사회에 대한 단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은 네 가지 주요 측면의 상호작용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정치, 종교, 경제, 예술 말이다. 그중에서 정치와 종교가 권력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이제 정치가들은 개그맨의 먹잇감에 불과하고 종교는 자살폭탄 테러범이나 성추행이나 떠올리게 만든다.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전부 예술가이다. 경제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서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반비, 2015년, p128]

이 구절을 읽고 불현듯 생각난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물체를 구성하는 4대 요소’였다. 과문하여 그 깊은 뜻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요소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우주 삼라만상의 물체는 인연에 따라 만나는 이 네 가지가 뭉쳐 이루어졌다가 인연이 다 되면 본래의 요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 사회도 인용문의 네 가지 요소가 뭉쳐져 그 사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여하튼 좀 거칠게 표현하였다는 느낌이 들지만 인용문의 저자의 말대로 오늘 날의 사회는 경제가 나머지 세 요소를 압도하며 문화와 정체성을 이끌고 있다는 데에 대해 공감하는 바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서사가 – 특히 서구에서 – 종교적 서사를 대체하며 우리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 역시 공감이 간다. 이러다보니 정치는 증시(證市)에 목을 매고, 종교는 성탄절 정도에나 의미가 있으며 – 그나마도 상업화된 – 예술은 경제에 종속 된지 오래다.

어쨌든 그 경제적 서사가 신자유주의 서사든 아니면 다른 경제 이념의 서사든 중요한 것은 그 서사가 다른 요소들을 지나치게 압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지수화풍은 각각 단단한 것, 물기, 열, 움직임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 몸의 골격, 피, 체온, 생장(生長)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요소들이 적절히 조화가 되지 않는 몸은 병든 몸이지 않을까? 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각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사고하는 사회, 병든 사회일 것이다.

마가렛 대처의 죽음에 즈음하여

한 시대를 풍미한 “鐵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얼마 전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대의민주제를 채택한 서구열강의 나라 중에서는 20세기 들어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여성 정치인의 집권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후의 영국, 그리고 전 세계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뒤흔든 것은 그의 성별이 아니라 그의 사상이었다.

대처와 그의 사상적 동지 키스 조셉은 그들이 집권한 1970년대 말 당시의 영국을 “영국병”에 걸린 환자로 규정하고, 대표적인 증상으로 “귀족화된 노조”와 “비효율적인 국유기업”을 꼽았다. 이들은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한 약을 꺼내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에는 일상화된 “민영화(privatization)”란 약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유권자들은 전쟁영웅 처칠 대신에 노동당의 애틀리를 선택하였다. 애틀리 정권은 이런저런 이유에서 기업, 그리고 광산 등 대규모 자산들을 국유화시켰다. 즉, 이는 이념적으로는 좌파적 성향의 정부의 등장, 실용적으로는 전후 자본시장의 침몰에 따른 고육지책 등의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1979년 등장한 대처는 이제 전후 정치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케인즈 주의적 사고방식을 깨부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럽을 소비에트 모델에 대한 대항마로 만들기 위한 미국의 대규모 원조 등에 힘입어 성장했던 유럽 경제는 오일쇼크 사태 등을 거치며 한계를 드러냈고 대처는 개혁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어느 정권이나 그렇지만 대처 정권 역시 그들의 정치적 의지를 드러낼 매력적인 표현이 필요했다. 1 그래서 택한 단어가 민영화다. 이 단어는 사회학자 피터 드러커가 The Age of Discontinuity라는 저서에서 처음 쓴 표현이다. 이 단어는 공격적인 뉘앙스를 제외하고는, 대처의 의도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단어였다.

대처는 이후 로드맵에 따라 케이블 앤드 와이어리스(Cable & Wireless),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ritish Aerospace), 브리티시 가스(British Gas) 사와 같은 국유기업들을 민영화하였다. 항구와 공항들도 민영화되었다. 대처의 눈에 보기에 이들 기업들은 “관료적인 국가통제에 의해 혁신을 억압당하고” 있었다.

이후 대처의 세계관은 – 보다 정확히는 그가 추종한 사상가인 아인랜드나 하이예크의 시장근본주의적 세계관 –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신세계를 열었다. 그의 후계자 존 메이저는 기존의 국유기업 민영화뿐 아니라 신규 사회간접자본의 민영화의 길도 제시한다. 2

이후에 전개되는 자본주의 세계는 분명 여러 면에서 이전의 세계와 다른 풍경을 낳았다. 때마침 무섭게 성장하고 있던 자본/금융시장과 맞물리면서 국유기업, 사회간접자본 등은 “공공서비스”라는 개념보다는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는데 이는 정서적으로 많은 진보진영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견으로는 특별히 민영화가 주원인이라 보기 어렵다고는 생각되지만, 戰後 서구 자본주의에 어느 정도 보장되었던 고용안정성은, 이른바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크게 훼손되기 시작한다. 국유기업은 민간자본에 매각되고, 금융상품으로 구조화되고, 노조는 분쇄되고, 공공재에도 높은 요금이 부과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대처의 부고 소식을 전하며 – “굿바이, 매기”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헤드라인을 뽑아가며 – 그를 “영국병을 고치고 공산주의를 무너트린” 인물로 칭송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세계관을 통해 발전한 민간투자사업이 오늘날 시장 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혈세 먹는 하마”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보수언론의 이런 자아 분열은 그가 열어젖힌 세계에 – 사견으로는 자본주의의 발전전략의 한계와 그로 인한 보수화 과정에서 그가 촉매가 되어 열린 세계 – 대한 일반의 정서가 어느 정도 반영된 모습이랄 수도 있다. 관료를 비판하고 효율을 칭송하면서도 지나친 효율, 직접적으로 나에게 불편한 효율은 지양하는 모습.

대처를 통해 자본주의가 깨달은 점이 있다면 계급차별적인 자본주의는 온존한 채 어설픈 좌파적 전략을 쓰면 한계에 부닥친다는 점일 것이다. 분명 엄밀한 경제적/사회 효용적 타당성 분석이 배제된 국영화 전략은 관료주의로 부패할 개연성이 크다. 이는 물론 과거 소비에트 사회주의 블록에서도 존재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처는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 그 소유형태를 해체해버리는 극약처방을 내린 셈이다. 분명 소유형태의 변경이 아닌 다른 대안도 검토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러한 미온적 조치는 그의 세계관과 거리가 멀었고 그 길은 돌이키기 어려운 극단적 조치였다. 이로 인해 많은 영국인들이 고통 받았을 것이고 그 후유증은 꽤 심각했다.

대처 시절에 대한 리얼리즘적인 묘사로 호평을 받는 영화감독 켄 로치는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여 치르자면서 그게 그가 원하던 방식이 아니었냐며 조롱했다.3 이런 조롱은 물론 뼈있는 비판이지만 단순히 비판에 그쳐서만은 안 될 것이다. 그가 제시한 세상과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면 반대진영은 이제 그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대안이 “재국유화”는 아니라 생각한다.

한미FTA 관련 tweet 들 모음 :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

정부와 한나라당이 10월 31일 한미FTA 비준안을 단독상정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트위터는 이러한 사태를 우려하는 트윗들이 올라오고 있고, 나도 질세라(!) 거들고 있다. 관련 트윗들을 이슈별로 모아보았다.

끝장토론

한겨레의 ‘FTA 끝장토론’ 요약. 끝장도 안 났지만… http://bit.ly/vNQm2W

정태인, 한미FTA ‘끝장토론’의 끝은 | 우리가 확인한 것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저 놀라운 확신,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건 시장질서와 자유무역의 부정이라고 단정하는 극도의 단순함이다. http://bit.ly/vv0eCY

전문가 인터뷰

이정구 경상대 연구교수 “한미FTA는 국제무역을 확대강화하는 것을 넘어 양국 기업주들이 이윤 추구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기업과 투자자들이 FTA에 따른 과실을 독차지한다는 것 http://bit.ly/tPN5ye

송기호 변호사 “야당이 지금까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를 두고 ‘통상독재’라고 비판했는데, 정작 통상절차법 통과로 인해 사실상 야당은 ‘통상독재에 대한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 http://bit.ly/rqEQQw

정태인 : 여권 안에서 한미 FTA에 관한 첫 논의가 이뤄진 것은 이광재 의원의 세미나 모임이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그렇다. 2004년 11월께, 삼성경제연구소 측이 이 모임에서 한미 FTA에 대해 발제를 했다. 출처

정치권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은 한미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잘못된 한미FTA를 제대로 바로잡자는 것” 여기까지가 한계? http://qr.net/fnjd

한국 국회는 국내 법·제도의 변경을 수반하는 한·미 FTA의 글자 하나도 바꿀 수 없다. 국회는 오로지 찬·반만을 결정할 수 있다. 현행 법체계상 국회는 체결된 조약에 대한 비준동의권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http://bit.ly/rWNp1C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수정권한도 없고, 그것에 따라 자신들이 만든 수많은 법률을 뜯어 고쳐야 하는 한미FTA를 “닥치고” 찬성하려 한다면, 의회의 권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므로 그깟 의회는 해산시켜 버림이 순서가 아닐까?

RT @DemocracyCho: 아..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번 FTA 관련해 반대 조류가 커지고 있다네요..특히, 차기 정권을 노리는 친박계 쪽에서 반대 또는 이행법안 수정, 독소조항 무효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답니다..국회쪽 지인 통신~

박근혜 씨, 대선 키워드가 ‘복지’인데 복지하고 싶으시면 한미FTA 반대하세요. 수첩에 적어두시고…

박근혜 씨가 국면전환 카드로 한미FTA 재재협상 카드를 들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 정국은 또다시 엄청난 소용돌이로…

일반의 우려와 달리 한미FTA는 비준 후라도 재협상 및 폐기가 가능하다. 이를 통제할 특별법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정치권이 FTA의 본질을 간파하고 행동할 의지를 가진 곳이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우리가 누구를 뽑느냐가 중요하다.

자동차

RT @ftapolicy: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http://j.mp/sp4KQZ 그리고 추가협상으로 우리가 양보한 분야는 자동차뿐인데, http://j.mp/sur7cs 막상 업계는 환영을 표명했습니다. http://j.mp/rytKtJ

Photo: 한미FTA 비준하라고 “30만 근로자”들이 돈모아서 낸건 아닌 것 같은 광고 http://tumblr.com/ZiMQByB41mlR

간접수용 관련

한미FTA에서의 “간접수용”시 보상금액이 미래의 기대수익을 포함하는지의 여부에 관한 글. 간접수용은 국내법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으로 한미FTA가 발효되면 많은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됨. http://bit.ly/uWu6zb

투자자-국가분쟁해결 관련

RT @your_rights: #최재천의한미FTA청문회 138>ISD는 2006년 협상시작부터 한미간에 일체 이견이없었습니다. 참여정부때는 없었다가 MB정부들어 새로생긴 조항이 아닙니다. 과거정권에 일정부분이라도 책임있는 이라면 이점에 대해서는 반성적고려가 필요합니다. ISD2)

용인경전철은 민자사업과 국제중재가 만난 전형적 사례다. 정당한 보상은 있어야지만 큰 틀에서 사업방식, 중재를 통한 보상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조중동은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실은 한미FTA야 말로 이런 체제의 일상화를 초래한다.

금년 4월 국제무역협상에 대한 호주의 접근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재고의 일환으로, 길러드 정부는 양자간과 지역간 무역협정에서 더 이상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http://bit.ly/tMHQoS

볼리비아와 벡텔의 상수도 시설을 둘러싼 분쟁 당시 미국-볼리비아FTA가 체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벡텔은 다만 유령회사가 설립된 네델란드와 볼리비아 간의 BIT를 활용하여 볼리비아를 국제중재로 몰고 갔다. http://bit.ly/uYK7sw

☞ 이 트윗은 @cogitur 라는 유저가 볼리비아와 미국이 FTA를 체결하는 바람에 상수도 민영화에서 국제중재로 큰 손해를 입었다는 트윗에 대해, 통상교섭본부 공식계정인 @ftapolicy 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성격의 트윗이다.

RT @Song_Younghoon: @EconomicView 그런 방식은 다국적기업들이 잘 쓰는 것이기도 하죠. 호주-미국간 FTA에는 ISD조항이 없는데, 필립모리스는 호주 정부의 담배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필립모리스 홍콩을 통해 홍콩-호주간 BIT를 활용하여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대안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사실을 앎이 중요한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자본친화적인 FTA의 근본성격을 이해하고 진정한 자유무역, 약자의 자유와 공생의 철학이 담긴 무역협정을 맺기 위한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사실 한미FTA에 “제2의 을사늑약”이란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그간 고민한 바 그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자본에 더 많은 자유를 주는 조약이다. 자본도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미 많은 그 자유를 FTA로 더 준다는 점.

한진중공업과 한미FTA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이미 자본은 입지의 자유가 각종 투자보장책에 의해 확보된 상태이고 그래서 한진은 부산을 떠난다. 한미FTA는 양국에 이런 자유를 더 부여한다. 결국 자본이 떠나면 남는 것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한미FTA를 저지한다고 갑자기 신자유주의화가 중단되거나 사회가 복지체제로 돌아서는 것은 아니다. 한미FTA는 자본의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의 한 맥락일뿐. 효과적인 해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한 상황.

대안적 FTA사례는 남미좌파블럭이 시행하고 있는 ALBA를 들 수 있다. 이 협정은 상호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 금융독립성을 강화할 지역개발은행 설립, 지역운동을 활성화할 위원회 설립 등을 담고 있다. http://bit.ly/sBnuXI

헌법

사실 헌법상의 경제질서, 공익을 위한 규제 등의 조항이 별로 지켜진 적도 많지 않다. 토지공개념조차 위헌판정 받을 정도니까. 한미FTA 발효는 이런 사문화된 헌법조항의 사문화에 대한 확인사살이 될 것이다. 실질적인 개헌이라고나 할까?

사실 웬만한 진보조차 환영하는 헌법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있는 성장 및 적절한 소득분배 유지와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은 시장경제의 보완적 성격도 있긴 하지만 독재시절 국가통제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신자유주의적”인가?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규범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인 매사추세츠 대학 엡슈타인 교수는 “‘중앙은행 독립성’은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온 시스템의 사상과 정책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교리’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중앙은행 독립성’의 이론적 배경엔, 국가개입 없는 금융시장이야말로 자금을 최적 배분할 수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국가가 통화량을 조절해서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해도 고용 등 실물경제를 움직일 수는 없으며 기껏해야 물가인상으로 귀결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정부를 견제하며 통화량을 실물경제가 성장하는 정도 내로 억제해서 물가인상을 저지하는 것으로 정리된다.[한국은행 독립은 불멸의 진리인가]

과문한지라 중앙은행의 독립이 “민주주의적 가치와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 교리”였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인용한 부분이나 나머지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 취지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 음모론의 경우엔 FRB가 민간은행의 소유라면서 결국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이란 명분하에 시장에로의 종속을 야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신용위기 이후 FRB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고 금융자본, 특히 월스트리트의 거대 투자은행에 상당히 밀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정황이 상당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내가 드는 의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은행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인가? 둘째, 물가인상의 저지가 금융자본의 이해와 일치하는가?

첫 번째 의문에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은 실제로는 금융자본으로의 종속이다. 본질이 그러하므로 “신자유주의적”이다. 대강의 흐름에 일리가 있다고 간주하여도,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극복한 그 어떠한 체제로 이행했을 때는 어떨까? 그때는 중앙은행이 정부의 직속기관으로 귀속될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중앙은행이 실제 얼마나 독립성을 가지고 그것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실증연구가 있겠지만 역시 그 독립성은 마치 정치권력 안에서의 삼권분립처럼 오랜 시행착오 끝에 끄집어낸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3대 세습과 관련하여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본질은 결국 그러한 정치권력의 형태가 국가의 발전에 유효한 것인가 – 절차적 합리성과 목적적 합리성 양면에서 –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일 것이다. 여하튼 북한 등 몇몇 국가를 빼놓고는 분권형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집중형 정치체제에 대한 장점을 포기하는 대신 소위 ‘집단지성’의 장점를 택하겠다는 것이 아닐까?(물론 그마저도 오늘날 금권정치에 찌들어 있음은 사실이지만) 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고 싶다. 삼권분립이 “신자유주의적”이 아닌 것처럼 중앙은행의 독립도 그러하다고 본다.

엡슈타인 교수는 물가관리가 지상 목표인 중앙은행은 자연스럽게 금융자본의 대변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중앙은행의 정치적 동맹자는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이다. 중앙은행 인사들과 은행가들은 매일 만나고 교류하며 호의를 나누는 가운데 경제를 보는 시각까지 공유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같은 것은 없다.” 중앙은행의 목표(물가안정)는 금융자본의 ‘갈망’이기도 하다. 돈을 투자하고 금융수익(이자나 배당금)을 얻는 금융자본의 입장에서 물가인상은 그 자체로 수익성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적절한 물가인상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물가인상 저지라는 중앙은행의 설립목적은 금융자본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같은 기사]

오늘날 월스트리트가 중앙은행의 정치적 동맹자임은 – 나아가 정부마저 – 이제 다 증명된 일이다.(그 시초를 들자면 케네디에게 발탁되어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를 들 수 있는데, 포드 자동차의 CEO였던 그는 국방장관, 그리고 세계은행의 총재를 역임하며 산업자본, 정부, 금융자본의 회전문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앙은행의 설립취지인 물가인상 저지가 금융자본의 이해만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가인상이 결국 화폐가치를 절하하여 금융의 이익을 저해한다는 것은 한쪽만을 본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왜 2000년대 중반 동안 FRB는 저금리를 유지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었을까? 그 기간 동안 폭등한 집값은 금융자본에게 손해였는가? 익히 알다시피 월스트리트는 그 와중에 유동화와 증권화를 동원하여 사상 최대의 이익을 시현하였다. 물가인상이 좋은지 인하가 좋은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요컨대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의 독립, 그 자체는 본질에 있어 어떤 선악의 기준으로 볼 것은 아니다. 증권화나 유동화 기법이 그러하듯이, 나아가 금융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옛사람들은 – 심지어 막스 베버 같은 대학자마저 – 금융은 천한 유태인들이나 하는 것이니 그들은 “천민자본주의”라고 비난하였고 오늘날 신용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이 금융자본을 욕하지만 금융기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듯이 중앙은행도 그러하다. 근본적으로 변혁하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면 고쳐서 써야 하고 전술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 암튼 만약 ‘중앙은행이 어떤 상태가 좋으냐?’ 묻는다면 난 독립을 택하겠다.

미국의 빚잔치

1980년대 영국의 새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사이좋게 집권하면서 이른바 신(新)자유주의를 퍼뜨리며 내세웠던 주장 하나가 ‘작은 정부’였다. 민간경제의 활력을 위해 정부는 규제도 없애고 경제활동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한 다짐이 그것이다. 그래서 많은 공공기업들도 민영화하였다. 하지만 다음 표를 보면 그런 겉모습과 다른 내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출처 : whittier.edu

미국의 국가채무의 증가추이와 그 기간 동안의 집권자 및 집권당을 비교한 그래프다. 레이건 시대에 확연하게 국가채무가 늘어났고, 이후 집권당에 관계없이 꾸준히 채무가 증가했지만 특히 아들 부시에 가서 하나의 변곡점을 형성할 정도로 부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 돈 다 뭐했는지 지금 경제가 망가져서 또 오바마가 의회에 국가채무 한도를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나섰다.

美재무부 장관 티모시 가이드너가 금요일 의회에 공식적으로 10월 중순이면 부채한도를 초과할 수도 있으므로 12.1조 달러의 법적 부채한도를 올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의회가 한도가 차기 전에 행동을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이를 통해 시민들과 안팎의 투자자들에게 미국이 언제까지나 그들의 의무를 충실히 할 것임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중략]
채권 딜러 예측통에 따르면 9월 30일 끝나는 2009 회계 연도에 2조 달러 정도의 순(純)신규부채가 발행될 것으로 예측되고 2010 회계 연도에는 1.6조 달러로 예상되고 있다.[Geithner asks Congress for higher U.S. debt limit]

미국이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천문학적인 부양계획(stimulus plan)을 통해 경기를 다시 살리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수확을 얻고 있는지 주가지수, 부동산 가격 등 실물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다며 좋아들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기부양은 자금력을 갖춘 소비자를 통해서 가능한 법인데 바로 정부가 현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비자라는 점, 그리고 그들이 쓰고 있는 돈은 위와 같은 부채를 통해 조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의 시발점으로 생각하고 있던 1980년대, 바로 그 시점이 역설적으로 국가가 보다 적극적인 소비자로 변모하였던 시점과 겹친다. 이들 채무는 아마도 국방비 지출, 사회복지 지출 등 달라진 국가의 역할 수행을 위해 쓰였을 것이다. 오히려 클린턴 시기에 그 추세가 꺾이는 듯했으나 아들 부시가 중동에서 쌈질하느라 빚을 확 늘려버렸다. 그리고 오바마는 이제 나라 안의 경제와의 전쟁을 위한 전비(戰費)조달을 위해 채무한도를 올리려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전체 채무는 GDP대비 81%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정도는 대략 전 세계 국가들 중에서 22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GDP대비 재정적자 비율이다. 2009 회계 연도에 그 비율이 12.3%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 정도 적자가 향후 몇 년간 지속된다면 가이드너가 아무리 우겨도 빚쟁이들이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하지 못할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수도 있다.

미국의 최대 채권자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시피 중국으로 전체 부채의 약 25%를 거머쥐고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는 강한 국가를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의 창시자인 뤼스토는 1932년 독일경제학회의 강의에서 뼈있는 말을 했다. “신자유주의는 강한 국가를 필요로 한다. 시장과 국가는 상호 배타적이 아니고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정부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와 사유재산을 사회윤리에 걸맞게 기능화 하도록 하는 책임을 갖는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시장은 만능하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보완돼 시장의 불안정성을 해결한다’는 신자유주의철학을 완전히 배반했다. 금융위기 해결에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은 없었고, 보이지 않는 손은 환상이었다.”[전문읽기]

현재의 개별 부르주아 국가 감독기능의 강화를 신자유주의의 파탄과 동일시하는 해석에 대한 명쾌한 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