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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쟁력 순위 상승이 한미FTA 덕분이라고?

국가경쟁력 11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 ; 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하는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이 지난해보다 12단계 상승한 11위로 등극했다고 해서 언론들이 좋아하고 있다. WEF의 보고서 발간 이후 가장 높은 순위라 한다.

재밌는 점은 언론이 WEF보고서의 결과가 한미FTA의 덕이라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는 아예 제목을 “12계단 껑충… 한미FTA 효과?”라고 달았다. 양심이 있으니까 물음표는 달아 놨다. 이 추론은 WEF의 한국 측 파트너인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신철호 교수가 “설문이 진행됐던 올해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돼 기업인들의 긍정적 인식이 설문에도 일부 반영된 것 같다”는 발언에 근거하고 있다.

경쟁력 강화는 한미FTA 덕분?

WEF측의 설명도 아니고 한국측 파트너의 관계자가 “일부” 반영된 것 같다는 추측을 제목에 확 박아버리는 대범함이 놀랍다. 경제신문은 아예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사설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 순위 상승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라면서 사뭇 단정조이다. 매일경제의 사설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개방 의지를 보여준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라고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과연 해당 보고서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웹사이트 주소는 http://www.gcr.weforum.org/ 이고 보고서 원문은 상단 우측 메뉴에서 Explore the Report 를 클릭하면 pdf 파일로 볼 수 있다.

진상을 조사해보다

먼저 korea 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았다. 여러 내용이 나오지만 한미FTA에 관련하여서는 내용이 검색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agreement 로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는 2개. 그중 무역협정(trade agreement)에 관련된 내용은 딱 한 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국제경제의 정책결정의 주요 초점인 무역 협정과 다른 시장개방 조치들의 효과는 또한 미시경제 정책에 의존한다. 시장개방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번영은 미시경제의 발전에 달려 있다. 만약 국내 경제 환경이 보다 효율적으로 변신하는데 실패하고 국내 회사가 생산성이나 세련됨을 향상시키지 못하면 수입은 증가하되 수출향상과 해외투자의 매력은 고통스럽게 느린 속도가 될 것이다.(The effects of trade agreements and other market opening measures, a major focus in today’s international economic policymaking, also depends on microeconomic policies. Market opening is good, but its prosperity assume microeconomic progress. If the local business environment fails to become more efficient, and if local companies do not improve their productivity and sophistication, market opening will boost imports but the growth of exports and the attraction of foreign investment will be painfully slow.)”

과대 포장된 한미FTA 수혜론

좋은 말이다. 열심히 살자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한국이 한미FTA덕분에 경쟁력이 향상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요컨대 좋게 봐서 신철호 교수의 주장대로 설문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즉 한국일보는 “‘제도적 요인’ 분야 순위가 42위에서 26위로 뛰어오른 것은 한미FTA 타결에 따른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봐서 그 하나의 요소가 다른 채점항목들보다 훨씬 더 비중이 높아서 국가경쟁력 순위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는 이야기인가?

결국 한미FTA로 인해 국가경쟁력 순위가 낮아졌다는 말은 아전인수 격 추측에 불과하다. 알 수 없는 추측을 기사 제목으로 뽑고 사설에 사실로 단정 짓는 것은 안 좋은 버릇이다. 50억 비자금 계좌에 대해 입 다무는 것이 안 좋은 버릇이듯이 말이다.

훈장질에 나선 경제신문

더불어 한국경제의 사설은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다. 사설은 “보건과 기초교육(Health and primary education)”항목이 131개 국가중 27위 인 점을 들어 “부실한 교육 등이 경쟁력을 갉아먹고”있다고 썼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고등교육과 훈련(Higher education and training)”에서는 6위를 차지했는데 이 점은 ‘편리하게’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 요구하는 것은 “기업수요에 맞는 교육 혁신”이다. 아마도 현 정부의 3불 정책을 비판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자면 이미 인문학이 씨가 말라버린 대학교육도 직업교육 체제로 줄서라는 주문일 것이다.

매일경제는 이 부분을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고등교육과 훈련(Higher education and training)”에서는 6위를 차지한 이유는 “교육의 질적 향상보다는 높은 취학률” 덕분이라고 분석까지 하고 있다. 양적팽창이 주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노동시장 효율성` 역시 23계단 상승하고도 24위에 그쳤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국가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으며 그만큼 경쟁력도 떨어진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결국 노동시장의 유연성, 즉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세상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다. 온 나라가 비정규직으로 넘쳐나서 회사건물 앞마다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야 만족할 족속들이다.

노동의 유연성은 경제지 논설위원 먼저 솔선수범을

사실 세계경제포럼은 친시장적인 경제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민간단체로 경제적 자유주의의 극대화를 모토로 하는 단체에 불과하다. 노르웨이나 덴마크, 미국 등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국가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한결같이 세율이라고 분석해놓는 이 보고서를 보고 있으면 소득세를 내지 못하겠다고 연방정부와 총격전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어느 극단주의자가 연상된다. 또한 평가항목에 분배나 공공성에 대한 배려를 측정하는 항목은 구색 맞추기 식일 뿐이어서 그들이 바라는 국가의 “경쟁력”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경쟁력인지 의심이 가게 하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 민간단체의 보고서가 비록 영향력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나 효과가 큰 것도 아닌 사안이다. 문제는 이를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자기 편한 식으로 해석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데 있다. 국가경쟁력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면 그간 고생한 기업인들과 노동자들을 격려하든지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만해서는 안 되며 이 모든 것이 다 한미FTA의 덕이며, 더욱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는데 박차를 가하자고 훈장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침부터 한숨이 나와서 몇 자 적어보았다.

이참에 건의 드리는데 노동의 유연성은 경제지 논설위원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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