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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clayton(2007)

마이클클라이튼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세대 스릴러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어찌 보면 고전적인 느와르의 현대적인 오마쥬쯤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변호사라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도박에 빠져 살았고, 부업삼아 한 레스토랑이 망해 사채를 얻어 쓴 이혼남 마이클 클라이튼(조지 클루니), 젊은 여성이면서도 제초제를 생산하는 대기업 유노쓰의 임원에 올라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는 카렌, 거래를 성사시켜 거액을 수수료를 버는 한편 자신의 회사를 합병시키려는 법무법인 대표 마티(시드니 폴락) 등 대충 느와르에서 볼 수 있는 얼굴들이 등장한다.

사건은 유해한 제초제로 말미암아 온 동네 사람이 입은 피해에 대한 소송에서 유노쓰의 변호를 맡은 스타 변호사 아써가 갑자기 재판도중 스트립쇼를 벌이면서 점화한다. 피해자들의 선량한 마음과 안타까운 사연을 듣는 와중에 더 이상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가 될 수 없다는 발작적인 저항이었다. 법무법인과 유노쓰는 쑥대밭이 되고 마이클 클라이튼이 아써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영화는 한바탕 반전(反轉)을 향해 질주한다.

The Firm, The Pelican Brief, The Insider 등 법정과 기업 또는 조직비리라는 소재가 스릴러라는 형식으로 엮여진 많은 영화에서 익히 봐온 구도다. 거대기업의 거대범죄에 대한 죄책감의 결여, 조직의 자기보호 본능, 성공에의 욕망, 순리로 풀기보다는 형식논리로 갈등을 푸는 매정한 시스템, 그 사이에 끼어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군상….. 이러한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이 적절한 액션과 긴장감과 버무려져 진행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며 현대사회의 분업이 낳은 비극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되었다. 아담 스미쓰 이하 모든 경제학자들이 분업으로 인한 거대한 생산력의 향상을 칭송하였고 그것은 실존하는 혜택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한편으로 분업은 현대사회에서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자신의 일에 대한 소외를 낳았다. 영화대사에서도 나오듯이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you’re doing your job)’ 그렇다고 해서 이 분업이 전체의 복지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제초제 회사는 제초제를 만들고, 법률회사는 사람들과 기업을 변호하고, 심지어 흥신소 직원은 사람까지 살해하지만 – 생활인으로서 정말 열심히들 일을 했지만 – 남은 것은 제초제로 병든 주민과 끔찍한 살인, 그리고 인간성 파괴뿐이었다.

물론 이것은 분업의 한 부작용일 뿐일지도 모른다. 영화란 원래 개연성이 적은 사례를 극화하여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극을 즐기게끔 만든 매체인 법이다. 그럼에도 오늘 날 우리네 생활에서 이렇게 자신들이 열정을 가지고 진행시킨 일들이 남들에게 득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거나, 또는 득보다 실이 큰 일이 아니라는 보장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 항상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살아야 하는 법인가보다. 음… 이거 영화보다 득도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