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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arently

이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영문을 자주 번역하게 되는데, 원래 초심자인지라 문맥이 엉뚱하게 되고 심지어는 그 본뜻까지 전달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한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 실력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리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번역문에 원문을 붙여놓는다. ‘내 발로 쓴 번역문이 믿기 어려우시면 스스로 원문을 읽으세요.’라는 못된 심보다.

각설하고 모든 단어의 번역이 어렵지만 아까 올린 ‘SNS 이용자들을 위한 팁 하나’의 인용문에 나온 apparently 도 참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다. 그 단어의 사전상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apparently
adverb
(실제는 어떻든) 보기에, 보매, 외관상으로는 (seemingly)
He is apparently a gentleman. 그는 보기에 신사인 것 같다.
분명히, 명백히 (clearly)

재미있는 게 이 단어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가 seemingly와 clearly라는 점이다. 나 같은 단순한 이가 보기에 두 단어는 반대말인 것 같은데 어떻게 그 대조적인 두 단의 뜻이 apparently에서 한데 뭉친단 말인가? 그러다보니 해석이 보통 곤란한 것이 아니다. 결국 나는 아래 문장에서 부사인 apparently를 우리말에서의 다른 부사로 대체하지 않고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남긴 것으로 보인다.”로 말이다. 영어 고수들이 보면 한마디 할 것 같아 이 자리에서 미리 변명을 하는 것이다. 🙂

Pc Rob Ward apparently put the note on Facebook on the evening of 1 April, the first day of City of London protests.
경찰관 롭 와드는 런던의 시위대들의 첫날인 4월 1일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 단어를 대하고 있자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 이글을 올리는 것이다.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12 Angry Men’이 생각난 것이다. 영화는 누가 보기에도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분명한 한 소년에 대한 재판에 관한 영화다. 열두 명의 배심원은 날도 더운데 어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집에 가려 했는데 한 배심원이 끈덕지게 사건을 물고 늘어져 결국 소년에게 무죄를 선고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쓸 수 있는 단어가 바로 apparently가 아닐까?

겉으로 드러난 정황상으로 보건데 대부분의 배심원의 눈에 살인범은 ‘명백히(clearly)’ 소년이었다. 하지만 한 날카로운 배심원은 그 겉모습에 교묘히 감춰져 있는 허점을 찾아내어 공격한다. 그럼으로써 사건은 ‘외관상으로는(seemingly)’ 명백한 사건으로 만들어버린다. 겉이 그렇지만 속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접하는 많은 현상들은 apparently로 유보하여야 할 것들이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용의자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고 그에 상응하는 법적지위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물론 요즘 우리나라 사법부 하는 짓을 보면 별로 그런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너무 사적인 감상일까?^^)) 겉과 속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인용문의 경찰관도 그 사연은 조사하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누가 그 경찰관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해킹했을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쓸데없이 말이 많았는데 어쨌든 apparently 는 apparently 재미있는 단어다.

사법부의 권위는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Old Bailey Microcosm edited.jpg
Old Bailey Microcosm edited” by Thomas Rowlandson and Augustus Pugin – Ackermann, Rudolph; Pyne, William Henry; Combe, William (1904) [1808] “Old Bailey” in The Microcosm of London: or, London in Miniature (Volume 2 ed.), London: Methuen and Company Retrieved on 9 January 2009..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최근 사법부가 내린 두 개의 재판 판결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하나는 직장내 성희롱을 사유로 해고된 직장인의 해고무효소송 승소건이다.

제시된 사례를 보면 대기업 지점장이었던 원고는 여직원에게는 수차례 전화를 걸어 “집이 비어 있는데 놀러 오라”고 하는가 하면, 다른 여직원의 귀에 뽀뽀를 하는 등 무차별적이고 노골적으로 회사내 여직원들을 성희롱하였다. 또한 그는 후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여직원들을 만나 회유하기까지 하였고 회사는 이러한 그를 해고하였다. 재판부 역시 “원고의 행위는 여직원들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인 만큼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직원은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일 정도로 원고 행위가 중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심지어 “지점장으로서 직원에 대한 애정을 표시해 직장 내 일체감과 단결심을 이끌어낸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승소 이유를 밝혔다.

여기에서 “일체감”이란 비어있는 자기 집에 여직원을 끌어들여서 일체감을 느끼려 했다는 것이고 “단결심”이란 여직원을 회유하여 자신이 해고당하지 않음으로써 직장내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인가보다. 비키니 차림의 여자 사진을 월페이퍼에 걸어두고 이를 여직원들에게 노출시켜 성적수치심을 유발시키기만 해도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직장내 성교육을 받았던 지라 이렇게 시대에 역행하는 재판부의 판결은 차라리 용감해 보이기까지 하다.

또 하나의 판결은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쏜 혐의(상해 등)로 구속 기소된 김명호(50) 전 성균관대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판결이다. 이 사건은 재판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쏜 사건으로 사건의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꽤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그런데 판사의 옷에 묻은 혈흔 등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짙어 증거가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고 하는데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그리섬 반장님 도와줘요~).

이러한 부분도 꽤나 의혹이 생기는 부분이거니와 판사가 전치3주의 부상을 입은 사건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무려 징역4년 형을 선고한 점이 놀랍다. 더 황당한 것은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재판과정에 불만을 품고 판사의 집에 찾아가 석궁으로 상처를 입힌 점과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판사들의 명예를 훼손한 점도 인정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이 판결을 보면 그의 1인 시위가 이번 판결에 괘씸죄로 작용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1인 시위는 엄연히 법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권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법부는 석궁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1인 시위에 대해 그것이 “판사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점을 판결에서 강조한 것이다.

물론 그가 그 앞에서 허위주장을 한 개연성도 있을 수 있겠으나 과연 1인 시위를 통한 자기주장이 사법적인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많은 1인 시위가 ‘명예훼손’이라는 죄목으로 단죄될 것인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이 두 판결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사법부는 자기 밥그릇에는 눈에 불을 켜고 민감한 반면,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성희롱 당한 여직원과 같은 약자에 대해서는 “단결심”과 “일체감”을 이유로 보호해주지 않는 이중적인 조직이라는 것이다.

과연 석궁사건에 대해 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사법부의 권위’가 지켜진 것일까. 진정한 사법부의 권위는 병적인 성희롱을 일삼은 파렴치범에게 소송 패소를 안겨주고, 조직폭력배을 동원하여 사적인 보복을 자행하고 이를 무마시키려고 전방위 로비를 자행하여 진정 사법부의 권위를 유린한 김승연 회장을 구속수감하여야 지켜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