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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약한 고리”가 된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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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is Tsipras Syriza” by FrangiscoDer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진작부터 예상되어온 시리자(ΣΥΡΙΖΑ)의 승리로 말미암아 유럽 경제와 정치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가십을 좋아하는 이는 그리스에서 마흔 살의 역대 최연소 총리가 탄생했다는 것을 입에 올렸고, 전 세계 좌파들은 유럽에서 “진성” 좌파 정당이 집권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투자자들은 강경주의자가 – 요즘에는 “대중영합주의자”가 더 자주 쓰이는 것 같다 – 그리스 정치를 장악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투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판알을 굴리고 있다. 제각각 반응이 틀린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예상되었던 이번 승리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유럽이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단일경제권을 형성함으로써 이전 세기의 정치적 위기를 경감시키고 미국에 대항하는 강력한 공동체를 구성할 것이라는 이상주의자들의 꿈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파탄이 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구성원들의 아슬아슬한 합의 하에 여태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단일 경제권이라는 시도가 정치적 위기를 오히려 증가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주되게 유로존이 단일통화를 쓰면서도 미국과 같은 재정동맹으로 엮인 단일 중앙권력의 연방이 아니라는, 즉 정치주권과 경제주권이 불일치하는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에서 애초에 설계부실이다.

그래서 가장 실현가능한 대답은 임시변통의 조치다. 그러나 그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치프라스가 세금 유예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리스 유권자의 신뢰를 몽땅 잃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의 위치에 대해서 약간의 개선만 얻어낸다 할지라도, 이는 다른 나라들의 반반을 불러올 것이다. [중략]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긴축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이들 국가의 유로 멤버십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좌우 진영의 대중영합주의자들이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하한의 임시조치도 기술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유럽중앙은행은 치프라스 정부가 채권자들과의 합의된 프로그램 안에 있지 않는다면 그리스 은행들에게 긴급 유동성을 부여한달지 채권을 사준달지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하한의 곤경은 그리 은행들의 뱅크런을 야기할 수 있다. 만기를 연장함으로써 이러한 몇몇 상황을 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치프라스에겐 너무 인색한 것이고 메르켈에게 있어서는 너무 후한 것이다.[Syriza’s win could lead to Grexit, but it should lead to a better future for the euro]

바로 이 사례가 미연방과 유로존이 가지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 주가 가혹한 긴축정책에 대항하여 주지사를 좌파로 뽑아 채권자들의 가혹한 상환 프로그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저항하고 이에 대해 부유한 주인 뉴욕 주에서 이행을 강요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개별 정치 주권을 가지고 있는 유로존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더불어 각 나라의 인종도 틀리고 남유럽 유권자들이 통화 통합으로 인한 무역불균형 등으로 부자 나라에게 뺏긴 것이 많다고 여기는 상황은 유로존의 공동체 정신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스페인에서 시리자와 비슷한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포데모스(Podemos)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상황은 유럽연방주의자들이 한층 더 공포심을 가질만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유럽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의 ‘약한 고리 이론’ 내지는 ‘공산주의 도미노 이론’이 전개되는 상황인 것이다. 스페인의 유력 정치세력들은 “스페인은 그리스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원인의 해법이 결국 대규모 채무와 긴축재정 프로그램으로 동일했다는 점에서는 스페인 역시 그리스고 그에 대한 정치적 저항 프로그램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주 개연성 없는 시나리오는 아닌 것이다.

그리스 국민은 그들이 지고 있는 빚이 “부도덕한 빚”이었다며 이에 대한 탕감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인용한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독일이 나머지 유럽 국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프로그램의 이행을 강요했다면서 메르켈의 후퇴를 점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의 시리자 집권은 그동안 금칙어로 설정되어 있던 채무 프로그램 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금융위기 이전의 유로존 경기부양 프로그램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면 지금의 부채상환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약한 고리를 강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유럽 상황 단상

올해는 유럽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금년에 경쟁적으로 정권이 뒤바뀌는 시기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그리스, 한국 등등.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어쨌든 경제기조도 어느 정도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두 나라가 현재 프랑스와 그리스다. 두 곳 다 “좌파”로 분류되는 정치집단이 득세했다.

이 시점에서 왜 유럽이 유로라는 화폐를 만들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하나의 유럽’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사실 정치적인 이슈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지도자들은 ‘하나의 유럽’을 꿈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연합으로 가는 과도기가 경제연합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서유럽 지도자들은 경제연합이 곧 정치연합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를르 드골 대통령의 고문이자 경제학자인 자크 뤼에프는 1950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럽은 화폐를 통해 연합하던가 아니면 아예 연합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 p46]

이러한 정치적 동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지속적으로 충돌을 빚어왔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 정도의 이슈였지만 어쨌든 그들의 동맹세력들, 그리고 유럽인이라 불리기 원하던 주변국들이 가세하면서 유로통화권이 탄생했다. 문제는 이 통화권이 재정동맹이 없는 희한한 하나의 통화권이란 점이다.

그런 모순을 가지고 출발한 통화권이었음에도 시장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신뢰도를 독일의 분데스방크 급의 신뢰도로 간주한 것이다. 1999년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는 5%였지만 2005년에는 0%로 떨어졌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에도 비슷한 기적이 일어났다.


출처
 

이런 낮은 금리의 혜택으로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활성화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고유의 제조업 기반이 미약했다는 점, 유로화의 사용으로 인해 경쟁력을 얻는 독일제품이 밀려들어왔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는 부동산의 앙등이 경제를 이끌었다.

 

이 거품은 아시다시피 미국의 신용위기와 맞물린 시점부터 터졌다. 부동산의 속락, 이를 기초자산으로 해오던 금융권의 붕괴, 그리스 등 주변국의 변칙적인 재정운용, 채무불이행의 위험, 원칙을 벗어난 금융지원, 긴축재정의 강요, 이로 인한 국가 간 갈등 등 수면 아래 있던 수많은 상처가 속속 드러났다.

그 와중에 오랜 기간 세 가문의 지배를 통한 과두정치가 온존했던 그리스에서 긴축재정을 거부하는 좌파연합 시리자가 실세로 등장했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막상 이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있다. 애써 유럽에서의 그리스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스 정치권의 강경한 입장으로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이었던 긴축재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는 거의 그리스의 유로 탈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어렵게 지켜오던 통화권의 분열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스페인 등 여타국가의 신용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제는 작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이나 프랑스는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키고 후련하게 손을 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이미 유로존의 출범과 함께 그들의 경제는 어느 정도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유럽의 은행들은 그동안 주변국들에 열심히 돈을 빌려줘 이들의 신용거품을 조성하는데 일조하였다.

유럽의 은행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을 상대로 막대한 양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시티그룹의 이코노미스트인 윌렘 뷰이터와 에브라힘 라바리는 “현재 프랑스와 독일 정부의 선택지는 그리스를 살리느냐 자국의 은행을 살리느냐이다.”라고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 p242]

그리스의 반항에 대해 강경자세를 계속 취할 경우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은행들이 부실해지게 된다. 이미 형식적인 스트레스테스트로도 그 부실이 위험수준이었던 은행들이 새로이 자산이 부실해진다면 그것은 새로운 위기의 시작을 의미하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유로화의 종말’의 저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는 독일이 유로존을 떠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책의 서문을 쓴 로버트 앨리버는 이는 독일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유로존 탈퇴는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의 탈퇴를 더 현실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식이 되었든 급진세력에게 표를 던진 그리스의 국민들에게 물러날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직장을 찾아 독일로 떠나고 있고,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고,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이나 유로존에게 더 뺏길 것도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게 일정 정도 사실이고.

참고할만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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