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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스위스의 대조적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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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2-euro” by This photo (C) Lars Aronsson – Own work. Licensed under CC SA 1.0 via Wikimedia Commons.

가상의 독일마르크에 비해 유로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사실은 독일에게 이로운 점이다. 독일의 재정적 질서 이외에도 통화 연합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등 모두 최근의 독일만큼 성공적이지는 않은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유로의 힘에 영향을 주었고, 독일의 수출업자에게는 이로운 것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출은 독일 경제의 주요 축이다. 강한 통화는 국제시장에서 생산품 가격을 높임으로써 독일 수출업자를 어렵게 할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ING의 이코노미스트 Carsten Brzeski는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정책이 더 약한 나라를 도와주는 경향이 있으며 이 정책 경향이 독일과 같은 수출국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통화는 당신 자신의 통화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언제나 절하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의 ECB의 순응적인 통화정책 덕택에 더 싸지는 단일통화로 인해 독일 경제에 250억 유로가 더해졌을 것이라고 예측했다.[How Does Euro Membership Help Germany?]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할 나라는 그리스가 아니라 독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바로 경제력이 질적으로 차이 나는 국가들이 단일통화를 쓸 경우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의 경우 통화가 비싸지고 이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독일의 경우 단일통화권에서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혁신적으로 재분배가 되지 않은 한, 독일의 경제선순환과 경제력이 약한 나라들의 경제악순환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금요일에 스위스의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2분기 200억 스위스프랑(20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금년의 좋지 않았던 첫 석 달에 연속하여 SNB의 2015년의 현재까지의 손실은 501억 스위스프랑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에 달하는데, 이는 스위스 GDP의 7.5%에 해당한다. SNB의 손실은 매우 크지만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몇 년간, 은행은 스위스프랑이 1유로에 1.2 프랑으로 2011년 9월 세팅된 환율캡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개입해왔다. 1월에 ECB가 1조1천억 유로에 달하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가동하자 SNB는 돌연 통화 페그 정책을 포기했다. 이로 인해 즉각적으로 프랑의 가치는 유로에 비해 20% 이상 상승하였다.[Switzerland’s central bank makes a massive loss]

또 하나의 수출 강국 스위스가 단일통화권에 합류하지 않아서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사다. 통화정책의 자주성은 견지하고 있지만 양적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조치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스위스는 결국 올 1월 통화 페그를 포기했고 그 대가는 매우 비쌌다. 수출업자는 경쟁력 악화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 WSJ글에 따르면 업체의 1/3 정도가 영업 손실이 예상된다고 – SNB는 5,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에 엄청난 환차손을 감내해야 했다. 다시 돌아가서 독일은 이런 혼란을 겪지 않고 싼 유로의 단물을 빨아먹고 있다.

유로존이 어떤 식으로든 수술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유럽 상황 단상

올해는 유럽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금년에 경쟁적으로 정권이 뒤바뀌는 시기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그리스, 한국 등등.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어쨌든 경제기조도 어느 정도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두 나라가 현재 프랑스와 그리스다. 두 곳 다 “좌파”로 분류되는 정치집단이 득세했다.

이 시점에서 왜 유럽이 유로라는 화폐를 만들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하나의 유럽’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사실 정치적인 이슈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지도자들은 ‘하나의 유럽’을 꿈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연합으로 가는 과도기가 경제연합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서유럽 지도자들은 경제연합이 곧 정치연합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를르 드골 대통령의 고문이자 경제학자인 자크 뤼에프는 1950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럽은 화폐를 통해 연합하던가 아니면 아예 연합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 p46]

이러한 정치적 동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지속적으로 충돌을 빚어왔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 정도의 이슈였지만 어쨌든 그들의 동맹세력들, 그리고 유럽인이라 불리기 원하던 주변국들이 가세하면서 유로통화권이 탄생했다. 문제는 이 통화권이 재정동맹이 없는 희한한 하나의 통화권이란 점이다.

그런 모순을 가지고 출발한 통화권이었음에도 시장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신뢰도를 독일의 분데스방크 급의 신뢰도로 간주한 것이다. 1999년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는 5%였지만 2005년에는 0%로 떨어졌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에도 비슷한 기적이 일어났다.


출처
 

이런 낮은 금리의 혜택으로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활성화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고유의 제조업 기반이 미약했다는 점, 유로화의 사용으로 인해 경쟁력을 얻는 독일제품이 밀려들어왔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는 부동산의 앙등이 경제를 이끌었다.

 

이 거품은 아시다시피 미국의 신용위기와 맞물린 시점부터 터졌다. 부동산의 속락, 이를 기초자산으로 해오던 금융권의 붕괴, 그리스 등 주변국의 변칙적인 재정운용, 채무불이행의 위험, 원칙을 벗어난 금융지원, 긴축재정의 강요, 이로 인한 국가 간 갈등 등 수면 아래 있던 수많은 상처가 속속 드러났다.

그 와중에 오랜 기간 세 가문의 지배를 통한 과두정치가 온존했던 그리스에서 긴축재정을 거부하는 좌파연합 시리자가 실세로 등장했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막상 이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있다. 애써 유럽에서의 그리스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스 정치권의 강경한 입장으로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이었던 긴축재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는 거의 그리스의 유로 탈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어렵게 지켜오던 통화권의 분열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스페인 등 여타국가의 신용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제는 작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이나 프랑스는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키고 후련하게 손을 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이미 유로존의 출범과 함께 그들의 경제는 어느 정도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유럽의 은행들은 그동안 주변국들에 열심히 돈을 빌려줘 이들의 신용거품을 조성하는데 일조하였다.

유럽의 은행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을 상대로 막대한 양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시티그룹의 이코노미스트인 윌렘 뷰이터와 에브라힘 라바리는 “현재 프랑스와 독일 정부의 선택지는 그리스를 살리느냐 자국의 은행을 살리느냐이다.”라고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 p242]

그리스의 반항에 대해 강경자세를 계속 취할 경우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은행들이 부실해지게 된다. 이미 형식적인 스트레스테스트로도 그 부실이 위험수준이었던 은행들이 새로이 자산이 부실해진다면 그것은 새로운 위기의 시작을 의미하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유로화의 종말’의 저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는 독일이 유로존을 떠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책의 서문을 쓴 로버트 앨리버는 이는 독일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유로존 탈퇴는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의 탈퇴를 더 현실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식이 되었든 급진세력에게 표를 던진 그리스의 국민들에게 물러날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직장을 찾아 독일로 떠나고 있고,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고,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이나 유로존에게 더 뺏길 것도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게 일정 정도 사실이고.

참고할만한 글들

Greece Can No Longer Delay Euro Zone Exit
What Happens If Greece Leaves?
Greece’s predicament: Lessons from Argentina
장하준 교수한테 듣는 유럽재정위기 세계경제위기
그리스, 벼랑 끝에 서다
그리스, 몰락과 회생 사이
Debtocracy

유로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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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 coins and banknotes” by Avij (talk · contribs) – 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요즘 ‘유로화의 종말’이란 책을 읽고 있다. 현재는 저자인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가 유로화가 탄생한 역사적 배경을 경제/정치적으로 두루 소개하면서 유로가 가지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나가는 부분을 읽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경제이론 중 하나는 로버트 먼델이란 경제학자가 초석을 다진 ‘최적 통화 지역(optimum currency area)’라는 이론이다. 최적 통화 지역이란 “ 단일통화가 통용되기에 가장 이상적인 크기의 지역”을 의미하며, 해당 이론은 특정 지역이 단일통화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조성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리 복잡한 이론은 아니며, 이 이론에 따르면 최적통화지역을 구성하기에 유리한 조건은 △각국의 경제구조가 유사해 경제적 충격이 대칭적일 것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 이동이 자유로울 것 △역내 국가들 간 경제연관성이 높을 것 △역내 각국의 산업구조가 다변화돼 있을 것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유럽이 바로 이러한 조건을 결여 – 내지는 부족 – 하고 있기 때문에, 유로라는 단일한 통화동맹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일례로 저자가 들고 있는 성공한 통화연맹은 미국의 통화연맹이다. 여러 조건 중 노동의 이동에 관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화폐통합을 이루기 전부터 자본과 노동의 높은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노동시장과 임금은 여전히 유럽통화연맹 국가들보다도 덜 엄격하다. 유로존 내에서는 0.1% 이하의 인구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영구적으로 이동하지만 미국의 주들 간에 인구 이동 비율이 2.5%에 달한다. 노동력의 유동성은 미국이 유럽의 3배나 높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년, pp 111~112]

이런 묘사는 경제학이나 고용 등에 대해 심오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즉각 와 닿는 묘사다. 한때 총칼을 겨누고 싸울 만큼 지역적인 분열도 있었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일찌감치 연방정부가 있었고 단일한 언어를 쓰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유럽보다는 더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였듯이 미국에서는 정치연맹이 통화연맹보다 수십 년 앞서서 이루어졌다. 반면 유럽의 통화연맹은 훗날 정치연맹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이렇기 때문에 노동의 이동은 다른 많은 요소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가 유럽에서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라스케바와 같은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고향에서의 나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독일로 향하고 있다. 약 25,000 명의 그리스 이민자들이 작년 독일 당국에 등록을 했는데, 이는 2010년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함부르크 이민 전문가 바실스 치아노스는 이런 수치가 독일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이민자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므로, 작년에 독일에서의 신규 그리스 이민자는 6만 명에 달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대부분이 학위가 있는 경제적 난민인데, 변호사, 엔지니어, 그리고 건축가들이다. [중략] 그러나 아파트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우리는 그리스인에게 세를 놓지 않아요.” 그녀가 종종 들은 말이다. 파라스케바는 누구라도 어떤 회원국에서든 일할 권리가 있다는 단일시장으로서의 유럽연합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재빨리 깨달았다.[Young Greeks Struggle to Gain Foothold in Berlin]

위기 전에는 이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자유로운 노동이동이 위기로 말미암아 더 증폭되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슈피겔의 기사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내의 노동이동권을 보장하고 있으니 이동이 수월할 것이라 기대는 하지 않았겠지만 파라스케바가 처한 상황은 그러한 명시적 선언이 없는 국가 간에서 국력의 차이에 따른 차별받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파라스케바와 독일인이 같은 화폐를 쓴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동질감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에 비하면 미약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화폐는 경제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개념이다.

구제금융 금지조항

더구나 유로권 국가들 사이에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상의 구제금융 금지조항(동조약 125조)이 적용되고 있다. 이 조항은 유로화에 참여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신용위기가 발생할 경우 다른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으로 회원국들이 방만한 경제 운영으로 신용위기가 발생할 경우 주변국들의 피해를 막고 당사국들도 남들의 신용에 기대는 모럴 해저드 상황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제정된 조항이다. 이와 같이 유럽연합 차원에서 개별 회원국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고 유럽중앙은행이 소규모 회원국들의 환율 불안요인을 반영한 조정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회원국들은 위기 국면에서 국채 스프레드 증가로 인해 재정 부담이 점점 더 커지며 신용등급 하락 등 악재가 추가될 경우 국가부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화의 미래, 이서원 책임연구원, LGERI 리포트, LG경제연구원, 2009년 3월 11일]

이 글을 읽고 떠오르는 것. 적벽대전. 옆 배에 불이 났는데 자기 배에 불이 옮길까봐 물을 못 뿌린다 이거지. 쇠사슬로 서로 묶여 있는데도…..

미국의 군사력이 달러를 지켜주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미국의 현 상황은 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그리고 그 증상도 얼핏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은 미국 정부와 금융당국이 당시의 일본과 달리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현재 미국은 당시 신속히 대처하지 않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일본당국과는 달리 재빠르게 금리를 인하하고 – 덕분에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로 돌입 – 은행들은 대손상각을 해대고 있어 손실을 현재화하고 있다.(주1)

그런 면에서 불황의 골이 생각하는 것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하는 이도 있다. 대표적인 이가 헨리 폴슨 주니어 재무장관일 것 같은데 그는 여전히 미국경제는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recession 이라고 할 때에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여야 하기에 아직은 그 단계가 아닌 것이라고 하는데 할 말은 없지만 그 말에 안심할 사람들도 별로 없다.

어쨌든 최근 롤러코스터 주식장세를 연출시키고 있는 미국의 속전속결 막가파식 해법들이 가능한 든든한 뒷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US달러의 무한발권력일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가지는 위력은 뭐 입 아프게 설명할 것도 없다. 미국은 돈이 없어서 경제가 안 돌아가면 다른 나라처럼 고민하지 않고 돈을 찍어대는 유일한 나라다.(주2) 예전에는 달러가 곧 금이던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 그 금환본위제를 포기한다고 선언했음에도 다른 나라는 여전히 달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에서 밀려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예측은 크게 어렵지 않다. 발권력에 제동이 걸린, 사상최대의 채무국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국가부도의 나락으로 전락할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이러한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달러가 곤두박질치고 있고 차베스가 석유수출 결제통화를 유로로 바꾸자고 주장하더라도 달러는 여전히 막강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2007년 말 현재 전 세계 외환거래의 86.3%가 달러화다. 세계 주요 국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표시 자산 비중은 2007년 9월 말 현재 64%에 달한다. 이 통계에는 중국과 산유국인 걸프만 국가들이 제외돼 있어 실제 비중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통화별 비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국제 채권시장에서 달러는 44.1%에 달했다.

마지막으로 국가 간 교역 현장에서도 달러는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결제 통화로서 달러에 대한 선호 현상은 여전하다. OPEC 회원국 가운데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반미국가들이 달러 이외의 결제수단을 채택하려 노력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친미국가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는 바로 경제대국 미국의 뒤에 안보대국 미국의 존재가 뒷받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의 기축통화 대체를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이도 있다. VOX 라는 사이트에서 Jeffrey Frankel 라는 경제학자는 그간 일본, 독일, 중동국가 등의 나라들이 미국채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군사강국으로서의 미국의 보호를 받는, 일종의 신분보장의 대가로 받아들여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주3) 그런데 부시 등장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행동 때문에 이들 채권자들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였고 그로 인해 달러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아래 그래프와 같이 10년 이후 유로가 달러를 대체하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고 있다.


물론 그의 주장이 완전히 수긍이 가지는 않지만 적어도 최강대국의 통화와 군사력이 지니는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는 면도 적지 않다. 로마가 세계 최강대국으로 권력을 휘두른 이래 그들의 군사력이 미치는 범위와 그들의 화폐가 통하는 범위는 일치하여 왔다. 한편으로 강대국은 간혹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군사력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군사행동은 경제적 세력권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전혀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최근 헤럴드트리뷴은 “Europe learns to live with almighty euro”이라는 기사에서 달러당 1.6유로가 되어버린 이 기막힌 현실에서도 유럽이 의외로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기사는 유럽 자본들이 유로 강세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에 대처하여 생산기지를 다국적 화하고 있는데다 수출시장이 러시아, 산유국 등으로 다변화되어 점점 더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떨어지고 있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현재 일각에서 주장되고 있는 디커플링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미국과 나머지 세계의 경제동조화가 정말 터무니없이 완전한 디커플링은 아닐지라도 점점 나머지 세상들이 ‘미국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정말 당연하게도 미국에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국채를 인수해주는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될 테고 그럼 자연히 달러는 20세기 초반 파운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존의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주1) 이에 반해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얼마 전에 새로운 대손충당금 운용기준을 저축은행에 올 상반기에 적용시키려 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행을 미뤘다.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부동산PF로 부실해진 저축은행 몇 개가 다치게 될 것이라는 추측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주2) 물론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가까운 상황이 되면 그도 별무소용이지만 말이다

(주3) 물론 중국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