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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이 인수한 민간투자사업을 바라보는 어떤 시각에 대해서

국회예산정책처는 27일 공공 부문이 50% 이상 출자, 사실상 지배력을 갖고 있는 민간투자사업은 사용료를 공공요금 수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통 관련 민간투자사업 중 공공 부문의 지분율이 50%가 넘는 사업은 부산울산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철도, 신분당선 정자광명복선전철, 수원광명고속도로 등 6개다. 올 초 산업은행이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된 것을 감안하면 4개로 줄어든다. [중략]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사실상 지배력을 갖고 있는 기관을 민간 부문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 부문의 출자지분이 50%가 넘으면 민간투자사업 법인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안태훈 사업평가관은 “한국도로공사 및 민간투자고속도로 사업시행자들이 모두 공공기관이라면 공공기관 소유 고속도로 통행료를 동일하게 책정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이 보고서가 앞으로 통행료 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공공지분 50% 넘는 민자시설 4곳 공공요금 수준으로 통행료 낮춰야”]

지하철 9호선으로 전국적인 이슈가 되어버린 민간투자사업에서의 공공성과 상업성에 충돌에 관한 논쟁이 또 하나의 국면에 접어든 느낌이다. 예산정책처가 이런저런 이유로 공공부문이 다수의 지분을 차지하게 된 민간투자사업에 대해 “사용료를 공공요금 수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때맞춰 어제 오늘 주요 언론들도 사설 등을 통해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예산정책처의 의견이나 주요 언론들의 논조는 공공부문이 사업시행자 지분의 다수를 인수하였으면 공공기관으로 간주할 수 있고, 그렇다면 이를테면 민간투자사업의 통행료도 한국도로공사 수준의 통행료를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공공부문의 다수 지분 획득에 따라 해당사업은 민영화되었다가(privatize) 다시 공유화된(nationalize) 것이니 요금도 낮춰야 한다는 논리다.

우선 이러한 논리에서 눈에 띄는 점은 민영화(privatization)에 대한 도식적인 해석이다. 민간투자사업의 근거법인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을 보면 분명 민간투자사업은 “공공부문외의 자”가 시행하게끔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국민연금을 위시한 연기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등 주요공공부문은 민간투자사업 시장에서 주요하게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전통적인 주식, 채권을 통한 수익창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인프라, 부동산 등 소위 대체투자 분야에서 큰 손 노릇을 해오고 있어, 유럽의 부동산 투자 전문지로부터 ‘최우수 기관투자가’ 상을 수상할 정도다. 또 한국전력과 같은 공공기관도 해외에서는 이른바 ‘독립적인 전력공급자(IPP; Independent Power Provider)’로 간주되어 해당 국가의 민간투자사업에 참여한다.

따라서 인천국제공항철도 사업과 같이 사업실적이 당초 예상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코레일이 인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민연금과 같은 시장참여행위는 엄밀하게 보아 脫민영화라 보기 어려운 행위다. 즉 민영화라는 영역에서 좀 더 확장하여 인프라스트럭처가 공공부문도 참여하는 ‘시장화(marketization)’ 혹은 ‘상업화(commercialization)’ 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타당하다.

전후 국가에 의해 공급되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던 공공서비스가 민영화, 나아가 시장화되고 상업화되는 과정은 알다시피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화 경향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호불호를 떠나 현 상황을 놓고 보면 이 경향에 참여한 연기금이 공공부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운영 중인 시설의 사용료를 공공요금 수준으로 내리라는 지적이 타당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민간투자사업 시장을 주식시장에 비유해보자면 초기의 사업시행자가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을 개시하는 행위는 주식시장의 발행시장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 주식이 회사의 건실한 운영으로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어 투자자들이 매입하는 것은 유통시장이다. 국민연금은 이러한 유통시장에서 그들이 보기에 유망한 사업들을 매수한 것이다. 마치 맥쿼리가 그런 것처럼.

이들의 손에는 정부가 요금의 일정수준을 보장해주겠다는 실시협약이 있고, 은행에게 금리를 지불하겠다는 대출약정이 있고, 국민연금 수령자에게 얼마를 주겠다는 약정수익률이 있을 것이다. 액면으로는 “공공부문”이지만 이들에게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하게 국민연금의 혜택을 의심하고 있는 연금수령 예정자들이 있다. 민간기업과 다를 바 없는 투자자들이다.

왜 민간투자사업의 사용료가 공공사업의 그것보다 높은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공공사업의 건설비용이 사용료 수준에 전가되는 경우가 적지만 민간투자사업은 비용이 사용료 수준에 그대로 전가되는 독립채산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그런 사업에 투자했으면 목표수익률 달성을 위해 이전 사업시행자가 취하던 행동 패턴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 예산정책처의 사업평가관의 의견대로 “한국도로공사 및 민간투자고속도로 사업시행자들이 모두 공공기관이라면 고속도로 통행료를 동일하게 책정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 국민연금의 고속도로의 건설비용도 도로공사의 그것처럼 별도의 예산으로 집행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수익률의 조정을 통해서 방법을 모색한다면 그건 연금수령자들의 손실을 의미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 역시 국민연금이 인수한 고속도로 케이스를 두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이미 국민연금이 공공서비스의 시장화 경향에 참여한 상황에서, 해당 도로의 요금수준을 낮추는 것과 국민연금의 수익을 확보하는 것 중에 어느 상황이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바 있다. 이제 그 질문이 공론화되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