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스마트한 녀석의 스마트폰 사용기

사실은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을 기다려왔다기보다는 아이폰을 기다려왔다. 아이팟 클래식을 몇 년여를 애용해온 사용자로서 – 애플빠는 결코 아니지만 – 아이팟의 그 혁신과 유려한 미니멀리즘적인 디자인 등에 매료된 1人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다만 아이팟과 전화기를 합친 여하한의 기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이폰이 나오기 불과 몇 십일 전, 난데없이 아이폰이 아닌 노키아를 샀다는 사실은 아직도 나 스스로도 의아한 일이다.

역사적 임무를 마친 내 아이팟

여하튼 노키아 5800 익스프레스뮤직을 선택했다. 아이폰을 기다리다 최종 골문 앞에서 넘어진 것일 수도 있고, 영화 매트릭스에서 본 후 잠시 매료되었던 노키아라는 브랜드 선호가 내 뇌 속에 잠복해 있다가 튀어나온 것일 수도 있고, 익스프레스뮤직이라는 별명에 매혹되어서 일수도 있고, 가격이 싸서 싼 맛에 산 것일 수도 있다. 어느 한 이유일 수도, 모든 것이 이유일 수도 있다. 여하튼 샀다.

이 녀석 입니다.. 포샵질이 좀 있어 보이는..

각설하고.. 스마트폰을 다른 일반 휴대전화기와 가장 크게 구별 짓는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용 프로그램들의 개방성이 아닐까 싶다. 즉 기존의 휴대폰이 아무리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기능들은 어디까지나 전화기 제작회사가, 또는 통신회사가 제공한 기능들이다. 반면 스마트폰은 – 역시 회사가 제공한 기본기능이 있지만 – PC나 노트북에서와 같이 사용자가 프로그램과 기능을 자유로이 개인화시킬 수 있는 개방성이 있다.

노키아 5800 익스프레스뮤직은 현재 스마트폰 OS 점유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심비안(Symbian)’을 채택하고 있는 ‘풀터치폰(Full touch phone)’이다. 점유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 성능이 가장 뛰어나다는 방증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시장의 검증은 거쳤다는 것과 그 OS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 스마트폰에선 어플리케이션이라 하더군요 – 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키아가 그렇다. 안정성과 개방성이 뛰어난 셈이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있어서는 문외한이고 스마트폰 역시 처음 써보는지라 그 운영체제의 상대적인 우수성에 대해 – 안 스마트한 내가 – 감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적어도 속도 면에서나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불만은 없다. 소위 말하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뛰어나다는 느낌이다. 오비스토어(Ovi store)라는 노키아의 자체 플랫폼뿐만 아니라 많은 웹사이트에서 노키아에서 쓸 수 있는 어플을 제공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이 무료다.

사용하고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대충만 꼽아보자면 Google Maps(지도), AccuWheather(날씨), Spb TV(세계 각국의 TV프로그램 시청), Gravity(트위터), Paint Pad(그림그리기), Checkers(게임), Mail for Exchange(이메일/캘린더 동기화), Spam Killer(스팸 거르기), Treasure Island(소설) 등이 있다. 이 기능들은 다른 스마트폰에서 쓸 수 있는 것도 있고 심비안 체제 고유의 어플도 있다. 여하튼 내 폰은 이제 폰 그 이상의 것이다.

깔아 놓은 어플 정리한 폴더.. 뒤에 고냥이 테마

즉 나는 이제 전화기로 전화를 한다는 당연한 사용법을 떠나, 지도로 길을 찾고, 날씨를 확인하고, 세계의 TV를 시청하고, 트위터로 친구들과 떠들고,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하고, 사진을 찍어 플리커에 올리고, 일정을 확인하고, 소설을 읽고, 거기에다 익스프레스뮤직의 가장 매력적인 기능 중 하나인 음악기능을 통해 양질의 음악을 감상한다. 음성통화로만 세상과 소통하던 것에서 이제 오감으로 원거리의 세상과 소통하는 기계가 된 것이다.

사회주의 미래사회를 그린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의 공상과학 소설(1888년 초판 발행) ‘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Looking Backward:2000-1887)’를 보면 Telephone을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 즉 전화기가 아니라 일종의 텔레비전의 의미로 쓰고 있다. 어쩌면 스마트폰에서의 그 ‘폰’은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전화기가 아닌 벨러미가 이야기한 의미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직접 찍은 일본의 도야호수로 꾸며본 첫 화면.

단점도 있다. 온라인이 일반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연결되고자 하는(connected) 욕망’에 중독되어 있다. 나 역시 하루라도 인터넷을 하지 않는 날을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트위터에 ‘아이폰, 온라인 연장의 꿈’이라고 낙서했던 일도 있지만 스마트폰이 이러한 욕망에 더욱 중독되게 한다는 점은 문제다. 화장실에서의 트윗질은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온라인 접속은 줄일 필요가 있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굳이 스마트폰으로 ‘걸어가면서 타이핑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그렇게 하고 있다. CF에서는 이 모습이 아주 로맨틱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길가는 다른 이가 보기에는 ‘저 뭔 뻘짓이냐’라는 소리가 나올 법 하다. 우리는 생각만큼 그렇게 실시간으로 세상과 소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역시 인터넷 사정이 원활하지 못한 곳에서 스마트폰은 그 다져놓은 실력을 발휘하겠지만 앞에 PC두고 스마트폰으로 이메일 확인할 필요는 없다.

단점을 이야기했지만 역시 장점이 훨씬 많은 것이 스마트폰이다. 그 장점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스마트폰의 장점이다. 구글에서 최근 음성검색 기능을 제공한다 하고 이것이 또 스마트폰과 결합되었을 때에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어떤 현장에서의 기민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역사에 남을 뉴스를 보도할 수도 있다. 우리가 세상을 연결해왔던 지점(node)가 점점 더 조밀해지면서 순간이 영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노키아로 사진찍어 플리커에 올린 모습

정작 노키아에 대해선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스마트폰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만 중언부언한 느낌인데, 여하튼 감히 말하자면 노키아 5800 익스프레스뮤직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도는 A 이상이다. 디자인, 그립감, 인터페이스, 속도, 음질, 어플 등에 있어 ‘과연 이 가격으로 이런 성능의 기계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형편없는 국내 인지도가 오히려 사용자에게는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시장을 장악하는 킬러앱(Killer app)은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장난감임에는 틀림없다.

12 thoughts on “안 스마트한 녀석의 스마트폰 사용기

  1. charmless

    저는 아이폰을 샀습니다. 구입한지 4년 가까이 된 전화기가 숨을 깔딱깔딱 하기에 이왕 바꿀거면 아이팟 + 폰을 사겠다고 마음먹고 무수한 떡밥들에 낚여가며 기다렸죠. 아이폰을 사면 생활이 바뀐다는 말이 있던데 저야말로 스마트와는 거리가 멀고 바뀔만한 생활도 없는지라 삶이 윤택해졌다 이런 건 없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소수의 앱들 외에는 건들지 않고 있지만 많은 게 올인원 되어있으니 잘만쓰면 아주 유용한 기기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겠죠. 심심함은 많이 덜었어요. 일하다 쉬는 틈에 푸그님 블로그에도 자주 들어옵니다.

    Reply
    1. foog

      기계 하나덕분에 “삶이 윤택해졌다” 이런건 광고에서나 나오는거죠. 심심하지 않으면 그걸로 된거죠. 그나저나 이 foog.com 은 아이폰 전용 웹UI가 있다더만 노키아용은 없네요~

      Reply
  2. BoBo

    저도 처음쓰는 스마트폰인 5800에 아주 만족해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제 아이들은 게임기로 좋아라 쓰고 있고요.
    5800, A+ 주고 싶습니다.

    Reply
    1. foog

      처음 스마트폰 쓰는 이들에게 매우 좋은 폰인것 같습니다. 인터페이스가 참 쉽지요~

      Reply
  3. newrun90

    급 땡기는데요. 푸그님처럼 스마트폰도 스마트폰이지만 매트릭스 때문에 노키아가 그전부터 땡겼습니다. 저한테 아주 큰 떡밥을 던져 주셨네요.

    Reply
  4. 엔디

    아이폰과 이 녀석을 저울질 중인데… 사실 업무용으로도 써야 하는 터라…
    푸시메일이나 (문자나 메일) 타자 같은 건 어떠나요?
    hwp 뷰어 같은 프로그램은… 역시 없겠죠? ㅜ.ㅜ

    Reply
    1. foog

      전 사실 이멜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 그럭저럭 넘어가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이멜 같습니다. 우선 한글제목이 특정 사용자에게 오는 것은 깨지더군요. 노키아 카페에선 이 문제를 거론하는 이가 없는 것을 보면 저만의 문제같기도 하지만 아직 시급성을 못 느껴서 관심두고 있지 않습니다. 푸쉬메일 기능은 자체적으로는 없습니다. 다만 Mail for Exchange라는 어플을 깔아서 실시간으로 풀(당겨서) 메일을 받아볼 수 있는데 실시간으로 확인하려면 옵션을 always로 해놓아야 하고 그 유지비용(무선인터넷)도 만만치 않을 듯 싶네요. 아이폰은 잘 모르겠고 블랙베리는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푸쉬메일 기능을 제공하면서 별도로 정액 1만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자는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 차이가 날 것 같은데 전체쿼티자판으로 해놓으면 크게 불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hwp뷰어는 찾아보진 않았지만 국내 개발자가 개발해놓지 않은 이상은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

      Reply
  5. astraea

    오오오,,foog님도 5800 이시군요!!!
    저도 5800 노리고 있는데..
    번이 가격이 대폭 오르면서oTL
    안 그래도 01x 번호 버려야하는게 슬퍼서 미루고 있었던거지만..아흑….

    Reply
    1. foog

      번호때문에 옮기지 못하시는 분들도 꽤 되더군요. 전 그 번호를 써본 적이 없는지라 잘 모르겠어요. 🙂

      Reply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