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제거 시도’에 대한 투쟁

자본가는 노동일을 될수록 연장해서 가능하다면 1노동일을 2노동일로 만들려고 할 때, 그는 구매자로서의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판매된 이 상품의 특수한 성질은 구매자에 의한 이 상품의 소비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노동자가 노동일을 일정한 표준적인 길이로 제한하려고 할 때 그는 판매자로서의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하나의 이율배반이 일어나고 있다. 즉, 쌍방이 모두 동등하게 상품교환의 법칙에 의해 보증되고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등한 권리와 권리가 서로 맞서 있을 때에는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하면 총자본(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자본론 I상, Karl Marx 저,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1994년, p296]

자본론에서 처음으로 “투쟁”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구절이다. 결기가 차고 넘치는 “불온서적”치고는 꽤 늦게 투쟁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는 느낌이다. 여기서 투쟁이라는 표현은 바로 냉철한 상품교환 시장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거래하는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을 의미한다. 시장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갈등은 통상 거래가격에 대한 갈등일 것이다. 이러한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보통의 거래는 상품의 양도 시점과 가격의 지불 시점을 일치시킨다. 그런데 어떤 상품은 – 대표적으로 노동력 – 이 양자 간의 시점이 일치하지 않아1 갈등을 초래한다. 또는 시점이 일치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상품의 가격이 과대추정 혹은 과소추정되어 갈등을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판매자인 노동자계급에 의해 그 가격이 과소추정되었다는 주장에 따라 노동시간의 단축 등의 투쟁을 촉발하였던 것이다.

결국, 노동자계급은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노동력을 시장에서 제값을 받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과 유급휴가의 확보라는 결실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역사적 재평가에 급제동을 걸고 있는 조류가 새로 등장하고 있으니, 그것은 플랫폼 경제를 통한 노동자계급의 해체다. 이 조류는 자유로운 노동력의 소유자인 노동자를 플랫폼에 예속시켜 마치 봉건시대의 농노처럼 플랫폼의 농노로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리스 맑스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의 주장이다.2 노동시간은 노동자 각각의 특성에 따른 저마다의 노동시간이 아닌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으로서만이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3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균일한 노동력의 보유자인 조직 노동의 투쟁을 통해서 보다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자본이 택한 전략은 이 노동자성의 해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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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rel=”nofollow” class=”external text” href=”https://www.flickr.com/people/37818606@N00″>Franklin Heijnen</a> – <a rel=”nofollow” class=”external text” href=”https://www.flickr.com/photos/franklinheijnen/29759890963/”>DSCF2049.jpg</a>, CC BY-SA 2.0, Link

이미 서구국가에서의 제조업의 쇠퇴로 인해 이전과 같은 노동조직은 약화되어왔다. 그런 한편으로 우버와 같은 플랫폼 경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제거시켰다. 즉, 노동력의 구매자인 자본가는 노동력의 판매자인 노동자에게 ‘너는 더 이상 나에게 노동력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운행 서비스와 같은 용역을 파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운행 서비스라는 사용가치를 창조해내는 노동력이라는 교환가치를 보유한 노동자로부터 기적처럼 노동자성을 삭제함으로써 노동자를 개인사업자(혹은 자신의 자동차를 생산수단으로 하는 자본가)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에 각국 사법체계가 어느 정도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성과도 얻어내고 있으나 아직도 자본은 아직 조직적 행동 역량이 떨어지는 배달 노동자와 같은 이들에게 노동시간이 아닌 업무성과라는 기만적인 노동관행을4 강요함으로써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을 피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정 지부장에 따르면 쿠팡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배송현황 애플리케이션은 휴게시간에도 접속할 수 있어 정규직 전환을 위해 쉬는 시간에도 배송을 계속하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상대평가를 하는 터라 노동자끼리 배송물량 경쟁을 부추긴다. 또 최근 사측이 인센티브 정책을 변경하면서 그 기준을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일하는 일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정규직도, 계약직도] 쿠팡 노동자 2명 또 쓰러졌다, 매일노동뉴스, 2021년 3월 9일]

쿠팡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대다수를 일용직으로 채용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쿠펀치라는 어플을 통해 매일 일용직을 ‘선별’ 채용하는 것이다. 쿠팡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상시직을 제안하고 있다고 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을 제안한다. 3개월·9개월·12개월 쪼개기 계약을 하고, 이렇게 2년을 다 채운 노동자 중에서 극히 일부만 ‘선별적으로’ 무기계약직을 시켜 준다.[쿠팡의 쪼개기 계약, 노조탄압 수단되나, 매일노동뉴스, 2021년 6월 10일]

사업자등록을 한 적도 없고 사업한다고 표방하지도 않았지만 배민·쿠팡·네이버 같은 플랫폼사업자가 미리 세금을 떼고 인적용역 사업자로 보고해 졸지에 ‘사업자’가 된 그들은 자신이 왜 사업자인지, 수입 대비 소득률은 왜 전문직보다 높은지 의아해한다. 플랫폼경제가 커지고 플랫폼노동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무시로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만 정부와 국회는 문제의식도 고민도 없다.[고삐 필요한 ‘플랫폼경제’, 경향신문, 2021년 6월 10일]

이 기사들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기술문명이 이루어낸 새로운 업적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노동자성 제거, 극한경쟁을 통한 24시간이라는 제한된 노동시간 내에서의 노동력 쥐어짜기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조직화되고 집단화된 노동이 ‘9시 출근 5시 퇴근’이라는 집단적 행동을 통해 얻어낸 노동시간의 집단적 통제를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인센티브 (혹은 패널티) 제공이라는 제도를 통해 노동자들의 자발적(?) 노동을 추출해내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기술 봉건주의”가 다소 과한 표현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봉건제의 농노가 토지에 예속되어 있던 것처럼 오늘날의 플랫폼 노동자는 애플리케이션에 예속되어 있는 노예일지도 모른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시장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거래했던 자본주의의 거래방식이 새로운 질적 국면에 접어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시대를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지금 투쟁을 촉발할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이제 투쟁은 노동일에 대한 투쟁과 함께, 노동자성 제거 시도에 대한 투쟁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1. 노동력은 판매자가 노동력을 행사한 이후에 이에 대한 대가를 받는 후불제다
  2. 물론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은 봉건제의 농노가 그랬듯이 자기 자신의 경작지에서의 필요노동과 영주의 농장에서의 잉여노동처럼 노동이 분리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는.
  3. 같은 책, 240쪽
  4. “이 노동일은 보통의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 아니라 1일분의 평균생산물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일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런데 그 1일분의 평균생산물이란 것이 교활하게도 어떤 힘센 장사라도 24시간 안에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그러한 양이었다.”<자본론 I상, Karl Marx 저,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1994년, pp300~301> 봉건제 하에서의 부역노동법전에 대한 맑스의 설명인데, 자연적인 노동시간을 노동의 성과물로 둔갑시킨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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