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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예측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2004년 12월 달러가 최저점을 기록했을 때를 들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주간지로 꼽히는 <이코노미스트>의 표지 기사 제목은 ‘달러의 실종’이었다. 얼마 뒤 <뉴스위크>는 ‘믿을 수 없는 달러화 위축’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워렌 버핏이 막대한 규모의 달러화 공매도를 한 것을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썼으며, 또 다른 유명한 투자가는 달러화 공매도가 소위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고 했다. [중략] 사실 나도 이 광풍에 휩쓸려서 달러화 공매도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던가. 달러는 그 광풍이 한창이던 때에 최저점을 기록한 뒤 곧바로 반등을 시작해서 달러 지수를 거의 10% 이상 끌어올렸다. [중략] 2005년 늦봄에도 언론은 새로운 광풍을 일으켰다. 주택 가격의 거품이 꺼지면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부동산 활황은 새로운 골드러시이며 거대한 거품이기 때문에 재앙이 임박했다는 경고가 쏟아졌다. 늘 믿을 만하던 매체라 생각했던 <비즈니스위크>의 2005년 4월 11일자 특집 제목은 ‘주택 호황 이후를 생각한다 : 곧 다가올 경기 후퇴는 경제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까?’였다. <포춘>, <워스>, <이코노미스트> 그리고 <뉴욕타임스> 모두 이 합창에 목청을 높였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투자전쟁(원제 : Hedgehogging), 바턴 빅스 지음, 이경식 옮김, Human & Books, 2006년, pp245~246]

부유한 은행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후, 모건스탠리와 헤지펀드에서 활약한 뛰어난 투자가 바턴 빅스의 투자일지 ‘투자전쟁’의 일부다. 이 글은 ‘시장이 극단으로 달릴 때 개미 군단은 늘 잘못된 선택을 한다’라는 작은 절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읽어보면 익히 알겠지만 빅스는 경제지나 전문가들마저 추세예측에 실패한다는 것을 달러화와 부동산 활황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고 말았으니 이번에는 <비즈니스위크>가 맞았고 빅스가 바로 스스로 지적한 “잘못된 선택을 한 개미 군단”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책을 읽어보면 빅스는 철저한 가치투자자이다. ‘가치투자자’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경제를 거시적인 측면에서 분석하여 향후 예측되는 추세에 따라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행태를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주1) 실제로 ‘투자전쟁’의 다른 부분을 보면 빅스가 전체 경제상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원유가격 공매도에 나선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양반이 불과 몇 달 후를 내다보지 못하고 부동산 활황을 경고한 언론은 비웃었다.

나는 이 글에서 빅스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경제예측이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위기가 몰아닥쳤을 때 대부분은 달러의 폭락을 예측했다. 하지만 달러는 보란 듯이 강세로 – 최소한 보합세로 – 돌아섰다. 이에 대한 사후분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려울수록 달러’라는 신화가 재연된 것이다. 마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한 1970년대 달러가 더 강고한 기축통화가 되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경제예측은 힘들까?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모든 계(界)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계이기 때문이다. 주요변수들은 존재하지만 그밖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때로 하찮은 변수라 여겨졌던 것들이 주요변수로 수시로 급변하기도 한다. 심지어 사후적인 분석조차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경제관은 늘 좌우로 갈라지며 각각의 입장에 대한 백가지 변명이 존재한다.

또 하나 이유를 들자면 그 예측 자체가 또 하나의 변수가 된다는 사실이다. 실로 경제는 여타 분야와 달리 예측을 하는 그 자신이 그 시스템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변수가 되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가장 잘 먹히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개개 경제주체들이 실상은 멀쩡한데도 어느 한 은행이 망할 것이라는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그 은행의 예금을 인출한다면? 정말 망한다. 이것이 bank run이다.

그래도 경제예측은 해야 한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예측을 하지 않으면 정부와 기업들은 경제정책을 수립할 수도 없고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는 구조다. 그런데 또 그 예측에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편견이 개입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둘러싸고 정치사회적 반목을 일으키고, 어떤 이는 횡재를 얻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쪽박을 차기도 한다. 이것이 시장에서의 경제예측 및 계획의 근본한계다. 완벽한 예측과 계획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그에 접근해갈 뿐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가 자신은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면 그는 ‘완벽하게’ 사기꾼이다.(무슨 ‘주가大예측’ 이런 문구 들어가면 100% 사기라 할 수 있다)

 

(주1) 그래서 이들은 기술적 투자, 모멘텀 투자를 혐오한다고 알려져 있다

민간투자사업에 관한 오해(?) 하나[보론]

이 글은 지난번 지하철9호선 민간투자사업의 수익구조에 관한 글에 대해 새사연의 이수연 연구원님께서 해주신 질문에 대한 답변 및 보론이다.

세후실질수익률 8.9퍼센트는 예상운영수입의 100퍼센트를 달성할 때 얻을 수 있는 ‘목표’ 수익률일 뿐이지, 실제로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신 거죠? 실제 보장해주는 건 수익률이 아니라 예상운영수입의 90퍼센트, 80퍼센트,70퍼센트인거구요. 사업자 입장에서도 수입에 집착하기보다는 수익률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게 적절하다는 거구요.[원문]

이에 대해서는 아래 표를 참고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지하철9호선의 예상운영수입이 매년 일정하다고 가정할 경우 운영수입과 수익률의 상관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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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민간사업자가 주무관청과 체결하는 실시협약 상의 약정수익률 8.9%는 실제운영수입이 예상운영수입의 100%일 경우 달성 가능한 수익률이다. 주무관청이 예상운영수입의 100%를 보장해주지 않는 한 – 즉 부족분을 지원해주지 않는 한 – 민간사업자는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 예를 들면 광고나 유치 이벤트 – 예상운영수입이 달성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런데 예전에 – 약 2005년 전까지 – 체결된 민간투자사업의 실시협약은 사업자유치를 위해 주무관청에서 예상운영수입의 일정비율을 지원해줬다.(주1) 본 사업의 경우 5년 단위로 끊어 90%, 80%, 70%를 보장해준다 한다. 만약 실제운영수입이 각 기간 보장범위에 미달할 경우 민간사업자의 운영수입은 정부의 보장범위에서 고정된다. 이 경우 내가 간략 계산한 바로는 수익률이 5.7%선이다.

만약 내가 해당사업의 사업자라면 둘 중 어느 대안을 택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수 있다. 당연히 원칙적으로 수요 및 예상운영수입을 적정하게 예측하여 8.9% 또는 그 이상의 운영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괜히 예상운영수입을 과다계상하면 정부보장 범위가 한정된 상황에서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인천공항철도로 대표되는 많은 민간투자사업이 수요예측에서 실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요 비판론자들은 <사업자의 예상수요 뻥튀기 -> 운영수입 보장 -> 수익률 챙기기>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일면 타당한 면도 있지만 현실은 단순히 사업자의 부도덕으로만 몰아붙이기에는 복잡한 사정도 있다.

가장 큰 문제 하나만 지적하자면 사회간접자본시설의 수요예측 자체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수의 선진국이 사회간접자본, 특히 교통시설의 수요예측에 실패하여 사업운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심지어 사업을 접는 경우도 많다. 국가발주사업으로 진행한 양양공항은 민간사업자가 주도하지 않았음에도 수요예측에 실패하여 부실운영으로 이어지고 있다.(주2)

요컨대 대단위 사업에 있어 수요예측, 넓게 보아 계획의 실패는 민간투자사업이냐 정부발주사업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계획입안 단계에서의 정밀성과 객관성의 담보의 문제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민간투자사업의 수요예측 주체는 민간이니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대개 주무관청이 요구하는 수요에 민간사업자가 미세조율을 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그리고 주무관청은 사실 지을 때 크게 짓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때깔이 나니까.

어떻게 보면 바로 이 지점이 좌우를 막론하고 공간의 객관화를 통해 공공의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근대합리주의의 위험성이 발현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주1) 이를 최소운영수입보장(minimum revenue guarantee) 혹은 shadow toll 이라 부른다.

(주2) 그리고 사실 많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온 최소운영수입보장은 이러한 시장리스크를 민간사업자가 주무관청과 나눠서 부담한 것이랄 수 있다.

박정희式 경제개발계획의 기원에 대하여

얼마 전에 이에 관해서 좋은 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것이 좋은 계기가 되어 최근 이에 관해 이런저런 서적을 다시 뒤져보고 있다. 여하튼 오늘 구독하는 경제관련 뉴스레터를 읽다보니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글이 눈에 띄어 여기에 몇 자 옮겨 둔다.

그러나 1961년 군사혁명으로 사정은 급변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빈곤퇴치를 혁명공약으로 내세우고 자본주의를 지도이념으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을 수립했다. 5개년계획 수립은 당시 최고회의 자문위원이던 서울대 박희범 교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강의 기적, 바탕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 김적교 한양대 명예교수]

이에 관해 박정희 정권에서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 등을 역임한 김정렴씨는 그의 회고록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朴교수의 참여설이 기사화된 후 신문에는 産業開發公社 아이디어는 국가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며 이는 민주자본주의가 아니라는 모략적 낭설이 일부 유포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낭설은 朴교수가 서울大商大에서 後進國開發論을 강의할 때 제2차대전 후 독립하면서 사회주의型 사회건설을 표방한 印度의 의회가 1956년 公共事業과 重化學工業 등 중요산업의 國有國營과 모든 기업에 대한 ‘産業免許制度’의 전면적 실시를 주요골자로 하는 ‘産業定策決議’를 채택하고 1956년에 시작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부터 실천에 들어간 것을 호의적으로 소개논평한 바 있었기 때문에 생긴 오해로 짐작되었다.[김정렴, 한국경제정책30년사, p93, 중앙일보사]

김정렴씨의 같은 책에 보면 박희범 교수는 실제로 박정희 정권의 통화개혁 등에도 – 비록 김정렴씨에 따르면 박교수의 안이 채택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 깊이 관여하는 등 새로운 정부의 경제정책에 여러모로 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 자연인의 사상적 선호가 전체 정부의 경제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김정렴씨도 – 체재 내 인사인 한계도 있겠으나 – 박정희 정권의 산업개발공사 등 경제에 관한 구상이 국가자본주의 사고방식이 오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러함에도 막 탄생한 정권의 경제정책에 깊이 관여한 이의 가치관이 어떠한 가를 살펴보는 것도 그 정권의 사상적 기조를 파악하는 데 나름 의의가 있을 것 같아 여기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