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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노동의 시대

초단시간 노동자는 ‘4주 동안을 평균해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를 일컫는다. ’15시간’은 많은 것을 구별 짓고 차별한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수당 뿐만 아니라 퇴직금·연차휴가·4대보험을 누리지 못한다(4대 보험의 경우 산재보험을 제외하고는 의무가입 대상이 아님). 또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기간 제한 규정 역시 적용되지 않는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초단시간 노동이 급격히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130.2만 명이었던 초단시간 노동자는 2021년 151.2만 명으로 늘었다. 2002년 3월에는 그 수가 164.7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초단기간 노동의 증가는 코로나19시기의 예외적인 현상은 아니다. 2009년 초단시간 노동자 수는 71.5만 명이었다. 그 뒤, 꾸준히 우상향하여 10년 동안 80%가 넘게 증가했다.[’15시간’을 경계로 나뉜 노동자,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 참여사회 Vol. 297(2022.7-8), p9]

인용문의 필자는 초단기간 노동자 수의 증가 원인을 ▲정부의 노인 공공일자리 사업 ▲민간 사회서비스업에서의 초단시간 노동 만연 ▲플랫폼노동·특수고용·프리랜서의 증가 ▲방과후행정사·예술강사 등 교육 부문의 초단시간 노동 증가 등을 들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성격을 띤 첫 번째 원인을 제외하고는 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맞물린 구조적인 원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에서의 쪼개기 노동 고용 경향이 자의든 타의든 초단시간 노동의 증가세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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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panexperternaOwn work, CC BY-SA 3.0, Link

이런 쪼개기 노동의 결과는 인용문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노동조건의 후퇴로 이어진다. 각종 노동법의 보호에서도 제외될뿐더러 임금 역시 노동재생산의 수단으로서 형편없이 부족한 금액일 것이 뻔하다. 매스미디어는 이러한 초단시간 노동을 ‘알바’라는 표현을 써서 여가 활용형 노동인 듯한 선입견을 심어주지만, 대다수는 – 심지어 그러한 여가 활용형 노동일지라도 – 주어진 노동 조건 아래에서 주어진 시스템의 수용자에 가깝다. 그리고 자본 친화적 기술 발전은 이러한 경향을 더 부추길 것이다.

한 지방 레스토랑 사장은 [중략] 노동 비용이 매일의 매출의 21%를 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합계의 반절 정도는 고객응대업무 담당에게 쓰이고 있고, 반절은 후방에 쓰이고 있다. 매 30분마다 사장과 매니저들은 최신 합계를 담은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검토한다. “오후 3시에 임금 비율이 21%를 넘을 수는 없어요. 또는 (하루가 끝날 무렵) 21% 밑으로 떨어질 것 같지도 않고요.” 사장은 할리록에게 말했다. “그 시점에서 매니저들은 몇몇 친구들에게 집에 가라고 요청할 것을 알아요.”[The Flextime Blues]

튀김 솥 6개를 돌려서 1시간에 치킨을 50마리까지 튀겨냅니다. 로봇 임대료는 월 110만 원. 적잖은 돈이지만 인건비는 많이 오르고 사람들이 뜨거운 기름 앞에 서 있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서 로봇을 대안으로 택했다는 것입니다. [중략] 이 분식집도 로봇이 떡볶이를 만듭니다. 밥솥처럼 생긴 통에 떡과 양념, 물을 넣으면 로봇이 통을 돌려서 요리합니다. 그릇에 옮겨 담고 알아서 설거지까지 합니다. 보통 100㎡ 매장이면 적어도 직원 2~3명이 있어야 하지만, 이 매장에는 직원이 1명뿐입니다.[닭 튀기고 커피 내리는 로봇..자동화에 일자리는 어쩌나]

이미 기술 발전 및 플랫폼 경제의 도래에 의한 노동의 파편화는 우버와 같은 새로운 기업의 등장으로 익히 보아왔지만, 인용문에서도 보듯 기존의 서비스업 분야, 심지어는 종래에는 제조업 분야에서도 자본은 기술 발전의 도움을 받아 노동 쪼개기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의 원인은 다시 요약하자면 ▲무인화·플랫폼 경제 등 친자본 지향의 기술의 발전 ▲최저임금 상승 등 비용 증가에 대한 대처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한 신규 노동력 부족 등의 원인이 있다.

결국 향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본은 이러한 제약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합법적·탈합법적 시도를 통해 노동자의 非노동자화, 쪼개기 노동 등 기존의 노동조건 해체를 계속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노동 친화적인 정부라면 내수 시장의 지탱을 위해서라도 노동조건의 개선에, 상대적으로 자본 친화적인 정부라면 자본의 그러한 시도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이다. 우리의 새 정부는 지금 후자 쪽으로 가려는 기미가 역력하다. 일회용 식품, 일회용 패션처럼 일회용 노동이 만연하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국제자본주의인터내셔널은 테크자이언트를 길들일 수 있을까?

G7 국가들이 이번 주 콘월의 정상회담에서 서명할 협정은 두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첫째, 여러 나라에서 영업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이 어디에서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든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국가에서 어떤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벌지라도 그들은 그곳에서 매우 적은 세금만을 내곤 했다. 이것은 그들이 더 낮은 세율로 더 많은 이윤을 취하는 곳에 본사를 두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G7 협정에 따라 매출 대비 10%의 이윤을 취하는 어떤 나라 정부라도 이들 기업에게 과세할 수 있게 된다. [중략] 협정의 두 번째 부문은 15%의 국제적 최저 법인세율이다. 이것의 목적은 각국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율을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중략] 아일랜드는 작은 나라들의 사정을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EU의 멤버이고 협정의 구속을 받는다.[G7 tax deal: What is it and are Amazon and Facebook included?]

영국의 한 해변 마을에서 G7 회담이 열리고 있다. 그 와중에 G7 회의석상에서는 미증유의 세금 “혁명”이 진행 중인데 팬데믹 와중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초대를 받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인지, 우리 매스미디어의 관련 소식은 코로나19 관련이나 문 대통령의 동향에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특별히 세금 협정의 의미에 무관심하거나 또는 그 의의를 싫어하는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1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이 뉴스가 특히 반가운 소식인 것이 몇 년 전에 이 블로그에 ‘전 세계에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라는 부질없는 희망사항을 끼적거린 적이 있는데, 이제 그것이 현실에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중략]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주요 국가들이 단일세율로 자본유치에 대해 일종의 공정경쟁을 선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쿄토 의정서에서 CO2 감축을 위해 의무감축량을 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또 이래놓고 미국이 빠져나가면 우스운 꼴이 되겠지만 말이다.[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이번 협정이 각국의 세법에 적용이 된다는 그동안 각국 세무당국을 조롱하며 탈세를 일삼던 테크자이언트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금액의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매출을 달성할 동안 “稅테크”를 통해 쥐꼬리만큼의 세금만을 내는 동안 지구상의 자산은 점점 더 소수에 집중되어 왔고, 각국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국채로 발행하거나 엄한 국민에게 소비세를 더 걷는 방식으로 예산을 충당해왔다. 팬데믹 사태 이후 각국의 부채비율이 치솟고 중앙은행의 재정부실이 가속화되는 이 상황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망한 시스템을 빚으로 메꾸고 있는 상황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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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jksvoorlichtingsdienstFlickr: G7 in het Catshuis, CC BY 2.0, Link

플랫폼 경제와 테크자이언트가 득세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이전 체제와 다른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이동성(mobility)”다. 대규모 부지에 세워진 제조업 공장은 이제 우버나 카카오톡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안에 집약적으로 담겨져 있어 그 안에서 생산, 유통, 노동자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영업범위와 기업 본사의 위치가 공간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던 과거의 기업과 달리 테크자이언트들은 언제든지 M&A, FTA, 각국의 세법과 유치정책 등을 활용하여 본사를 자유로이 옮길 수 있게 됐다.2 노동조합도 정부도 이렇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자본의 이동성에 굼뜨게 대응하느라 넋을 놓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이번 협정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큰 배경은 역시 미국 행정부의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으로의 정권 교체일 것이다. 테크자이언트 대부분의 CEO가 바로 미국인임에도 민주당으로서는 더이상 이들의 전횡과 오만함을 묵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재무부는 각국의 세율 인하를 통한 기업 유치 행태에 대해 “바닥을 향한 레이스를 종식(ending the global race to the bottom)” 시켜야 한다고 발언했을 정도로 이 협정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결국 전 세계 최저 법인세율이 관철되면 여러 다국적 기업의 본사,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세금이 미국으로 귀속되리라는 복안도 깔려 있을 것이다.

국제자본주의인터내셔널(!)이 테크자이언트를 길들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