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리히텐슈타인 등 이른바 조세피난처에 대한 독일 정부의 강도 높은 수사가 시작되는 등 국제적인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관련글) 그런데 개인적으로 받아보고 있는 HedgeFund.net 뉴스레터에 최근 이와 관련하여 ‘Offshore Accounts’ 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설이 있어 간략히 이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논설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가장 비협조적이라고 소문난 조세피난처는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안도라 등을 들 수 있고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인기 있는 피난처는 케이맨 군도, 버뮤다, 바하마 등이라고 한다. 유럽인들에게는 스위스, 모나코,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등이 인기 있다고 하는데 역시 지역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논설은 이런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본래 글의 의도인 조세피난처와 국외 은행계좌의 정당성에 대한 변호(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도 잊지 않고 있다. 우선 이 글은 조세피난처는 이미 수십 년간 존재해왔던 것인데 최근 들어 달러화 또는 유로화의 자산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하자 서구의 수사당국이 수사에 나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These foundations and individual accounts have existed for decades and are only now under scrutiny since the dollars (or Euros) have grown to a significant and perhaps noticeable amount.

본격적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필자는 개별 경제주체의 경제적 이윤극대화 추구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즉 돈세탁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금융 테러리즘(financing terrorism)’같은 불법행위는 반대하지만 한편으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소득세를 적게 내려는 이른바 절세 행위는 납세자의 ‘의무’라는 것이 그의 논지다.

But as a U.S. tax payer, it is my duty to pay as little income tax as possible (on a rate basis, but as much as possible on an absolute basis) while still staying within the legal boundaries of our tax code.

필자는 결국 각국은 조세피난처를 비난하기에 앞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들이 ‘합리적인’ 사람들, 또는 자본들의 정상적인 현금흐름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반성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의 세율이 똑같아지지 않는 이상은 이런 세금유출을 막을 도리는 없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하며 끝을 맺고 있다.

김경준 씨 사건으로 제법 이름을 날린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국가 시장에서의 선물가격과 현물가격의 차이를 이용한 거래가 대표적이지만 각국의 금리차이, 환율차이를 이용한 다양한 차익거래 기법도 존재한다. 이는 일체화되어가고 있는 전 세계 금융시장이 같은 환율, 같은 금리로 수렴한다는 가정 하에 순간적인 비정상 상황을 이용하여 차액을 챙기는 기법이다. 그런데 세금회피를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도 일종의 세금에 대한 ‘차익거래’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각국의 세금체계와 세율이 다름을 이용하여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딴에는 필자가 말한 것처럼 합리적인 경제행위다. 그러나 요는 이것이다. 세금회피자들은 각국 간 조세협약, 세법 등의 허점을 이용하여 대개는 도의적으로는 인정될 수 없는 범위에서의 조세회피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오늘날 자본(또한 고소득자인 개인 역시)은 다국적 신분을 활용하여 소득은 이윤포착 기회가 많은 A국에서 벌고 납세행위는 세율이 0이거나 무의미한 수준의 조세피난처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내에서 활동하던 론스타일 것이다. 그들이 HedgeFund.net의 필자의 주장처럼 정당성을 부여받으려면 돈도 케이맨 군도에서 벌었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역시 새 정부 들어 이런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주요 국가들이 단일세율로 자본유치에 대해 일종의 공정경쟁을 선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쿄토 의정서에서 CO2 감축을 위해 의무감축량을 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또 이래놓고 미국이 빠져나가면 우스운 꼴이 되겠지만 말이다.

6 thoughts on “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1. 이정환

    멋진 발상이긴 한데요. 조세회피지역을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단속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더 엄밀하게는 미국이나 유럽을 떠나 이미 국경을 초월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말이죠. 이 초국적 자본에 저항해서 세계적으로 단일 세율을 적용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각국 정부의 통치 자금 역시 스위스 은행이 아니라 이들 조세회피지역을 통해 운용된지 한참 됐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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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물론 현재의 경제체제로는 절대 실현가능성 없죠. 토빈세 하나도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 세계 단일세율’은 공상에 불과하겠죠. 말씀하신바와 같이 국가의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다르고요. 여하튼 최근에 독일이나 다른 선진국들이 세금가지고 푸닥거리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잠깐 꿈이나마 꿔봤습니다. 금융시스템을 통합하여 단일자본시장을 꿈꾸는 마당에 이들에 대한 단일세금 대안은 어쩌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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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정환

    네. 당연한 이야기죠. 자본의 초국적 연대에 맞서려면 초국적 대안이 필요할 테니까요. 당연한 이야기인데 왜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릴까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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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결국 이런 대안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각 나라간, 나라와 자본간 이해관계가 저마다 틀리겠죠. 여하튼 예를 들면 WTO에서 현재 각국의 관세를 조정하는 그 툴 등을 이용해 법인세, 소득세 등을 조율해나간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각 이해관계자들의 처지를 감안한 공정한(?) 세율의 조정, 예외적용, 조세피난처로의 자금이동 처리원칙 등을 조율해나가면서 말이죠. 결국 주요 국가들이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게 관건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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