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티파티(Tea Party)를 즐길 여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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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ün – A Group of Artists” by Jules-Alexandre Grün (1868 – 1934) – http://www.repro-tableaux.com/a/grun-jules-alexandre/a-group-of-artists.html.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부채한도는 상향조정되었지만,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며칠 동안 크게 출렁거렸다.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가지는 위상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국면이며, 이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 과연 이번 부채한도 및 신용등급의 논란의 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일부에서는 한 유권자 단체를 그 승자로 지목하고 있는데, 바로 미국의 보수주의 풀뿌리 유권자 조직 ‘티파티(Tea Party)’가 그들이다.

티파티는 부채한도의 협상 과정에서 존 베이너 하원 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를 압박해 협상안을 연기하도록 하는 등 자신들의 존재를 확실히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親민주당 인사들은 이번 S&P의 신용등급 강등이 이러한 티파티의 강경노선에서 초래되었다며, 신용등급 강등을 ‘티파티 다운그레이드(tea-party downgrade)’라고까지 칭하며 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겠으나, 그만큼 티파티의 존재감이 확인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사실 티파티가 이처럼 공화당 기반까지 흔들 정도로 성장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출발은 반오바마 정서였다. 지난해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보수 유권자들은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 투입을 골자로 한 경기 부양책을 내놓자, 그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부실 회사를 살리려 한다며 맹비난했다. 바로 그때 보수 투자전문 웹사이트 마켓티커(Market Ticker)에 누군가 ‘항의의 표시로 의원들에게 차(tea)를 한 봉지씩 보내자’는 제안을 했다. 이 아이디어는 순식간에 지지를 얻었고, 곧이어 워싱턴 국회의사당의 의원실에 차 봉지가 하나씩 배달되었다.[미 정계 쥐락펴락 ‘티파티’ 파워]

흥미로운 티파티의 생성과정이다. 영국의 식민지 미국에 대한 과다한 세금부과에 항의하며 영국 상선에 있던 차를 바다에 내던진 18세기 미국인들의 저항을 의미하는 ‘보스턴 티파티’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티파티는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 특히 월街에 대한 구제금융에 항의하며 들불처럼 일어났다. 개인의 자유에 대해 유난히 민감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인들이 자신의 세금으로 월街에 “공짜 점심”을 준 것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느낀 것이다. 자유와 개인을 지향하는 미국답다는 생각이 든다.

월스트리트는 너무 추상적이고 대침체를 초래한 금융 게임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 대한 정부의 구제금융은 거의 모든 이들이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티파티의 등장이 월스트리트의 구제금융의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티파티를 지지하는 한 지인은 “정부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포섭되어, 우리 세금을 가져가고, 우리의 점심을 먹기 때문에” 정부를 싫어한다고 내게 설명했다.[The Rise of the Wrecking-Ball Right]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사실 월街의 위기를 방기한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합작품, 감세와 전쟁비용을 통해 재정위기를 가속화한 것은 공화당, 월스트리트 구제금융의 물꼬를 튼 것도 공화당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공화당 지지자들과 서민들은 정권이 바뀌고 똑같은 짓을 오바마가 하자 그제야 분노가 폭발했다. 이것은 사회저변에 깔려있던 연방정부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또는 유색인종 대통령에 대한 반감?) 우익들이 적절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재료로 활용했음을 의미한다.

즉, 처음에 구제금융 등에 항의하며 시작된 운동이었으면 Robert Reich와 이야기를 나눈 그 사람의 분노를 삭일 수 있는 지향점,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포섭된 정부”를 개혁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인데, 티파티는 이번 예산삭감을 넘어선 다음 목표를 복지예산 삭감과 환경규제의 완화로 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의도된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즉, 티파티는 힘 있는 자에 대한 지원은 그대로 둔 채, 힘없는 자의 밥그릇을 뺏음으로 정부의 독선을 막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Tea Party에 질질 끌려다니는 미국과 지구를 풍자한 이코노미스트 만화

미국인들이 개인적 자유에 대한 갈구가 유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 대다수 민주주의 인민들의 공통정서이기도 하다. 다만 이 자유에의 의지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구분되느냐 하는 것인데, 정치와 경제에 대한 스탠스에 따라 자유주의자라도 Libertarian과 Liberal이라는 상반된 인간형으로 나뉠 수 있다. 대다수 서민들은 이런 입장이 혼재될 수 있는데, 특정 정치세력의 기획에 의해 그 혼재된 입장이 효과적으로 정리되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바, 티파티가 이런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의 간섭과 복지 국가를 지지하는 미국식의 자유주의를 지칭한다.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경제적 자유와 개인자유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려면 국가가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중략] 이러한 자유주의는 국가와 자유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경제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Libertarian), 양쪽도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Authoritarian), 경제적 자유에는 개입하지 말고 개인의 자유에는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Conservative), 경제적 자유에는 개입하고 개인의 자유에는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Liberal)으로 구별된다.[David Boaz, Libetarianism, A Primer; The Free Press, 1977, p. 22. / 자유주의만이 살길이다, 한국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엮음, 평민사, 2006년, p80에서 재인용]

예를 들어 A가 리버럴적 지향점을 가진 이라면 정부의 복지지출 등 공익적 지출에 호의적인 입장을 가질 것이고, 신용위기가 닥쳤을 때 은행을 구제해야 한다면 그는 선택적으로 그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A가 리버타리안이라면 복지지출과 구제금융 모두 연방정부의 월권이라며 비난할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A가 복지지출의 수혜자이면서도 리버타리안의 입장을 견지하는 경우일 텐데, 실은 미국이나 우리 사회나 이런 ‘정치 색맹’이 꽤 많을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요컨대, 자신의 물적 토대를 분명히 이해하고 사회 프로세스, 특히 경제정책 등에 대해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분명히 부합하는지에 따라 정치적 행위를 하는 이는 그나마 자주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착시현상에 의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면 이보다 더 비참한 상황도 없을 것이다. 노인우대로 공짜 버스를 타면서 무상급식에 반대하고 엉뚱하게 노동자 투쟁현장에 가서 구사대 노릇을 하는 한국의 노인들이나 헬스케어 토론장에서 “내 메디케어를 뺐지 마라”고 시위하는 미국 노인들처럼 말이다.

이렇듯 물적 토대와 정치적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는, 물론 정치적으로 선명하지 않은 기성정치 구도도 한몫하고 있다. 양당 모두 기업정치에 매몰되어 빠져나올 수 없는 미국 정치권, 경제에 있어서 차이가 미미하면서도 정치 슬로건만 극렬대치하고 있는 양당구조와 이를 大權추수주의로 극복하려는 “진보진영”이 존재하는 한국 정치권이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기에 불신은 심해지고, 결국 티파티와 같은 -대중의 분노를 상층부의 물적 이익에 악용하는- 우익 포퓰리즘이 발흥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티파티는 ‘리버타리안 나찌’에 가깝다.

14 thoughts on “미국은 지금 티파티(Tea Party)를 즐길 여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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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ticky Post author

    초기부터 티파티 운동의 조직화와 집회를 지원하고 있는 AFP는 데이비드 코치와 찰스 코치 형제의 주도로 조직된, △사회서비스 축소 △규제 철폐 △세금 감면을 주장하는 정치 조직이다. 2008년 경제지 < 포브스>에 따르면, 코치 형제가 소유한 코치산업(Koch Industries)은 미국의 비공개기업 중에서 카길사에 이어 2위 규모로, 연간 수입이 980억달러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다.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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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춘풍

    Libertarianism: A Primer … 기사 안에서 인용한 책의 제목이 잘못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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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Post author

      지적 감사합니다. 아래 한글에서 글을 작성해서 올리는데 거기서 뭔가 에러가 있었던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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